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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 중인 김은주씨
 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 중인 김은주씨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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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 중인 김은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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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오줌을 쌌더니 여기 아래가 너무 추워"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까맣게 그을린 할아버지는 25도를 웃도는 여름 땡볕에도 춥다며 떨었다. 이불처럼 덮고 있던 돗자리를 조금 들추자 악취가 진동했다. 파리들이 얼굴 주변을 배회했다. 할아버지가 누운 자리 위에는 '단식 22'라고 쓰인 종이가 펄럭거렸다. 또각 또각 수많은 이들이 오늘도 그의 옆을 지나친다. 국회는 바쁜 곳이다.

김은주씨(인천시 계양구, 68세)는 지난 5월 31일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인천 아시안게임 계양경기장 보상하라"는 자그만 팻말도 내걸었다. 그가 깔고 누운 낡은 매트 앞에는 꼬깃꼬깃한 편지지 7장만이 그의 사정을 부연 설명하고 있다. 인천시가 아시안게임 경기장 건설 당시 건설부지에 임대 농사 중이던 자신에게 보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게 손으로 쓴 편지지의 요지다. 하지만 다시, 한시가 바쁜 국회 사람들에게 그 종이는 너무 작고, 길다.

"어휴, 오죽하면 저러시겠어요"

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 중인 김은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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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대부분의 하루 일과를 누워서 보낸다.

"오늘로 22일째야. 나도 이렇게 오래갈 지 몰랐어. 처음에는 운동도 하고 그랬는데 한 15일 지나니까 그것도 힘들어. 일어서기도 힘드니까 엉금엉금 기어 다니잖아 지금은. 화장실? 화장실도 못 가지. 처음엔 저기 건너편 보이지? 그 건물까지 가서 일을 봤다고. 그러다 힘드니까 요기, 요 물병에다가 싸고 저기 하수구에다 갖다 버렸어. 폐 안 끼치게. 근데 며칠 전부턴 그것도 너무 힘들어서... 그냥 바지에다가 쌌어. 대변? 대변은 무슨. 먹는 게 없는데."

그가 누운 주변에는 오줌통인지 물통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2리터 들이 페트병만 어지러이 놓여있었다. 오줌을 받아낸 바지에선 지린내가 풍겼다. 그 냄새는 주변 다른 시위자들에게까지 닿는다.

"어휴 정말 대단하세요. 우리 같으면 22일이면 벌써 죽었어요. 안 그래요? 오죽 억울하시면 저러시겠어요... 며칠 전인가엔 하도 꼼짝도 안 하시길래 가까이 가서 보니까, 냄새가 확 올라오는 거예요. 오줌을 싸셨나 보더라고. 정신은 멀쩡하신 분이셨는데 놀라서 바로 신고했지."

그의 상태를 옆에서 지켜봐 온 국회 앞 다른 1인 시위자 말이다. 이 시위자의 신고 덕에 김씨는 19일 오전 응급실에 호송돼 응급처방을 받았지만, 추가 치료를 거부하고 다시 국회 앞으로 가 몸을 뉘었다. 1인 시위자는 "정신력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국회가 그런 거 하는 데 아니야?"

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 중인 김은주씨
 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 중인 김은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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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까지 고생하느냐고 김씨에게 물었다.

"나도 나이가 몇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 화딱지가 나서 일을 못 한다고 내가. 내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 거지 아니야. 어떤 사람들은 내가 거지인 줄 알고 동냥도 하던데... 난 농사꾼이니까 어디서든 농사지으면서 살 수 있어. 근데 농사꾼이 땅을 뺏겼어 갑자기. 화가 나는 거야 나는, 억울한 걸 넘어서. 그 생각에 정신이 나가면 농기계에 다치기도 하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내가."

그는 화가 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단순한 대답에 그의 눈빛엔 다시 생기가 돈다. 목소리는 더 선명해졌다. 왜 하필 국회 앞이냐고 물었다.

"여기 국회가 그런 거 하는 데 아니야?

그는 곧장 대답했다.

"여기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냐고.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고들 하지 않아? 한 명, 한 명 목소리 다 듣겠다고. (만나셨나?) 코빼기도 안 비쳐 코빼기도... 나로서는 이게 마지막 수라고 생각해. 그전에 나름 시위도 해봤고 삼보일배도 해보고 다 해봤어. 여기가 나는 마지막이라는 계산이라고."

김씨는 어느새 일어나 앉아있었다. 그는 말이 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람과 대화한 지 오래됐다고 했다. 김씨는 자신의 인생사를 3시간 넘게 이어갔다. 그러다,

"며칠 전 밤에는 어떤 젊은 여자애가 와서 나한테 무릎 꿇고 '할아버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힘내셔야죠. 저도 자살기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젠 이렇게 열심히 살아요. 할아버지도 얼른 일어나셔야죠'라고 하더라고. 그냥 나 너무 감사했어...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나 너무 감사했어. 아주 가끔씩이지만 그렇게 한번씩 들여다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김씨는 눈물을 흘렸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고마워요. 내가 지금 마음이 많이 풀어진 것 같어. 내 말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힘이 나가지고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거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기운이 나지는 않어. 응 그려 잘 가라구. 가서 일 보라구."

그가 바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 중인 김은주씨
 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 중인 김은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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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 중인 김은주씨가 붙인 종이
 국회 정문 앞 단식농성 중인 김은주씨가 붙인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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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은주, #국회, #인천시, #계양경기장,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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