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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이 남자가 자기 엄마를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 헬렌 켈러

다행이고 다행이었다. 똑깍인형의 아빠가 혼란스러운 상태로 상담이 마무리됐다면 더욱 강하고 외골수적인 성품으로 자신과 타인을 자유롭게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에 콕 박혀 있던 응어리가 툭 튀어 나와준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위선이나 형식적 또한 예의상 말하지 않고 나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말하였더니 풀리기 시작했다.

나 : "어쩌면 댁으로 돌아가셔서 온몸에 몸살 기운이 있을 수 있을 거예요."

오랫동안 혼자 속으로 끙끙 앓았던 응어리를 풀어놓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유의사항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정확히 시간에 맞춰 오셨다. 들어서자마자 한 마디하셨다.

아빠 : "별것 아니네요."

이것 또한 다행이었다.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건 지난 1주일의 생활이 괜찮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동안 말없이 했던 내 기도가 통했나 싶었다. 사실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쉼없이 그들과 나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의 짧음보다는 완전함에서 오는 후유증 없는 효과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나 :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너무 기쁘네요. 어떻게 보내셨나요?"
아빠 : "똑깍인형의 엄마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해서까지요."
나 : "그러셨군요. 애쓰셨어요. 그리고 편안해 보이셔서 뵙기가 참으로 좋고요."

아빠 : "그러게요. 별것 아닌데 제가 너무 크게 생각하고 혼자서 끙끙 앓았다는 걸 알게 되니 가슴에서 큰 돌이 떨어져나간 것 같이 가벼워요."
나 :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너무 감사해요. 그렇지 않아도 마무리는 나름한다고 해서 보내드렸지만 일주일간 신경이 꽤 쓰였거든요."

내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똑깍인형의 아빠의 표정에 '알았다'는 듯한 여유가 보인다. 이번에는 부부만 방문했다. 똑깍인형은 이번에 오지 않고 부부에 관해 다룰 일이 있기에 두 분만 오시길 권했다.

나 : "똑깍인형은 잘 지내고 있나요?"

나는 엄마를 보고 질문했으나 아빠가 바로 답한다.

아빠 :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나 : "아침에 일어날 때 제가 요청드렸던, 포근하게 안아주면서 눈 바라보며 '잘 잤니?'와 '사랑하는 내 딸 잘 자렴'은 계속 하고 계신가요?"
엄마 : "네~ 그렇게 해줬더니 좋아해요."

어느덧 모녀간에 그리고 부녀간에 서로 살 닿기도 불편할 정도로 서먹서먹 했으나, 얼음 녹듯 서로의 애정을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행위를 통해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나 : "똑깍인형에게 일어날 때나 잠잘 때나 그렇게 해주면서 엄마 아빠 마음은 어떠셨을까 궁금한데요?"
엄마 : "우리도 이제서 사람 사는 집안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빠 : "저는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 마음은 편해요."

두 분의 마음자리가 어느정도 여유롭고 조화로운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준비된 사각상자를 열어 낱말카드로 '사랑' '존중'이라는 단어를 부부가 함께 맞춰 보도록 권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낱말을 다 맞춘 뒤 두 분께 보여드렸다.

나 : "두 분이 함께 낱말을 맞추는 모습을 보시니까 어떠신가요?"
엄마 : "남편은 저에게 낱말만 찾아주고 제게 맞추도록 했네요."
나 : "네~ 그렇지요. 남편분께서는 왜 낱말을 직접 맞추지 않고 아내가 맞추게 하셨나요?"
아빠 : "아내가 이런 걸 잘하니까요."

나 : "이런 것이라면~?"
아빠 : "아내는 말없이 이런 걸 꼼꼼하게 잘하거든요. 집 정리든 뭐든 다 잘해요."
나 : "지금 남편분의 이런 칭찬, 엄마는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엄마 : "사실은 지금 처음이예요."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몹시 쑥쓰러워하면서 운을 뗐다.

아빠 : "제가 칭찬을 할 줄을 몰라서요."
나 : "한국의 아빠들은 아내나 자녀를 칭찬하는 게 아직 익숙치 않아서 그럴 수 있어요. 그럼에도 지금은 분명하게 칭찬을 하시네요."
아빠 : "아내가 아이에게 칭찬했을 때 똑깍인형의 표정과 태도가 변하는 걸 보면서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거든요. 그리고 제게도 칭찬을 해주다 보니까 저도 좋더라고요. 칭찬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걸 실감하면서 저도 용기를 내 시작하게 됐습니다."

나 : "아주 잘하셨어요. 훌륭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유익할 것 같고 중요할 것 같음에도,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행하기 쉽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용기를 내 표현해주시니까 아내 분 표정이 참 여유롭고 평안해 보이네요."

꽁꽁 얼어붙었던 똑깍인형의 아빠에 마음이 풀리면서 부부 관계는 물론 가정 분위기까지 달리지고 있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훈훈해 하는 내게 똑깍인형의 아빠가 한마디 했다.

아빠 : "그래도 제 모친은 안 될 겁니다."
나 : "안 된다니, 무엇이 말씀이신가요?"
아빠 : "제발 정숙하게 옷을 좀 입고 품위있게 행동하시라고 해도 소용 없을 겁니다."
나 : "어머님이 옷을 정숙하게 입으시고 품위있게 행동하시길 바라나요?"
아빠 : "그럼요. 당연하지요. 그런데도 모친(어머니라거나 엄마라고 하지 않고 아직은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모친'이라고 한다. 이해할 수 있다)은 우리 집에 한 번 올 때도 동네 창피해요."

나 : "모친께서 어떤 복장으로 오시는지 궁금한데,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아빠 : "그렇지 않아도 아내가 따뜻하고 좋은 외투를 사드렸는데도 목에 털이 답답하다고 그 털을 떼어냈어요. 목이 훤히 드러나고 추워 보이게 입었죠. 또 외투에 이것저것 덕지덕지 묻은 채 오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나 : "조금 답답하시더라도 참으시고, 털을 부착해서 남들이 볼 때도 따뜻해 보이고 단정하게 보일 수 있도록 입고 오시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시지 않으니까 저라도 왜 저러시나 싶을 것 같아요."
아빠 : "더군다나 주위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옷을 잘 입으면서(내가 볼 때 똑깍인형의 3인 가족은 복장이 늘 단정하고 품위있게 입는 편이다), 어른은 제대로 사드리지도 않고 한다고 욕하지 않겠어요?"

나 : "아드님 내외가 원하는 대로 옷을 단정하고 깔끔하게 입고 오시면 좋을 텐데."
아빠 : "그것뿐만이 아니예요. 손녀를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는 적도 없어요. 자기는 그러면서 어쩌다 아는 분들이 인사하느라고 손이라도 잡아주면 좋아 죽는 시늉을 합니다. 기가막혀요. 애 엄마가 부축해드리려고 손을 잡아드리면 뿌리치면서 다른 사람이 잡을 때는 좋아 죽겠다는 반응을 보이니 기가 막혀요. 이건 완전히 자식을 동네 망신시키려고 살아있는 거라니까요."

오래 묵은 감정일수록 속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이 현상이 여러 번 반복될 수 있다. 더군다나 부모 자식 간에는 더욱 그렇다. 서로 만나지 않을 때는 그나마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더라도 한 번씩 만났을 때 서로의 말투나 태도가 변하지 않고선 부딪힐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자식 또한 부모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대로'라는 말에는 상대를 존중함이 없기 때문에 좋은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길 바라지만 멀기만 하다. 그래도 지금은 이 부부는 분명 변화를 바라고 있으니 다행이다. 잘 돼야 할 텐데.


태그:#겨울외투, #털, #손잡기, #안아주기,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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