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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서 한동안 극장 앞에서 떠나질 못했다. 아쉬움을 나누기 위해 최낙용 대표가 든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서 한동안 극장 앞에서 떠나질 못했다. 아쉬움을 나누기 위해 최낙용 대표가 든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임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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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4일 오후 3시(현지시각), 암스테르담 시내의 리알토(Rialto) 극장 135석 상영관이 빈자리 없이 관객으로 꽉 찼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상영되었다. 이 영화가 암스테르담에서 상영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교민 한 사람에 의해서였다.

"꿈속에서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저녁을 드시고 가셨어요. 그날 복권을 사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 같습니다. 이런 행운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죠.(웃음)"

영화 상영을 성공리에 끝낸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독특한 대답을 내놓은 구자경(39, 공인회계사)씨는 네덜란드 이민 준비를 하고 있던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 그는 충격이 가실 겨를도 없이 그다음 달인 6월에 한국을 떠나왔다. 그 때문인지 꿈에 대통령이 나타난 것 같다는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너무나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기는 상영관이 없으니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혼자 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당연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작사에 연락해서 영화를 암스테르담에서 볼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알고 지내온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의 진모영 감독에게 이런 생각을 전했고 <노무현입니다> 제작사 '풀'의 최낙용 대표와 연락이 닿게 되었다.

영화 상영 추진하자, '촛불'들이 모였다

영화제작사 풀 최낙용 대표와 암스테르담에서 <노무현입니다> 영화 상영을 성공시킨 교포 구자경 공인회계사
 영화제작사 풀 최낙용 대표와 암스테르담에서 <노무현입니다> 영화 상영을 성공시킨 교포 구자경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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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후 한 달 정도가 지나, 암스테르담의 한 극장에 영화 파일이 들어오고 제작자가 무대인사를 하는 멋진 행사가 치러지게 되었다.

영화 상영을 앞두고 힘들었던 하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 필요한 기술적 지식이 없어 상영을 위한 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이었다. 1회 상영을 위해 직장인인 자경씨는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했다. 게다가 급하게 진행한 일이라 어떻게 관객을 채울지 고민이었다고 한다.

네덜란드 교민들은 약 3천 명 정도. 모두가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1회 상영에 맞추어 암스테르담으로 올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시작한 그의 모험에 동참한 자원봉사자들은 다름 아닌 지난 연말에 탄핵 집회를 함께하며 인연이 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암스테르담 영화 상영에 맞는 포스터를 만들고 영화표를 디자인하는 것은 물론 티켓 판매를 위한 마케팅도 도맡아 했다. 예매를 진행하는 일과 극장 안내 등 자신과 맞는 일을 배정하여 각자가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행사가 아니었기에 적자는 당연했다. 다행히 영화를 본 관객들은 모금함에 감사의 뜻을 표했고, 나머지 적자는 행사를 함께 준비했던 사람들이 서로 나누겠다고 나섰다.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을 찾기 위해 많은 극장들과 접촉했어요. 네덜란드는 소규모의 극장들이 많습니다. 물론 극장은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것을 그들의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된 극장 측 사람들은 이번 행사가 이어지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영화나 문화 이벤트를 매개하는 일은 이곳에서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자경씨는 처음 하는 일을 통해 암스테르담에 한국 문화를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많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영화 시작 전과 시작 후 30분 가량을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는 최낙용 대표
 영화 시작 전과 시작 후 30분 가량을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는 최낙용 대표
ⓒ 임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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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은 노란 풍선을 흔들며 최낙용 대표에게 환호를 보냈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은 노란 풍선을 흔들며 최낙용 대표에게 환호를 보냈다.
ⓒ 임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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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입니다> 제작자, 교민들과 기쁨 나눠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바쁜 일정에 쫓기고 있었던 제작자 최낙용씨는 영화 상영 전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그가 무대인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거의 없었다. 제작자의 무대 인사를 미리 홍보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여기 이렇게 암스테르담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모두 촛불 시민들의 힘입니다. 만약 다른 시간이 찾아왔더라면 저는 지금쯤 어딘가에서 조사받고 있을 테니까요."

해외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난 영화 제작사 최낙용 대표의 표정은 밝았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던 비밀 프로젝트가 베일을 벗고 이렇게 자유롭게 전 세계로 날개를 펼치게 된 것을 기뻐하며, 한 번의 상영에 극장을 가득 메워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최 대표는 영화가 끝난 이후 아쉬움에 극장을 떠나지 못하는 교민들을 위해 포스터를 들고 사진을 함께 찍었다. 교민들은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암스테르담에서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독특한 장면은 그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영화 상영을 위해 수고한 자원봉사자들과 최낙용 대표
 영화 상영을 위해 수고한 자원봉사자들과 최낙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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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를 했던 안금란(41, 컨설팅 회사 대표)씨는 "탄핵 집회의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일이고 문화 행사라 더욱 뜻이 깊었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를 본 후 노무현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다"며 "노사모의 존재가 이번 탄핵을 이끌었던 시민들의 원초적인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남편과 함께 와서 영화를 봤다는 그는 "남편에게는 영화만으로는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 것 같았다"며 "영어 자막이 너무 짧고 말의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남편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성정연(27, 유학생)씨는 "아시아 영화제 자원봉사를 하면서 네덜란드 극장과 영화 산업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는데 이번 행사는 나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 배급사이면서 멀티 플렉스 영화관을 운영하는 프랑스 파테(Pathe)가 네덜란드에 들어와 있지만 예술성과 다양한 문화를 알리는 것을 지향하는 중소극장들이 많은 곳이 네덜란드다"며 "이곳에서 정치적 성향이 강한 다큐 영화를 상영하면서 135석을 채울 수 있었다는 것은 영화 상영의 경험이 있는 내가 생각해도 상당한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아시아 영화제에 출품하여 상영될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지만 다큐 영화로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두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본 한임경(44)씨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접했다"며 "2002년 영국에서 살고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씨는 "한국의 이번 대통령 탄핵을 보면서 정의로운 일에 침묵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만들어내는지를 실감했다"며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테니 우선은 나부터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면 내 아이들도 정의를 실천하는 용기가 있는 아이들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은 늘 제게도 꿈이다. 국경을 초월해 서로 공경하며 사는 나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함께 잘 살아가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고 지구상에서 정말 유일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해외에서 사는 교민으로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면 좋겠냐는 질문에 행사를 기획한 구자경씨는 위와 같이 답했다. 그는 크고 멋진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노무현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을 펼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은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한 사람들이 일관되게 한 말이었다. 이 영화가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노무현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 영화사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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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무현입니다,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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