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배트맨 복장을 한 박재동 꿈의학교 운영위원장
 배트맨 복장을 한 박재동 꿈의학교 운영위원장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이야기꾼들의 마무리 발언에서 꿈의학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비롯해 바탕에 깔린 정신, 꿈의학교를 하게 된 계기까지, 모든 게 정리됐다. 한마디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마무리 발언이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좌담회를 끝내기 직전에 박재동 화백이 "나 아직 할 말 남았는데"라며 던진 말이었다. 요약해보니 '꿈의학교 12년 하면 헬조선을 탈출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청년들이 참 힘들어 해요.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우리가(어른들이) 그랬잖아요, 너희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 나와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그런데 나와 보니 직장도 없는 헬조선인 거예요. 이거 왜냐면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 보고, 실패도 해 보고, 어른들하고 일도 해 보고, 돈도 벌어봐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해 봐서 그런 거예요.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꿈의학교에서 이렇게 12년(초1중·고)을 보내야 세상을 살아갈 자신감이 생깁니다. 어른들이 보고 싶은 게 바로 그런 모습이고요. 지금처럼 우왕좌왕 하면 우린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가 없어요.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을 삶의 광장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아이들은 광장에서 갈등하고 실패할 권리가 있어요. 12년이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래야 다음 세상을 아이들한테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을 하기 전, 박 화백은 지난해 7월 학생이 스스로 만드는 꿈의학교 콘퍼런스인 '쇼미더스쿨' 등에서, 배트맨 복장을 하고 홍보를 할 정도로 꿈의학교에 빠진 이유를 설명했다. 학생이 학교에 가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이유를 자신의 교사 경험과 함께 풀어 놓기도 했다.

"제가 미술교사 출신인데, 그때 아이들한테 '학교, 즐겁고 행복하냐?'고 물으면 '글쎄올시다! 그냥 가야 하니까 가고 안 가면 안 되니 가고' 이런 반응이 나왔어요. 청춘의 노른자위를 학교에서 다 보내는데, 학교가 행복하지가 않은 거죠. 학교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세상이 얼마나 기쁨으로 가득할까! 이런 생각 많이 했어요.

다행히 혁신학교가 아침에 등교하고 싶은 아이가 많은 학교로 바꾸어 놓았어요. 좀 더 욕심을 낸 게 꿈의학교예요. 학생이 스스로 기획해서 무엇인가를 해보고 무엇인가에 팍 꽂혀서 열정도 쏟아보고. 이럴 때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생깁니다. 말려도 하게 되고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고요. 이게 바로 꿈의학교 입니다."

"여러분이 인류 역사상 첫 사람, 창조자입니다"

박재동 운영위원장과 이재정 교육감
 박재동 운영위원장과 이재정 교육감
ⓒ 황명래

관련사진보기


이어 박 화백은 지난해 7월 '쇼미더스쿨'에서 배트맨 복장을 하고 낭독한 글을 다시 낭독해 박수 세례를 받았다. 당시 박 화백은 배트맨 복장으로 콘퍼런스 내내 학생들과 함께 했다. 식사할 때도 배트맨 가면을 벗지 않았다. 박 화백은 학생이 스스로 만드는 꿈의학교를 경기도교육청에 제안한 사람이다.

글은, 스스로 학교를 만드는 학생을 격려하는 내용이다. 이 글을 박 화백은 '자뻑인데, 참 괜찮은 자뻑'이라고 소개했다. [관련 기사] 배트맨 박재동 "대학, 가지 말고 직접 만들자"

"여러분!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은 이 지구가 생긴 이래로 첫 사람입니다.

아주 옛날에는 제사장같이 아주 소수의 특별한 사람끼리 교육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귀족이나 양반같이 특권층에만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처럼 모든 국민이 다 교육을 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모든 국민이 다 글자를 배우고 숫자를 깨우치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이 교육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이 여러분에게 교육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 해도 여러분은 교육을 당한 것이고, 평가받고 등급까지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앞으로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고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를 운영해야 하고 자신을 평가해야 합니다. 평가는 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소고기처럼 등급을 나누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만이 아는 기쁨과 보람과 아쉬움으로 평가하면 됩니다.

지구상에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확실한 공적 제도로서 학생이 학교를 만들어 온전히 운영한 일은 없습니다. 아직 실감할 수 없겠지만, 이 일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저는 오늘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을 해왔습니다. 제게는 생명보다 귀중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이 모습이 너무나 좋아서 난 이대로 그냥 죽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창조자가 되십시오. 여러분은 창조자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세상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갑니다. 저보고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 했는데, 사실 저는 여러분보다 모릅니다. 이 일을 기획하긴 했어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만들어 해보니 어떻더냐고 물었을 때 누가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저입니까, 여러분입니까. 오직 여러분만이 압니다. 여러분만이 그 맛을 압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인류 역사상 첫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까지 어느 학생도 맛보지 못한 새로운 기쁨을 만들고 누리는 세상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삶의 길을 걸으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에게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여러분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일을 하십시오. 그게 얼마를 버느냐보다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머리 싸매고 대학에 가려고만 하지 말고 대학도 스스로 만드십시오. 새로운 대학을, 새로운 학문을 만드십시오. 그래야 세상이 바뀝니다. 할 수 있겠죠?"

꿈의학교 별로 운영위원회 구성, 학생도 운영위원으로

박재동 운영위원장과 윤계숙 꿈의학교 전 담당 장학관, 2015년 학생이 스스로 만드는 꿈의학교 콘퍼런스에서
 박재동 운영위원장과 윤계숙 꿈의학교 전 담당 장학관, 2015년 학생이 스스로 만드는 꿈의학교 콘퍼런스에서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이재정 교육감은 꿈의학교를 하게 된 계기와 꿈의학교 바탕에 깔린 정신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 발언을 대신했다. 학생을 점수로 나누고 서로 경쟁시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꿈의학교를 시작한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게 이 교육감 설명이다. 이 점(경쟁 등)이 교육을 피폐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교육을 망쳤다고 이 교육감은 힘주어 말했다.

"그래서 꿈의학교는 (눈에 띄는) 성과를 기대하지 않아요. 이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학생에게 작은 변화라도 보이면 그게 바로 성과입니다. 꿈의학교에서는 학생에게 도전을 해보라고 자꾸 권하는데, 아무런 결과가 안 나와도(실패해도) 괜찮아요. 전 그것도 성공이라고 봅니다. 도전을 해 보지 않으면 그것마저도 모르거든요. 점수로 나누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꾸밈없이 성장하는 것을 돕는 게 교육입니다. 이를 위해 만든 게 꿈의학교이고요."

김경관 장학관은 꿈의학교에 선정될 수 있는 귀중한 팁(정보)를 주었다. 윤계숙 장학관은 꿈의학교를 처음 만들 때 중점을 둔 방침과 시간 부족 등으로 미처 하지 못해 아쉬웠던 일을 소개했다. 윤 장학관은 경기도교육청이 꿈의학교를 처음 시작한 2015년에 1년간 꿈의학교를 담당했다.

윤계숙 : "꿈의학교 계획서 만들어서 가져갔더니 교육감님이 '이거 하려는 게 아닌데!' 이 말 듣고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어요. 다시 기획하면서 '사업을 하려는 게 아니라 교육운동을 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요. 이거 깨달으면서 실타래 풀리듯 일이 풀렸어요. 가장 중점을 둔 게 '정신'이었는데, 특히 '학생 스스로 정신'에 초점을 맞췄어요. 해서, 염려스러운 점도 바로 이거예요. 양적으로 성장(학교 수 확대)하다 보면 자칫 질(정신)을 놓칠 수가 있다는 점이죠.

학생이 스스로 만드는 꿈의학교를 시작만 해 놓고 나왔는데, 그게 아쉬워요.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이 학교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어야 하는데, 그걸 못 만들어 놓았어요. 꿈의학교를 경험한 학생들 역량으로 공고육도 바꿨으면 좋겠는데, 그 힘이 정말 있는지 검증하는 연구를 못한 점도 아쉽고요. 저는 꿈의학교를 경험한 아이들이 대학입시제도를 바꿨으면 좋겠어요. 수능(수학능력시험) 봐서 가는 게 아니라 가고 싶은 대학, 적성에 맞는 대학을 선택해서 갈수 있는 입시 제도로요."

김경관 : "학생이 배움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계획을 짜는 게 중요합니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애쓰지 말고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를 학생에게 묻고 그에 필요한 강사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기획안에 담겨 있으면 좋겠어요.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꿈의학교 별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학생도 운영위원에 포함시켜서 학생 의견을 적극적으로 학교 운영에 반영했으면 좋겠어요. 학생이 안전하게 배울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고, 학생도 20명은 넘었으면 합니다. 수업 시간도 최소 40시간은 넘는 게 바람직합니다."

'아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구나!'

이재정 교육감, 박재동 화백(꿈의학교 운영위원장), 김경관·윤계숙 장학관과 1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쑥 불쑥 들었던 생각이다. 그럴 때마다 몸이 부르르 떨리는 기쁨을 맛봤다. '꿈의학교, 단순한 학교가 아닌 교육문화 변혁 운동이라는, 입시 위주의 기존 교육에 대한 도전이며 변화의 몸부림'이라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한 데서 온 기쁨이었다.


태그:#꿈의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