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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금둔산 금둔사 일주문을 들어서자 매화 향이 가득합니다. 무릉도원이나 했습니다.
 순천 금둔산 금둔사 일주문을 들어서자 매화 향이 가득합니다. 무릉도원이나 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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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정처 없다고들 합니다. 비로소 정처 '없음' 속에 '있음'까지 포함되었음을 느낍니다. 요즘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아닌데도 공(空)이 됩니다. 그 와중에 잠깐씩이나마 떠올리는 화두가 있습니다.

'속세와 선계의 경계는 어디일까?'

큰 스님들 허시는 대답은 대개 "마음자리"입니다. 인간계와 선계를 가르는 경계가 마음이라는 겁니다. 내 마음이 부처면 천지만물이 온통 부처요, 내가 있는 자리가 지옥이면 천하가 지옥이라는 거죠. 좋은 마음을 내야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겁니다. 이는 항상 좋은 마음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가 무릉도원이지 했습니다, 금전산 '금둔사'

고고한 매화향이 코를 간질거립니다.
 고고한 매화향이 코를 간질거립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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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 매화꽃 향기, 순천 금전산 금둔사에 가득합니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을까?
 봄의 전령 매화꽃 향기, 순천 금전산 금둔사에 가득합니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을까?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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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의 가장 큰 매력은 겨울을 깨고 나오는데 있습니다.
 매화의 가장 큰 매력은 겨울을 깨고 나오는데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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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같이 가보세."

언제 봄이 올까? 싶었는데 어느 새 봄입니다. 이내 또 언제 그랬냐 싶게 무더운 여름이겠지요. 아름다운 봄을 붙잡고픈 간절한 마음으로 순천 금전산 금둔사 일주문 앞에 섰습니다.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일주문을 경계로 확 바뀝니다. 일주문을 넘자 공중에 향기 가득합니다. 봄의 전령 매화향입니다.

금둔사 경내는 납월 홍매와 청매가 만개했습니다. 꽃과 향이 넘실거립니다. 물은 졸졸. 예가 무릉도원이지 했습니다. 옆에선 지인이 "무슨 향이 난다고 그러시나. 나만 매화 향을 못 맡나?" 하면서 매화꽃에 코를 들이밉니다. 감기 뒤끝이라 하지만 공기 중에 진동하는 매화 향을 못 맡다니 그게 더 재미납니다. 다 마음자리이거늘.

일행, 금둔사 부처님께 예를 올립니다. 스님 처소로 찾아듭니다. 스님에게로 가는 길. 엥! 웬 촌로 홍매화 활짝 핀 매화나무에 올라탔습니다. 신선인 줄 알았습니다. 홍매화에 올라 탄 모습에서 말 탄 기수가 방향을 틀 듯, 홍매화 꽃향기를 조절하는 신선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순간 아직 아닌데, 벌써 헛것이 보이나? 했습니다.

눈 비빈 후 다시 보았습니다. 홍매노인, 머리에 밀짚모자를 푹 눌러 썼습니다. 손에는 톱이 들려 있습니다. 가지치기 중입니다. 풍경은 한 떨기 동양화. 예가 바로 무릉도원입니다. 무릉도원 지기는 금둔사 주지 지허 스님입니다. 말 붙이면 무릉도원 꿈에서 깰까봐 한 호흡 미룹니다. 천천히 말을 건넵니다.

무자화두,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없다!"

밀짚모자 쓴 지허 스님, 올라탄 매화에서 내려 옵니다.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밀짚모자 쓴 지허 스님, 올라탄 매화에서 내려 옵니다.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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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향과 차향이 같음을 비로소 알았더이다!
 매화 향과 차향이 같음을 비로소 알았더이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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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 지허 스님이 내시는 차를 기다립니다.
 지인들, 지허 스님이 내시는 차를 기다립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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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뭐하세요?"
"보시는 대롭니다. 어서 오세요."

80 가까운 노스님, 반기시며 매화나무에서 천천히 내려옵니다. 팔이라도 잡아주고 싶으나 거리가 멉니다. 찻방에 듭니다. 차를 내는 다기의 색이며, 빛깔 등이 눈에 익습니다. 확인하니 토완 선생 작품입니다. 반가움은 이렇게도 찾아드나 봅니다. 스님께서 차를 냅니다. 스님의 차 맛은 직접 만드시는 관계로 늘 한결같습니다. 스님, 차 마시며 "참선하는 이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내는 과제가 1700개 있다"면서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꺼냅니다.

큰 깨우침을 얻은 조주 스님께 어느 수행자가 물었다.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

조주 스님이 답했다. 그러자 수행자가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생명은 불성이 있다 했는데, 어째 개에게 없다고 하십니까?"

무(無)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조주 스님께서 왜 없다(無)고 하셨는지 이것만 골똘히 생각하면 도통한다. 인간인 이상 5분 명상도 힘들다. 집중하려 해도 딴 생각이 난다.

참선의 훼방꾼은 '망상', '수마(잠)', '몽롱(환각 상태)' 등이 꼽힌다. 진정한 명상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더 큰 의심을 품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걸 잊고 명상에 빠질 수 있다. 더 큰 의심의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등이다.

스님의 "5분 명상도 힘들다"는 말이 위안입니다. 나만 그러나 했으니까.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다니 한숨 놓입니다. 이를 극복해야 참 화두에 집중할 수 있는 것. 나 안의 나를 찾아 떠나는 명상 여행도 좋을 듯합니다.

<간화선> 만든, 고승 대혜종고 선사와 국태부인

매화는 삶을 향기롭게 합니다. 왜냐고? 마음자리...
 매화는 삶을 향기롭게 합니다. 왜냐고? 마음자리...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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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지난 1월 31일에 있었던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퇴임식에서 자신의 소회를 대신했다는 선시(禪詩)를 읊으며, 시에 얽힌 고사를 소개합니다.

  몽과비란상벽허 (夢跨飛鸞上碧虛)
  시지신세일거려 (始知身世一遽廬)
  귀래착인한단도 (歸來錯認邯鄲道)
  산조일성춘우여 (山鳥一聲春雨餘)

  꿈속에 *난새를 타고 푸른 허공에 올랐다가
  비로소 이 몸도 세상도 한 움막임을 알았네.
  한바탕 행복한 꿈길에서 깨어나 돌아오니
  산새의 맑은 울음소리 봄비 끝에 들리네!
                   * 난새 : 날개 짓 한 번에 구 백리를 난다는 전설의 새

이 선시는 중국 송나라 마조도일의 제자로, 화두를 관하는 명상법인 <간화선>을 만든, 고승 대혜종고(大慧宗曠, 1089~1163) 선사의 '서장'에 있는 것으로, 국태부인이 선사에게 받쳐 인가받은 시다. 국태부인은 30세에 과부가 40여년을 수행하며 살다 깨우침에 이르렀다.

지허 스님은 "박한철 전 소장은 2009년 자신이 살던, 13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노인요양시설을 짓는 용화사 법보선원에 기부하고 자신은 전세로 살고 있다며 이 시대의 귀감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은 시국이었습니다.

"진리는 다 드러나 있다. 다만 우리가 모를 뿐이다. 이는 박근혜, 최순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삶은 꿈 깨면 움막에 불과하다는 걸!"

금전산 금둔사, 매화 향 가득합니다.

매화는 사랑이자 행복입니다.
 매화는 사랑이자 행복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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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향기에 푹 빠지니 여기가 바로 선계입니다.
 매화 향기에 푹 빠지니 여기가 바로 선계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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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나눔이자 감사입니다.
 매화는 나눔이자 감사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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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금둔산 금둔사, #지허스님, #무자화두, #매화, #박근혜가 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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