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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9명. 광주광역시가 2009년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을 집계한 결과이다. 1980년 5월의 광주,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5189명. 광주광역시가 2009년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을 집계한 결과이다. 1980년 5월의 광주,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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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베를린

"어느 날 독일 간호사들이 나를 막 부르는 거야, 뉴스에 지금 한국 나온다고, 나는 무슨 일인가 달려가서 티비(텔레비전)를 봤어. 길거리에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고 시체들이 보였어. 순간 광주에 있는 가족 생각이 났지.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만 주저앉아버렸어. 펑펑 울었어. 세상이 끝난 것 같았어. 다른 독일 간호사가 한국에 전쟁이 난 거냐고 물었지."

1970년대 후반, 베를린에 파독간호사로 온 A씨는 아직도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1980년 5월 광주. 비록 그는 그곳에 없었지만, 독일 뉴스를 통해 본 고향 광주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는 거의 몇 달 동안은 퇴근 후 베를린에 있는 자신의 방구석에서 혼자 밤새 울다가 출근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A씨가 본 독일뉴스 영상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세계에 알린 독일 카메라기자 힌츠페터씨가 찍은 것이었다. 5.18을 하루 앞둔 5월 17일, 나는 독일 카메라기자 힌츠페터씨의 부인 브람슈테트씨를 만날 수 있었다. 포츠담에 위치한 독일 정치범수용소 박물관 '민주주의의 집'에서 나경택 기자의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전이 열린 곳에서였다. 나치시대부터 동독의 독재 정권 때까지 정치범들을 가두고 심문하고 재판했던 곳에서, 한국의 독재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전시가 마련된 것이다.

독일 기자로부터 알려진 광주, 한국 기자가 다시 보여주다 

자신의 찍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을 독일인들에게 설명하는 나경택기자
 자신의 찍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을 독일인들에게 설명하는 나경택기자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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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위에 걸려있는 검은 리본, 한솥 가득 익어가는 산자들의 흰 쌀밥, 팔뚝에 적십자 의무병 띠를 차고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치는 모습, 공수부대를 피해 도망가느라 도로에 널브러진 신발들.

학살이었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았고, 죽임을 당했다. 나경택 기자가 독일 정치수용소 박물관에서 전시한 당시 사진들이 이미 수많은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1980년 5월 광주를 취재하던 중 우연히 '발포 명령'을 들은 유일한 증언자였다.

나경택 기자는 광주민주화운동과 참혹한 시민들의 모습을 세계에 알렸던 독일 언론이 있었기에 광주의 역사가 왜곡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광주 시민들이 한국 기자들은 믿지 않았지만 외신 기자들에게는 박수를 보내곤 했다고 한다. 정권이 말하는 대로 받아적기만 했던 1980년대 한국 언론들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역사학자이자, 포츠담 정치범수용소 관장인 겔란트씨는 나경택 기자의 사진과 그의 증언을 통해서 광주민주화운동의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첫째 시민과 군인 상관없이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밥을 서로 나눈 것, 둘째 부상당한 이웃을 위해 시민들이 피를 나눈 것. 지옥 같은 순간 속에서도 '밥'과 '피'를 나누는 광주 시민들의 연대의식에 대해 그는 존경을 표했다.

독일 역사학자이자, 포츠담 정치범수용소 관장인 겔란트씨
 독일 역사학자이자, 포츠담 정치범수용소 관장인 겔란트씨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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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운동을 한 독일인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19년 동안 독일에서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해온 독일인 한스 부흐너씨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한국 앰네스티에서 시상하는 감사패를 인권운동가이자 영화 프로듀서인 클레어 함씨가 부흐너씨에게 전달하기 위해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얼마 전 한국 시민들은 매주 주말마다 집회를 했습니다. 매주요. 몇 달 동안요. 그 집회에서 국정교과서 문제를 이야기하고, 노동권을 이야기하고, 다양한 주제들의 크고 작은 집회들이 열렸습니다. 결국 시민들이 정권을 바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 독일에는 없습니다. 지금 한국 시민들은 매우 수준 높은 시민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로 79세인 부흐너씨는 나경택 기자와 겔란트 독일 역사학자와 나눈 토론에서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당선 연도까지 언급하며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올해로 79세인 부흐너씨는 한국 엠네스티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올해로 79세인 부흐너씨는 한국 엠네스티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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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파업, 노동권, 사형제도, 이주노동자, 전쟁 위기 등의 문제를 독일에 알리는 일들을 해왔습니다. 19년 전, 뮌헨 앰네스티 활동을 시작했을 때 '한국' 담당자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아무도 지원하지 않으면 한국 부서를 없애겠다고 하기에,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맡아서 한국에 대한 문제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년, 그가 독일에서 바라본 한국은 놀라운 시민들의 나라였다고 한다. 1980년 광주에서부터 2017년 광화문까지, 잔인한 한국의 역사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민주주의의 촛불을 켜고 있었다. 오늘 내가 마주한 이 파란 눈의 독일 노인은 그러한 한국의 시민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그가 말한다.

"당신 사진 하나 보내줄 수 있어요? 노인네가 돼서 기억력이 시원치 않아요. 사진을 준다면 오늘의 당신을 기억할 수 있을 거예요."

5월 찬란한 햇빛이 거리에 가득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베를린의 지하철에서 망월동을 떠올렸다. 영정 사진도 없던, 이름도 남기지 않고 떠나간 사람들의 자리가 떠올랐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본 광주 금남로의 전일빌딩에 남은 총알 자국은 유난히 서슬 퍼렇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직 37년이 지나도록 학살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었다.


태그:#5.18, #광주 독일 외신기자, #광주민주화운동, #망월동, #엠네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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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시각예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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