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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닮았다
 아버지와 닮았다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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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딸의 아빠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란,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어떤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알았다. 아버지를 고등학교 때 천국으로 떠나보낸 나로서는 37년이 흐른 지금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는 '머릿속에 지우개'가 생기 전 아버지 얘기를 자주 하셨다. 치매인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 후에는 빛바랜 아버지의 흑백 사진을 꺼내 보곤 한다.

아버지의 빡빡머리 학창시절 모습, 마라톤에 참가하셨던 사진, 이모들과 같이 찍은 사진, 어머니와 포즈 잡고 찍은 사진 등. 빡빡머리 사진은 나의 중학교 시절과 비슷해 웃음이 난다. 어머니의 팽팽한 피부는 세월의 흐름을 알게 한다. 나의 백일 사진도 있다. 아버지는 내 삶을 사진으로 잘 남겨 주셨다. 잔칫상 앞에서 만년필을 집은 내 멋진 돌사진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아쉽다. 

아버지와 같은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과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왼 가슴에 손수건을 찬 일곱 살 내 사진을 보자 뭉클했다.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이다. 그 사진을 보자 어린 시절 기억이 솔솔 났다. 아버지는 늦둥이 아들을 데리고 여러 곳을 다니셨다. 사진도 많이 찍어 주셨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나를 늘 데리고 다니셨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두 가지

내 백일사진과 어린시절
 내 백일사진과 어린시절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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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9명의 의형제들(아래 왼쪽 첫번째가 아버지)
 아버지 9명의 의형제들(아래 왼쪽 첫번째가 아버지)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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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내리던 날이었다. 아이들과 비를 맞으며 슬라이딩도 하고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비에 젖은 채 서로 보면서 웃고, 덜덜 떨면서도 좋아했다. 그렇게 비를 맞고 저녁 때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버지가 회초리를 드셨다. 감기 걸리면 큰일이 나는데 비를 너무 맞았다는 것이다. 다리에 멍이 들도록 맞았다. 그러던 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안고 우셨다. 그 눈물의 의미를 부모가 돼야 알았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 내 사진을 번갈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아버지는 가끔 친구들을 다방에서 만나셨다. 다방에 들어서면 "아줌마, 나는 크리무 주세요"라고 내가 먼저 말했다. 커피 대신 크림을 가득 넣은 특수제작 메뉴는 내 것이었다. 그러면 다방은 웃음바다가 됐고, 한의사 아저씨는 돈을 주시곤 했다. 어떤 아저씨는 여러 사탕과 과자가 가득한 '종합선물세트'를 사들고 오시곤 했다. 집에 돌아갈 때는 돈과 선물이 넘쳐났다.

집에 도착하면 아버지가 나를 가르치는 인생 공부가 시작된다. 첫 번째 과목은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는 과자와 사탕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아버지가 직접 나누어 주는 법이 없었다. 내가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외아들인 내가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하신 아버지의 특별교육이었다. 육촌 주영이는 늘 나보다 많은 과자를 먹었다. 두 번째 과목은 받은 돈을 저금통에 저축하는 것이었다. 돼지저금통은 동전보다 지폐가 많을 정도로 항상 배불렀다.

아버지와 한복 입고,어머니와 집에서
 아버지와 한복 입고,어머니와 집에서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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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 존 웨인의 서부영화를 보면서 골목을 누비며 총싸움 놀이를 했다. 당시 조그만 돌을 넣어 쏠 수 있는 권총은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존 웨인이 권총을 사용하고 나서 말안장에 있던 장총 꺼내 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장총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장총을 사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저녁 퇴근 시간에 아버지는 장총을 들고 오셨다. 그런데 총을 사신 것이 아니라 철물점에 가서 직접 만들어 오신 것이다. 이때의 기억은 내가 부모로서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알게 한 추억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어느 날, 내가 축구공과 야구 글러브가 갖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당시 가죽공과 가죽 글러브는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멀리까지 가셔서 공과 글러브, 방망이와 공까지 즉시 사오셨다. 나는 아까워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또 사줄 테니 사용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결국에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없어졌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흔한 물건이 아니기에 누가 사용하는지 살펴봐야 했다.

누렁이를 키우는 초등학교 5학년 형이 내 물건을 사용하고 있었다. 분명 내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눈썰미가 있어서 한번 본 것은 기억을 잘하는 나였기에 범인을 잡은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네가 본 것이 아니니, 네 것이라도 그냥 놔두라"고 하셨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집 앞마당에서 놀면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형이 누렁이를 풀어놓는 바람에 개에 물리게 됐다. 피가 운동화 가득 번졌다.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알렸고 놀란 아버지는 나를 업고 병원으로 슈퍼맨처럼 달려가셨다. 그때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시는 유일한 분으로 보였다. 그렇게 간절히 아들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처럼 생각한 사람은 못 봤으니까.

그때 아버지의 마음은 나의 큰딸 예나가 출생 3달 만에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야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내가 대신 입원했으면 했었다. 어린 것의 팔에 링거가 꽂혀있는 것을 보면서 울었으니까. 그나마 다른 아이들처럼 머리에 링거가 꽂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핏줄을 못 찾아 머리에 꽂으려는 간호사와 내가 입씨름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 아니겠는가.

아버지를 닮은 나, 나를 닮은 딸들

중국 여행 가족사진
 중국 여행 가족사진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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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를 본다. 내 속에 그분의 존재가 남아 있다. 아니 판박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시원한 이마, 팔자걸음, 자식 사랑, 그림 솜씨도 닮았다. 아버지는 동양화를 잘 그리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식을 무인도에 혼자 사는 존재처럼 만들지 않으려는 가치관은 너무 닮았다. 난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우리 딸들에게서도 나를 발견한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 아이들도 그림을 잘 그리고 글도 잘 쓴다. 편집능력도 있다. 내가 기자생활과 편집장 생활을 했었는데 아이들도 학교에서 'YEARBOOK' 편집장으로 당당히 활동했고, YEARBOOK 편집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여받기도 했다.

딸들과 중국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나는 베이징 거리를 걷다가 장애인과 어려운 할머니들을 만나면 작은 돈이라도 드렸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좋아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따라하면서 기뻐했다. 숙소에 돌아와 둘째 예린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몇 년 전 아이티로 선교여행 다녀온 후기였다. 그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려는데, 꼭 도와주고 싶은 아이와 할머니가 있었는데 남은 돈이 없어 도와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을 보며 울었다고 한다.

아이티를 떠나 왔지만 몇 년 동안 그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귀한 마음이었다. 그런 섬기는 마음은 부모님이 나에게, 내가 딸들에게 물려준 좋은 마음이었다. 섬기는 삶을 사셨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니 아버지가 그립다. 두 분의 피가 내 속에 있다. 내 안에 아버지가 있다. 어머니가 살아계시다. 그리고 딸아이들 안에 아빠인 내가 있다. 감사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작가이며,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냈고,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로, '생각과 말'의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와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돕는 구원투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태그:#아버지, #어머니,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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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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