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한 장면.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한 장면. ⓒ 영화사풀


"여러분의 선택이 광주의 선택이고, 민주당의 선택이고, 대한민국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역사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그러했다. 2002년 국내 정치사상 최초로 도입된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제, 그해 3월 광주의 선택은 '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였다. 37.9%라는 '광주의 선택'은 후보 노무현의 바람처럼 '대한민국의 선택'으로 이어졌고, 숙적 이인제 후보를 물리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줬다.

그렇게, 전설로 남게 됐다. 호남 경선에서 "저 노무현이 정면 돌파하겠습니다"라고 호소했던 노무현 후보의 연설 말이다. 그 결과, "동서화합"을 몸소 부르짖었던 정치인 노무현의 인생을 광주와 호남인들이 인정해줬다. 그랬다. 많은 이들이 2002년 여름을 한일 월드컵의 '붉은 악마'와 시청광장으로 기억한다면, 또 많은 이들은 2002년을, 그해 봄을 '대통령 노무현 비긴즈'로 기억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도 그런 이들 중 하나다. '노빠'도, '노사모'도 아니라는 이창재 감독은 경선이 시작된 3월부터 마감된 4월까지의 그 해 2002년 봄이 정치인 노무현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스레 만들 수밖에 없었을 '노무현 다큐'의 시계를 그 해 봄 새천년민주당의 경선으로 되돌려 놓는다. 노무현의 '화양연화'였던 그때로 말이다. 그리고, 그 노무현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시계는 여전히 흘러가는 중이다.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의 '화양연화'와 역사에 길이 남을 정치인이자 전직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의 기억과 부채감을 적절하게 '콜라보'시킨다. 그리하여, '고 노무현 8주기' 즈음에 찾아 온 이 다큐는 누구에게는 뼈아프게 사무치고, 누구에게는 명민하게 이성을 작동시킬 작품이다.

'바보 노무현'이 운명처럼 왔다

 유시민 작가

유시민 작가 ⓒ 영화사풀


그 누구도 쉽사리 예상치 못했다. '바보' 노무현이 이인제라는 후보를 물리치고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리라는 것을. 그만큼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참여경선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실로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고난에 휩싸인, 힘이 약한 주인공 노무현이 존재한다. 그리고 아주 강력한 상대가 있다. 이인제 후보였다. 그는 단순히 '대세' 후보뿐만이 아니었다. 당과 당원들의 지지를 폭넓게 받고 있었던 것도 모자라 같은 당 내 후보인 노무현에 대한 흑색선전까지 퍼부었다. 장인 문제와 관련된 색깔론이 대표적이었다.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 자격이 생깁니까?"라던 노무현의 연설이 많은 이들의 감동을 준 것도 그런 빗발치는 공세를 이겨내려는 한 정치인의 눈물 겨운 진심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리라.

대표적인 '철새' 정치인이기도 했던 이인제 후보는 광주 경선 이후 노무현의 '역전 드라마'를 목도하면서 급격히 '보수화'로 선회했고, 당시 야당이었던 이회창 후보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노무현 때리기'와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미비한 당 내 입지, 영남 출신이라는 지역적인 한계, 민주당 내 보수적인 세력과 기존 보수세력의 집중 포화 등을 이겨낸 노무현의 승리는 그 자체로 '새로운 정치'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노무현입니다>는 당시 연설 장면과 뉴스 화면, 노사모(노무현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의 화면 등을 극적으로 편집, 당시 드라마틱했던 노무현의 '화양연화'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이창재 감독은 편집과 음악, 그리고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의 감정이 생생히 살아 있는 화면을 통해 2002년 경선을 감각적으로 재현해 냈다. 물론 그러한 이해를 돕는 것은 '노무현의 사람들'의 인터뷰들이다.

심금 울리는 '노무현의 사람들'의 기억, 목소리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 영화사풀


"노무현 대통령은 사랑스러운 분이었고요. 뭔가 해주고 싶은 분이었어요." (유시민 작가)
"저를 동업자라고 불러 주셨는데, 그게 제 입장을 생각해서 그러셨던 거라고 하더라고요." (안희정 충남도지사)

취재원 리스트만 200여 명, 그 중 인터뷰가 확정된 인물은 최종 72명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을 기억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다각도로 들려준다.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에 임하기 전 인터뷰에 응한 문재인 대통령부터 중앙정보부 12기 공채요원이었던 이화춘씨까지 본편에 등장하는 이만 총 39명에 달한다. 탄핵정국이 만들어 준 19대 대선을 거치며 자의든 타의든 '스타'가 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분명 마음을 울린다.

인터뷰가 다 끝나도록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유서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희정 지사는 끝내 눈물을 훔친다. 유시민 작가는 "거대한 파도의 시작이 될" 노무현 대통령의 진가를 알아본 인물이기도 했다. '인간 노무현'부터 '대통령 노무현'까지 그의 정치인생과 내밀한 성정까지, 목소리를 빌려준 지인, 친구, 동지, 후보 캠프와 청와대 관계자, 노사모 회원들의 목소리는 분명 누군가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그 중에서도 '인간 노무현'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행동지침을 실제로 지켰다고 증언하는 이화춘씨나 과거 운전기사 노수현씨, 선거전문가 배갑상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그간 잘 알지 못했던 노무현의 일화들을 때로는 가슴 아프게, 때로는 즐거이 들려주는 <노무현입니다> 만의 강점이다.  

'노사모'의 활약상도 새롭게 다가오긴 마찬가지다. 2002년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던 그들의 눈빛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노사모', '노빠'로 치부당하기 일쑤였던 정치인 팬클럽의 긍정성과 헌신을 다시금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굳이 비교하자면, 지난해 개봉한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노무현이 주는 무게에 살짝 짓눌려 노무현의 유산을 헌정하기에 바빴다면 <노무현입니다>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다가갈 수 있는 여유가 더 크게 다가온다고 할까.

그리고, 영화 전편에 흐르는 죄책감과 부채감  

 안희정 충남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 영화사풀


다큐 <노무현입니다>를 관통하는 정서는 결국 죄책감과 부채감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전편에 걸쳐 세세히 중계되는 2002년 민주당 경선 과정의 드라마틱한 승리, 그 기쁨의 순간도 잠시, 이 다큐는 집권 과정을 스킵한 채 예정된 파국으로 건너 뛰어 버린다.

그 사이 사이를 채우는 '인간 노무현'에 대한 주변인들의 기억과 증언에는 하나 같이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그는 가고,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부채감과 죄책감이 스며들어 있다. '친구 문재인'과 '동업자 안희정'의 눈물이 대표적이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정치인 노무현'은 물론 '인간 노무현'을 되돌아보는 일은 그렇게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회한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일일 테니.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그를 실제로 알았던 지인들은 물론 그에게 대선에서 표를 줬거나, 주지 않은 국민들 다수가 느낄 수밖에 없는 현대사의 비극이자 트라우마로 남게 됐고, <노무현입니다> 역시 그러한 아픔을 비켜갈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노무현입니다>은 그래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지키겠다"고 선언하는 이들의 안쓰러운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심정을 기어코 들여다보게 만든다. '누가 노무현을 사지로 몰았나'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과 증언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부채의식과 한맺힌 진술로 점철돼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를 죽인 것이 검찰인지, 이명박 정권인지, 그도 아니면 기득권 보수 세력인지, 그 틈에서 '진보언론'과 그를 내쳤던 유권자들은 아니었는지, <노무현입니다>는 계속 환기시킨다. 그것이야말로 공동의 기억과 진술의 힘이자, 다큐가 주는 영화의 힘이다.

이를 반증하듯,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첫날 다큐멘터리로서는 기록적인 스크린 수와 흥행 성적을 보여줬다. 그렇게, '노무현의 친구'인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노무현 8주기 직후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가 관객들에게 찾아 왔다. 마치 운명처럼.  

노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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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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