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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담을 쌓고 칩거했다. 그는 집에서 논어만 읽었다. 한 자 한 자 되새기며 소리 내어 논어를 읽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주대환(64)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의 이야기다. 주대환은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시작한 이래 부마항쟁, 인천에서 인민노련,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거쳐 지금 죽산기념사업회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에 중심에 서왔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운동 과정에서 여러 차례 투옥된 것은 물론, 이후 민노당 분당 사태, 창당 실패, 총선 낙선까지, 힘든 시기를 견뎌야 했다. 죽산기념사업회를 맡아 활동을 재개하기까지 그는 칩거하며 논어를 읽었다.

그는 논어를 읽으면서 많은 위로와 용기를 받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회를 글로 모아 낸 책이 <좌파논어>다. 숱한 투쟁과 도전, 좌절과 실패를 거듭한 40년 사회운동가 주대환. 그는 과연 어떤 관점에서 논어를 읽었을까. 그리고 어떤 의미를 얻었을까.

운동의 지침서, 논어

주대환 저 <좌파논어>
 주대환 저 <좌파논어>
ⓒ 나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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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연대다.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고 격려하는 '연대의 언어'다. 공자는 당을 만든 사람이다. 그 당의 강령은 인이고 전략은 예와 악이다. 그 당원은 군자다. - 책표지.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말 그대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새로우면서도 매우 일리 있는 관점이었다. 그것을 이토록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공자 학단은 단순한 공부 모임이 아니었다. 공자는 학자 이전에, 뜻을 펼칠 곳을 찾아 유세한 정치가였다. 제자들도 공자에게서 학문을 익힌 이후, 제후에게 발탁돼 정치에 입문하는 게 코스였다. 이런 점에서 공자 학단은 일종의 정치결사체에 가까웠다.

저자는 공자가 최고 가치로 삼았던 인(仁)을 강령으로, 예(禮)와 악(樂)을 전략으로 설명한다. 지금의 각 정당이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것이 공자에게는 인이었다. 인은 '백성에게 베풀어 많은 민중을 구제하는 것'(博施於民而能濟衆)이다. 이를 이룩하기 위해 공자는 예와 악을 중시했다. 공자 '당'의 전략인 것이다. 저자는 공자 '당'의 전략에 비추어 지난날의 운동을 반추한다.

나의 노동운동, 진보정당,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우리들 동지 사이에는 바로 '예악'(禮樂)이 부족했다. 물론 나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능숙하지 못했고, 동지들 간 인간관계의 실패로부터 받은 스트레스와 내면의 분노를 조절하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 21p.

공자가 말하는 예는, 제사와 같은 복잡한 겉치레를 가리키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을 성숙하게 다진 후, 내면에서 발현된 존중과 사랑을 때에 알맞게 표현해내는 것이 바로 예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가져야 할 주요한 덕목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한 진보정당에서 당직을 맡았을 때 이 책을 읽었다. 나 역시 그 안에서 인간관계 문제로 괴로움을 겪었다. 당시 나는 '동지'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다. 의견 차와 능력의 미숙함 때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많이 서툴렀던 것 같다.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도,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싸워야 한다는 의지도 갖췄지만, 정작 타인을 존중하고 문제를 인내할 줄 아는 성숙함이 부족했다. 당연히 이를 표출하는 방식도 능숙하지 못했다. 예가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우리들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도 '예악'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야 앞으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 21p.

악도 마찬가지다. 악은 음악이다. 예가 적정한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상호존중을 다진다면, 음악은 관계의 결속을 도모한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주차관리 노동자들이 전원 해고된 적이 있다. 열악한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자 노조를 결성했는데, 학교가 전원 해고로 응수한 것이다. 이에 해고 노동자들과 노조, 나를 포함한 학생 몇이서 학교를 상대로 함께 투쟁했다. 서명운동, 점거농성, 단식도 했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패인은 학생들의 많은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데에 있었다. 이는 어쩌면 예정된 귀결이었는지 모른다. 단적으로, 집회할 때도 노래를 틀어 무력시위를 할 때도, 부르는 것은 모두 80년대 투쟁가뿐이었다. 군가풍 반주에 '해골 두 쪽 나도 지킨다'는 가사가 20대 학생들에게 와 닿을 리 만무했다.

차라리 여남노소 다함께 부를 수 있는 '고향의 봄' 같은 동요를 불렀더라면 어땠을까. 음악은 공자 말대로 공감을 일으키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기능을 한다. 21세기 대학 캠퍼스에서 울려퍼진 옛 투쟁가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낯섦과 불쾌감만을 안긴 것은 아닌가 후회된다.

군자의 반대말, 꼰대

나는 30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 애쓴다. 공자도 46살 차이의 증자를 비롯한 손자뻘 제자들과 놀았기 때문에 소인이 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논어> 역시 공자의 말씀이라기보다는 '공자가 젊은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아닌가? - 241p.

저자는 공자 '당' 당원의 요건을 군자라고 풀이한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은 군자는 못 될지언정 소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꼰대'가 되지 않는 게 소인을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자칫 군자를 바른 말씀만 하는 꼰대로 여기기 쉬운데, 공자의 진면모에 주목함으로써 군자가 주는 낡은 이미지를 역전시키는 발상이 흥미롭다.

실제로 나는 저자를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나와 저자는 무려 마흔 살 차이가 나건만, 한 번도 나를 아랫사람으로 하대한 적이 없다. 그 나이대 분들 중에 저자만큼, 어린 사람에게 존중하는 태도와 깍듯한 경어를 사용하는 분을 여태껏 나는 보지 못했다.

이렇듯 저자에게 논어는 그간 활동의 실패 원인과 앞으로의 방향을 배우는 운동의 지침이자 삶의 지침서가 됐다. 그는 논어로부터 위로와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또 청년들에게도 논어가 희망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서문에 덧붙였다. 

공자도 수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그런 역경을 딛고서 탄생한 것이 <논어>다. 그렇기에 <논어>는 지친 우리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저자처럼 그리고 나처럼,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일의 지혜가 필요한 사람에게 <논어>가 묻는다.

'아프니? 괜찮아, 다시 해보자.'


좌파논어

주대환 지음, 나무나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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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주대환, #좌파논어, #나무나무, #사회민주주의연대,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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