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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격노'했단다. 취재원도, 출처도 정확지 않은 이 유사 '가짜뉴스'에 한국 언론과 보수층은 부화뇌동했다. "사드 때문에 깨진다면 그게 무슨 (한미) 동맹이냐"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특보의 말 한마디에 정국이 들썩인다. 지극히 상식 수준의 발언에도 "빨갱이" 운운하는 이들이 여전히 목소리에 힘을 주고 크디큰 스피커를 가진 게 대한민국 현주소다.

여기, 트럼프보다 더 크게 격노한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달라고 울부짖는 어머니, "1번만 찍었던 내가 부끄러워 죽겠다"는 유권자, 그 부끄러움에, 참혹함에 참외밭을 스스로 갈아엎어 버렸던 농민들, 그리하여 급기야 "데모가 그리 싫었다"던 과거와 달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놀랐다는 어느 성주 군민이 바로 그들이다.

22일 개봉하는 박문칠 감독의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는 이렇게 '격노'한 성주 군민들의 투쟁 기록이다. 그들의 반성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또 그들의 분노는 절절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였고, 스스로 '공부'했으며, 그렇게 움직인 마음들이야말로 실천을 담보케 한 동인이었다.

그들이 특별한 운동가일리 없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학부모, 동네 주민, 자영업자, 농민들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세월호 노란 리본 옆에 놓인 파란 리본을 만드는 손길들로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왜 이들이 오랜 기간 '사드 배치 반대' 투쟁에 나서야 했는지, 어찌하여 "정치는 생활이다"라는 쉽고도 어려운 명제를 실천하게 됐는지를 세심하게 조명한다.

특히나 새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골치 아픈 정국 현안 중 현안으로 꼽히는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고민 중인 이들에게 조금 다른 관점과 고민을 던져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아니, 방송과 영화를 통틀어 지금까지 소개된 어떤 사드 관련 영상물과 비교해도 월등하다. 그건, 박문칠 감독의 관점에서 비롯된다. "정치는 생활이다"라는 명제를 포함 성주 군민들의 사드 투쟁을 바라보는 <파란나비효과> 영화적 관점 말이다.

일찌감치 격노했던 '보통' 성주 사람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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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시어머니, 시아버지 다 여기 살고 있어요.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성주군청 앞, 한 여인이 서럽게 울부짖는다. 그 옆에 교복을 입고 선 중학생 딸은 울어야 할지, 미소를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난처한 얼굴이다. 그 중간 '사드가 무서워요'라는 피켓을 목에 건 여성과 함께 선 이 모녀에게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진다. "애들이 있는 데는 안 됩니다"라는 이 여성의 처연한 절규에 딸까지 눈물을 떨어낸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성주 군민 배은하씨의 시위는 그렇게 보는 이로 하여금 처연함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사드 반대를 외치기 위해 공공기관 앞에 선 배씨의 절규는 모녀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사드 반대 투쟁'의 한 축을 반영하는 동시에 "아이들이 우선이다"라는 성주 군민들의 목소리와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의 중심엔 "우리 아이들이 있는 곳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안 된다"던 젊은 엄마들이 있었다. 이들은 낮에는 생계 전선을 뛰며 아이들을 돌보고, 밤에는 촛불을 드는, 원치 않았지만, 꼭 해야만 할 것 같았던 생활에 기꺼이 뛰어든 이들이다. 카메라는 그런 목소리들로 빼곡하게 담는다. 다만 분노만큼이나 당위와 변화에 대한 열망이 훨씬 더 주된 정조일 뿐이다.

<파란나비효과>는 그런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와 활동을 중심에 놓고 2016년 사드 반드 투쟁의 과정과 성주 군민들의 '진면목'을 가감 없이 기록한다. '1318(명의) 단톡방'을 만들어 지역 내 확성기로 키운 것도 자발적이었다. 밤마다 촛불을 들고, 낮에는 피켓 시위를 했던 이들 누구 하나 동원된 이들은 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사드 반대 투쟁은 '님비'가 아닌 '평화 운동'으로 발전해 나갔다. 평생 1번만 찍었던 사람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젊은 엄마들을 비롯한 적잖은 주민들은 사드 투쟁을 공동체 투쟁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생활 속의 지역 내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들 젊은 엄마들은 이론으로 무장한 채 군수와 의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 가까워 보이는 장터를 열기도 한다. 그리하여 <파란나비효과>는 '안보를 강요하는 국가는 어떻게 국민을 곤경에 빠뜨렸나'에서 '불신을 주는 국가에 맞서는 생활 속 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란 주제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몰랐던 혹은 피상적으로만 접했던 '사드 반대 투쟁'의 진면목인 셈이다.

"1번만 찍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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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의 목소리도 빠뜨리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서 성주군의 여야 후보 득표율은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던 것을 떠올려 보라. '사드 유보'를 천명했던 현 대통령과 그 대척점에 섰던 후보의 득표율을 두고 성주 군민들에게 쏟아졌던 비난 말이다. <파란나비효과>는 이와 비슷한 외부의 목소리, 그리고 뼈아플 수 있는 내부의 자성들도 그대로 담아낸다.

이를테면, 페이스북으로 열심히 성주 투쟁을 알리고 있다는 한 주부는 지인으로부터 질타를 들어야 했다고 했다. "너희들이 열심히 1번만 찍은 결과"라거나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거다, 된통 당해봐야 한다"는 질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성주 군민들의 현실이다.

"박근혜가 참 대단하다, 이리 보수적인 우리를 바꿔놓았으니"라거나 "1번만 찍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라거나 하는 반성들은 결국 이 성주 군민들이 벌여온 투쟁의 저변이요, 동력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5·18 때 가만있었던 거, 제주 강정에 가만있었던 거"를 반성해야 한다는 댓글 질타에 "죄송합니다"라며 자신의 과거를 곱씹었다는 한 주부 이수미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만은, 정치는 나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내가 할 있는 일, 나 하나로는 안 되지만 내 목소리를 내고 또 옆에 있는 사람이 그 목소리를 내면 우리 국민 5천만의 목소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정치인은 그때 바뀌는 거지 뽑아만 놨다고 절대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이번 사드 투쟁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점은 정치는 생활이다, 생활 속의 정치를 배제하고는 정말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드 반대 투쟁' 다룬 이 다큐, 제때 도착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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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존경스러운 분들은 사실 처음 모습과 지금 모습이 변하지 않는 분들? 꾸준하게 뭔가를 자기가 맡은 일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 뵈면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고 그렇죠."

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파란나비효과>의 개봉 하루 전인 21일,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소속단체 회원들은 ""트럼프 격노? 우리가 더 격노했다!"는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24일에는 사드 철회 평화 행동 및 미 대사관 인간 띠 잇기 대회를 예정 중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버텨내며 300일 넘게 촛불을 들었던 성주에서도 사드 반대 투쟁은 격렬히 진행 중이다.

<파란나비효과>를 보는 일은 그래서 이중의 효과가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드 배치 문제가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는 일과 함께 '생활 속의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비전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 안엔 세월호 참사와 탄핵 정국 이후 우리 국민이 변화되고 있는 의식의 흐름까지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2013년 싱글맘이 된 여동생과 가족의 역이민을 그린 전작 <마이 플레이스>가 미시적인 관점을 제시했다면,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파란나비효과>를 통해 박문칠 감독은 훨씬 더 너른 주제를 들고 찾아왔다고 할 수 있다.

박 감독은 그저 '개인과 정치의 관계'를 조망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생활 속 정치가 어떻게 개인을 변화시켰는가 하는 주제를 매끄러운 편집과 진심 어린 촬영으로 완성해 냈다. 이 <파란나비효과>가 정확한 타이밍에 극장에 도착해줘서 무척 다행이다.

 영화 <파란나비효과>의 포스터.

영화 <파란나비효과>의 포스터. ⓒ 인디플러그



파란나비효과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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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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