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전력분석관으로 선임된 전 국가대표 차두리가 27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 전력분석관으로 선임될 당시인 지난 2016년 10월 27일 전 국가대표 차두리가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차두리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이 최근 대한축구협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물러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해 10월 대표팀 스태프에 합류한 지 불과 6개월만이다.

차두리는 지난 3월 28일 월드컵 최종예선 시리아전이 끝난 뒤 협회에 사의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이용수 기술위원장 등이 계속 잔류를 설득했으나 본인이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협회가 사표를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차두리의 돌연한 사퇴

2002 한일월드컵 4강신화의 레전드 출신으로 대표팀에서 선수와 코칭스태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차두리의 돌연한 조기 하차 소식에 팬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최근 정해성 수석코치를 새롭게 영입하며 코치진을 재편했던 축구협회는 실질적인 코치 역할을 수행하던 차두리의 이탈로 또다시 코치진에 공석이 발생했다.

이번 차두리 사태는 결국 처음부터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낙하산 인사'의 부작용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사실 처음부터 찜찜한 출발이었다. 협회는 지난해 현역 은퇴 이후 독일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던 차두리를 대표팀에 영입하기 위하여 전력분석관이라는 직책까지 억지로 급조하는 무리수를 자초했다. 차두리가 대표팀 코치로서 필요한 지도자 자격증을 아직 취득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편법이고 특혜였다.

물론 협회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축구대표팀은 당시 최종예선들어 대표팀이 부진에 빠지며 슈틸리케 감독의 잇단 말실수 논란까지 겹쳐 분위기 전환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외국인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해줄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수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은 데다 슈틸리케 감독과도 관계가 좋았던 차두리가 당시로서는 적임자로 보였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말하면 처음부터 차두리의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경험 등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협회와 슈틸리케 감독 모두 진정으로 필요로 했던 것은 그저 차두리의 현역 시절 지명도와 후광으로, 보여주기식 인사에 불과했다. 최고로 검증된 인재들만 모일수 있다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무자격 코치' 한 명을 낙하산으로 영입한 것을 자랑하려고 전례없이 성대한 기자회견까지 열며 홍보하는 모습은 기대감보다는 오히려 안쓰러운 실소만 자아내게 했다.

차두리는 결국 어정쩡한 보직만큼이나 대표팀에서의 역할도 어정쩡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초에는 차두리와 역할이 일정 부분 겹치는 설기현 성균관대 감독까지 가세했다.  혼자만 정식 코치도 아니고 전력분석관도 아닌 차두리의 존재감은 더욱 애매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결과적으로 차두리가 가세한 이후 대표팀의 분위기나 경기력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독선적인 팀운영과 소통 문제도 여전했다. 이럴 거면 왜 새로운 코치들을 영입했는지 의구심이 드는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주먹구구식 미봉책에 불과했던 차두리 카드의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결말인 셈이다.

차두리, '낙하산'일지라도 책임감 보였어야

협회와 슈틸리케 감독의 책임이 크지만, 한편으로 차두리의 가볍고 무책임한 처신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아무리 협회가 대표팀 합류를 먼저 권유했다고 해도 결정은 어디까지나 차두리 본인이 선택한 만큼 성인이자 축구인으로서 사려깊게 판단하고 처신했어야 했다. 본인이 스스로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을 알았다면 불필요한 특혜까지 누려가며 대표팀 코치든 전력분석관이든 수락하지 말았어야 했다.

또한 아무리 낙하산으로 승선한 무자격 코치라고 할지라도 일단 대표팀의 일원이 된 이상은 끝까지 책임감을 가져야 했다. 처음 차두리를 영입할 때부터 대표팀은 비상시국이었고, 차두리도 위기의 대표팀을 구원하는 데 동참한다는 대의로 합류했다.

그런데 지금의 슈틸리케호는 지난해 차두리가 처음 합류할 때보다 어쩌면 더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차두리는 슈틸리케 감독과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만류마저 뿌리치고 일방적으로 사임을 선언했다. 여기에 차두리의 이탈 자체만으로 가뜩이나 코너에 몰려있는 대표팀의 이미지와 분위기에 더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논란을 감수해가며 자신을 영입한 대표팀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 셈이다.

들어올 때는 원칙과 절차도 무시해가며 거창하게 등장하더니, 나갈 때도 주변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떠나가 버렸다.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결국 6개월동안 차두리가 대표팀에서 증명한 것이라고는 지도자로서의 경험과 노하우는 물론이고 정신자세부터가 아직은 함량 미달이었음을 확인했다는 것 하나뿐이다.

축구대표팀 인사, 도대체 왜 이러나

한편으로 이번 사태는 슈틸리케호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축구대표팀판 인사 참사'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슈틸리케호는 2014년 10월 6일 첫 공식  출범 이후 불과 2년 6개월 남짓한 기간동안 역대 어느 대표팀보다도 잦은 코칭스태프의 변동과 구설수로 홍역을 앓았다.

슈틸리케호 출범 당시 원년 멤버로 합류했던 4명의 코치 중 슈틸리케 감독이 직접 데려온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를 제외하면 '국내파' 신태용-박건하- 김봉수 코치는 모두 팀을 떠났다. 당초 수석코치로 알려졌던 아르무아 코치의 정확한 대표팀 내 역할과 능력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잘못된 선수선발 외에 코치진의 구성이나 역할에도 많은 의문을 자아낸 바 있다. 부실한 코치진에 대한 우려와 함께 대표팀에 유능한 '전술가형' 코치가 필요하다는 축구계의 끊임없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소극적이다 못해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왔다. 자신보다 유능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코치들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협회는 가장 검증된 국내파 코치였던 신태용을 리우올림픽과 U20월드컵 대표팀 사령탑으로 연달아 '돌려막기' 시키는 관행을 답습하며 A팀에 전념할 수 없게 만들었다. 설상가상 협회는 유능한 외국인 코치진을 보강하겠다는 약속도 비용과 시간 등의 핑계로 결국 지키지 못했다. 차두리같이 능력도 검증 안 된 낙하산을 현역 시절 지명도만 내세워 무리하게 영입했으나 6개월 만에 낙마하며 또다른 실패한 인사를 반복하고 말았다.

또한 이는 결국 슈틸리케 감독의 전횡과 독선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궁극적으로는 이제 한국축구가 월드컵 본선진출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도 별다른 대안없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 정도면 대표팀의 인사 시스템이 과연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심각한 반성과 점검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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