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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두 번 달의 허락으로 생겨난 바닷길을 따라 가는 섬 여행.
 하루 두 번 달의 허락으로 생겨난 바닷길을 따라 가는 섬 여행.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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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연안엔 지구와 달이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다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려 갈 수 있는 섬들이 있다. 밀물 땐 바다였다가 물이 빠지는 썰물 때 섬으로 가는 길이 난다. 다리로 연결된 섬에 가는 것보다 훨씬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바닷길 생기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아무 때나 갈 수 없다는 점도 흥미롭다. 바닷물이 차올라 길이 잠기고 비로소 섬이 되면 왠지 안락한 고립감과 기분 좋은 단절감이 드는 곳이다. 

한낮에 바닷길이 열리는 물때가 맞는 날을 택일해 경기도 화성시 서해 연안에 있는 제부도와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의 동생 누에섬 여행을 떠났다. 이웃해 있는 섬이라 물때가 비슷해 자전거 타고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 제부도 바닷길 시간 : 화성 제부모세마을 홈페이지
* 누에섬 바닷길 시간 : 탄도 어촌체험마을 홈페이지

바닷길 따라 들어간 제부도의 어원, 알고보니...

제부도 가는 바닷길. 찻길 옆에 인도가 마련돼 있다.
 제부도 가는 바닷길. 찻길 옆에 인도가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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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직행버스를 타고 화성시 송산면 제부도 입구 정류장에 내렸다. 서울 사당역이나 수원역 앞에서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오가는데 모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넉넉한 화물칸이 있어 좋다. (전철 사당역 4번 출구 앞 1002번 버스, 1호선 수원역 4번 출구 앞 1004번 버스. 운행시간 문의는 제부여객 031-356-5979).

버스에서 내리면 화려한 간판을 내세운 횟집들과 함께 저 앞으로 바다가 보이고 그 위로 난 바닷길과 섬이 떠 있다. 바닷길 위로 자동차가 오갈 수 있게 도로를 깔아 놓았다. 1980년대 말에 깔았다는 시멘트 포장길이다. 해안선 길이 5.3㎞에 초등학교 분교가 하나 있는 아담한 이 섬의 지명이 좀 특별하다.

제부도. 한자가 건널 제(濟), 도울 부(扶)다. 알고 보니 '제약부경(濟弱扶傾)'이란 말에서 유래했단다. 포장도로가 없던 시절, 주민들은 썰물 때 드러난 육지와 섬 사이의 갯고랑을 건넜다.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들은 부축하고 건너서 '제약부경'의 '제'자와 '부'자를 따서 제부도라 했다고. 정겨우면서도 아릿한 풍경이 떠오르는 섬 이름이다.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타 섬까지 이어진 2.3㎞의 바닷길을 천천히 달려갔다. 찻길 옆으로 인도를 만들어 놓아 안전하게 갈 수 있다. 바다 속에 있는 물길인 갯골 혹은 갯고랑을 따라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하게 길을 놓아 덜 삭막했다. 이 특별한 바닷길 덕택인지 이 섬은 수도권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가 됐다.

아무도 걷는 이가 없는 인도엔 불과 몇 시간 전엔 바다였다는 걸 증명하듯 가로등 기둥에 따개비가 잔뜩 붙어 있었다. 햇볕은 따가웠지만 차고 습한 안개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온몸을 적시듯 시원하게 불어왔다. 바닷가에서 쐬는 바람과 전혀 다른 느낌이 드는 바람이었다.

제부도 바닷길엔 차를 타고 가면 못 만나는 것들이 많다. 물 빠진 갯벌 위로 뭔가 펄쩍펄쩍 뛰어다녀 쳐다보니 작은 몸에 비해 왕방울만 한 눈을 가진 물고기 '짱뚱어'였다. 순천만에서 처음 보고 알게 된 귀여운 물고기. 미간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눈이 커서 익살맞게 보이는 이 물고기는 서남해안에선 '짱뚱어탕'이라는 별미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큰 눈을 껌벅거리는 모습이 '짱(최고라는 뜻의 속어)' 귀여워 난 잘 안 먹게 된다.

익살맞게 생긴 작은 물고기 '짱뚱어'.
 익살맞게 생긴 작은 물고기 '짱뚱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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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갯벌엔 귀여운 칠게와 방게가 산다.
 제부도 갯벌엔 귀여운 칠게와 방게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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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 사는 엄지만한 크기의 작은 게들도 마찬가지. 물속에 몸을 숨기고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눈을 올려 여행자를 관찰하는 게들 모습이 참 재밌다. 흰 앞발이 유난히 큰 어떤 게는 앞발을 위아래로 흔들며 자신을 과시한다. '흰 발 방게'로 2급 보호종이란다. 자연을 만든 조물주는 익살맞고 장난기가 다분하다.   

바다 위에 난 산책로, 제부도 해안 길

제부도 동쪽 해안가에 난 산책로. 밀물 땐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난다.
 제부도 동쪽 해안가에 난 산책로. 밀물 땐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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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것을 채취하며 해안가를 산책하는 사람들.
 갯것을 채취하며 해안가를 산책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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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동쪽엔 해안가를 따라 높이 세운 나무 갑판 산책로가 나 있다. 밀물 땐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드는 곳이다. 바닷바람에 실려 어디선가 향긋한 향기가 나 보니, 어쩌다 해안절벽에 뿌리를 내린 아까시나무들이 하얗게 꽃을 피웠다. 동네 뒷산에서 보던 친근한 아까시나무를 바닷가에서 보니 새롭고 반가웠다.

마치 밭에서 호미질하듯 갯벌에서 호미로 무언가를 캐는 섬 주민들 손짓이 분주하다. 관광객들도 물 빠진 갯벌을 다니며 해산물을 줍느라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조개구이를 먹고 싶었지만 1인분이 안 돼 섬 주민들이 캐온 바지락조개로 끓인 칼국수를 먹었다. 자연의 섭리는 참 오묘해서 사람의 지문처럼 조가비에 난 무늬가 저마다 다르다.

예쁜 메꽃이 피어난 제부도 해변. 뒤로 매바위가 보인다.
 예쁜 메꽃이 피어난 제부도 해변. 뒤로 매바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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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술 작품같은 바지락조개 무늬.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술 작품같은 바지락조개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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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남쪽 해안을 붉게 물들인 신비한 풀, 칠면초.
 제부도 남쪽 해안을 붉게 물들인 신비한 풀, 칠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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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에서 갈색, 청흑색까지 색깔도 다양한 조가비의 무늬를 바라보다 보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 든다. 조개의 이름을 왜 '바지락'이라고 했는지 궁금해져 식당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다. 갯벌을 지날 때 발밑에서 조개 밟히는 소리가 '바지락 바지락'난다 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그만큼 바다에 풍성했던 조개다.  

산책로를 따라 해안가를 돌다 보면 어느새 제부도 유일의 큰 해변과 매바위가 나온다. 바닷가로 들어서면 부리에 빨갛고 파란색의 립스틱을 바른 듯한 괭이갈매기들이 낮게 날아와 여행자를 반긴다. 제부도 갈매기는 사람들과 유난히 친하구나 싶었는데 조금 후 보니 관광객들이 주는 '갈매기 밥'인 새우 맛 과자 때문이었다. 

제부도 해변 남쪽 끝엔 매바위라 불리는 3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이 바위에도 썰물 때 걸어갈 수 있는 바닷길이 생긴다. 물때가 되어 바닷물이 들어와 제부도와 매바위 모두 물 위에 뜬 섬이 되는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하루를 묵어가고 싶게 했다.

섬 북쪽 해변에서 서해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이 눈길을 붙잡았다. 짠물에서 산다는 염생식물인 '칠면초'가 잿빛 갯벌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칠면초는 일곱 번이나 몸 색깔이 변한다 해서 이름 붙은 신비로운 식물이다.

다시 바닷길을 따라 제부도를 나오는 길, 저 앞에서 10대 후반의 남녀 아이들이 바닷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반가워 손을 흔들었더니, 맨 앞에 있던 여자아이가 다가와 "물, 물 어딨어요?"라고 외치듯 말을 건넸다. 더운 날이라 잠깐 고민했지만, 기꺼이 자전거에 달린 물통을 건넸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이들은 물은 마시지 않고 킥킥 웃기만 했다.

친구들과 바다 보러 제부도에 왔는데 바다는 안 보이고 갯벌만 보여 바닷물은 어디에 있는 거냐고 물어본 거란다. 말 줄이기 선수다웠다. 매바위가 있는 제부도 해변을 알려주고 일부러 물때 시간은 말하지 않았다. 밀물 때 바닷길이 끊겨 섬에 남게 되면 보게 될 아름다운 서해 노을과 찰랑거리는 바다 위로 난 고즈넉한 해안가 산책로를 즐기기 바라며….

자동차는 들어갈 수 없는 누에섬 바닷길

인도와 자전거도로에 사람대신 줄지어선 금계국꽃.
 인도와 자전거도로에 사람대신 줄지어선 금계국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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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요트들이 다 모여있는 화려한 전곡항.
 별별 요트들이 다 모여있는 화려한 전곡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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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바닷길을 다시 나와 30~40분 거리에 있는 전곡항을 향해 달리다, 도로변 주유소에 들렀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주유소는 황량한 차도에서 만나는 반가운 물 공급처이기도 하다. 시원한 정수기 물을 마시게 해준 주유소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저씨 말대로 멀끔한 차도와 달리, 인도와 자전거도로는 이용하는 사람이 없고 대신 노란 금계국꽃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요즘 비가 내리지 않아 갈증이 나서 힘들 텐데도 찾아온 벌에게 꿀까지 주고 있는 등 강인한 여름 들꽃다웠다.   

제부도와 누에섬 사이에 있는 전곡항은 매년 이맘때 '뱃놀이 축제'가 벌어지는 곳으로, 요트학교들과 함께 온갖 요트들이 모여 있는 화려한 항구다. 요트가 없는 사람도 만 원 정도면 항해체험을 할 수 있다. 바닷바람을 쐬며 너른 바다를 산책하다 여유롭게 낚시도 하고…. 요트는 작은 휴양지구나 싶다.

전곡항과 탄도항을 이어주는 작은 탄도 방조제를 건너면 나타나는 탄도항에 바닷길이 펼쳐지는 재밌는 이름의 누에섬(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면)이 있다. 예전에 참나무 숲이 울창했다는 탄도. 그 나무들로 숯을 많이 생산해서 탄도(炭島)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었다.

탄도항에 들어서면 어선을 본떠 만든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이 반긴다. 안산 어촌 지역의 역사와 바다를 막은 시화방조제로 사라져가는 민속을 직접 보고 체험하는 공간이다.

누에섬 가는 바닷길에 서있는 거대한 풍력 발전기.
 누에섬 가는 바닷길에 서있는 거대한 풍력 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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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섬 등대 전망대에서 본 바다. 밀물과 썰물로 나뉘어 바다색이 다르다.
 누에섬 등대 전망대에서 본 바다. 밀물과 썰물로 나뉘어 바다색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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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누에섬엔 붉은 해당화와 흰 해당화가 어울려 살고 있다.
 무인도 누에섬엔 붉은 해당화와 흰 해당화가 어울려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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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섬 가는 바닷길은 제부도와 달리 차들이 못 지나가는 산책로 같은 길이다. 평지지만 바닷바람이 쉼 없이 불어와 언덕을 오를 때 쓰는 자전거 기어 단수로 바꾸게 된다. 바람으로 전기를 만드는 풍력발전기가 있을 만했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 밑을 지나갈 땐, 거인이 휘파람을 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 풍력 발전기가 만든 이채로운 풍경 덕에 누에섬은 사진가들의 인기 출사지기도 하다.

작은 무인도 누에섬엔 붉은 해당화와 보기 드문 흰 해당화가 함께 피어나 감탄을 주었다. 섬 언덕배기에 있는 등대 전망대에 올라 주변 바다 풍경을 바라보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밀물이 들어 바닷길이 사라질 때까지 등대 전망대에서 기다렸다가 섬에 갇혀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다 뉴스에라도 나와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피해가 갈 듯해 마음을 바꿨다. 

이곳엔 한 번 더 여행을 왔다. 바닷길이 사라지면서 비로소 섬의 모습을 찾은 누에섬 모습과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돌고 있는 섬의 해 닐 녘 풍경이 보고 싶어서였다. 누에섬으로 바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수도권 전철 4호선 안산역 1번 출구 앞에서 123번 버스를 타면 종점이 탄도항이다. 누에섬을 돌아보고 다시 전곡항으로 돌아왔다.

전곡항 해안경비소 옆에 서울 사당역(1002번)과 수원역(1004번)으로 가는 좌석직행 버스 종점 정류장이 있다. 두 버스 모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화물칸이 있다. 운행시간 문의는 제부여객 (031-356-5979).

* 주요 자전거여행길 : 제부도 입구, 바닷길 - 제부도 해안 길 - 전곡항 - 탄도방조제 -  탄도항, 안산어촌민속박물관 - 누에섬 - 전곡항 버스 정류장

덧붙이는 글 | 지난 6월 1일에 다녀왔습니다. 제 블로그(http://sunnyk21.blog.me)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제부도, #누에섬, #전곡항, #탄도항, #칠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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