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빛내는 또 다른 주역을 찾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주'와 '조'는 따로 없습니다. 혹시 연기는 잘하는데 그동안 이름을 잘 몰랐다고요? 가만 보니 이 사람 확 뜰 것 같다고요?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이들을 <오마이스타>가 직접 '픽업'합니다. [편집자말]

김민재, 넘치는 카리스마 영화 <더 킹>에서 주안일보 기자 역의 배우 김민재가 2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더 킹>에서 주안일보 백 기자 역의 배우 김민재. 영화에서 그는 검사들에게 붙어 각종 향응을 제공받고 왜곡 정보를 흘린다. ⓒ 이정민


영화 <더 킹>에서 정우성, 배성우 등이 맡은 검사들이 권력의 춤사위를 추며 각종 비위를 저지르는 장면은 충분히 공분을 살 만하다. 여기에 빌붙는 수많은 사람들. 정치인, 재력가 등이 있는데 그 중 언론인의 모습이 유독 얄밉게 들어온다. 권언유착, 즉 진실을 전해야 할 언론이 권력과 손잡았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더러운 일들을 영화가 포착했다.

배우 김민재가 맡은 <주안일보>의 백 기자가 바로 그 부정한 언론인의 표상이다. 검사들이 제공하는 각종 향응에 기대고, 이들이 적당히 흘리는 정보를 확대, 과장, 왜곡한다. 심지어 진실을 전하려는 다른 언론인들에 맞서 사실을 호도하기까지 한다. 추악한 언론인의 모습을 17년 차 내공의 배우가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그 어떤 왜곡과 과장이 없이.

작품 위해 뛰는 수용성 배우  

많이 익숙한 얼굴이다. 영화광이라면 김민재의 특별한 표정을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50편 가까이 되는 필모그래피에서 그는 대부분 형사였으며, 때론 기자나 국정원 직원이었거나, 깡패이기도 했다. <부당거래>에서 "경찰대 출신들이 다 해 쳐드세요!"라고 일갈하는 정의감 넘치는 형사였던 그는 <무뢰한>에선 밑바닥 인생의 한 여성을 따라다니며 지독하게 괴롭히는 사내로 관객의 눈도장을 받았다. 영화에서 입체적으로 등장하든 기능적으로 쓰이든 그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구부렸고, 작품에 맞췄다. 매년 평균 세 편씩 십 수 년 간 꾸준히 출연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영화 <더 킹> 속 백 기자(김민재 분)의 모습.

영화 <더 킹> 속 백 기자(김민재 분)의 모습. ⓒ NEW


<더 킹>을 보자. 이번엔 철저히 기능적으로 쓰였다. 물론 "주변의 기자 분들을 만나거나 자료를 찾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핵심이니 감독(한재림)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부합하려고 했다"고 그가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한국 언론 환경에 대해 전혀 생각 없이 역할에 임했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뉴스는 자주, 특히 요즘 들어 더 자주 본다"며 "권력과 힘에 대해 소신을 밝히기에 한국은 좋은 환경이 아니지만 희망이 보인다. 이러는 저도 부끄러운 쪽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나름의 자기 성찰과 현실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먼저 전한다.

"<특종: 량첸 살인기> 때도 기자 역이었는데 한재림 감독님이 제작한 작품이잖나. 그때부터 절 보셨던 거 같다. 현장에서 감독이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즉각 수용하는 편이다. 선택은 감독의 몫이니까, 작품의 목표가 있으면 최대한 부합하려 하는 거지. <더 킹>에서도 언론인의 모습 자체보단 주인공에게 이 인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 지에 중점을 뒀다. 방해꾼인지, 협력자인지.

사실 <더 킹>을 두고 감독님과 이야기할 땐 제가 아이디어를 낸 부분도 있었다. 근데 촬영을 빨리 들어가야 했기에 시간이 부족했지. 편집된 부분이 좀 있긴 하다. 백 기자가 좌천돼서 연예부로 활동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굳이 전체 영화에선 넣을 필요는 없었던 거 같다. 아쉽진 않다. 영화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는 게 중요하니까. 감독님이 갖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집요함인데 작품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은 후배 입장에선 배움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재림 감독님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제를 집요하게 파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웃음)."

김민재는 <더 킹>을 두고 "힘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로 정의했다. "정치에 국한한 게 아닌 가족이든 조직이든 힘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며 "눈에 보이는 폭력이든 보이지 않는 폭력이든 사회와 개인을 파괴하는 부류가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진짜를 찾는 과정

김민재, 넘치는 카리스마 영화 <더 킹>에서 주안일보 기자 역의 배우 김민재가 2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17년 경력의 김민재. 출연작만 50편 가까이 된다. 1년에 평균 서너 편씩 영화를 찍었고, 다수의 드라마에 참여했다. 이 모든 경력의 출발점은 역시 연극 무대였다. ⓒ 이정민


대구 지역 극단에서 이희준과 함께 활동하다 서울로 올라왔다. 2000년부터 각종 연극 무대를 경험했고, 8수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출과에 입학했다. 동기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는 학과 생활 보단 연기를 더욱 파고 또 팠다. 틈틈이 시나리오도 써왔다. 이 모든 게 "내가 왜 연기하고 있지?"라는 자문에서 출발했다. 그렇다. 남이 묻기 전에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왜 지금까지 연기하고 있는지 말이다.

"배우를 할 수밖에 없는 가정환경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배와 폭력에 대한 물음이 있었다. 내가 유별났다고 해야 할까.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자유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강했다. 세상에 아름다움이라는 게 있을까? 진짜 자유가 있을까? 나름 정의를 내린 건데 내 몸이 뭔가 표현하고 의미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더라. 스무 살을 지나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육체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그게 내 동력이다. 힘들지만 멈추지 않게 하는 것들이다. 

그맘때 서울에 올라왔다.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서울 시내 유명 연극영화과는 다 돌아다니며 도강도 했고, 잘한다는 사람들 공연은 찾아보고 또 직접 만나서 친해지려 했다. 여러 사람을 많이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돈이 없으니 뭔가 부탁을 해야 하잖나.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고, 그렇게 20대 전부를 보냈다."

타인이 보기엔 좀 유별나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김민재는 당시 연기 하나는 기막히게 한다는 평을 들으며 무대를 종횡무진 했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우연이었다. "<오아시스>를 보고 이창동 감독님이 궁금했고, 경험하고 싶었다"는 이유로 그는 무작정 <밀양> 오디션 장을 찾았다.

"나만을 위해 살던 때였다. 진실과 진짜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근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을 불편하게 하는 가정, 그 여자를 거리로 내모는 환경을 보면서 내가 그런 부족한 가족의 모습 같더라. 처음엔 그저 연기 잘하는 선배가 나온대서 본 건데 사실 그것도 내 욕심이지 않나. 날 다르게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 그런 작품을 만든 감독님이 너무 궁금했다. 인터뷰에서 주전자를 들고 현장을 다녀도 좋다고 말했다. 사실 오디션엔 떨어졌었다. 20대가 할 역할도 없었는데 운이 좋게 한 달 뒤 연락이 와서 감사한 마음에 내려갔지. 그 뒤로 감독님이 몇 번을 더 불러주셨다. 인터뷰를 좋게 봐주신 거 같다."

소외된 인물에 대한 애정

김민재, 넘치는 카리스마 영화 <더 킹>에서 주안일보 기자 역의 배우 김민재가 2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면서도 그의 답은 진중했다. 한때 그는 사이클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학부생 때부터 막노동, 야간 아르바이트 등으로 학비를 스스로 충당하며 연기자의 꿈을 키워갔다. ⓒ 이정민


그때 인연 이후 <밀양> <부당거래> <시> <특수본> <베테랑> <뷰티 인사이드> 등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비슷한 역할을 수 없이 하면서도 그의 이미지 소모가 다른 배우들 보다 적은 이유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하며 작품의 의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기 때문 아닐까. 8편의 영화에서 형사로 나온 그다. <부당거래> 때 형사와 <연가시> 때 형사가 또 다르다. 분량이 적어서일까. 그렇다고 인상에 남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한 마디의 대사("경찰대 출신들이 다 해 쳐드세요!")가 관객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회자된다는 건 그만큼 강렬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관객은 결국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제시한 상황과 메시지를 깨닫는다. 내 역할은 그걸 잘 경험하시게끔 하는 거다. 종종 작품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배우들이 있다. 저 역시 그런 욕망이 있지만 나름 검열하는 게 있다. 하나의 배에서 함께 타고 갈 수 있게 하자는 거다. 같은 형사지만 영화 제목도, 서로의 욕망도 다르니까 그걸 표현해야지. 근데 이미지가 소비되는 것 같을 때 지치긴 하다. 뭔가 재탕하는 느낌이 들면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작품을 마치고 그는 최근 막노동 일을 잠시 했다. 텃밭에 농사도 지었다. "노동에 대해 좋은 마음을 생각할 수 있을까 해서 젊었을 때 했던 막노동을 해봤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다"며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안 들고, 다만 가끔씩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가 던진 말은 "삶에 대해 뭔가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가 일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좋은 연기와 관련됐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진실함을 찾는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김민재는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애써 마음을 포장하지도 않지만 또 허투루 능력 밖의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포털 사이트에 치면 나오는 숱한 동명이인의 유명인들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외형은 참 평범하다. 다만 그의 길은 특별했다.

인터뷰 말미 그가 내놓은 궁극적인 연기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소외된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 시스템이나 여러 부분에서 소외된 사람들. 그거 있잖나. 존재하는데 존재하고 있지 않은 삶. 뭔가 철학적인 얘기가 현실적으로 그런 분들이 계신다. 이를 테면 탈영병? 뭔가 조직 내에서 불합리에 맞서 질문하고 싸우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특정, 특별한 연기를 하고픈 게 아니라, 그런 이면을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다. 

좋은 연기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배우들이 모이는 건 뭔가 알기 위해서 아닐까. 먹고 살기 위한 행동이 나쁜 건 아니지만 (거기에 빠지면)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 시야를 바꿔서 알아가려 노력해야지.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서로 알려고 노력하면 힘든 사람들은 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작가든, 감독이든, 배우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하고 싶다." 

김민재, 넘치는 카리스마 영화 <더 킹>에서 주안일보 기자 역의 배우 김민재가 2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많은 캐릭터를 맡았지만 여전히 그가 맡은 또 다른 캐릭터의 모습이 궁금하다. 같은듯 같지 않은, 그의 내공이 새삼 작품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뀐다. ⓒ 이정민


"결혼은 새로운 인생 경험"
지면에 다 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한다. 지난해 9월 동료 배우 최유라와 결혼한 김민재는 "많이 위로 받는 부분이 있다"며 적극 결혼을 추천했다. 결혼 자체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때를 전하며 그는 "조금씩 생각이 바뀐다. 새로운 경험이며 책임감이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아내 최유라에게 애틋한 마음도 전했다. "한창 진지한 이야기 해놓고 이런 얘기하니 속물처럼 보인다"고 웃으며 김민재는 "아내에게 잘해야겠다. 또 부를 축적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건강하게, 가난에 허덕이지 않게끔 열심히 해야겠다"고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김민재 더 킹 정우성 조인성 한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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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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