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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23조 제1항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제2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제3항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한국은 유독 도시 이름 뒤에 '신도시'라는 단어가 붙는 경우가 많다. 일산 신도시, 분당 신도시, 중동 신도시 등이 그렇다. 신도시라는 수식어가 붙는 지역은 1990년대 건설된 1기 계획도시들이다. 2000년대 들어서서는 신도시 대신 '뉴타운'이라는 계획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씨티(신도시)에서 (뉴)타운으로 바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뉴타운은 소규모 계획도시였다. 수도권에 더 이상 신도시처럼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건설할 부지가 없어지자 구 도심지에 재개발 사업을 통해 소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한 것이 뉴타운이다. 신도시는 인구밀도가 적은 농촌지역에 들어선 반면 뉴타운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지에 들어섰다. 때문에 뉴타운은 신도시에 비해 원주민들의 이전문제로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 재개발 절차는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따라 주거환경이나 기반시설이 낙후된 지역을 정비구역으로 지정한다. 정비구역지정이 이루어지면 재개발조합 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추진위)를 구성하고 추진위는 토지 등 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및 토지면적의 2분의 1 이상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조합을 설립한다.

조합이 설립되면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6조 등). 주민들로 구성된 조합은 보통 재건축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공사의 선정과 사업시행계획의 수립에 정비전문업체의 도움을 받고는 한다. 이를 통해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되면 본격적으로 철거 및 착공이 시작된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재개발은 법률에 따른 절차가 자본과 힘의 논리에 따라 변형되고는 한다. 우선 법과 달리 재개발의 주체는 주민이 아닌 건설회사다. 건설회사는 재개발 사업을 통해 수익을 얻고자 마을에 들어간다. 그들은 주민들을 선동하여 장밋빛으로 포장된 재개발 환상을 심어준다.

건설회사는 부동산 소유주들 몇 명을 포섭한 후 이들을 앞세워 재개발조합 설립 추진위를 만든다. 추진위는 건설회사의 영향력 하에 있는 정비전문업체의 도움을 받아 부동산 소유주들로부터 재건축 동의서를 받는 작업을 진행한다. 부동산 소유주의 4분의 3 이상으로부터 동의서를 받게 되면 재개발조합이 설립되고 재건축이 진행된다.

재개발조합이 설립되면 본격적인 이주 및 철거가 진행된다. 재개발 지역에서 문제되는 용역업체의 폭력행위는 대부분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부동산 소유주들은 재개발만 하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재개발조합까지 설립된 마당에 더 이상 재개발에 반대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상황이 다르다. 세입자들에게는 약간의 이주보상비 정도만 지급되는데 그 정도 돈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상가 세입자들은 오랫동안 마을에서 소규모 사업장을 운영해온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들에게 타 지역으로의 이주는 자신들의 영업기반을 송두리째 버려야 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세입자들은 순순히 삶의 터전을 내어주려 하지 않는다.

이익창출을 위해 시작된 재개발 사업은 토지에 대한 아무런 권한도 없는 세입자들에게 추가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매우 인색하다. 이주를 거부하는 세입자들은 곧 용역의 폭력과 마주하게 된다. 만약 세입자들이 용역의 폭력에 대항하여 물리적 저항을 한다면 그들 앞에는 용역이 아닌 공권력이 나타나게 된다. 2009년 1월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용산참사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발생했다.

2009년 1월 19일 오전 5시 33분 용산 4구역 철거민과 전국 철거민 연합회(전철연) 회원 등 약 30여 명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5층짜리 남일당 상가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경찰은 3개 중대 300여 명을 경비 병력으로 투입했다. 철거민들은 옥상 건물 위에 망루(望樓)를 짓고 시너를 준비했다. 자신들을 쫒으려는 용역과 경찰에게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1월 20일 오전 6시 12분, 경찰은 망루의 철거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기 시작하였다. 6시 45분, 경찰은 컨테이너에 경찰특공대를 태워 옥상으로 올려 보냈다. 7시, 컨테이너가 옥상으로 올라가자 본격적인 진압이 시작되었다. 7시 20분, 특공대를 실은 두 번째 크레인이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 때 3층과 5층에서 불이 났다. 이내 옥상에 있던 망루에도 불길이 번졌다.

7시 45분, 불이 붙은 망루가 무너졌다. 옥상에는 인화성 물질인 시너가 가득했지만 경찰의 유류화재에 대한 대비는 전혀 없었다. 경찰은 불을 끄겠다며 불길에 연신 물대포를 쏘아댔다. 하지만 시너 불은 물로 끌 수 없었다. 오히려 불은 물을 타고 더욱 크게 번졌다. 불은 망루를 모두 태우고 나서야 꺼졌다. 그 곳을 수색한 경찰은 시신 6구를 수습했다.

헌법 제23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되지만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 필요가 있을 경우 재산권은 제한될 수 있다. 재산권을 제한해야 하는 때에는 법률에 따라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권의 대상은 현금이나 동산 등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현금이나 동산은 희소성이 없고 충분한 대체제가 있기 때문에 재산권 제한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재산권이 제한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부동산이다. 부동산은 수량이 제한되어 있고 대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사적소유는 근대국가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사적소유에 기반을 두어 경제체제가 유지된다. 그런데 헌법이 사적소유의 대상인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선언한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재판소는 재산권 제한의 정당성을 자본주의 역사에서 찾고 있다.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난 후 성립한 근대시민사회는 계몽사상 및 자연법사상과 로마법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을 평등한 인격자로 관념하고 그의 이윤추구 욕구를 바탕으로 한 자유스러운 사회활동(계약자유)과 여러 가지 제약이나 부담이 따르지 않는 절대적인 소유권의 보장을 요구했다.

이를 배경으로 개인주의·자유주의 및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달할 수 있었고 더불어 생산과 부의 비약적인 증대와 경제번영이 이룩되었다. 그리하여 근대 초기자본주의하에서의 토지소유권의 개념은 개인적 재산권으로서 타의 제약을 받지 않는 절대적 권리로서 인정되었다.

토지소유권의 불가침성, 자유성, 우월성을 의미하는 토지소유권의 절대성은 1789년 8월 27일 프랑스 인권선언 제17조의 '소유권은 신성불가침'이라는 규정으로 극명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평등한 인격자로 보고 자유로운 계약활동과 소유권의 절대성만 보장해주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궁한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이상(理想)은 노동을 상품으로 팔 수 밖에 없는 도시노동자나 소작민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는 계약자유의 미명아래 '있는 자, 가진 자'로부터 착취당하여 결국에는 빈부의 격차가 현격해지고, 사회계층간의 분화와 대립갈등이 첨예화하는 사태에 이르게 됨에 따라 대폭 수정되기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기 위하여서는 토지소유권은 이제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일 수가 없었고 공공의 이익 내지 공공복리의 증진을 위하여 의무를 부담하거나 제약을 수반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토지소유권은 신성불가침의 것이 아니고 실정법상의 여러 의무와 제약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되었다.

이른바, 토지공개념 이론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현대국가에서는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의무를 수반하는 상대적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헌재 1989. 12. 22. 88헌가13, 수정)."

헌법재판소는 재산권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경우 부의 편중에 따른 빈부격차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특히 노동자의 경우 삶의 질이 매우 황폐해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재산권의 제한은 빈부격차의 완화와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과 같이 보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헌법 제23조가 말하고 있는 공공복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재산권 제한은 도시 재개발과 같이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재개발 사업에는 시공사, 부동산 소유자 그리고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다. 이들 중 건설사인 시공사와 부동산 소유자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재산을 가진 이들이다. 반면 세입자들은 가진 재산이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산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재개발은 헌법 제23조가 규정하듯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번듯한 고층 아파트를 짓는다고 이를 공공복리라 할 수 없다. 재개발이 공공복리가 되려면 이를 통해 주민들 삶의 질이 나아져야 한다. 손해를 입는 이는 최소가 되어야 하며 그 손해 역시 적정하게 보상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 공동체에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삶을 터전을 이루어왔지만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당한 보상 없이 세입자들을 폭력적으로 내쫓는 재개발은 결코 공공복리일 수 없다. 부동산을 수익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재개발은 수익사업이겠지만 지역 공동체에서 삶의 터전을 다진 이들에게 재개발은 삶 자체의 박탈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재벌 시공사, 토지 소유주 그리고 공권력은 그들을 폭력적으로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목숨과도 같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고 결국 망루의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용산 4구역에는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남일당 건물이 있던 구도시의 모습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용산참사 당시 경찰 최고책임자였던 김석기는 이후 주오사카 총영사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2016년에는 경주에서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용산참사 문제로 구속된 철거민들은 만기복역을 하고서야 출소할 수 있었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 작동해야 할 재산권의 제한이 한국에서 작동하는 모습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용산참사, #재개발, #재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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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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