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네이버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출처: 네이버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 네이버영화


그 흔한 배경음악이 없다. 아름다운 영상을 위해 필터를 씌우지도 않았다. 극중 인물들은 부유하지도, 젊거나 아름답지도 않다.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야기다.

그렇다. 사실 현실은 낭만적인 음악이 흐르지도, 매일 봄처럼 화사하지도 않다. 우리는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사실에 툴툴대면서도 신청서 작성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한다. 억울하게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와도 쉬이 포기할 수조차 없다. 온갖 짜증을 내면서도 연결 중이라는 메시지만 반복하는 전화를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어야 한다. 색이 바래버린 갈색 점퍼 하나로 겨울을 나는 주인공 다니엘의 삶, 그리고 그의 이웃들의 삶이 익숙한 것은 그것들이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곧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가난을 원망하게 하다

다니엘은 심장병 악화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된 백발의 목수다. 그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갔다가 새로 이사 온 이웃 케이티를 만난다. 두 아이의 엄마인 케이티는 많아 봐야 서른 초반 정도의 앳된 여성이다. 그녀의 어려운 생활에 연민을 느낀 다니엘은 첫 만남 이후로 종종 케이티의 집을 찾아가 잡다한 일들을 돕기 시작한다. 변기 수리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자식들을 위해 물고기 모양의 모빌을 제작해 선물까지 하는 등 지극정성이다. 자신 또한 지병 때문에 구직을 못해 생계 보조금을 받아야만 하는, 그마저도 쉽게 받지 못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면서 말이다.

하루는 다니엘이 케이티를 데리고 식료품을 받기 위해 복지관을 찾는다. 복지관 앞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차례가 되자 케이티는 사회복지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감자나 쌀 같은 먹을거리와 샴푸 등의 생필품을 담던 사회복지사는 그녀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겨우 꺼낸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저, 생리대는 없나요?" 같은 여성으로서 화가 났다. 가난은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자신의 월경마저 원망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작년에 한국에서도 비슷한 이슈가 세상을 달궜다. 여고생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휴지를 이용하거나, 심지어 신발 깔창으로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저소득층 학생들의 사정을 접한 사람들이 분개하고 일어나 생리대 기부 행사 등을 전개하고 정부에도 관련 정책을 마련하라 요청했다. 덕분에 정부가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 생리대 지원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책 사업은 직접 보건소나 아동 시설 등을 방문에 이름과 주소 등을 적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결국 사춘기 학생들을 배려하지 못한 운영 방식으로 질타를 받았다.

비용 상의 문제로 모든 이들을 보조하지 못하는 정부 측이 이해는 가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저렸던 것이 기억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리대 지원을 위해 설립한 단체에 용돈을 쪼개 기부하는 것 밖에 없었다.

생리대는 제공이 안 된다며 다른 물건을 챙겨주러 복지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케이티는 작은 통조림 하나를 꺼내든다. 그리고 뚜껑을 까고 손으로 허겁지겁 내용물을 집어 올려 입 안으로 넣는다. 물건을 들고 온 복지사에게 그 모습을 들키자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배가 곯아 체면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던 케이티 또한 수치스러움을 아는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다니엘은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식료품을 보조 받으러 간 그 곳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존엄이 아닌 가난을 증명하는 현실

이 영화는 다니엘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질병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된 그가 항고를 위해 찾아간 법률 사무소의화장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질병 수당 대상자가 아닐 정도로 '건강한' 그의 사인은 심장마비. 마지막 안녕을 위한 장례식조차 아침 시간대에 열어야 했다. 그 시간대가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구질구질한 것이 참 한결같다. 크레딧 조차 그의 삶처럼 조촐하고 우울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고 그랬던가. 생각보다 많은 인간들은 일생 단 한 번도 존엄하지 못한 채 삶을 마친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나는 기억이 나지도 않는 한 15년 전쯤 나의 부모님은 트럭을 타고 과일 장사를 하셨다. 단속 경찰에 걸려 저울을 빼앗긴 날에는 '이거 없으면 우리 장사는 어떻게 합니까. 애들은 어떻게 먹입니까'라며 경찰을 붙들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녀가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한 트럭 장수에게 귤 한 봉지를 사고 집으로 오던 길에서였다. 그녀는 말하는 내내 그때 상황이 떠오른 듯 울먹였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너무나도 집안 사정이 좋아졌지만 2월이 다가오자 마음이 무거워진다. 곧 대학에서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올 터다. 소득 분위 산정 기준이 달라지고 나서 눈에 띄게 장학금이 줄어 등록금은 더 부담스러워졌다. 나라의 보조금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등록금을 채우기 위해서는 학교에 장학금신청서를 내야 한다. 최대한 가난에 허덕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신청 사유 란을 채워야 한다.

우리는 누가 더 가난한지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물심양면 돕는 다니엘도 사실상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여럿을 제치고 제일가는 가난뱅이임을 증명 받아야 한다. 영국의 다니엘 블레이크의 삶이나 한국의 우리들의 삶이나 참 비참하다. 영화관을 나왔지만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여전히 암흑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 켄 로치 선별적 복지 생리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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