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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안산시장실에서 제종길 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남일 한국와이퍼 노사협의회 노측위원회 위원장 대리가 이천환 안산희망재단 이사장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회연대기금으로 5천7백3십만4천1백원을 전달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4일 오후 안산시장실에서 제종길 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남일 한국와이퍼 노사협의회 노측위원회 위원장 대리가 이천환 안산희망재단 이사장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회연대기금으로 5천7백3십만4천1백원을 전달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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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원·하도급 및 사내하청 개혁, 지역사회 공헌활동 등을 위한 사회연대기금 조성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남성과 여성 간의 차별을 넘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사회적 연대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행보로 읽힌다.

이런 가운데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3년여에 걸친 통상임금 미지급금 소송에서 승리한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땀과 눈물이 짙게 밴 돈을 지역사회에 기부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무더위 속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의 주인공은 안산 반월공단 소재 한국와이퍼 노동자.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14일 오후 안산시청 시장실에서 제종길 시장과 이천환 안산희망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연대기금 전달식을 했다.

전남일 한국와이퍼 노사협의회 노측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 등 참석 노동자들은 이천환 이사장에게 5천7백3십만4천1백원을 전달했다. 최윤미 노측위원회 위원장은 출산·육아휴직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전남일 위원장 직무대리는 "예전에 우리 회사에 파견직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같이 일하면서 이들의 근로조건이나 처우가 열악해 안타까웠다"며 "안산지역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아 이들의 근로조건과 처우 등이 개선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의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천환 이사장은 "희망재단에 기부해 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우리 사회가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물론 임금격차를 줄이는데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기부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지정기탁금으로 안산희망재단을 통해 안산지역 노동자들의 생활안정과 권익증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에 전해질 예정이다. 

최저임금 사업장 노동자들, 통상임금 소송에 나서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2016년 4월 10일 3차 사원 총회를 열고 있다. 이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소송 진행 경과를 공유하는 한편 사측의 갖가지 유언비어에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함께 갈 것을 다짐했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2016년 4월 10일 3차 사원 총회를 열고 있다. 이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소송 진행 경과를 공유하는 한편 사측의 갖가지 유언비어에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함께 갈 것을 다짐했다.
ⓒ 한국와이퍼 노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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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와이퍼(주)는 1987년 창립 후 IMF 시기에 일본의 다국적 자동차부품 기업인 덴소가 인수했다. 이후 일본 자동차 회사와 현대·기아자동차에 와이퍼를 납품해 왔다.

현재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에 본사(제1공장)와 제2·3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장 노동자는 295명이며, 노사협의회가 노동조합을 대신하고 있다. 파견노동자는 3~4년 전 200여명에서 25명으로 줄었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사회연대기금을 기부하기까지는 3년에 걸친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전남일 위원장 직무대리는 "노동자들의 평균근속연수는 8년이며, 임금은 상여금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최저임금 수준일 정도로 어려운 처지"라고 말했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소송' 투쟁에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13년 12월 18일 중요한 판결을 내린다. 갑을오토텍 노동자 296명이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며 회사를 상대로 낸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 후 한국와이퍼 노측위원들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판결내용을 알리고 의견을 수렴해 갔다. 노측위원회는 2014년 초부터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비정규직지원센터)에서 통상임금 등의 교육을 받는 한편 현장 노동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설득해 갔다.

같은 해 6월 '통상임금 계산시 각종 수당에 대한 협의안'을 사측에 제출하고, 7월 2일 5차 사측과 임금협상 중에 통상임금 중 수당 3년치 소급분 지급에 합의했다.

그리고 다음달 7일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하기 위한 사원 총회가 130여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때의 상황을 노측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가 모일 수 있을까. 마음 초조했던 그 순간, 마법같이 자리가 채워지고 서로의 '눈빛'을 확인했던 그 순간, 그날, 우리는 가능성을 보았다."

8월 28일에 사측에서 통상임금 실무회의를 제안했으나 여전히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해 상여금 논의는 사실상 결렬됐다.

이후 노측위원회를 중심으로 사측 입장에 대한 반박성명서에 현장 노동자 전원이 동의서명을 하면서 노사 간 팽팽한 힘겨루기가 본격화됐다. 그렇게 통상임금 소송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2014년은 저물어 갔다.

안개처럼 스며든 위기… 동료들 마음에 '들불'이 일다

한국와이퍼 소통위원회 위원들이 2016년 7월 21일 1심 패소 이후 판결문을 검토하고 항소를 결정하면서 주먹을 쥔 채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국와이퍼 소통위원회 위원들이 2016년 7월 21일 1심 패소 이후 판결문을 검토하고 항소를 결정하면서 주먹을 쥔 채 결의를 다지고 있다.
ⓒ 한국와이퍼 노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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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소송을 위한 몸 풀기는 끝났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15년이 됐다. 투쟁의 서막은 올랐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2월 들어 소송인지대로 수당 소급분 10%를 모으기로 합의하고 1천만원 모금을 진행했다. 같은 달 8일에는 사원총회를 열어 '미래를 위한 선택과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3월 3일에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과거 3년 치 소급분을 지급하라'며 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9월부터 12월까지 10여 명씩 돌아가며 재판에 참여했다. 이때의 절박한 심정을 이들은 이렇게 기록했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모였다. 다리에 깁스를 해서도, 금쪽같은 휴가 쓰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일하느라 졸린 눈을 비비고, 그 고단했던 얼굴 속에 빛났던 눈동자들, 차가워져 오는 아침공기를 견디며, 우리는 '단 1분'의 재판일지라도 기다렸다."

해가 바뀌고 2016년. 3월 10일 4차 재판이 열렸으나 사측은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4월이 되자 사내하도급을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노측위원들은 사내하도급의 문제점에 대해 비정규직지원센터와 시화노동정책연구소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전열을 재정비했다.

같은 해 6월 '합법적 운영 촉구와 고용안정을 위한 대책위원회'도 구성했다. 흔들림 없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에 사측은 "노측과 협의 없이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7월 14일 1심 재판부는 '통상임금성이 인정돼도 소급분 지급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기각을 선고했다.

안개처럼 위기가 스며들었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는 패배주의가 현장에 퍼져 나갔다. 위기에는 위험과 함께 기회도 있는 법. 사원총회를 열고 이어 '소통위원회'를 조직했다. 소통위원회는 항소를 결정했다. 그리고 티타임 등을 통해 동료들을 만나 소통의 결을 단단히 다져갔다. 당시 상황을 이들은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동료들의 마음속에 다시 '들불'이 일어났다. 못 받아도 좋다. 우리가 쪼다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보여주자. 함께하니 용기가 생겨났다. 압도적 다수가 힘 있게 항소를 결정했다."

7월 28일 임금협상설명회를 가졌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투쟁은 이어졌고, 그해 12월 7일 서울고등법원은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2014년, 2015년 통상임금 미지급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승리했다.

"마침내 우리는 이겼다. 승리라는 결과보다 값졌던 것은 앞으로 우리를 지켜갈 우리의 힘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바로 '단합'이다."

"지역사회 노동조건 개선에 힘 모아 나갈 것"

14일 오후 안산시장실에서 열린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사회연대기금 전달식에 앞서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14일 오후 안산시장실에서 열린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사회연대기금 전달식에 앞서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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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통상임금 소급분을 왜 사회연대기금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사회연대기금에는 정년퇴직 등으로 퇴사한 노동자들 역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동참했다.

전남일 위원장 직무대리는 "소송에 들어가기 전에 현장 노동자들과 논의해가는 과정에서 이미 결정을 했다"며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도움으로 소송을 준비할 수 있었던 만큼 승소하게 될 경우 일부를 모아서 사회연대기금으로 쓰자고 약속을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최윤미 위원장은 "중소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선뜻 자신의 몫 일부분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결정을 실천에 옮긴 동료들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우리 회사의 노동조건 역시 반월공단 전체의 노동조건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며 "지역사회 전체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함께 힘을 모아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과 함께 통상임금 소송을 결정하고 연대한 비정규직지원센터는 어떤 생각일까.

김진숙 정책팀장은 "소송이라고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노동자들이 이길지 질지도 모르는 소송을 결정한 것"이라며 "지난한 소송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승소가 결정된 순간 자신이 받을 몫을 더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해 쾌척할 때까지 수많은 두려움과 우려, 주저함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그러나 더불어 살자는 기치 하에 노동자들이 함께 논의하고 함께 결정하며, 항상 최선의 답을 찾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며 "안산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멋진 단결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범들이 더 많이 알려지기를 기대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태그:#한국와이퍼 사회연대기금 전달식, #한국와이퍼 통상임금 소송 투쟁, #한국와이퍼 노사협의회,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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