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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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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선후보도 건강 이상설 해명을 위해 건강검진을 받은 바 있다."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 24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치매설을 유포한 20대 누리꾼이 불구속 기소된 것을 두고 "국민의 알권리에 재갈을 물린 행위"라면서 한 말이다. 그는 "국민은 대선후보의 건강, 통치능력에 의구심이 있다면 건강 검진을 통해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어떤 의혹이든 적극적으로 해소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후보의 의무"라고도 주장했다. (관련 기사 : 이언주 "문재인 치매설 처벌은 표현의 자유 억압" )

그러나 대선 후보가 자신의 건강 정보를 유권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법적인 의무가 아니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 등 공직선거에 나선 후보자로부터 학력·경력·재산 및 납세·병역·전과기록 등의 정보를 제출받아 이를 유권자에게 공개하고 있다. 건강상태와 관련한 정보 제출 여부는 관련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 미국도 공직선거 후보들의 건강정보 공개가 법적인 의무사항은 아니다.

다만 개별후보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건강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는 있다. 이 의원이 예로 들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미 대선후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1일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건강진단서 사본을 공개했다. 1차 대선후보 TV 토론회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당시 공개한 정보는 혈압·분당 맥박수·공복 혈당량·콜레스테롤 수치·요산 수치·간기능 검사·청력 등이었다.

힐러리 후보의 건강 정보는 2016년 9월 14일 주치의 리사 바르닥 박사를 통해 2쪽 분량으로 공개됐다. 혈압·분당 맥박수·콜레스트롤 수치 등 기초적인 정보는 물론, 힐러리 후보의 약물치료 기록과 병력까지 공개했다. 후보 측은 그 다음 날인 15일에도 추가 진료기록을 공개했다.

"DJ가 정권 잡으면 치매정권" 공세... 결국 건강검진 결과 공개

이들이 법적 의무사항도 아닌 자신의 건강기록을 스스로 공개한 결정적 이유는 대개 경쟁후보의 '정치 공세' 때문이었다.

1997년 대선 당시 국민회의 대선후보로 나섰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시 73세로 고령이었다. 이회창 후보의 한나라당,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 등 여권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그해 10월, 여권 일각에서 "김대중 총재가 쓰러졌다"는 소문이 퍼지는가 하면, "김대중씨가 정권을 잡으면 치매정권, 부패정권이 되고 이 나라는 망할 것"(관련기사)이라는 '치매설'까지 공공연히 제기했다. "DJ는 수십 가지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건강이 나쁘다"는 내용의 'DJ의 투약 처방전'이라는 '가짜 뉴스'까지 생산됐다.

이에 국민회의 측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국민회의는 비밀리에 'DJ 건강검진비상대책팀'을 꾸려 후보의 건강검진 등을 실시하고, 이를 기습적으로 공개했다. 그러나 '건강 이상설' 공세는 계속됐다.

한나라당은 의사 출신 의원들을 내세워서 당시 공개한 김 전 대통령의 건강검진서를 '병원 쪽의 공식 소견'이 아니라고 반박했고 선거 막판에 TV 토론 준비를 위해 유세 일정을 단축했을 때는 "연설을 잘하는 김대중 후보가 국민들 앞에 나오지 못하고 방 안에서 회의만 하고 있는 것은 건강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공세를 펼쳤다.

클린턴 부부·트럼프·밥 돌·존 매케인도 건강정보 공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건강 진단서 공개를 보도하는 ABC뉴스 갈무리.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건강 진단서 공개를 보도하는 ABC뉴스 갈무리.
ⓒ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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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후보도 비슷한 경우였다. 그는 2016년 대선 당시 68세로 고령이었다. 특히 9.11 테러 15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가 어지럼증으로 휘청거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건강 이상설'이 급속히 퍼졌다. 이는 2009년 뇌진탕 이력과 결부되면서 뇌 질환 의혹으로까지 확산됐다.

이를 적극 활용한 것은 당시 경쟁 상대였던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이다. 그 역시 당시 70살의 고령이었지만 먼저 2장짜리 건강기록을 공개하면서 힐러리 후보의 건강 문제를 정치쟁점화시켰다. 즉 힐러리 후보의 건강정보 공개도 상대방의 정치 공세에 따른 대응책이었던 것이다. 

사실 힐러리 후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도 1996년 대선 중 자신의 건강정보를 공개한 적이 있다. 이 역시 정치적 공방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경쟁자였던 밥 돌 공화당 후보가 당시 73세로 고령인 자신의 건강문제를 제기하는 클린턴 측에 맞서 건강기록을 공개하면서 역공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1992년 대선 당시 자신의 건강검진 내용 일부만 밝혔던 클린턴 대통령은 이러한 공세에 밀려 비교적 자세히 자신의 건강정보를 공개했다.

다만 미국에서는 대선 후보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건강정보를 미리 공개해 유권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경우도 존재한다. 2008년 미 대선에 당시 72세의 나이로 출사표를 던졌던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1000쪽이 넘는 의료기록을 기자들에게 공개한 바 있다.

[대선기획취재팀]
구영식(팀장) 황방열 김시연 이경태(취재) 이종호(데이터 분석) 고정미(아트 디렉터)


태그:#문재인, #치매설, #건강검진, #김대중, #힐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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