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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 주세요. 진솔한 우리들의 이야기 상처 받은 공간에서 함께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명옥 기자님 아프지 마세요."

<택시 신문고>를 엮은 박기문씨가 건네 준 책에 적어 준 글귀다. 2014년 7월 광화문에 세월호 천막이 차려진 이후 리본을 만드는 곳이나 집회 장소에서 한 남자를 보게 됐다. SNS를 통해 소통을 활발하게 하고 있던 그는 자신을 '하늘소리'라고 소개했다. 진도가 고향이고 포클레인을 운전했다는 것 외엔 아는 것이 없었다. 다만 광화문서 자주 얼굴을 마주치게 됐다.

솔직히 집회장에 나오는 젊은 남자들, 아직은 일을 할 나이에 낮이건 밤이건 집회장이나 세월호 천막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도대체 일도 안 하면서 뭘 먹고 살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 자신이 여성 가장이면서 불안정한 비정규직과 백수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택시 운전을 하며 승객 1500여 명의 목소리를 담은 <택시 신문고>
▲ 택시 신문고 택시 운전을 하며 승객 1500여 명의 목소리를 담은 <택시 신문고>
ⓒ 도서출판 비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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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그렇게 하는 일 없어 보이던 그를 작년에 만났을 때 택시 운전을 한다고 했다. 일을 한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하늘소리 박기문씨가 2016년 2월 29일부터 2017년 1월 31일까지 택시 운전을 하면서 만난 승객들이 써 준 글을 추려 '택시 신문고'라는 이름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아마도 택시 안에 '택시 신문고'라는 공책을 만들어 놓고 승객들에게 글을 받았던 것 같다. 그의 택시를 이용한 승객 중 1500여 명 가량이 글을 써주었다고 한다.

'신문고'는 누가 두들겼는가?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고 신원하며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힘없고 든든한 백 그라운드 없던 백성이 두드리던 것이 아니었던가. 탄핵 당한 박근혜는 불통의 상징이었다.

측근과도 소통을 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 시정 국민들이 억울함과 답답함을 하소연할 곳은 아무 데도 없었을 것이다. 승객들은 먼저 글을 적은 이들을 통해 자신만 아프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이 나라가
감정이 메말라버려
감정을 들추는 작업에서 '글모음'을
시작했다는 기사님!!
저 역시 마음속의 미움과 증오가.......
이 작은 글귀들에 위안을 받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사실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 건데......
기사님의 작은 노력이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믿어요.
2016.3.29 뉴스룸 마치고.
JTBC 한윤지 앵커 -130쪽

'택시 신문고'안의 다양하고 솔직한 승객들 마음이 담긴 글귀는 현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미장원, 재래시장 등 택시 기사가 만나는 사람들의 목소리야말로 그 시대 민중의 삶을 여과 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다.

그런 의미로 '택시 신문고'를 통해 시대의 바람을 담아내려는 아이디어는 탁월하다 할 수 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글귀에 투영된 시대상과 민중의 바람을 위정자들이 제대로 읽어내고 해법을 찾아내길 바란다.

'어쩔 수 없다"라는 변명을 하지 않는 , 그런 어른들이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김수현, 48쪽

대학원 3년,
어학연수 1년,
취업준비 1년,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지만
결과는 30살의 인턴...

기득권층만의 이득이 아닌
노력하면 나아지는 세상이 오길... - PIA, 50쪽

책속에는 입시를 앞둔 수험생,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하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하는 취준생, 미혼모, 맞벌이 부부 등 워킹맘의 애환과 바람, 중년 가장의 바람, 청장년들의 애환과 바람 등 이 시대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20대 주부입니다. 아기 많이 낳으라고만 하지 말고 믿고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세요! 누굴 믿고 이 세상에 우리 아이를 내놓을까요...... 차별 없고 배려 있는 좋은 세상 만들어주세요.
- 조인숙(서준엄마), 76쪽.

미혼모들이 갈 수 있는 편의시설을 더 많이 만들어 주세요. 사회에서 약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에 가장 낮은 약자가 행복해야 좋은 나라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 박선미, 83쪽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남들도 다 참고 산다"
"원래 사회가 다 그런거다"
'남들도' '원래' 라는 말 대신
'내가' 결정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새상이 언제쯤 오게 될까요.
- 221쪽

새로운 정부에서는 헬조선 이라는 말도, N포 세대라는 자조 섞인 절망의 언어도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되기를 바란다.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기문씨 같은 이들이 사회적 소외계층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택시 신문고를 두드렸던 '희망'을 잃고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통해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며 절망의 늪을 헤쳐 나오길 기대한다.

'신문고'를 두드렸던 사람들이 드러낸 아픔에 공감하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의 용기를 얻어 힘찬 새 삶의 날개를 펼친다면 '택시 신문고'는 글귀를 적은 이와 읽는 이 서로에게 위로와 치유의 샘물을 제공한 것이리라.

덧붙이는 글 | 텍시 신문고 / 박기문/ 도서출판 비지아이/ 12,000원



택시 신문고

박기문 지음, 비지아이(2017)


태그:#택시 신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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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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