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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오후 5시부터 울산 남구 삼산동 현대백화점 옆 거리에서 열린 울산 촛불집회에서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노옥희, 서민태 회원이 참가 시민들에게 탈핵을 호소하고 있다
 1월 7일 오후 5시부터 울산 남구 삼산동 현대백화점 옆 거리에서 열린 울산 촛불집회에서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노옥희, 서민태 회원이 참가 시민들에게 탈핵을 호소하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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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부터 수개월간 이어진 '촛불정국' 때 시민들의 입에서 등장한 요구사항 중 하나는 '탈핵, 신규원전 중단, 노후원전 폐쇄'였다. 특히 지난해 처음 규모 5.8 강진을 경험한 울산시민들의 요구는 거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같은 시민들의 요구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촛불 민심으로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곧바로 탈핵 공약 실천에 나섰다. 이로써 지난 수년간 시민사회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건설되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는 다소간의 예산 소모를 무릅쓰더라도 폐기되는 듯했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강행을 목소리는 예상대로 거셌다. 그 앞 줄에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 국회의원들이 있었고 그 뒤에는 같은 당 울산시의원, 울주군의원이 가세했다. 원전건설로 혜택을 보는 그 지역 주민 일부도 원전 강행 목소리를 높였다.

'신고리 5·6호기 중단' 문제는 일부 보수언론의 프레임처럼 찬반 갈등으로 여론화됐다. 이 여론탓인지, 결국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에 대한 건설공사 일시중단 결정을 내리고 앞으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배심원단을 선정해 최종 결정을 맡기기로 했다.

이같은 결정에 시민사회 등은 반발해 '신고리원전 5·6호기의 완전 백지화'를 요구하면서 공약 이행 요구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원전건설 찬성자들도 신고리 5·6호기 건설 강행의 목소리를 더 높이고 있다.

돌이켜보면 예나 지금이나 원전 인근에 사는 대다수 시민, 특히 만약에 원전사고가 나면 피해를 보게 될 30km 이내 시민들은 신고리원전 5·6호기를 건설하자고 요구한 적이 없다. 원전 건설에 따른 지원혜택을 받을 수도 없는 데다, 굳이 대재앙이 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전 도시에 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다수 시민들의 동의도 없이 그동안 일사천리로 공사가 강행된 신고리 원전 5·6호기는 과연 누가 원해서, 누구의 의지로 건설이 추진된 것일까? 또 대다수 시민의 반대와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도 반대하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신교육은 '원전 안전'... 체르노빌 사고로 원전에 대한 위험 느껴

부산에서 초·중·고·대학시절을 보낸 기자는 고교 시절인 1979년 여름, 친구들과 함께 기타와 카세트녹음기를 들고 부산진역에서 동해남부선 기차를 타고 기장 바닷가에 내렸다. 백사장 먼발치서 바라본 원형 모양의 원자력발전소는 웅장하기만 했다. 1년 전인 1978년 7월 20일 우리나라에서 처음 준공식을 가진 고리원자력 1호기였다.

당시 학교 교육은 유신정권의 주입식 교육이었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소가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에너지원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불과 7년 뒤인 1986년 4월 발생한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대재앙은 원전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왠지 원전 주변에 가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대 중반 이사해온 울산에서 원자력발전소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듣고 조금씩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후 울산 울주군과 인접한 부산 기장에 신고리 1·2호기가 들어서는 문제로 울산 시민단체들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가 했는데, 어느날 울산에 신고리 3·4호기 건설 결정이 내려지면서 불안감은 가중됐다.

원전 유치가 결정될 당시(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울산은 보수정당이 국회의원과 지자체장을 싹쓸이한 상황이었다. 울산시 건설국장 등을 지낸 후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울주군수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신장열 군수는 다음해인 2009년 10월 "원전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라며 신고리원전 5~6호기 유치 뜻을 밝혔다.

이미 원전이 꽉 차 있는 원전 도시에 또다시 원전을 유치한다는 발상은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당시 정가나 시민사회는 보수정당의 특성이나, 또는 보수정당과 원전을 건설을 맡게 되는 기업체 등과의 유대관계로 볼 때 원전 추가유치 결정을 울주군수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수정당이 장악한 지역사회에서 시민사회의 반대목소리는 한낱 진보단체의 '반대를 위한 반대 시위'로밖에 치부되지 않았다. 그만큼 시민들은 원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면서도 원전 건설에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똑똑히 목격한 울산시민들의 여론은 달라졌다. 특히 지난해 울산에서 난생 처음 강도 5 이상의 지진을 수차례 직접 경험한 시민들은 "더 이상의 원전은 안 된다"는 여론을 형성해 나갔다.

이처럼 시민사회의 반대와 많은 시민들의 불안감에도 보수정당 지자체장의 추가원전건설 추진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이미 도장을 찍은 계약서 이행처럼 보였다. 결국 신고리 원전 5·6호기는 '주민자율유치'라는 명목으로 해당 울주군의회의 의결로 성사됐다.  

위험 감수한 대가 원전지원금이 이렇게 쓰인다면...

울주군이 지난 2009년 2월 원전지원금 27억 원을 포함해 모두 73억 5000만 원을 들여 대지 9998㎡, 연면적 6421㎡로 건립한 서생면청사. 서생면은 3316가구에 인구가 7530명에 불과해 원전지원금 사용에 대한 논란이 일은 바 있다
 울주군이 지난 2009년 2월 원전지원금 27억 원을 포함해 모두 73억 5000만 원을 들여 대지 9998㎡, 연면적 6421㎡로 건립한 서생면청사. 서생면은 3316가구에 인구가 7530명에 불과해 원전지원금 사용에 대한 논란이 일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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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을 경험한 대다수 시민의 불안과 지역사회의 반대에도 추가 원전 유치가 강행된 것은 울주군수 스스로 밝혔듯이 결국 돈(지원금) 때문이었다.

울주군에 따르면 지난 1999년부터 울주군에 지원되기 시작한 원전 특별지원금은 모두 1111억 400만 원에 이른다. 원전별로는 신고리 1~2호기 222억 4200만 원, 신고리 3~4호기 888억 6200만 원이며, 이 금액은 1999~2005년까지 750억 2700만 원이, 2006년에는 나머지 잔액인 360억7700만 원이 모두 지급됐다.

또한 신고리 5·6호기 유치로 울주군은 추가로 수천억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되고, 원전부지에 편입되는 신리마을에 지원되는 금액은 영업권과 세대이주비 등을 포함해 총보상비가 1574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사고부담을 함께 안고 살게 될 나머지 118만 울산시민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없고 단지 애물단지일 뿐이다.

그나마 울주군에 지원되는 금액이 제대로 사용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미 국가기관 감사에서 전체 시민의 위험부담을 담보로 제공되는 원전지원금이 너무 허무하게 사용되어온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감사 결과, 울주군은 비슷한 시기 종합운동장 건설(80억 원), 스포츠파크 건설(212억 원) 등 모두 비슷비슷한 사업 10여건에 지원금을 지급했다. 특히 이명박 정권 당시 붐이 인 영어마을 조성사업 지원금으로 2007년~2009년 원전지원금 85억 원이 투입됐으나 이 사업이 중단되면서 시민들을 분노케했다. (관련기사 : 원전을 왜 자꾸 유치하는가 했더니...)

국민권익위는 발표에서 "(울주군을 포함해 원전지원금을 받는 자치단체들은) 기관장의 선심성 사업, 공약 사업들에 사업자지원사업비를 쌈짓돈처럼 사용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울주군이 원전지원금 27억 원을 포함해 모두 73억 5000만 원을 들여 대지 9998㎡, 연면적 6421㎡로 2009년 건립한 서생면청사가 호화청사 논란을 일으킨 것도 원전지원금 낭비의 대표적인 사례다. 서생면은 3316가구에 인구가 7530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시민들 사이로 "이럴려고 원전을 유치하나'하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태그:#신고리 5.6호기, #울주군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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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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