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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로 떠날 지프차 지붕에 짐을 실고 있다.
 라다크로 떠날 지프차 지붕에 짐을 실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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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날리에서 라다크 가는 지프차에 배낭을 실을 무렵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혼잡한 마날리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난 리왈샤 청년 까르마는 다른 짐들과 함께 내 배낭을 지프차 선반 위에 올려놓고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방수 천을 덮어 밧줄로 단단히 동여맸다.

"배낭에 노트북이 들어 있어 비 맞으면 곤란합니다."
"걱정 마세요. 이렇게 하면 끄떡없습니다. 비도 많이 오지 않을 거 같고요."

지프차 지붕 위에서 내려온 까르마는 차안에 있는 가족들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라다크에서 열리는 티베트 최대 불교 법회인 칼라 차크라에 참여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인도 각지에서 열리는 칼라차크라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람살라에 계시는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만나 뵌 적도 있고요."
"아, 이번에 달라이라마께서도 라다크에 오십니까?"
"그럼요! 칼라차크라 행사에 늘 참여하시지요. 달라이라마 존자님이 없으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달라이라마를 현존하는 부처로 믿고 있는 까르마가 라다크로 향하는 지프차 출발 시간이 저녁 8시라며 마날리 시장을 둘러 볼 것을 제안했다. 우비를 챙겨 입은 까르마는 시장에서 사촌 누이가 장사를 하고 있다며 앞장 서 걸었다. 가랑비가 제법 굵어지기 시작했다. 나또한 비상용으로 소지하고 다니는 얇은 우비를 걸쳤다.

외국인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뒤섞여 있는 마날리 상가는 넓고 혼잡했다. 음식점과 과일가게 향신료 점포를 비롯해 기념품 가게, 옷가게, 숄 등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까르마 사촌 누이는 옷을 팔고 있었다. 거기서 까르마와 헤어져 각각 저녁을 먹고 오후 7시 무렵에 지프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평균 고도 3500미터가 넘는다는 라다크의 날씨를 감안해 기다란 숄 하나를 구입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헤맸다. 늘 먹던 만두 종류의 모모나 국수 종류의 자오민을 요리하는 식당을 찾다가 향신료를 발라 화덕에 구워 내는 닭 요리, 탄두리 치킨 집을 발견했다. 히말라야 고지대, 라다크에 가려면 아무래도 체력 소모가 많을 것 같아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탄두리 치킨 집 손님들은 거의 다 터번을 두른 시크교인들이었다. 힌두교나 티베트 불교 신도들은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반해 시크교인들은 육식을 즐기는 편이다. 다른 인도 사람들에 비해 시크교인들이 유난히 덩치가 큰 것은 육식에 그 원인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인도 타임은 코리안 타임보다 아주아주 늦을 겁니다"

모모나 자오민에 비하면 열 배 가까이 비싼 닭 반 마리로 하루 종일 굶주린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오자 비가 그치고 있었다. 지프차가 출발하려면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았다. 시장을 할 일 없이 둘러보고 지프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으로 향할 무렵에 또다시 비가 내렸다.

7월 초 몬순, 우기라고는 하나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얇은 우비 하나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바지는 이미 젖었고 윗도리마저 빗물이 스며들어 축축해 졌다. 갈아입을 옷 한 벌이 전부다. 그 옷조차 방수 천에 덮여 지프차 지붕 위에 꽁꽁 묶여 있다. 입은 채로 말려야 한다. 마날리가 2천고지라 하지만 한여름이기에 춥지는 않다.

까르마의 동생, 어린 깨샹은 할머니라 해도 무방할 만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엄마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열세 살, 깨샹은 처음 만날 때부터 싱글 벙글 웃는 얼굴이다. 라다크로 가는 여행길이 무척이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라다크는 처음 가보는 거니?"
"예. 처음요."
"좋아?"
"너무 좋아요."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한국사람. 한국 알아?"
"몰라요."

라다크로 함께 가자 했던 티베트 청년 까르마.
 라다크로 함께 가자 했던 티베트 청년 까르마.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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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마는 저녁 8시가 다 되어서 주차장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지금 출발 합니까?"
"아니오. 아직 운전기사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자동차 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차안에서 기다리기로 하죠."

지프차 문을 열어 주던 까르마가 나에게 깨샹하고 뒷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맨 앞자리는 자신이 앉을 것이고 중간 자리는 자신의 어머니와 세 살 박이 아이를 안고 있는 이웃집 여인의 자리라고 한다. 맨 뒷자리는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는데 반은 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앞자리나 중간 자리에 비해 편치 않은 자리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깨쌍은 몸짓과 자신이 알고 있는 영어를 총동원해 내게 가족이 있느냐 아들은 몇이나 있나 무슨 일을 하는가 끊임없이 물어왔다. 나도 녀석에게 물었다.

"까르마가 진짜 너의 친형이니?"
"예. 저 분이 우리 엄마고요."
"나이 차이가 많구나."
"형이 나보다 열여덟 살이나 나이가 많아요."
"너 여자 친구 있니?"
"아니오, 없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신상파악에 불과한 녀석과의 대화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싱글벙글한 녀석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깨샹은 내 손전화기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녀석에게 내 손전화기를 내줬다. 녀석은 게임을 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게임이라고는 아주 오래된 게임, '벽돌깨기'나 '테트리스'가 전부였기에 녀석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녀석은 손전화기를 자신의 손아귀에 놓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했다.

밤 9시쯤에 티베트 승려가 합류했다. 하지만 10시가 넘어설 무렵에도 운전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늦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천하태평인 까르마는 골초였다. 틈만 나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던 까르마가 내게 말했다.

"12시가 다 되어야 올 것 같습니다. 괜찮겠어요?"
"노 플로브럼! 언젠가는 라다크로 떠나겠죠?"
"물론입니다."
"그럼 됐습니다. 나는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한국에는 코리안 타임이 있습니다."
"코리안 타임요?"
"한국 사람들도 역시 약속 시간보다 늦게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인도 타임은 코리안 타임보다 아주아주 늦을 겁니다."

까르마와 함께 담배를 피워 물고 유쾌하게 웃고 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티베트 스님이 끼어들었다.

"운전기사가 12시에 온다고요? 너무 늦는 거 아닙니까?"

스님의 불만은 또 있었다. 지프차 안은 두 여인네들이 길게 누워 있어 적당히 눈을 붙일 자리도 없다. 그렇다고 언제 출발할지도 모를 지프차를 두고 숙소를 따로 잡기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까르마는 스님이 그러거나 말거나 지프차 주차장 앞에 있는 건물로 날 불러 들였다. 한창 공사 중인 건물에는 길거리 개들이 비를 피해 은신처로 삼고 있었다. 까르마가 내게 말했다.

"스님이 뭐가 급한 게 있다고... 저 스님은 불만이 참 많습니다. 시간에 쫒기지 않는 당신이야 말로 진짜 수행자입니다."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요."

울퉁불퉁한 길을 지프차로... 멀리서만 보던 히말라야 깊숙이 들어섰다

공사 중인 건물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 거리의 개들을 쫒아내고 잠시 눈을 붙였다.
 공사 중인 건물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 거리의 개들을 쫒아내고 잠시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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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마는 공사장에 뒹굴어 다니는 각목을 집어 들고 개들을 쫓아낸다. 개들에게 미안하다. 졸지에 개들은 우리에게 보금자리를 내주고 쫓겨났다. 우리는 개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 박스를 펼쳐 놓고 부랑인들처럼 두 다리를 쭉 펴고 누었다. 지프차 안에서 눈을 붙이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다. 카르마는 히말라야의 높은 지대를 넘을 때 고산증이 찾아 올 거라며 대마를 권했다.

"라다크 가려면 4천, 5천 고지를 넘어야 합니다. 대마초가 고산증을 예방해 줄 것입니다."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나는 델리에서 약을 샀습니다."
"무슨 약입니까?"
"다이아 목스... 저녁 식사를 하고나서 한 알 먹었습니다."

젖은 옷을 체온으로 말려가며 잠시 눈을 붙였다 싶었는데 누군가 깨운다. 깨샹이다. 운전기사가 왔다는 것이다. 손전화기 시계를 확인해 보니 새벽 2시가 넘어서고 있다. 지프차가 마날리 중심지를 빠져 나갈 무렵 뒷자리에 한 사람이 더 올라탔다. 리왈샤에서 내게 스피티 가는 길을 알려준 젊은 여인과 함께 짜이를 마시던 60대 초반의 티베트 사람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그는 내게 눈인사를 한다. 나도 반갑다. 하지만 졸지에 자리가 좁아 졌다. 그 또한 자리가 불편했지만 아무런 동요도 없다. 나와 깨샹, 스님, 티베트 중년, 이렇게 네 명이 한 의자에 두 사람씩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았다. 하지만 마주 본 공간 사이 발밑에 짐이 있어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렵다. 거기다가 나와 깨샹이 앉은 의자에는 작은 짐까지 끼어들어 있어 상체조차 움직이기 쉽지 않다.

지프차는 늦은 출발 시간을 만회라도 하겠다는 듯 밤길을 힘차게 내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급경사를 오르는 느낌과 함께 졸린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공사 중인 건물 안에서 잠시 노숙자처럼 새우잠을 잔 것이 전부였기에 금세 잠들었던 것이다.

라다크 가는 길목, 첫 번째 검문소 콕사(해발 3100미터). 생전 처음 보는 신비로운 풍경은 어질어질한 고산증마저 벗어날 수 잊게 했다.
 라다크 가는 길목, 첫 번째 검문소 콕사(해발 3100미터). 생전 처음 보는 신비로운 풍경은 어질어질한 고산증마저 벗어날 수 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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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의 깨샹.
 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의 깨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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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샹이 싱글벙글 웃어가며 흔들어 깨운다. 밖으로 나와 보니 이제 막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낯선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생전 처음 접하는 신비로운 풍경들이다. 그 멀리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초콜렛 빛깔의 경이로운 풍경에 취해 있는데 까르마가 다가와 내게 여권을 준비하라고 한다. 마날리에서 레까지 히말라야 고지대를 넘기 위해서는 네 군데의 검문소를 거치게 되는데 그 첫 번째 검문소라고 한다.

"여기가 어딥니까?"
"콕사 라는 곳입니다."

그동안 인도 네팔을 여행 했던 곳 중에 가장 높은 지역은 북인도 문시아리 2300고지 였는데 이곳 콕사는 해발 3100미터, 내가 어질어질한 고산증을 느끼다가 잠든 사이에 산길 험하기로 악명 높은 히말라야 4천고지, 로탕 라(해발 3980미터) 고개조차 이미 넘어 왔던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멀리서만 보아왔던 히말라야 깊숙이 들어서 있었다.

"아, 드디어 히말라야로 들어섰네요."
"이제 시작입니다. 라다크까지 가려면 4천, 5천 고지의 히말라야를 넘고 또 넘어야 합니다."

나는 버스로는 타고 누닐 수 없는, 중간 중간에 쉬어가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유로운 지프차 여행길에서 신비로운 히말라야 설산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때가지만 해도 해발 4천, 5천고지에서의 고산증보다 더 힘든 지프차 여행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라다크로 가려면 저 멀리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해발 4천, 5천고지의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또 넘어야 한다.
 라다크로 가려면 저 멀리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해발 4천, 5천고지의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또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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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북인도 마날리, #인도 타임, #깨샹, #히말라야 콕사(해발3100), #고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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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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