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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기반과 재산은 없지만 비상한 두뇌와 업무능력으로 승승장구하다가 노무현 정부의 힘으로 유엔 사무총장이 된 사람,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불행해진 뒤로 그쪽과 소원해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10년 임기를 마친 그가 지난 12일 오후 고국 땅 인천을 밟았다. 그러곤 몇몇 의혹들을 '등짐'처럼 매고 '말'에 올라타더니 정신없이 사방으로 움직이고 있다.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 고민까지 비슷했을지 모르는 인물이다. 반기문의 15대 할아버지인 반석평(?~1540)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반기문 입장에서, 반석평은 매우 중요한 조상이다. 광주 반씨 문중에서 반석평 윗대는 형식상으로는 반기문의 조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관련성이 좀 떨어진다. 반석평과 그 직계후손들이 반씨 문중 안에서 사실상 별도의 그룹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석평은 조선 전기인 성종 임금 때 태어나서 연산군 시대를 거쳐 중종 시대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개혁가 조광조의 등장과 몰락을 지켜봤을 사람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반씨가 아니었다. 원래 성씨는 알 수 없다.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이나 광해군 최측근인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따르면, 그는 전직 재상 가문의 노비였다. 노비로 살다가 반씨 가문에 입양됐던 것이다.

영특한 노비 출신 반석평

 반석평의 무덤. 충북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 산4-1.
 반석평의 무덤. 충북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 산4-1.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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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자손만큼이나 반석평도 매우 영특했다. 노비로 태어났기 때문에 배움의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잘했다.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전직 재상인 주인은 어린 노비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했다. 노비로 대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꼬마 노비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꼬마 노비가 자기 아들 및 조카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재상은 꽤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재상의 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꼬마의 인생까지 바꿔주기로 결심했다. 아들 없는 부잣집인 반서린의 양자로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이 입양이 성사되면서, 꼬마는 반씨 성을 갖게 되고 반석평으로 불리게 되었다. 만약 이 입양이 없었다면, 꼬마가 반씨 성으로 불릴 리도 없고 15대손 역시 그렇게 불릴 리가 없을 것이다.

그 시대의 부자는 일반적으로 농업 대지주였다. 소작농들을 거느린 농업 기업의 사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꼬마 노비가 아들 없는 부잣집의 양자가 됐다는 것은 농업 기업의 후계자가 됐다는 뜻이다. 그 재상이 이렇게 만들어준 것이다. 꼬마 노비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포기하고 그렇게 해줬으니, 상당히 대단한 일이었다. 반석평은 평생을 살아도 갚기 힘든 은혜를 재상집에 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혈연관계 없는 아이를 입양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친족 중에서 아래 항렬을 입양하는 게 관행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핏줄이 다른 아이를, 그것도 노비 출신 아이를 입양하는 것은 관행에 어긋났다.

따라서 반석평의 입양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었다. <어우야담>에 따르면, 재상은 꼬마 노비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처리했다. 꼬마의 신분을 세탁한 뒤에 반서린의 양자로 입양시켰다. 편법이나 불법이 동원된 입양이었던 것.  

이렇게 해서 부자 아버지를 갖게 된 반석평은 자기 친가는 물론이고 주인집과도 왕래를 끊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했다. 원래의 신분을 숨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연산군 때인 1504년 과거시험 소과에 급제해서 생원 자격을 얻고, 중종 때인 1507년 대과에 급제해 고급 관료의 길을 걷게 되었다.

관직에 진출한 반석평은 일도 열심히 했다. 공부하는 열정을 일에 쏟아부었다. 그래서 공직 사회에서도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병마절도사(지역 사령관)를 거쳐 장관급인 공조판서·형조판서에까지 올랐다. 이뿐 아니라 외교관 경력도 쌓았다. 조선을 대표해서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진짜 신분이 노비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대단한 결과였다.

출퇴근마다 가슴 졸여야 했던 반석평

 음성군 원남면의 반기문 생가.
 음성군 원남면의 반기문 생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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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승승장구하며 살았지만, 항상 반석평을 짓누르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노비는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고급 관료가 될 수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원래 신분을 숨겨야 하는 반석평으로서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굳이 의혹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그 스스로가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등에 의혹의 등짐을 맨 사람처럼,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관청을 출입해야 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괴로운 일이 또 있었다. 자신의 주인인 재상집 가족들의 존재였다. 어렸을 때 함께 공부했던 주인집 아들과 조카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끝났으면 마음이 편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재상이 죽은 뒤로 그 집은 극도로 가난해졌다. 반석평이 관료가 되고 부자가 된 데 비해, 주인들은 정반대로 된 것이다. 그래서 반석평의 마음이 항상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재상은 꼬마 노비를 인격체로 대했다. 그런 면에서는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재상을 본받았기 때문인지 재상의 아들과 조카는 반석평의 진짜 신분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석평 본인은 그것이 항상 불안했다. 그들이 입만 열면 자기가 쌓아온 것들이 끝장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재상의 아들과 조카는 결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반석평만큼은 그런 이유로 항상 불안했다. 특히 출퇴근 때마다 그랬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할 때 길에서 그들을 만나는 일이 많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와 저녁에 직장을 나설 때, 항상 가슴을 졸였을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가감 없이 공개한 반석평, 그 후손은 어떨까

 반기문 생가 앞에서 찍은 사진.
 반기문 생가 앞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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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은 반석평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는 장면이 있었다. 반석평이 장차관급이 된 뒤였다. 장차관급인 종2품 이상은 고급 수레인 초헌을 타고 출퇴근했다.

이 시절, 반석평은 아침저녁으로 주인집 식구들과 자주 부딪혔다. <어우야담>에 따르면, 그때마다 그는 초헌에서 얼른 내려 땅바닥에 머리를 대고 절을 했다. 땅이 진흙이 됐을 때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 주인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일 수도 있고 '제발 비밀을 지켜달라'는 읍소의 표시일 수도 있었다. 귀하신 분이 초헌에서 얼른 내리더니 땅바닥에 엎드려 허름한 사람들한테 절을 했으니, 행인들의 눈에는 여간 이상한 광경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반석평은 그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초헌에 올라탄 채 주인집 가족들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그냥 지나쳤다가는 "의리를 모른다"거나 "배신자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반석평은 그런 게 무서웠다. 그래서 그 이상한 광경을 아침저녁으로 가끔씩 연출했다.

그런 생활이 반석평은 괴로웠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 행인들도 많았으니, 더 이상 숨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을 억누르는 등짐을 스스로 내려놓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정부에다가 자기 신분을 스스로 고백하고 처벌을 자청했다. 자신의 관직을 박탈하고 주인집 아들에게 관직을 주라는 청원까지 올렸다.

좀 늦긴 했지만, 반석평의 솔직함은 의외의 결과를 불러왔다. 조정에서 그것을 높게 평가했다. <어우야담>에 따르면 정부는 반석평에 대해서만 특례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노비 출신이라는 것과 신분 세탁을 한 것 등을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이다. 관직도 그대로 인정해줬다. 거기다가 덤으로 주인집 아들한테도 관직까지 줬다. 자신의 법적 하자를 감추지 않고 의혹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 이런 의외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반기문 전 총장도 15대 할아버지인 반석평과 유사한 데가 많다. 반기문 전 총장 역시 치명적인 의혹을 등짐처럼 메고 있다. 유사한 상황에서 그의 15대조는 의혹을 스스로 드러내고 처벌을 자청했다. 이로 인해 그는 솔직한 사람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반석평 때문에 반씨 성을 갖게 된 반기문도 그런 길을 걷게 될까? 반기문도 국민들 앞에 자신의 문제점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의혹(동생 사기, 박연차 23만 달러 수수 의혹)을 스스로 드러내고 용서와 처벌을 구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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