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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다. 공연이 열리는데 어떤 뮤지션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공연 장소와 시간만 알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증금 1만원을 내고 예약한다. 이 보증금은 공연장에 가면 돌려받을 수 있다.

예약하고 공연장에 오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기회를 빼앗은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결국 무료 공연이다. 이 공연은 '소파사운즈 인천(Sofar Sounds Incheon)'이 기획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볼런티어(volunteer: 자원봉사자)라 부른다.

지난 19일, 소파사운즈 인천의 네 번째 공연이 열린 복합문화공간 '어느사이'(부평구 부평동)에서 소파사운즈 인천의 조윤상(29) 대표와 한명화(21) 팀장을 만났다.

오롯이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게

 ‘소파사운즈 인천’의 조윤상(오른쪽) 대표와 한명화(왼쪽) 팀장.
 ‘소파사운즈 인천’의 조윤상(오른쪽) 대표와 한명화(왼쪽) 팀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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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사운즈(Sofar Sounds)에서 'Sofar'란 'Songs froma room'의 약자로, 누군가의 거실이나 정원, 옥상, 사무실 등, 개인 공간에서 열리는 공연을 말한다. 음악과 뮤지션에 조금 더 집중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이 공연은 초대받은 소수의 사람들만 참석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북적이고 시끄러운 공연장에서 공연 보는 것에 지친 관객들을 위해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이 공연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국 뉴욕, 러시아 모스크바, 일본 도쿄 등 전 세계 300여개 도시로 퍼져나갔다.

2014년부터 '소파사운즈 서울'이 열리고 있다. 선우정아, 신현희와 김루트 등 대중에게 친근한 뮤지션은 물론, 올해 1월에는 음악차트를 석권한 악동뮤지션이 출연했고, 4월 13일에는 밴드 '장미여관'이 무대에 섰다. 물론 라인업은 철저히 비공개라, 공연이 시작돼야 알 수 있다.

소파사운즈 서울은 힌트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장미여관의 경우 '오빠의 선물'이라는 제시어를 줬고, 악동뮤지션이 출연하는 날에는 키워드 세 개를 제시해 악동뮤지션을 예측한 네티즌들의 참여로 단 5분 만에 예약이 마감됐다.

소파사운즈 인천은 지난해 4월 첫 공연을 했다. 소파사운즈 인천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SofarSoundsIncheon)에는 이들을 알리는 글이 다음과 같이 게재돼 있다.

"소파사운즈 인천은 지역 내 새로운 관객, 아티스트, 공간을 발견하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매개 역할을 해내려 합니다. 시간 여건상 서울에서 하는 공연을 자주 갈 수 없었던 분, 공연을 하기 위해 홍대로 가야만 했던 아티스트,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공간 등, 소파사운즈 인천은 우리의 문화를 위해 발견과 만남을 계속해 나갑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음악, 사람과 공간 등, 우리는 새로운 대상과 가까운 친구가 됩니다."

소파사운즈 서울의 초창기에 자원봉사자로 공연 기획에 참여했던 조윤상 대표는 "인천에서도 인디 뮤지션들의 공연을 관객이 볼 수 있고, 뮤지션들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힙합동아리 활동을 시작해 군대 가기 전까지 대학에서 힙합을 하며 음반과 음원까지 낸 적이 있다는 조 대표는 예전에는 시끄러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연장을 즐겨 찾았다.

"나이 드니까 스탠딩으로 공연을 보는 게 힘들어졌어요. 클럽에서 손을 흔들면서 노래를 들으면 진이 빠지더라고요. 편안하게 음악만 들을 수 있는 곳과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연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 대표의 말을 한명화 팀장이 이었다.

"저도 서울 홍대 근처에서 열린 공연을 보러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공연이 늦은 시간에 시작해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끝까지 못 보는 게 억울하더라고요. 홍대 근처에서 하는 공연을 인천에서 열어 끝까지 봤으면 좋겠다는 관객의 마음으로 소파사운즈 인천을 시작했던 거 같아요."

소파사운즈 공연을 보러 오는 관람객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핸드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옆 사람과 잡담하지도 않는다. 오롯이 공연에만 집중해 관객이나 아티스트의 몰입도가 높다.

조 대표는 "특히, 아티스트를 비공개로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습니다. 보통은 공연을 선택할 때 아티스트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아티스트의 음악을 소비하지만 그밖에 아티스트와 관련해 시각 등, 다양한 감각을 소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가 나오는지 모르면 음악만 소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소파사운즈의 또 하나의 매력은 뮤지션과 관객의 거리가 가까운 데 있다. 한 팀장은 "얼굴의 모공까지 보일 정도로 너무 가까워 부담스러워하는 뮤지션도 있지만, 친밀감을 높이겠다는 기획자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무료 공연이 가능한 이유

소파사운즈 인천 제5회 공연 포스터
 소파사운즈 인천 제5회 공연 포스터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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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사운즈 인천의 공연은 모두 무료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http://blog.naver.com/sofarsoundsseoul)에 들어가 사연을 적어 관람을 신청하면 된다. 참가 가능 인원수는 공연장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한 팀장은 신청자가 참여 가능 인원수에 비해 평균 두세 배 많다고 했다. 어떤 기준으로 선별하는지 물으니, "공연을 진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조금 더 공연에 집중할 수 있을 거 같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객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사연을 보고 저희가 판단했을 때 소파사운즈 취지에 공감하고 음악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신청할 때 보증금 1만원을 내는데, 공연장에 오면 바로 돌려드립니다. 어떤 공연에 신청한 사람들 중 반 이상이 오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 이런 제도를 만들었어요. 간절히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초대 신청과 달리 유료 티켓(2만원)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유료 티켓을 구매하는 사람은 소수고, 대부분 초대받은 관객들이 공연장을 메운다. 공연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자원봉사자들이고, 공간 대여료도 없다. 소파사운즈의 취지에 동의하는 카페나 문화공간의 주인이 무료로 빌려준다. 아티스트도 예외는 아니다. 개런티 없이 공연에 함께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거래가 전혀 없는 이 공연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게다가 시간과 열정을 바쳐 공연을 만드는 소파사운즈 인천의 관계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무료 공연을 하는 걸까? 거기엔 조 대표의 심오한 것 같으면서도 간명한 철학이 담겨있다.

"소파사운즈는 비영리가 맞아요. 이 공연으로 돈을 벌진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예술의 가치를 잘 표현하는 공연이죠. 이 과정에서 아티스트와 관객들이 만나는데 나중에는 이 관계가 비즈니스를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조 대표가 추구하는 게 분명 있는 듯했다. 그러나 쉽게 이해할 수 없어 반복해 물었고, 그럴 때마다 그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거슬러서 예전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와서 군대 가기 전까지 힙합 음악을 했어요. 제대 후 음악하면서 알게 된 친구와 후배들과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사를 만들어 공연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이 생기기도 했죠. 그러면서 허세도 생긴 거 같아요. 공연과 음반을 만들려면 서울에 사무실이 있어야할 것 같아서 서초구 방배동에 사무실을 얻었어요. 제가 인천에서 대학을 다녀서 인천에 친구가 많은데 서울로 오라고 했더니 못 오더라고요. 그때 생각을 바꿨어요. '기회의 땅'인 서울에 이들이 못 온다면, 인천에서 이들이 지속가능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자고요."

2015년에 기획사 이름을 라벨(Label)로 바꾸고, 2016년에는 서울 신촌과 부평에 복합문화공간 '어느사이'를 만들었다. 그는 기획사나 문화공간이 모두 기획자나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길 원했다.

"아티스트 몇 명을 도와 그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대다수 아티스트가 노래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기획자들을 생산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일환으로 라벨은 인천 남구와 함께 인천남구문화기획서포터 '예지'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문화 기획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교육했는데, 한 팀장이 그때 교육생으로 조 대표와 만났다.

올해는 매달 공연할 계획
   
지난해 4월 1일 남구 큰나무도서관 건물 옥상에서 열린 ‘소파사운즈 인천’의 1회 공연 모습. 아티스트 옥상거지가 노래하고 있다.<사진제공·소파사운즈 인천>
 지난해 4월 1일 남구 큰나무도서관 건물 옥상에서 열린 ‘소파사운즈 인천’의 1회 공연 모습. 아티스트 옥상거지가 노래하고 있다.<사진제공·소파사운즈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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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사운즈 인천은 지난해 4월 1일 첫 공연을 남구 큰나무도서관 건물 옥상에서 열었다. 이날의 뮤지션은 빌리지브라더스와 옥상거지였다. 그 후 3개월에 한 번씩하던 공연을 올해는 3월부터 매달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달에 '어느사이'에서 공연할 때는 30명 규모인데 80여명이 신청했어요. 공연 3~4주 전에 공지하는데 한번 왔던 사람들이 지인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아요. 40~50대 관객도 있지만 주로 20대가 보러 옵니다. 반응이요? 무엇보다 아티스트를 숨소리마저 느낄 정도로 가까이 보고 실시간 소통하는 게 좋다는 반응이 제일 많아요."

지금까지 공연을 4회 진행한 소파사운즈 인천의 라인업은 2회 밍지다다와 만쥬한봉지, 3회 어쿠스윗과 프리스쿱, 4회 오추프로젝트와 해일이다. 한 팀장에게 출연팀 섭외 기준을 물었다.

"매회 두 팀을 섭외하는데 인지도나 실력 있는 한 팀과 인천에서 활동하는 한 팀을 찾고 있어요. 출연자에게 열려있는 공연이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음원이나 음반이 있어야 해요. 왜냐면 공연을 보고 좋아한 관객이 음원이나 음반을 찾아서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해 1회 공연 장소는 옥상이었다. 조명과 음향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전기선 여러 개를 사용하다 연기가 피어올라 언플러그드(unplugged: 전자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공연을 하기도 했다. 3회 공연은 중구 신포동 카페 '빙고'에서 했는데 공연 10분 전까지 관객이 아무도 오지 않아, 매출을 포기하고 공간을 빌려준 사장과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공연 시작 시간인 오후 7시에 관객이 꽉 차, 웃을 수 있었다.

소파사운즈 인천의 5회 공연은 4월 27일 오후 8시 남동구 구월동 '쿤컴퍼니'에서 열린다. 초대장은 이미 모두 발송됐다. 5회 공연이 끝나면 바로 5월에 열릴 6회 공연을 홍보할 계획이라는데, 초대장을 받기 위해 한번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소파사운즈 인천, #조윤상, #한명화,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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