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음을 쿡 찌르는 건 안예은의 특기다. 그의 노래엔 마음속 응어리 같은 걸 터뜨려주는 무엇이 있다. 그게 무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예은의 1집과 드라마 <역적> OST '봄이 온다면', '홍연' 등 그가 만든 곡 대부분에 묵은 감정을 씻어주는 정화의 힘이 있는 듯하다.

이런 노래를 만드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지난 2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안예은을 만났다. 책과 영화를 좋아하고 '덕후' 기질이 다분한 사람, 생각과 행동이 조심스러운 반면 예술적 상상력은 거침이 없는 사람이었다. '< K팝스타5 > 준우승자 안예은'에서 이젠 '<역적>OST의 안예은'으로 불리는 그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영상음악의 꿈

안예은 지난 2일 오후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싱어송라이터 안예은과 인터뷰를 나눴다. SBS 오디션프로그램 < K팝스타5 > 준우승자인 안예은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역적> OST의 수록곡 다수를 만들고 불렀다.

공식프로필 이외의 사진을 요청하자 안예은이 직접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친구가 찍어줬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한결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 안예은


- <역적> OST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걱정이 많았다. 한 사람이 대부분의 곡을 맡아서 하는 게 이례적인 일이고, 또 제 앨범을 내는 게 아니라서 음악이 안 좋으면 드라마에 누가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윈윈(win-win)한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 OST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홍연'과 '봄이 온다면'은 전에 만든 곡인데 <역적> 분위기와 잘 맞아서 쓰게 됐다. '상사화'와 '새날'도 노래 일부를 만들어 놓은 건데 감독님이 어떤 장면에서 쓰자 하셔서 거기에 맞게 마저 완성시켰다. '익화리의 봄'은 어떤 배우가 부를 건데 구전민요 같은 느낌으로 써달라 하셔서 등장인물을 생각하면서 썼다. '사랑이라고'는 가령이 테마가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었다."

- 안예은이 만든 곡 다수가 국악느낌이다. 원래 국악에 관심이 많나.
"원래 사극을 좋아했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곡을 쓰면 한 구절이라도 그런 요소가 들어가서 국악풍으로 노래가 나온다. 드라마 <대장금> <허준> 등을 정말 좋아했는데 <대장금>에서 상궁들이 음식할 때 나오는 배경음악이 있었는데 그걸 너무 좋아해서 계속 들었다."

- 보통 곡 작업은 어떻게 하는지.
"멜로디와 가사가 한꺼번에 나오는 스타일이다. 일단 쭉 써놓고 가사가 중복되는 게 있다든지 내용상 앞뒤가 안 맞는다 싶으면 고치면서 후반작업을 한다."

- 영상음악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
"사실 전부터 영상음악을 최종목표로 두고 있었다. 가수 활동을 하다보면 OST 한 곡 정도는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러다가 곡을 만들 기회도 오지 않을까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갑자기 <역적>을 하게 됐다. 극중 인물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익화리 사람들의 테마송을 만들고 이런 작업들이 정말 재미있었다. 뮤지컬 음악도 해보고 싶고, 영화음악도 해보고 싶다. 노랫말이 안 들어가는 곡들도 만들어 보고 싶다." 

- <역적>을 통해 안예은의 음악이 대중성도 갖췄단 걸 증명한 것 같다.
"수혜를 많이 입었다. 하지만 '대중적이다'란 것의 기준을 잘 모르다. 취향 차이인 것 같아서 구분하는 게 힘든 일 같다. 제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게 기쁘고 그 수가 중요한 건 아니다. '나는 개성이 뚜렷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 역시 선구자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누구의 영향을 받았나.
"자우림의 김윤아 선배님의 음악을 중학교 3년 내내 들었다. 정말 카리스마 있고, 밴드를 진두지휘하는 여성 뮤지션으로서 실험적인 노래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일본의 시이나 링고의 노래도 고등학교 때 많이 들었다." 

무궁무진한 소재들

안예은 지난 2일 오후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싱어송라이터 안예은과 인터뷰를 나눴다. SBS 오디션프로그램 < K팝스타5 > 준우승자인 안예은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역적> OST의 수록곡 다수를 만들고 불렀다.

안예은. 셀피에도 개성이 묻어난다. ⓒ 안예은


- 인터뷰 전에 e북 리더기를 보고 있더라. 책을 좋아하나 보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읽는 편이긴 하다. 가사 쓸 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단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게 가장 큰 장점 같다. 시선도 다양해져서 좋다. 밤을 예로 들면, 어떤 작가는 밤을 음침하게 표현하고 어떤 작가는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시선이 다 다르다."

- 살면서 읽은 책 중에 특히 좋아하는 책은.
"<꼬마 니콜라>와 <꿈꾸는 책들의 도시> 같은 시리즈물을 좋아한다. <꼬마 니콜라>는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계속 하는데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범위가 이만큼이면, 그것의 몇 배의 범위를 생각하는 게 정말 놀랍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발터 뫼르스의 작품인데 톨킨처럼 하나의 세계와 세계관을 만들어 놓았다."

- 가사 말고 다른 종류의 글도 쓰는지.
"취미로 소설 같은 걸 쓴다. 거창한 건 아니고 곡 쓸 때와 같은 맥락으로 떠오르는 장면을 단편으로 쓰는 식이다. 그림 그리는 분들은 그림으로 표현하듯, 저는 표현수단이 음악이니까 일단 곡으로 쓰고 안 되면 글로 옮겨놓는다. 반대로 먼저 글로 적고 그걸 추려서 곡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 영감이 나오는 곳은.
"영화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만날 때 요즘말로 '덕심'이 움직인다. 이 캐릭터를 가지고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만들어보고 제가 할 수 '음악'으로 표현해본다.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많이 보는 편이다. <매드맥스> <킹스맨> 등을 좋아해서 극장에서 8번이고 11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볼 때마다 안 보이던 게 계속 보인다."

- 책은 영화처럼 반복해서 안 보는지.
"반복해서 보려고 해봤는데 안 되더라.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로운 것, 놓친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책은 한 번 읽고 나면 이미 알게 돼버리는 것 같다. 어떤 방에 대한 묘사라고 하면, 한 번 읽고나면 머릿속에 이미 그 방에 대한 그림이 완성 돼버린다. 인물의 성격 등도 읽고 나면 다 알게 되니까 두 번 읽는 게 쉽지 않더라."

- 노래 만들 때 소재 고갈은 아직 없는지.
"아직까지는 주제나 할 이야기가 계속 생긴다. 영화를 보고 쓰기도 하고, 최근에는 어떤 '단어'를 보고 느끼는 것들을 쓰기도 한다. 주제 잡는 게 제일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날 때는 억지로 짜내려고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한다. 짜내봤자 마음에 드는 것도 안 나오더라. 대신 주제가 떠오르면 곡으로 옮기는 건 빠른 편이다."

소름의 근원

안예은 지난 2일 오후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싱어송라이터 안예은과 인터뷰를 나눴다. SBS 오디션프로그램 < K팝스타5 > 준우승자인 안예은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역적> OST의 수록곡 다수를 만들고 불렀다.

안예은은 스스로 자신이 '개성있다' 생각하지 않는다. ⓒ 안예은


- 안예은의 음악을 들으면 개인적으로 마음이 짠하고, 소름 돋을 때도 있다. 비결이 뭘까.
"저는 잘 모르겠는데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제게 지질한 감성이 있는데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건데 그걸 제가 가사에 다 드러내서 거기서 짠함이 오지 않나 하더라. 제가 생각하기엔 그냥 제 성격이 노래에 묻어나서 그런 것 같다. 되게 소심하고 쓸데없는 걱정 많이 하고, 카톡에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하는 그런 사람이다."

- 그런 지질함도 동의되지만, '봄이 온다면', '새날', '익화리의 봄' 등을 들으면 한이 터지는 듯한 다른 종류의 소름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또 다른 비결이 있지 않을까. 
"제 생각인데, 이건 완전 주관적 제 추측인데, 제가 공감을 깊이 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익화리의 봄'도 익화리 사람들에게 깊이 빠져서 저도 익화리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고 쓴 것이 비결이 아닐까 싶다. 깊게 이입해서 그 사람 입장에서 나오는 노래라 그런 것 같다."

- 국악적인 창법도 매력적이다.
"김윤아-시이나 링고, 두 분의 노래를 많이 듣고 따라 불러서 흡수가 된 것도 있다. 한 때는 제 것이 없다는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런데 < K팝스타 >에서 '미스터 미스터리'를 불렀을 때 유희열 선생님이 제게 '안예은은 자우림과도 다르고, 다른 뮤지션과도 다르다. 사람들은 본인이 아는 선에서만 평가하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말하는 거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걱정이 사라졌다."

유희열 선생님에게

안예은 지난 2일 오후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싱어송라이터 안예은과 인터뷰를 나눴다. SBS 오디션프로그램 < K팝스타5 > 준우승자인 안예은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역적> OST의 수록곡 다수를 만들고 불렀다.

SBS 오디션프로그램 < K팝스타5 > 준우승자인 안예은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역적> OST의 수록곡 다수를 만들고 불렀다. ⓒ 안예은


- < K팝스타 > 때 유희열씨가 예은씨를 살렸고, 준우승까지 갔다. 안예은에게 유희열이란?
"생명의 은인. 제가 이번 시즌6 파이널무대에 갔을 때 (우승자였던) 수정이를 오랜만에 봤다. 유희열 선생님에게 쓴 감사편지를 주며 '좀 전해달라' 부탁했는데 받으셨는지 모르겠다. 뵙고 싶지만 무턱대고 찾아가기도 그렇고... 제겐 신 같은 존재라서."

- 이 인터뷰를 빌려서 유희열에게 한마디 전달한다면.
"선생님이 계셨기에 제가 음악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때 안 됐으면 음악 안 하려했다.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개성도 없고 음악에 대한 자신감도 없는 상태였다. 정말 감사하다."

- 어릴 때 심장 수술을 했다고 들었다. 최근 스토리펀딩도 봤는데 지금도 건강이 좀 안 좋은 건가 싶었다. 괜찮은 건지.
"부모님은 '너는 심장병이 있는 애야'가 아니고 '얘는 내 딸인데 심장병이 있어' 이렇게 키워주셨다. 특별한 보호를 받은 게 아니라 그냥 뛰어다니지 말라, 그 정도로 커서 아픈 게 크게 와 닿았던 건 없다. 마지막 수술은 13살 초에 했는데 컸을 때라 기억이 난다. 건강을 잘 안 챙기는 편이라서 부모님이 지금도 걱정하시는데, 운동을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괜찮다."

- 앞으로의 계획은.
"사극풍의 곡을 계속 했으니 다른 장르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의외로 공연을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공연도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걱정이 많다. 있는 곡으로 하기 보다 새로운 곡을 한 곡이라도 공연에서 보여드리면 좋겠다."

-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오나.
"이번 여름에 낼 것 같다."

- 이미 초여름이 다가오는데 그럼 다 만들어 놓은 건가.
"이제 만들 생각이다. 다행히 곡을 빨리 쓰는 편이다. 만들어 놓은 곡들은 가을 겨울과 어울리는 것들이라 다음에 쓸 것 같다. 3~4곡 정도의 미니앨범을 선보일 것 같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공연을 열면 사람들이 많이 올 것이라 말하자 안예은은 "더 준비하고 해야 한다"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소속사 실장님은 "공연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 예은이는 너무 걱정이 많다"며 걱정했다.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었고, 두 사람은 SNS와 악플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안예은은 여성문제에 대해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 이 분야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고도 했다.

그밖에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있느냐는 질문에 안예은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할 이야기가 있지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실장님은 이렇듯 조심스러워진 안예은을 대신해, 곁에서 지켜본 그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평소 예은이를 보면 모든 차별에 반대하고 인권에 관심이 많다. 여성, 동물보호 등에 대한 관심도 그런 맥락이다. 예은이가 만든 노래들엔 남성-여성을 지칭하는 게 어디도 없단 걸 문득 발견했다.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미스터 미스터리'만 빼고 말이다. 차별과 불평등에 반대하는 예은이의 오랜 진심이 왜곡되는 걸 볼 때 안타깝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예은이의 모든 노래에 깔려 있다."



안예은 역적 봄이온다면 홍연 유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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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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