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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공고 문형철 군(맨 왼쪽)이 초등학생들에게 '자전거 바람 넣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성수공고 문형철 군(맨 왼쪽)이 초등학생들에게 '자전거 바람 넣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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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빵빵하지?"

공립 서울 성수공업고등학교(성수공고) 에코바이크과에 다니는 문형철(3학년)군이 의기양양하게 한 마디 내뱉는다. 지난 12일 오후, 이 학교 자전거 실습실에 체험활동을 하러 온 서울신계초 초등학생 7명 앞에서다.

초등학생 앞에 나선 공고생, 가르치는 모습이...

자전거 펌프질하는 방법을 '전수'하는 문군의 모습은 여느 선생님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것도 무척 친절한 선생님의 모습이다. 아직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얼굴이지만 말투까지 점잖다. 문군은 이 협동조합의 주인이기도 하다. 초등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 번 (타이어를) 만져 봐. 밸브를 누르기만 해도 바람이 빠져. 너무 세게 누르지는 마. 다시 펌프질해야 하니깐 힘들어."

이 학교에 에코바이크과가 생긴 것은 지난해 2011년.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뜨고 있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정비, 개발하고 판매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학과다.

이 학과를 중심으로 성수공고에도 학교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지난해 11월 14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조합원인 문군과 같은 학생들도 출자를 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일터'가 생긴 것이다.

조합은 설립취지문을 통해 다음처럼 외쳤다.

"학교협동조합을 통하여 학생들 스스로 '나 아닌 우리, 혼자가 아닌 다 함께'라는 인식의 변화와 참여라는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의미가 있다. 교사인 우리는 학생들에게 더 활동적인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하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하여 올바른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학교협동조합은 학교 구성원인 학생, 학부모, 교직원, 주민이 주인인 조직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따르면, 이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 사회,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회적 공동체'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학교협동조합은 '더불어 숲'이 되는 교육공장이기도 한 것이다. 이 공장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출자를 해야 한다. 성수공고의 경우 학생들은 1만원 1계좌에 가입하면 된다. 교직원과 마을주민, 학부모는 10만원 10계좌 이상이면 된다.

'더불어 숲'이 되는 교육공장이 바로 학교협동조합

성수공고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14일 현재 19명. 학생 대표 2명과 교직원 13명, 지역주민 4명이 첫발을 내디뎠다. 지금 시작은 미약하지만, 조만간 창대하리라.

창대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다. 조합이 이 학교 학생들을 위해 현장실습장을 제공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정말 절실한 최초의 실험이 될 것이다.

성수공고 에코바이크과 3학년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성수공고 에코바이크과 3학년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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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탄생의 실무 책임을 맡아온 한영욱 교사(연구부장)는 "우리가 학교협동조합을 만든 목적 중에 하나는 학생들에게 현장실습 터를 제공하기 위한 것도 있다"면서 "협동조합 법인체가 되면 학생들이 돈도 받으면서 현장실습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게만 된다면 요즘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받는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된다. 학교 안에서 안전하게 현장실습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 1월 전주의 한 특성화고에서 '애완동물과'를 다닌 19세 여고생이 목숨을 끊었다. 그는 애완동물을 돌보는 일이 아닌 엘지유플러스 콜센터에서 어른들의 항의전화를 돌보는 일을 했다. 전공과 무관하게 벌인 현장실습이 한 학생을 궁지에 내몬 결과다.

이 사건에 대해 성수공고 3학년인 서아무개군(에코바이크과)은 다음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그도 문군과 함께 초등학생들에게 자전거의 원리에 대해 열심히 가르쳤다.

"그 여학생 얘기 듣고 저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니까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하고 (공고에 온 것이) 후회되기도 하고…."

"협동조합이 현장실습을 맡는다면 정말 좋겠네"

이어 서군은 조합에서 계획하고 있는 현장실습에 대해 기대를 나타냈다.

"학교협동조합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밖에서 하는 것보다는 학교 안에서 하니까 마음도 편할 것 같아요. 전공도 살릴 수 있죠. 더 안전할 것 같고 장비 같은 것도 갖춰져 있으니까 편할 것 같아요."

문군도 "학교에서 현장실습을 하면 훨씬 좋을 것 같다"면서 "일반 사업주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협동해서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조합은 앞으로 어떤 사업을 펼쳐나가려고 하는 것일까? 크게 세 가지다.

'자전거와 모터사이클 정비에 대한 평생교육, 학생 통학용 자전거 정비, 지역 사회 자전거 수리와 정비 지원'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이 학교가 자전거 정비 도구와 강의실을 잘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학교는 이미 3년째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자전거 정비 특강을 벌여왔다. 그동안 80여 명이 수강자로 등록했다. 이 강좌를 들은 뒤 자전거포를 연 사람도 여럿 있다고 한다. 이른바 평생교육 강좌를 개설해온 것이다. 학생들은 조교 또는 보조교사로 참여했다.

협동조합 사업이 본격 진행되는 올해부터는 이런 평생강좌를 더 늘릴 예정이다. 학생과 교원은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를 개설한다.

이 과정에서 이 학교 3학년 학생들이 2학기부터는 현장실습생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원인 학생들이 준 노동자로 나서 직접 교육도 하고 정비도 맡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일한만큼의 봉급도 받게 될 것이다.

신광철 교장은 "우리 지역에 자전거 길이 많은데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 "우리가 협동조합을 세운만큼 그곳에 정비소를 직접 차릴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이번 협동조합 탄생 등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4월 28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제동행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물론 신 교장도 자전거를 타고 직접 나선다.

올해 3월 31일 현재 전국엔 모두 41개의 학교협동조합이 있다. 서울은 15곳으로 가장 많다. 방과후학교 협동조합 4곳과 성수공고의 '바이크'협동조합을 빼면 10군데는 모두 학교매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월 12일 오전 학교협동조합지원센터의 문을 열었다. 조합 설립을 돕고 조합원 교육을 맡는 등 지원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다.

"학교협동조합 발전하면 '협동조합 학교' 나올 것"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2일 전국 교육청 가운데 처음으로 학교협동조합지원단을 발족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2일 전국 교육청 가운데 처음으로 학교협동조합지원단을 발족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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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다음처럼 말했다.

"학교협동조합이 발전하면 협동조합형 유치원과 중고교, 대학이 못 나오리란 법이 없다. 독점과 개인욕심이 지나쳐 최순실 사태가 터진 것이다. 이런 걸 넘어서는 것이 바로 사회적 협동조합의 공유 원리다. 이런 면에서 학교협동조합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서울교육소식>에도 쓴 기삽니다.



태그:#현장실습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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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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