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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醬)은 알맞게 숙성이 되어야 제 풍미를 느낄 수 있고, 사람은 오래 사귀어야 흉허물 없이 편해진다. 산이 산다워야 되고 물은 물답게 흘러야 산천 수려한 풍치를 느낄 수 있듯 무릇 사람의 인연과 음식의 맛은 깊을수록 더 좋은 법이다.

처음 이곳을 찾아가는 이들에겐 첩첩산중을 헤매는 만큼의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인사동에서도 깊숙한 골목에 풍류사랑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시인과 미술, 무용, 서예가 등 대한민국의 쟁쟁한 문화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맛집이다.
▲ 인사동 풍류사랑 처음 이곳을 찾아가는 이들에겐 첩첩산중을 헤매는 만큼의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인사동에서도 깊숙한 골목에 풍류사랑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시인과 미술, 무용, 서예가 등 대한민국의 쟁쟁한 문화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맛집이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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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들렀던 음식점이 자리를 옮겼을 때는 그나마 물어 물어서라도 찾아가지만 아예 문을 닫는 경우만큼 허망한 노릇도 없다.

2015년 5월 팔순 잔치를 낭만에서 치르던 날 한복으로 단장하신 채현국 선생님과 한양대 무용학과 장순향 교수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촬영했다. 채현국 선생님에 대해 출판 된 책이 두 권 있는데 작가 두 사람 모두 오랜 인연이 있는 정운현 선배와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다.
▲ 채현국 2015년 5월 팔순 잔치를 낭만에서 치르던 날 한복으로 단장하신 채현국 선생님과 한양대 무용학과 장순향 교수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촬영했다. 채현국 선생님에 대해 출판 된 책이 두 권 있는데 작가 두 사람 모두 오랜 인연이 있는 정운현 선배와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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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팔순 잔치를 낭만에서 치르던 날 한복으로 단장하신 채현국 선생님과 축하를 하러 지금은 인사동 골목 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풍류사랑’으로 바뀐 운현초등학교 옆의 낭만을 찾은 지인분들을 채현국 선생님께서 일일이 소개를 해 주셨으나 당시의 메모를 잃어버려 기억을 모두 하지는 못한다. 채현국 선생님의 주변엔 참으로 다양한 이들이 늘 함께 한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 채현국 2015년 5월 팔순 잔치를 낭만에서 치르던 날 한복으로 단장하신 채현국 선생님과 축하를 하러 지금은 인사동 골목 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풍류사랑’으로 바뀐 운현초등학교 옆의 낭만을 찾은 지인분들을 채현국 선생님께서 일일이 소개를 해 주셨으나 당시의 메모를 잃어버려 기억을 모두 하지는 못한다. 채현국 선생님의 주변엔 참으로 다양한 이들이 늘 함께 한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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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 전 채현국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님의 팔순을 경운동에 있는 운현초등학교 옆 '낭만(浪漫)'에서 치렀던 적이 있다. 이때 몇 번 들러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어 쉬이 찾아갔으나 지난 초겨울 다시 갔을 때 문이 닫혀 있었다. 사실 이 낭만이란 음식점은 민예총 이사장을 지내신 김용태 선생님의 부인께서 운영하시던 곳이라 문이 닫혔단 사실을 확인했을 때의 놀라움은 정말 심각했다.

며칠 뒤 설맞이로 대부분 광장을 비웠을 때다.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 오란 전화를 받고 들렀다. 옆 자리에 앉은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은 장경호 화백과 김이하 시인은 물론이고 뒤늦게 어울린 내게도 '삼촌'이라 했다.

아마도 낭만에 몇 번 갔을 때 진즉 주인과 인사를 제대로 나눴다면 대번에 낭만의 주인과 딸이란 걸 알아차렸을 일을 그날은 전혀 몰랐다. 그날 자리에서 일어설 때 장경호 화백이 "계산이 얼마요?"라 물었고, "뭘 드셨다고요. 그냥 가세요"라 주인이 대답했을 때도 '아, 이 목소리 참 귀에 익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날 실랑이 끝에 장경호 화백이 "정 시인 만 원짜리 있어요? 나 만 원짜리 한 장만 줘요"라 해서 지갑에서 내 드렸고 던져놓듯 막걸리 3병 값을 치르고 나왔다.

풍류사랑을 찾는 이들의 다양한 면면들을 볼 수 있는 풍류사랑에 붙어있는 사진들. 생전의 김용태 민족예술인협회 전 이사장의 모습도 이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 풍류사랑 풍류사랑을 찾는 이들의 다양한 면면들을 볼 수 있는 풍류사랑에 붙어있는 사진들. 생전의 김용태 민족예술인협회 전 이사장의 모습도 이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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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1개의 밥상이 있으니 대략 50명 정도는 한 번에 들어간다. 점심식사(15,000원)와 저녁식사(20,000)가 있고, 동태탕과 코다리찜, 전 등 몇 종의 안주만 있으나 식사를 주문하면 별도로 안주를 주문하지 않아도 충분히 술안주가 될 정도로 푸짐하다.
▲ 풍류사랑 총 11개의 밥상이 있으니 대략 50명 정도는 한 번에 들어간다. 점심식사(15,000원)와 저녁식사(20,000)가 있고, 동태탕과 코다리찜, 전 등 몇 종의 안주만 있으나 식사를 주문하면 별도로 안주를 주문하지 않아도 충분히 술안주가 될 정도로 푸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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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늙음을 떠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진정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이들이 어울리는 공간이 풍류사랑이다.
▲ 풍류사랑 젊고 늙음을 떠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진정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이들이 어울리는 공간이 풍류사랑이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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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몇 번 더 이곳에 갈 기회가 있었다. 심지어 들어가며 왼쪽에 있는 첫 번째 방에 채현국 선생님께서 계신 날도 나중에 사진을 보고야 알 정도로 무심하게 다녔다. 솔직히 이 집이 지금은 '풍류사랑'이란 간판을 걸었지만 예전 '낭만'이란 건 음식 맛을 통해 서서히 깨달았다.

몇 사람인가가 주인께 "저 친구가 한계령의 원작시를 쓴 시인이요"라 말을 했다는 사실은 전해 들었지만 그게 뭐 중요하냐 싶게 행동하던 천성 탓에 참으로 무디게 다녔다. 다만 그 재료가 지닌 고유의 맛을 살리려는 주인의 정성과, 음식에 대한 정직함에 이끌려 누군가 부르면 마다할 이유 없이 갔고 더러 내가 앞장서 안내했다.

지난 6일 고향 양양군에 SNS홍보기자 위촉장을 받으러 다녀오는 도중 버스에서 오마이뉴스 초기 편집국장을 하셨던 정운현 선배님의 전화를 받았다. 형님은 딸이나 아들 또래에게도 말을 낮추지 않는다. 형과 아우로 지내면서도 여전히 하대를 하지 않으신다. 항상 "정형 어디요?" 정도가 가장 낮춰 하는 말씀일 정도로 이 시대 진정한 선비의 풍모를 지니셨다.

물론 옛 선비들과 닮은 부분도 많다. 술 좋아하시고, 친구 좋아하시는 부분은 첫 손에 꼽을 일이다. 다음으로 이젠 나와도 10년 지기 벗이 된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와 셋이 한 자리에 있으면 그날은 아무리 젊은 친구들이 나서도 감당 할 수 없는 행동이 있다.

정운현 선배와 김주완, 정덕수 셋이 한 자리에서 밤을 보낼 기회가 꼭 3번 있었다. 둘이서 함께 할 기회야 여러 번 있었다. 두 분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20여 명의 참석자 가운데 2~3분을 빼면 우리가 연장자다. 그런 세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몇 시간  끝없이 이어진다. 악보나 반주 하나 없이 3시간 이상 노래를 끝도 없이 부를 자신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처음에야 돌아가며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게 통상적인 사람들이 모였을 때의 관례다. 자기소개가 끝나면 말 그대로 장기자랑과 비슷한 시간을 갖는데 이때 대부분 노래가 시작된다. 요즘 노래도 곧잘 흥얼거리지만 사실 우리 정서엔 1900년대 중반에 히트했던 노래가 익숙하다. 좀 더 솔직하게 밝히면 몇 명의 가수를 빼 놓으면 1990년 이전 노래들이 익숙하다. 심지어 최초의 대중가요랄 수 있는 학도가부터 희망가를 거쳐 1970~1980년대 노래까지 젓가락 장단만으로 불러 젖히니!

그런 정운현 선배님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시간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고속버스가 서울로 진입하면서 정체되더니 1시간 이상 늦게 도착했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다시 전화를 받고 "형님 제가 안국동으로 가겠습니다. 차라리 조금 걸으시더라도 광화문에서 인사동으로 약속장소를 바꾸면 좋겠습니다. 인사동에 가시면 풍류사랑이란 음식점이 있는데요. 풍류사랑이나, 그곳을 찾기 힘드시면 수도약국 앞에서 뵙죠"라 말씀 드릴 수밖에 없었다.

붉은색으로 그려진 선이 풍류사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좁은 인사동 골목길의 맨 안쪽에 자리한 까닭에 초행자들은 많이 헤맨다. 가장 쉽게 찾아가는 방법은 명신당필방골목으로 들어가 최대감집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된다. 수도약국 앞에서라면 수운회관 방향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중간까지 간 뒤 왼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몇 걸음 꺾어 간 뒤 최대감집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맨 안쪽으로 가면 된다.
▲ 풍류사랑 붉은색으로 그려진 선이 풍류사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좁은 인사동 골목길의 맨 안쪽에 자리한 까닭에 초행자들은 많이 헤맨다. 가장 쉽게 찾아가는 방법은 명신당필방골목으로 들어가 최대감집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된다. 수도약국 앞에서라면 수운회관 방향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중간까지 간 뒤 왼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몇 걸음 꺾어 간 뒤 최대감집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맨 안쪽으로 가면 된다.
ⓒ 네이버지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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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가장 빠르게 인사동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위치를 선택해 탑승했고, 안국역에 정차하자 곧장 잰 걸음으로 달려갔다. 형님께서는 수도약국 앞에 계셨다. 도착 예정시간보다 2시간가량 늦었으나 너그럽게 맞아 주셨다.

풍류사랑으로 당당하게 안내를 한 뒤 말씀 드렸다.

"형님 이곳이 채현국 선생님도 종종 오시는 가게입니다."

자리를 잡아 앉은 뒤 음식을 주문했다. 형님은 이번에 출판하신 책(영웅의 숨겨진 이야기 -안중근가 사람들)을 주셨다. 시간을 나눠 움직이는 광장에서의 노숙생활 끝자락이라 책 읽을 시간이 솔직히 많지 않다. 하지만 술술 읽히는 필치로 쓴 책이라 이미 절반을 읽었다.

지난 4월 6일 저녁에 인사동 풍류사랑엔 정운현 선배님을 시작으로 미국에 거주하시는 한우성 전 미주한국일보기자님과 조성일 출판평론가까지 함께 했다. 정운현 선배님은 최근 ‘영웅의 숨겨진 이야기 ?안중근家 사람들’이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와 그 가족들에 대한 자료를 담은 책을 출판했다.
▲ 정운현 지난 4월 6일 저녁에 인사동 풍류사랑엔 정운현 선배님을 시작으로 미국에 거주하시는 한우성 전 미주한국일보기자님과 조성일 출판평론가까지 함께 했다. 정운현 선배님은 최근 ‘영웅의 숨겨진 이야기 ?안중근家 사람들’이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와 그 가족들에 대한 자료를 담은 책을 출판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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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 안부를 묻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수채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흘렀다. 형님께서 다음 약속 된 분들을 이 자리로 오시게 말씀 드리시겠다며 연락하셨다. 잠시 뒤 미국에 거주하시는 한우성 전 미주한국일보 기자님과 조성일 출판평론가가 들어오셨다.

좋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당당한 자리, 그만큼 음식도 정직해야 된다. 거기에 주인의 품성이 진정으로 장맛을 닮았다면 무얼 더 바랄까. 경운동의 낭만(浪漫)에서 인사동의 풍류사랑으로 상호는 바뀌었어도 여전한 손맛이 만들어준 인연들의 자리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풍류사랑이 확인되지만 길 찾기 외엔 정보가 전혀 다르다. 이전에 풍류사랑을 운영하던 이들에 대한 정보가 현재 검색되기 때문이다. 새로 이곳의 주인이 된 분은 운현초등학교 옆에서 예전에 ‘낭만’이란 한정식집을 운영하시던 고 김용태 전 민예총 이사장님의 부인이시다. 2017년 1월 1일 오픈했고, 일요일은 쉬고 토요일엔 예약을 해야 된다.
▲ 풍류사랑 인터넷을 검색하면 풍류사랑이 확인되지만 길 찾기 외엔 정보가 전혀 다르다. 이전에 풍류사랑을 운영하던 이들에 대한 정보가 현재 검색되기 때문이다. 새로 이곳의 주인이 된 분은 운현초등학교 옆에서 예전에 ‘낭만’이란 한정식집을 운영하시던 고 김용태 전 민예총 이사장님의 부인이시다. 2017년 1월 1일 오픈했고, 일요일은 쉬고 토요일엔 예약을 해야 된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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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사랑은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강원도 오지를 찾아가는 거와 진배없는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골목이 깊어 근처에서 돌아나가고 헤매기 일쑤다. 그러나 주향불파항자심(酒香不怕巷子深)이란 고사를 종종 음식의 맛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썼듯, 술의 향기가 좋으면 골목이 깊어도 늘 사람이 든다는 말 그대로다. 음식이 정직하고 정성스러움에 더해 주인이 사람다움에야 어찌 골목이 깊음을 탓하겠느냔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풍류사랑, #인사동, #인사동 맛집, #한정식,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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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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