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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부사동, 보문산 자락을 향한 급한 경사 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샌가 도심은 저 아래 발밑에 있다. 그리고 부용로 72번길에 가까워질수록 살갑게 단장한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회복지 장애인시설 '쉴만한 물가'가 중심이 되어 봉사자, 마을 주민이 함께 텃밭을 가꾸고 벽화를 그려 놓은 것이다.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쉴만한 물가의 장애인들이 만든 작은 다육식물 화분과 토우들도 눈에 띈다. 2016년, 쉴만한 물가의 구성원들은 예땅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장애인들이 도예 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며 지역 주민의 직업 훈련까지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쉴만한 물가 앞에서 구성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활짝 웃는 예땅 협동조합 구성원들 쉴만한 물가 앞에서 구성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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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를 매개로 세상에 나오다

"재작년에 '꽃동네 새동네'란 이름으로 대전형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쓰레기로 뒤덮였던 곳에 텃밭을 가꿨어요. 그러다 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도 늘었고 저희도 다른 것들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원래 쉴만한 물가에서 도예 활동을 했었거든요. 발달장애인들이 도예 활동에 소질을 보여서 장애인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예땅 협동조합의 감사를 맡고 있는 쉴만한 물가 조순준 원장의 이야기다. 발달 장애인들이 손을 써서 하는 도예 활동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조순준 원장은 마음 맞는 장애인들, 비장애인들 함께 예땅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현재 예땅 협동조합은 크게 도자기 판매, 도예 체험학습(교육), 커피점 예땅 운영의 세 가지 사업을 진행 중이다.

판매하는 도자기는 미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다. 다육식물 화분, 캔들 홀더, 생활 자기, 토우 등 다양한 도자기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쉴만한 물가 내에 작업실과 가마를 갖추고 있어서 도자기를 만들고 굽는 것까지 진행한다. 개성이 드러나는 하나의 '작품'들이 장애인들의 손에서 탄생한다.

아직 구성원들이 만드는 작품을 안정적으로 판매하는 경로는 마련하지 못한 상태이며 프리마켓이나 바자회가 열리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예땅 협동조합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통로이며 구성원들이 만족할 만큼의 수익도 내고 있다.

예땅 협동조합에서는 장애인, 비장애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체험학습을 할 수 있다. 기본 7주 커리큘럼으로 진행하는데 현재는 커리큘럼에 따르지 않고 수강생들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든다.

예땅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커피점 예땅은 쉴만한 물가 근처에 위치한다. 근긴장성 이영양증이라는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는 모이슬씨가 카페의 매니저로 활동한다. 음료를 만들고 카페를 지키며 필요한 일들을 하지만, 돈 계산은 할 수 없어 모이슬씨의 활동 보조 선생님이 함께한다.

커피점 예땅의 문을 연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단골도 몇 생겼다. 마을 주민이 산책하다 들르기도 하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평소에는 쉴만한 물가 식구들이 쉼터로 이용한다.

커피점 예땅에는 여름날에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 커피점 예땅 커피점 예땅에는 여름날에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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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행복한 삶을 꿈꾸며

예땅 협동조합을 설립할 당시 구성원들은 지역의 어르신들도 함께 참여해 도자기를 만들고 수익을 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직 계획했던 사업을 진행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내부 구성원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사업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구성원들은 예땅 협동조합의 활동으로 변화하는 것들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한다.

"도자기 만들면서 우리는 두 번의 효과를 누려요. 흙으로 뭔가 만들어서 굽는 활동은 장애인들에게 수업이 되고 또 수익을 낼 수도 있으니까요. 자신들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장애인들이 마음의 안정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조순준 원장은, 아직 특별한 성과는 없지만 예땅 협동조합의 활동이 장애인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온다고 이야기한다. 지역 주민들도 이들의 활동을 응원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미 쉴만한 물가가 꽃동네 새동네 활동 등으로 마을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쌓은 결과 마을 내에서는 장애인에 관한 편견도 적은 편이다.

"저희의 활동으로 장애인에 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진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요. 앞으로 좀 더 많은 분이 커피점 예땅에도 찾아오면 좋겠고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도 많이 편안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예땅 협동조합 조은희 대표의 이야기다. 조은희 대표는 원래 쉴만한 물가에 봉사자로 참여해 오다가 올해부터 직원이 되어 함께한다.  

현재 열다섯 명 정도가 예땅 협동조합에서 활동한다. 큰 욕심을 내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성과로 삼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수익 창출이 예땅 협동조합의 가장 큰 고민이다. 만들 때마다 다른 모양을 할 수밖에 없는 도자기의 특성상, 인터넷 판매에 문제가 따라 판로를 개척하는 게 어렵다.

그렇기에 예땅 협동조합은 앞으로 교육 활동과 함께 다른 활동들을 계획한다. 구성원들은 장애인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이곳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계획한다. 조순준 원장이 예땅 협동조합의 목표에 관해 말한다.

"이곳에서 도예 전문가가 나오지는 못해요. 단지 이런 활동을 매개로 지역 주민들과 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리게 됐으면 하고 바라요. 장애인 인식 개선의 매개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여기에 수익이 좀 생기면 우리 장애인들이 풍요롭게 생활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어요. 장애인들이 노래 부르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걸 꿈꿔요. 그게 예땅의 목표예요."

쉴만한 물가 주변에서 구성원들이 만든 작품들을 볼 수 있다.
▲ 예땅 협동조합의 다육 화분들 쉴만한 물가 주변에서 구성원들이 만든 작품들을 볼 수 있다.
ⓒ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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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월간토마토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태그:#협동조합, #예땅, #예땅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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