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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대기중이던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손 흔드는 반기문 총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대기중이던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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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로서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내놓는 자신의 최대 강점은 '한국 대표 외교관'이자 '세계 최고 외교관'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외교보좌관, 외교통상부 장관, 그리고 전 세계 192개국이 가입한 유엔 사무국의 수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직위'만 놓고 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주장이다. 이같은 찬사가 그를 지지도 1, 2위를 다투는 유력 대선후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정보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비밀 외교전문(電文)들에서 드러난 주한 미 대사관의 평가와 해외 언론들의 평가를 보면 '명'(名)과 '실'(實)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천성적으로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

정보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비밀 외교전문 중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미국 대사가 보낸 2006년 12월 14일자 보고.
 정보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비밀 외교전문 중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미국 대사가 보낸 2006년 12월 14일자 보고.
ⓒ <위키리크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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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미국 대사는 2006년 12월 14일자  전문에서 "전투적이고 자기 의견을 뚜렷이 말하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반기문이나 유명환 전 차관처럼 본능적으로(instinctively) 미국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Combative and outspoken, Song does not instinctively embrace U.S. views as do some of his colleagues, like Ban Ki-moon or Former Vice Foreign Minister Yu Myung-hwan)"고 썼다. 결국 반기문은  '본능적으로' 미국의 의견을 따른다고 평가한 것이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같은 해 7월 18일자 전문에서도 반 전 총장이 얼마나 친미적인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미국인들과 미국의 가치, 미국 정부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면서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천성적으로(naturally)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sympathetic)이라는 점"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정보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비밀 외교전문 중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미국 대사가 보낸 2006년 7월 18일자 보고.
 정보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비밀 외교전문 중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미국 대사가 보낸 2006년 7월 18일자 보고.
ⓒ <위키리크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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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버시바우 전 대사는 "이라크 파병 문제부터 주한미군 기지 문제까지, 한국으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을 때면 우리는 그를 찾았다, 그는 언제나 동조적이었고 도움이 됐다(He has always been sympathetic and helpful)"며 "그가  유엔 사무총장이 돼도 그와 미국 정부의 관계는 변함없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We have no doubt Ban's relations with the USG would be same if he were the UNSYG)"고 보고했다.  

그의 이같은 친미성향은 구체적인 정책 결정과정에서도 나타났다. 2006년 4월 22일자 전문에서 버시바우 전 대사는 "반기문  장관은 자신과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외교통상부 장관 하기 전에 안보실장을 했음 - 편집자 주)이 '미국측 제안'을 수용하기 위하여 '막대한 노력'(enormous effort)을 쏟아부었으나 이임하는 환경부 장관이 멈칫거렸다고 상기했다. 반 장관은 이번 주말에 그가 신임 환경 장관을 만나서 그 패키지에 대해 한 번 더 압박할 것이다(Ban recalled that he and NSA Song Min-soon had expended enormous efforts to win acceptance of the USG offer, but the outgoing Environment Minister had balked. This weekend, he would be seeing the new environment minister give the package another push)"라고 했다. 

당시 한미 간에 쟁점이었던 '미군기지 반환협상'과정에서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미국이 기지의 환경오염 치유 비용을 물도록 해야 한다"는 한국 환경부 주장과 '한국법이 아닌 주한미군사령관의 오염기준에 따라 정화치유를 책임지겠다'며 환경오염 치유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는 미국에 맞서는 과정에서 미국 편에 섰다는 내용이다. 결국 미국 의견이 관철됐고, '사실상 환경주권을 포기한 협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미군기지 이전'문제와 관련해 반 전 총장은 이미 91년에도 비슷한 행태를 취한 바 있다. 2003년에 <오마이뉴스>는 '91년 5월 당시 반기문 외무부 미주국장(현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미국 압력에 굴복해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에 강제로 서명했다'는 내용을 담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정세보고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관련기사: 미군 협박에 굴복한 반기문의 '91년 사인').

1990년에 한국과 미국이 맺은 미군 기지 이전 관련 양해각서·합의각서를 둘러싸고 불평등 협정이며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은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한 헌법 제60조를 위반했다는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그러자 미국측이 그 다음해인 1991년에 '한국 정부가 90년 각서들이 합법적이라고 재확인'해주는 각서를 요구했고, 한국 쪽 대표인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이 압박을 못 이기고 서명했다는 의혹이었다.

"미국의 푸들", "가장 친미적인 사무총장"

2007년 1월 유엔 사무총장 취임 이후 그에게 가해진 비판은 크게 미국의 의견을 과도하게 대변한다는 것과 '국제 분쟁 해결과 유엔 운영에서의 무능' 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미국의 푸들'이라고 비판한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 기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미국의 푸들'이라고 비판한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 기사.
ⓒ <폴리티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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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2014년 1월 22일 기사에서 반 전 총장이 "중요 사건에서 미국에 저항한 것이 없다"(it's hard to think of significant cases where he's defied Washington)고 지적하면서 그를 '미국의 푸들'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전문지인 <포린폴리시>도 반 전 총장 임기 만료 직전인 지난해 12월 28일 기사에서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분쟁 문제 등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명목상의 최고 지도자였다"면서 "역사상 가장 친미적인 사무총장(the most pro-American U.N. secretary-general in history)"이라고 평가했다. 

2009년 5월 5일 당시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반기문 총장과 3차례 대화한 내용을 보고한 전문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유엔 학교를 2008년 12월과 2009년 1월 사이에 폭격한 것을 두고 반 전 총장이 유엔의 독립적 조사단을 꾸리려 했다가 미국이 반대하자 그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같은 미국 중심의 행동들이 그에게 치욕적인 오명을 따라붙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협약 부분을 제외하고는 '업무 능력'면에서도 낮은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경제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9년 6월 11일 반기문 전 총장의 첫 임기 상반기를 평가하는 기사에서 각각의 분야를 10점 만점 척도로 평가하면서, 기후변화 협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업적을 근거로 '큰 그림 그리기'에만 8점을 부여했고, '강자에 대한 진실성' 항목에서 3점, '조직 운영' 측면에서 2점을 줬다.

"가장 우둔한 총장", "어디에도 없는 남자"

이 잡지는 7년 뒤인 지난해 5월 21일 'Master, mistress or mouse? (능력자, 권력에 빌붙는 자, 아니면 무능력자?)' 기사에서도 "그를 가장 우둔하며(the dullest)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among the worst)"이라고 혹평했다. 파리기후 협정 합의를 이끌어낸 성과를 인정했을 뿐, 9년이라는 임기를 지냈으면서도 모로코와 서사하라(West Sahara)간 문제를 언급함에 있어 '점령'이라는 문제적 어휘를 사용하는 등 중대한 실수를 쉽게 저지른다는 것이었다. "대체로 반 총장은 모두가 거부하지 않을 가장 자질이 부족한 후보(lowest common denominator)를 뽑곤 하는 유엔의 단점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고까지 지적했다.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2009년 6월호에 실은 '어디에도 없는 남자 : 반기문은 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인가? 기사 제목은 원색적으로까지 느껴진다. 보수성향 잡지 <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의 제이콥 헤일브룬(Jacob Heilbrunn) 에디터는 반 사무총장이 "유엔을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었다"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자 세계를 누비는 '관광객'"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밖에도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2009년 7월 14일)과 영국의 <가디언>(2010년 7월 22일)은 각각 그를 "유엔의 투명인간"이라고 했고, <뉴욕타임스>(2013년 9월)도 '반기문은 어디 있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0년 7월 20일자에 유엔 내부감찰실(OIOS)의 잉가 브리트 알레니우스 전 실장이 2010년 유엔을 떠나면서 쓴 50쪽짜리 보고서에서 "유엔은 투명성도 없고, 책임감도 부족하다", "유감스럽게도 유엔이 부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온실가스 감축 체제인 파리기후변화협정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조약으로 성사시킨 공로'로 지난해 12월 12일 <포린 폴리시>가 선정하는 '2016 세계의 사상가'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를 둘러싼 전반적인 혹평을 되돌리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반기문 "재선 흔들기", "동양 스타일 이해 못하는 비판" 등 반박 

반 전 총장은 <반기문과의 대화>(톰 플레이트 <LA타임스> 전 논설실장과 대담한 내용을 펴낸 책, 2013년 8월) 등에서 이 같은 비판들을 향해 2011년에 유엔 사무총장직 1기 임기 만료를 앞두고 차기 총장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나온 '흔들기'였다거나, 유럽식 조직운영과 업무처리 방식에 익숙해 있는 유엔의 관료나 서구 언론이 막후 조율을 통해 해법을 도출해내는 동양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기사들이라고 반박했다.

지나치게 원색적인 비판도 섞여 있는 것을 볼 때, 실제 그런 점도 있어 보인다. 또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 대통령'이라는 한국인들의 인식과는 달리, 유엔은 P-5(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상임이사국의 과두체제이며 사무총장은 이들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상징권력'이라는 점을 간과한 과도한 비판들이라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전 총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밑바탕에는 그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관료주의적' 태도로 임하고 있으며, 미국의 이익에 충실한 인물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로 인해 10년 전 그가 취임할 때보다 유엔이 나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반 전 총장의 후임인 포르투갈 총리 출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신임 사무총장은 지난 해 12일 취임사에서 "유엔은 변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우리의 가장 심각한 단점은 위기를 막는 데 무능함이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을 비판하는 서구 언론과 관련해 "특히 영미 계통 언론들이 나에게 비판적"이라고 했다. 영미권 언론이 아시아 출신 총장을 편견적이고 인종주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주장이지만 이것도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 10년을 평가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지난해 12월 31일 기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 10년을 평가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지난해 12월 31일 기사.
ⓒ <르몽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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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표 일간지인 <르몽드>는 지난해 12월 31일 그의 유엔 사무총장 퇴임에 맞춰 낸 뉴욕 주재 유엔 특파원 마리 뷰로 기자의 기사를 통해 "반기문 총장은 유엔의 고질적인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10년 동안 '외교 교황' 역할만 수행했다"면서 "재임기간 세계는 더 분열되고 불확실해졌고 시리아 내전으로 신뢰를 잃은 조직을 후임자에게 넘겼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유력 시사 주간지 <슈피겔>(Spiegel)도 지난 12일 '유엔의 분열과 무기력함'(Disunity and Impotence at the United Nations) 기사에서 "반 전 총장은 파리 협정이나 지속가능한 목표 등 본인이 자랑스러워 하는 업적들을 확인해줬다, 하지만 실패를 말하는 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주지 않았다.

첫 한국인 출신 유엔 사무총장, 한 번도 방북 못 해

한국민들만이 평가할 수 있는 반 전 총장의 '업적' 항목이 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포함한 남북관계 개선에서 그가 어떤 기여를 했느냐는 것이다. 그는 <반기문과의 대화>에서 "한 번은 제가, 또 한 번은 북한이... 방북 기회를 두 번 놓쳤다"고 했다. 이 책이 나온 뒤인 2015년 5월에도 개성공단을 방문하려 했으나, 북한이 그의 초청을 돌연 철회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노무현 정부가 그를 유엔 사무총장에 앉히려고 총력 지원한 핵심 이유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균형외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이종석, <칼날 위의 평화>, 2014년).

1979년에는 쿠르트 발트하임 사무총장, 1993년에는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한 바 있으나, 정작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희망 아래 유엔에 보낸 한국인 출신 사무총장은 북한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것이다.

[대선기획취재팀]
구영식(팀장) 황방열 김시연 이경태(취재) 이종호(데이터분석) 고정미(아트디렉터)


태그:#반기문 , #위키리크스, #폴리티코, #포린 폴리시,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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