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6.10민주항쟁 30년 특집 <6월 이야기>

ⓒ KBS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그건 희미해질 뿐 잊히지 않는다. 촛불을 함께했던 '시민' 유아인은, 그런 사람들의 자잘한 이야기를 모아 큰 시대의 물결로 엮어낸다. 이야기들은 성겨 툭툭 끊어지지만, 그 편린으로 모인 조각보의 함의는 끊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마치 노룩패스처럼, 서로를 알지 못할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점차 체계화되고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30년 전, 1987년

 KBS 6.10민주항쟁 30년 특집 <6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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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부산에서, 박종철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시대를 살아갔던 청년들은 3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나이를 먹고 장년이 되었다. 그 '청년들'은, 30년 후 다시 그 장소에서 자신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그때 그 청년이 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편집을 통해 기억의 장소들을 오버랩한다. 1980년 광주의 유산, 그리고 1987년 서울.

청년 이한열은, 그가 스러졌던 연세대 정문 앞에서 다시 기억된다. 22, 꽃다운 나이에 스러진 그는 작은 동판으로 남았다. 살아남은 청년은, 이한열을 매개로 다시 그 시대의 기억을 떠올린다. 1987년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거리를 수놓았던 넥타이부대, 명동성당.

명동성당에서 떠올려진 시대는, 야만의 시대였다. 거리는 불타오르고, 백골단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도망치듯 거리를 뛰어다녔던 이들은, 그런데도 "친구들을 구해야겠다"라는 일념 하나만으로 명동성당으로 모여들었다. 용기는, 싸움이 외로웠던 대학생들의 것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싸움이 되었기에 생길 수 있었다.

담장 너머로 도시락을 넘겼던 여고생은, 다시 명동 시장에서 후배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넨다. 그가 기억하는 그 시대의 학생들이 공유했던 생각은, 거대한 시대 담론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끝없는 물음표에도 답을 찾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답을 전해주지 못했던, 그들이 살아가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빛바랜 문집에 남은 편지글에는, 시대를 살아갔던 학생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마산의 6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아버지는 말한다. 경기 중 날리기 시작한 최루탄 가스는 경기를 멈추게 했고, 이는 전국으로 송출돼 물결을 일으켰다고. 아들은 묻는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모였을까. 조악한 프린트를 찍어내 전하는 수밖에 없었음에도, 그 종이를 보며 변화를 꿈꾼 마산 시민은 3만이나 됐다.

그리고 다시 부산. 할아버지는 투쟁의 모습을 그려낸다. 발포. 쏟아지는 최루탄. 숨쉬기 위해 하수구에 머리를 박았다 기절한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후 치료를 받았던 시대의 기억을 손자에게 전한다. 비폭력을 외친 시위대에게 쏟아졌던 최루탄은 가차 없었고, 스물여덟의 신참 직장인 이태춘의 호흡을 앗아갔다.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딸이 묻는 그때 그 시절의 6월은, 야만의 시대에서 '운명'처럼 맞섰던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그 시절에도, 사랑은 있어 시대를 살아갔던 가톨릭 회관의 두 남녀는, 거짓말처럼 결혼했다.

광주에서, 촛불과 6월은 대화를 나눈다. 6월은 기억한다. 수많은 택시는 광주의 기억을 딛고 경적을 울렸다. 생업을 놓고도 삶을 바꾸기 위해 뛰어들었던 기사들의 밥은 정신력이고, 자부심이었다. 시위 현장을 뛰었던 전투경찰들은, 핀을 뽑지 않고 최루탄을 던졌다. 어쩔 수 없이 현장에 던져졌어도, 그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현장을 다니며 운전사는 말한다.

원주. 담을 넘어 성당 모임에 모였던 간호사는 투사가 아니었다. 그저 해야만 하는 마음뿐이었다. 6월은, 그를 바꿨다. 그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춤을 췄고, 노래를 불렀다. 제주. 학생들의 참여는 대학의 기말마저 미뤘다. 폭력적인 진압은 수많은 부상자를 낳았다. 시위는 격렬했고, 피해자도 많았다. 외신은 그런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고, 사람들은 시위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는 다시 광장에서 거리로 퍼져나갔다. 그랬기에 사람도 적고, 대학도 없는 서귀포의 평화행진에는,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전두환은 물러나라." 단순한 구호,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은 열망이었다.

6.29. 전두환은 항복했다. 모든 목소리가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0년 후, 2017년

 KBS 6.10민주항쟁 30년 특집 <6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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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7년 6월의 촛불시위는, 30년 후 광화문에서 다시 타올랐다.

87년 세대는 새로운 촛불시위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촛불은 이제 청자에서 화자가 돼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촛불시위 현장에서 세월호를 위해 노래를 불렀던 여고생은, 그때의 기억을 다시 상기한다. 촛불시위에 있었던 직장인은,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였다고 자신의 동기를 말한다. 아버지를 설득해 현장에 있었던 여고생은, 국민의 하나로서 울컥했던 자신의 기억을 상기한다.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 엄마와 아들은 그렇게 그때의 기억을 서로 나눈다.

촛불은 6월에게 희망이었다. 촛불은 그 기억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촛불은, 모두가 축하할 수 있을 일로 모두가 함께 모일 광화문을 꿈꾼다. 길은 계속될 것이고, 기억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민주주의를 닮았다. 다문다문 피어오른 이야기들의 조각의 결은 다 달라서, 각각의 삶의 무게대로 피어올랐다. 대화의 반복 속에서 회상된 이야기들은, 불친절했다. 그런데도 이 다큐멘터리가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갔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담아냈다는 데 있다. 거칠지만 생생한 이야기는 그 스스로 힘을 갖는다.

평화와 미완의 혁명이고, 성지이자 혁명이며, 민주화이자 삼십 년이고, 용기이자 정견, 악수이자 연대, 행동이자 기억, 독재 타도와 계승, 역사와 신명, 기억과 변화, 사춘기, 절규, 민주, 한마음, 목숨, 함께한 행복. 6월과 촛불이 나눈 키워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마치, 당신의 민주주의, 우리의 민주주의가 오늘도 이어지는 것처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석구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darhci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6.10 민주항쟁 유아인 이한열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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