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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도 눈에 잘 들어온다.
 멀리서도 눈에 잘 들어온다.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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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생긴 날, 훌쩍 나가고 싶은데 꾸미고 다니기는 싫고…. 그렇다고 어디에 쭉 있기보다는 잠깐의 기분 전환이 필요한 날, 딱 그런 날엔 빵을 사러 돌아다녀 보는 건 어떨까?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듯 베이커리도 개성 넘치는 곳이 많아져, 다니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식당처럼 혼자 들어가는 걱정 따위도 필요 없고, 그 자리에서 뭘 꼭 먹을 필요도 없다. 그저 부담 없이 출발해 보자.

파란 외관이 눈에 확 들어온다.
 파란 외관이 눈에 확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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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에 오래 살다보면 이런저런 상점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걸 지켜보게 된다. 몇 년 전 내가 살던 강서구에서 멀지 않은 신정역 근방 한 골목의 언덕을 오르다 SONA 라는 이름의, 당시로선 카페인지 베이커리인지 헷갈렸던 작은 가게가 공사하고 있는 걸 봤다. "'생기면 가볼까..' 하면서 별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결국 묘하게 까먹지 않고 머릿속 어딘가를 맴돌아, 기어이 가보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종종 들르고 있다.

시원한 톤의 파란 간판이 눈에 띄는 외관.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 서넛이면 꽉 찰 듯한 자그마한 가게에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빵과 디저트들이 진열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한쪽엔 밀가루나 장식용 빵들도 놓여있고, 잡지에 나온 사진, 자격증 등도 보인다. 카운터 뒤로는 작업실이 커다랗게 자리한 모습.

결국 기능장에 성공하셨다.
 결국 기능장에 성공하셨다.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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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 쉐프님 두 분이 하시는 유쾌한 빵집인 소나. 두 분께선 이런저런 도전(?)도 많이 하시는데, 소소하게 시도하시는 빵들도 그렇고, 언젠가 제과 기능장에 도전하신다고 맹연습 중이셨던 모습이나 건강빵을 더 잘하시려고 배우러 다니시던 모습, 또 요즘엔 카페 메뉴인 플랫 화이트에 매진하시는 모습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도 쉐프님들의 호기심만큼이나 다양한 변화가 추억이 되어 빵집에 스며들고 있었다.

다양한 빵이 있는 곳이다.
 다양한 빵이 있는 곳이다.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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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둘러보면 동네빵 삼총사인 슈크림빵, 단팥빵, 피자빵에서 크루아상이나 하드빵(거친 식감의 건강빵) 그리고 케이크까지 알차게도 갖추어져 있다. 어르신 분들이 많은 동네 특성에 맞게 주로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빵과 여러 종류의 식빵을 하시고, 크루아상이나 페이스트리를 주로 하셨던 쉐프님의 경력을 살린 파이류도 있는데, 요것들 또한 조리빵이나 단과자를 주로 찾는 동네 분들에게 어필 할 수 있도록 만드셔서 예스러우면서도 모던한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딱 이런 느낌,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게 파티세리 소나 빵의 특징이다. 세련됨을 추구하는 젊은 분들의 개성과 동네에 적응하기 위한 선택들이 만들어낸 이곳만의 맛있는 조합이랄까. 가령 소시지빵하면 얼마나 친숙한가. 안 먹어보고도 상상이 갈법한 맛이지만 소나에선 홀그레인 소스 등으로 익숙한 케첩에 자기만의 포인트를 더해 미묘하게 색다른 맛을 낸다. 여긴 빵의 이름 또한 친숙한데, 어려운 불어나 영어는 가급적 줄이시고 귀엽게 이름 붙인 것도 동네 빵집에서만 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도 변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도 변하고 있다.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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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하게 살펴가며 빵을 고르고 나니 한켠에 앉아갈 수 있게 만든 벤치가 보인다. 예전엔 없었는데 쉐프님께서 오신 분들이 소소하게 이야기라도 하다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궁리 끝에 설치하신 것. 벤치 뿐 아니라 빵도 소소한 변화를 많이 거쳤다. 그날그날 조금씩 달라지는 빵인 '오늘의 메뉴' 같은 재미난 빵도 보이고.

반면 꾸준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빵인 피칸 카라멜이나 시나몬파이는 먹을 때마다 아직도 여전한 그 맛이 나에게 다시 강서구에 살던 그 시절, 그 때의 정취를 다시 불러일으켜 준다. 그 시절 처음 방문 했을 때 먹었던 건 의외로 조각 파운드케이크였는데, 길에서 먹었던 그 빵의 맛은 아직도 추억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근 10년을 살면서도 낯설던 강서구, 양천구에 훗날에도 기억할만한 장소 하나가 만들어지는 순간은 우연처럼 이렇게 찾아왔다.

속에 치즈들이 먹음직하다.
 속에 치즈들이 먹음직하다.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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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날 사가지고 온 빵들을 조금 소개해보고자 한다.

치즈식빵은 위에 바삭하게 치즈 누룽지가 입혀진 식빵 속에 몇 가지 치즈와 크랜베리가 먹음직하게 들어 있고, 고소한 치즈냄새도 솔솔 풍겨 눈과 코를 모두 자극하는 빵. 치즈 특유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이 듬뿍 나는데, 크랜베리가 새콤달콤한 맛을 더해주는게 은근히 포인트가 되어준다.

요즘 말로 단짠단짠하다고 해야 하나? 빵결은 참 폭신하고 또 부드러운데 맛은 미세하게 달큰하면서 고소한 맛이 돌아 속 재료와도 잘 어우러진다. 아무생각 없이 집어먹다 보면 벌써 이거 한통을 다 먹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중독성 강한 빵이다.

캐러멜이 듬뿍이다.
 캐러멜이 듬뿍이다.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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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칸 카라멜은 높다랗게 올라간 피칸, 주르륵 흐르는 캐러멜이 참으로 침 넘어가게 하는 파이. 호두와는 다른 터프한 고소함을 가진 피칸과 찐득하고 달콤쌉싸름한 카라멜의 궁합이 아주 매력적이다. 바삭하고 버터의 부드러움이 살아있는 파이지 속으론 꼬소하게 기름진 달달한 아몬드크림이 가득 들어있어 피칸의 터프함을 잘 감싸 밸런스를 잡아준다. 조금 과장해서 쌉쌀함과 달콤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소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크기는 작아도 맛은 아주 강력한 디저트.

속에 킥이 숨어있다.
 속에 킥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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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소세지 크로와상은 별 생각 없이 먹었다가는 깜짝 놀라는 재미난 빵. 치즈와 고추(!)가  올라가 있고 겉에 소스를 바른 크루아상을 반 갈라보면 속엔 소시지랑 할라피뇨(!)가 들어있다. 덕분에 한입 바삭하게 베어 물자마자 매콤함이 입안을 확 쏘아주고, 소스와 치즈의 달콤하면서 간간한 맛 그리고 소시지 특유의 탱글거리는 짭짤함이 뒤이어 입안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기본적으로 크루아상은 버터의 고소한 맛이 특징인데 우리나라 사람에겐 조금 느끼할 수도 있는 그 맛을 할라피뇨 등이 확 잡아준다고 해야 할까. 특히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남자들을 제대로 저격하는 맛이다.

사실 흔하다면 흔한 게 빵집. 아마 주변을 둘러보면 이렇게 조용히 자리 잡은, 어쩌면 시간의 흔적까지 묻어있는 빵집이 한 군데 쯤은 있을 것이다. 단순히 빵집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내가 몰랐던 우리 동네의 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알게 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가 다양하고 그들의 삶의 모습이 다 다른 만큼 사람이 만드는 빵에도 그러한 다양함이 녹아들어가기 마련일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그 모습을 보러 작은 여정을 떠나보자.

덧붙이는 글 | 5월 27일의 사진입니다.



태그:#소나, #빵집, #빵투어, #빵식가,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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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인스타그램 : @breads_eater https://www.instagram.com/breads_eater/ https://www.youtube.com/channel/UCNjrvdcOsg3vyJr_BqJ7Lzw?view_as=subscriber 빵과 빵집을 소개하는 걸 업으로 삼고 싶은 무모한 꿈을 꾸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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