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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명신상회였던 삽교낚시수퍼 전경. 공원사업으로 철거될 예정이다.
 옛 명신상회였던 삽교낚시수퍼 전경. 공원사업으로 철거될 예정이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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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으로 잡화점이 생겼다. 공회당처럼 멋 부리지 않고 시멘트 벽돌을 찍어 밋밋하게 지었다. 신작로가 내다보이는 쪽에 유리를 낀 미닫이 나무문을 달아 상점을 차렸다. <명신상회>로 간판을 걸고 가게 안쪽으로 방 한 칸을 막아 신혼살림을 꾸렸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기차가 잡화점 유리문짝을 흔들고 지나갔다. 주변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조무래기들이 코 묻은 돈을 쥐고 수없이 들락날락했다. 충남 예산군 삽교읍 신가리 24-70번지 '삽교낚시·수퍼'의 주인 이건구(71)씨가 43년 전 잡화점을 열었을 당시 풍경이다.

보통 '○○상회'라고 하면 특정 품목을 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물건을 취급하는 점포다. 상점이나 가게보다 살짝 격을 높이고 현대화된 느낌이 들게 해 1970년대엔 상호 뒤에 '상회'를 많이 붙였다.

<명신상회>는 철물만 빼고 다 팔았다. 사탕, 과자 등 애들 주전부리에서부터 당원, 사카린을 비롯한 식료품까지 일용잡화는 모조리 취급했다. 삽교읍에서 잡화점으로는 최고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게다가 읍내에서는 최초로 낚시도구를 팔았다. 그리고 43년이 지난 지금까지 낚시는 꾸준히 손님을 끌어당기는 품목이다.

'상회'에서 '슈퍼'로, 중심은 '낚시'

가게 안에는 일용잡화가 빠지고 낚시재료가 진열장을 차지하고 있다.
 가게 안에는 일용잡화가 빠지고 낚시재료가 진열장을 차지하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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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신상회> 주인 이씨는 사실 낚시가게를 내기 위해 잡화점을 시작했다고 해야 옳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첫집(서낭당)에서 5남매의 넷째로 태어난 그는 유난히 낚시를 좋아했다.

"여남은 살 적부터 동네 방죽에서 낚시를 했어요. 그 때는 통대나무를 낚싯대 삼았고, 찌는 수수깡에 닭털 꽂아서 썼지요. 낚싯바늘도 요즘같은 게 있었간? 옷핀 갈아서 만들어 썼지."

지금도 낚시를 즐긴다는 그는 예당저수지 후사리에 자주 가는데, 어떨 때는 한 번 가면 일주일씩 밤낮없이 머물 때도 있단다. 50년도 넘는 조력(釣歷)에 걸맞게 3㎝ 부족한 1미터짜리 대어(잉어)도 낚아 봤다.

"무슨 재미로 낚시를 즐기시냐"고 물으니 답은 너무 간단했다. "그냥 기다리는 맛"이란다. "사모님이 혼자 가게 보느라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니 부인 오경자(69)씨는 그저 웃었다. 대신 이씨가 "그러니까 내가 큰소리 못 하고 산다"며 눙쳐 버렸다.

원래 처음 가게를 연 자리는 이곳이 아니다. 삽교시장 안, 돼지전 옆에 점포를 얻어 낚시가게를 냈는데 2~3년 정도 하다가 지금 자리로 옮겼다.

"그 때는 여기가 논이었어요. 딱 38평 사는데 평당 7000원씩 줬지. 주변 땅값이 3000원인데 곱도 더쳐준 거야. 쥔네(주인)는 안판다고 하는 걸 내가 필요해서 사는 거니까 어쩔 수 없잖아."

1974년도 얘기다. 쌀 스무 짝이 넘는 돈이니 적지 않다.

"하루 장사하면 돈 통이 꽉 차... 돈 세다가 졸기도"

30여년 전에 <명신상회>에서 팔다 남은 물건들이다. 주판과 초등학생 소풍가방, 단무지를 담고 잔치음식을 만들때 썼던 식용색소, 팽이, 수통, 그리고 복숭아 삼페인도 한 병 남았다.
 30여년 전에 <명신상회>에서 팔다 남은 물건들이다. 주판과 초등학생 소풍가방, 단무지를 담고 잔치음식을 만들때 썼던 식용색소, 팽이, 수통, 그리고 복숭아 삼페인도 한 병 남았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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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꾸준히 잘됐다. 낚시부터 일용잡화를 모두 다 갖췄으니 명신상회를 찾는 고객들도 어린아이와 어른이 따로 없었다.

특히 낚시 재료는 인기가 높았다. 당시엔 철물점에서 통대나무를 낚싯대로 몇백 원에 팔았다. 1970년대 들어 70㎝ 정도의 길이로 대나무를 잘라 꽂기식으로 조립하는 낚싯대가 상품화됐고 인기가 좋았다. 잘 다듬은 대나무에 반들반들하게 니스를 칠해 만든 꽂기식 낚싯대는 낚시에 재미가 들린 아이들이 꼭 갖고 싶어 하는 물건 중 하나였으니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루 장사 하고 나면 이만한(서랍 정도 크기) 돈 통이 꽉 찼어요. 저녁때는 그걸 세다가 졸기까지 했으니까."

장사가 잘됐던 시절 얘기를 하며 "허허" 웃는 이씨는 잠깐 행복한 표정이 된다.

"예닐곱 살짜리 꼬맹이가 1000원짜리 지폐를 들고 까먹으러 오면 뭔가 잘못된 거여. 큰돈이니까. 대부분 뉘집앤지 아니까 그럴 땐 부모에게 연락을 해줘요. 가끔 손버릇이 나쁜 녀석들도 눈에 띄죠. 슬쩍슬쩍 과자나 사탕을 호랑에 집어넣는 거야. 그럼 그냥 못 본 척해요. 배고프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리고 일일이 다 혼내면 장사가 안돼요. 하지만 너무 잦으면 한 번쯤 혼쭐내죠. 학교 운동회 땐 우리 가게 앞까지 행상들이 진을 쳤어요. 그 때는 애들도 참 많았는데…."

1990년대까지는 그럭저럭 잘됐는데 인구가 줄기 시작하면서 호황기도 막을 내렸다. 도매금으로 파는 슈퍼마켓이 생기고 사람들의 소비패턴도 바뀌었다.

생필품 등 일용잡화가 팔리지 않자 가게 이름도 '삽교낚시·수퍼'로 바꿔 달았다. 20여 년 전이다. 그야말로 '상회'의 시대는 갔고 '슈퍼'가 대세였다. 지금은 슈퍼도 기울고 편의점이란 이름의 대기업 체인들이 골목상권을 점령했지만.

취미가 낚시였기 때문에 청년시절 잡화점을 열었고, 반세기 가까이 지난 오늘도 간판이 말해주듯 낚시는 가게의 존재 이유다. 이씨와 얘기를 나누는 한 시간여, 낚시재료를 사러 온 손님이 전부다.

<삽교낚시·수퍼> 옆으로는 여름꽃이 만발한 화분들이 늘어서 있다. 철도부지였던 작은 텃밭에도 화초들이 키재기를 하고 있어 지나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가게 안주인의 정성인가 했더니 "바깥양반 솜씨"란다. 낚시에, 꽃 가꾸는 취미까지 있는 걸 보면 손끝이 참 야문 양반이다.

개발계획에 철거 위기... '보존'은 어땠을까

이건구씨 부부가 가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건구씨 부부가 가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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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씨에게는 큰 근심거리가 생겼다. 4년 전에 가게 옆으로 도로가 뚫린 것까진 좋았는데 이번엔 군청에서 공원을 만든다고 해, 꼼짝없이 가게가 헐리게 된 것이다. 3남매를 낳아 키우며 43년 일가를 이룬 역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판이다.

"옛날부터 다리 밑하고 철도 가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터를 잡아요. 기차 때문에 시끄러운 건 그만두고 여기서 애들 키울 때는 한시도 맘을 못 놨어요. 애들이 밖에 나가면 계속 내다보고 챙기고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는데…. 이제 기찻길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사방이 조용해져 살만해 지니까 집을 내놓으라니 허망한 일이지요. 더구나 3000만 원이나 들여 수선까지 했는데 화가 안 나겠어요?"

'삽교 그린나우 프라자 조성사업'은 예산군이 사업비 81억 원을 들여 올해까지 계획하고 있는 시가지공원화사업이다. 사업구간은 삽교신역사 사거리부터 덕창아파트까지 옛 기찻길 주변으로 가로공원을 조성한다. 삽교낚시수퍼와 철물점 등 몇 개 상가가 공원사업구역에 포함돼 보상협의 중이다.

이씨는 마음이 심란해 지면 파리채를 들고 가게 앞을 서성이기도 하고, 오래지않아 사라질 꽃밭에 앉아 자신도 모르게 풀을 뽑는다.

"사람들은 내포로 떠나는데 이렇게 거창한 공원을 왜 만드는지 이해가 안돼요.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면 몰라도…. 다른 데다 가게를 내려고 생각도 해봤는데, 땅값이 올라 여기 보상금 받아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어떻게든 살집은 있어야 돼서 낡은 아파트 하나 장만했어요."

그는 매일같이 화분을 내놓으며 '손님 기다리는 맛'으로 오래된 가게와 함께 그렇게 늙어가고 싶었던 게다.

개발촉진지구사업이란 명목으로 국비를 지원받아 시행하고 있는 '그린나우 프라자' 사업이 당초에 보존과 재생을 콘셉트로 설계됐더라면 무차별적인 철거는 이뤄지지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생각에 가게를 뒤로 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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