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차왕 엄복동> 포스터.

<자전차왕 엄복동> 포스터. ⓒ 쇼박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김유성 감독이 촬영 중 돌연 하차했다. 또한 해당 작품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아래 영비법) 상 권고 사항인 근로표준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다는 정황도 나왔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실존 인물이었던 자전거 영웅 엄복동을 소재로 했다. 정지훈(가수 비), 이범수, 강소라, 민효린 등이 출연하며 지난 4월부터 촬영 중이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연출을 맡은 김유성 감독이 촬영 중반 이후 현장에 나오지 않고 있고, 대신 이 영화의 제작자(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한 이범수가 현장을 지휘중이다.

왜 하차했을까

<자전차왕 엄복동>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스타>에 "30회차 촬영 무렵부터 감독님이 나오지 않았다"며 "그 이전부터 이범수 대표가 메가폰을 쥐고 현장을 지휘했고, 감독님의 말을 따르지 않는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스태프들과 계약할 때 명목상 표준계약서였지만 그 내용을 보면 초과수당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근로시간 역시 하루 12시간 이상 촬영하는 일이 많았고, 각 부문 팀장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곤 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감독님이 하차했다는 말을 들었고, 영화 크랭크업도 본래 8월 말이었는데 9월로 밀렸다"고 말했다.

확인 결과 김유성 감독은 영화에서 이미 하차했고, 이범수가 대신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제작사인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측은 28일 <오마이스타>에 "촬영과 콘티 문제 등으로 제작사와의 이견이 있었고, 이후 감독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며 "이미 촬영 중인 영화의 예산을 낭비할 수 없고, 함께 고생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 입장도 있기에 이범수 대표가 맡고 있다"고 답했다.

그간 계약된 관계임에도 제작사 혹은 투자사와의 이견으로 감독이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리얼>도 본래 시나리오를 썼던 이정섭 감독에서 제작사 대표인 이사랑 감독으로 교체된 바 있다. 이 건에 대해 이사랑 감독은 "함께 시나리오를 개발하던 중이었고, 일정한 방향성이 정해진 후 합의 하에 정리가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유성 감독은 <누가 그녀와 잤을까> 연출 이후 이번 작품으로 10년 만에 복귀를 노리고 있었다. 하차 이유에 대해 관계자는 "10회차까지 촬영한 이후 중간 결과물을 선보이는 과정에서 제작사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며 "그 이후부터 시나리오에 없던 내용이 추가되기 시작했고 이범수 대표가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는 일도 있었다. 감독이 자진해서 나갔을 수 있지만 사실상 부담을 느낀 것"이라 전했다.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측은 "김유성 감독이 오랜만에 영화를 찍는 만큼 제작사 입장에선 관록의 조감독과 스태프들을 꾸렸는데 작업 중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며 "현재 자문 감독님을 섭외 하는 중"이라고 입장을 덧붙였다.

이범수,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왔습니다!  배우 이범수가 27일 오후 서울 군자동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3회 대종상영화제>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이범수는 현재 제약회사 셀트리온의 자회사 격인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맡고 있다.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는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제작사기도 하다. ⓒ 이정민


근로표준계약서 위반 여부

계약서 문제에 대해 관계자들은 <자전차왕 엄복동>가 명목만 근로표준계약서일 뿐 실제로 세부 조항에선 야간 촬영에 대한 추가 수당이나 충분한 휴식 부분도 보장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마이스타>가 입수한 해당 작품의 계약서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시한 근로표준계약서와 상이한 조항들이 추가되거나 일부 변경돼 있었다.

대표적인 게 임금 계산이다. 계약서에 <엄복동> 측은 프리프로덕션(기획 단계) 월 280시간, 프로덕션(촬영 단계) 월 320시간의 상한선을 뒀다. 문제는 여기에 '갑은 약속된 포괄근무시간 임금을 주기로 한다. 단, 을이 포괄근무시간을 초과하여도 을은 갑에게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을 요구하지 않는다' 등의 조항을 넣은 것. 이 조항에 따르면 피고용자는 추가 근로를 해도 정해진 임금 외엔 돈을 받을 수 없다. 일종의 포괄임금 개념인 셈.

문체부가 권고한 근로표준계약서는 1일 12시간, 주 52시간까지를 노사 합의로 정할 수 있다. 이 중 밤 10시 이후 촬영이나 휴일 촬영에 대해선 연장근로수당(1.5배)을 주도록 돼 있다. 하지만 <엄복동> 계약서에 따르면 포괄임금이기에 연장근로수당은 받을 수 없다. 앞서 계약서 문제를 언급한 관계자는 "프리 단계에선 거의 달에 300시간 정도, 촬영 단계에서도 330시간 정도는 했던 것 같다"며 "계약서 내용을 보면 을의 입장을 생각해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과 노동에 대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려던 것"이라 말했다.

이 주장대로면 <엄복동> 측은 스태프들의 권리를 축소시킨 채 작업을 강행한 꼴이다. 다만 현행법 상 근로표준계약서는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라 처벌이 불가능하다. 문화체육관광부 및 영화진흥위원회 계정의 지원금 및 모태펀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패널티가 있기에 저예산 영화를 제외한 기성 상업 영화 쪽은 권고안을 지키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계약서 문제에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측은 "애초 (스태프들을 대표하는) 제작 PD가 근로표준계약서 대로 하면 주어진 시간 내에 촬영을 마칠 수 없으니 포괄수당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며 "합의한 내용대로 했고, 현장에서 촬영 시간을 넘기는 일도 많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계약서 체결 당시 스태프들의 의견은 제대로 수렴된 걸까. 한 관계자는 "일부 조항에 대해 스태프들 불만이 많았지만, 피고용자 입장에서 그걸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며 "(제작 PD가 제작사와) 계약서 작성을 한 이후엔 스태프들은 속으론 힘들어 하면서도 영화일을 계속 해야 하기에 촬영에 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측이 스태프들과 맺은 계약서 일부. 붉게 표시된 부분이 문체부 권고 근로표준계약서와 상이한 부분이다. 추가 임금 지불이 아닌 포괄임금조항이 명기돼 있고, 계약 해지 조항 등 역시 권고 사항과 다소 다르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측이 스태프들과 맺은 계약서 일부. 붉게 표시된 부분이 문체부 권고 근로표준계약서와 상이한 부분이다. 추가 임금 지불이 아닌 포괄임금조항이 명기돼 있고, 계약 해지 조항 등 역시 권고 사항과 다소 다르다. ⓒ 독자제공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측이 스태프들과 맺은 계약서 일부. 붉게 표시된 부분이 문체부 권고 근로표준계약서와 상이한 부분이다. 추가 임금 지불이 아닌 포괄임금조항이 명기돼 있고, 계약 해지 조항 등 역시 권고 사항과 다소 다르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측이 스태프들과 맺은 계약서 일부. 붉게 표시된 부분이 문체부 권고 근로표준계약서와 상이한 부분이다. 추가 임금 지불이 아닌 포괄임금조항이 명기돼 있고, 계약 해지 조항 등 역시 권고 사항과 다소 다르다. ⓒ 독자제공


"100억대 상업 영화가 표준계약서 안 쓰는 경우 드물어"

임금 지급 문제와 더불어 계약 해지 조건과 을의 의무 항목 등에서도 문체부 권고안과 다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3조 징계와 손해배상 책임 부문에서 문체부는 '해고의 경우 을에게 해고일로부터 30일 전 서면통지 한다'고 권고하는데 이 계약서엔 '징계위원회결정을 즉각 시행해야 하며, 을에게 그 의사를 서면 통지한다'고 돼 있다.

법적 책임은 없다지만 건강한 영화 산업을 위해서라도 해당 계약서가 근로표준게약서를 준수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문체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개봉작 331편 중 절반에 해당하는 48.4%(설문 응답률 84.9%) 정도가 근로표준계약서를 작성했고, 상업영화를 중심으로 증가세다. <엄복동>은 120억원 대 예산의 대형 상업영화에 해당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 윤용한 서기관은 <오마이스타>에 "10억 원 대 저예산 영화가 많아서 표준계약서 작성 비율이 낮게 나온 것"이라며 "비율이 점차 오를 것으로 보이고, 공정한 경쟁이 새 정부 화두라 이후 (근로표준계약 의무화 등을) 충분히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답했다.

표준계약서 관련 실무를 맡고 있는 영진위 공정환경조성담당 김태형 과장은 "계약시 사용자와 피고용자 합의 하에 일부 조항을 수정하거나 넣는 건 가능하기에 지금 당장 해당 영화의 계약서가 표준계약서가 아닌지 판단하긴 어렵다"며 "해당 작품(<엄복동>)이 표준근로계약서의 본질적 내용을 변경했는지가 핵심"이라 말했다.

본질적 내용에 대해 김태형 과장은 "3조의 정신, 즉 계약 기간이나 임금 체계 같은 근로 여건을 구체적으로 밝혔는지 등이 있는데 그런 본질이 변경됐는지가 중요하다"며 "문체부가 제시한 원문 계약서 그대로가 아니더라도 밝힌 정황이 있다면 표준계약서로 볼 수 있는데 정확한 건 해당 계약서를 면밀히 검토해야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선에서 뛰고 있는 영화인들의 입장은 보다 강경했다. 한국영화산업노조 홍태화 사무국장은 "포괄임금을 이용해 스태프들의 권리를 깎는 사례가 많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포괄임금으로 계약했다해도 추가 근로에 대해 수당을 지급하도록 했다"며 "(<엄복동>의) 해고 항목 역시 피고용인의 해고를 쉽게 하려는 사용자의 악의가 드러난 대목이다. 표준계약서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엄복동>과 관계가 없는 한 상업영화 제작 PD 역시 "해당 계약은 일방적인 갑의 입장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요즘 현장에선 구두로 양해를 구할지라도 저렇게 명시하는 일이 많진 않은 것으로 안다. 어쨌든 갑측의 의도가 있는 항목"이라 지적했다.

이범수 강소라 자전차왕 엄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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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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