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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3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문화융성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과 함께 회의장으로 입장하는 장면
 지난 2013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문화융성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과 함께 회의장으로 입장하는 장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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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속된 표현으로 개가 웃는다는 얘기를 하죠."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 장관은 영화 <베테랑>의 유행어 그대로 "어이가 없어" 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자기는 블랙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고 한 말에 대한 격한 비판이었다.

지난 26일 방송된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유 전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주요한 증언과 내부 정보를 쏟아냈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고, 조영수 특검의 조사 대상에 오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 등 당사자들 개개인에 대해서도 분노를 쏟아냈다.  

"농담으로 생각할지 몰라도 제가 좀 인격이 여물지 못해서 혹시 나갔다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보면 혹시 따귀를 때린다든가, 하다못해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사고를 일으킬 수 있겠다 하는 걱정을 스스로 했기 때문에 청문회 출연을 자제했다."

유 전 장관이 '몸통'으로 주목한 이는 역시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었다. 유 전 장관의 김 전 실장을 향한 발언 수위는 이례적이었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측도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 인터뷰를 네 차례로 나눠 싣고, 사전인터뷰 내용까지 언론에 공개했다. 인터뷰 후 제작진에게 전달했다는 유 전 장관의 문자 메시지에서도 그러한 심각성이 충분히 전달된다. 

"김기춘 실장, 블랙리스트를 강제할 때 그렇게 자신만만했으면, 지금 부인하며 뒤로 숨지 말고 자신이 한 일의 목적과 수단이 정정당당했노라고, 앞장서서 주장해야 마땅한 자세가 아니냐?"

'몸통' 김기춘, '실행자' 조윤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마련된 특검 사무실에서 본격적인 수사 개시를 알리며 현판식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어방용 지원단장, 윤석열 수사팀장, 양재식 특검보, 박충근 특검보, 박영수 특검, 이용복 특검보, 이규철 특검보, 조창희 사무국장)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마련된 특검 사무실에서 본격적인 수사 개시를 알리며 현판식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어방용 지원단장, 윤석열 수사팀장, 양재식 특검보, 박충근 특검보, 박영수 특검, 이용복 특검보, 이규철 특검보, 조창희 사무국장)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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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와 관련, 26일은 그간의 의혹이 각종 보도와 인터뷰를 통해 확증으로 굳어진 날이었다. 더욱이 이날 박영수 특검팀이 수사에 박차를 가하며 이러한 확증을 실제 조사로 이어가고 있다.

먼저 이날 오전, 박영수 특검팀은 조윤선 장관의 자택과 집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조윤선 장관은 지난 10월 국정 감사 자리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에 대해 또박또박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한 바 있다. 특검팀은 또 김기춘 전 비서실장 자택의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박영수 특검팀의 이러한 예고 없는 압수수색은 블랙리스트 작성의 '몸통'으로,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전 실장과 이를 실제 작성하고 주도한 한 혐의의 조 장관에 대한 압박과 증거인멸을 막기 위한 '양수겸장'격으로 풀이된다.

두 사람은 국정농단 사태 복판에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문화예술계 인사 1만여 명의 이름과 사유가 담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하고 관리·담당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은 일단 "구체적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김 전 실장의 경우 문체부 인사 개입 등 직권남용 혐의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지난 12일 문화연대·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한국독립영화협회 등 12개 문화예술단체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실장, 조윤선 문체부 장관 등 9명을 특검에 고발한 바 있다.

특검은 지난 26일 증거 확보를 위해 피고발인들의 주거지와 문체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또 특검은 이날 오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도 소환할 방침이다. 논란과 함께 최근 사표가 수리된 정관주 전 차관은 조윤석 장관이 정무수석이던 당시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을 지냈다.

특검의 이러한 잰걸음은 문체부의 연이은 증거인멸 정황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26일 SBS는 블랙리스트 관련 단독 보도를 통해, 조윤선 장관이 문체부 관계자를 통해 서울 용산 서계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무실 컴퓨터를 교체했다고 보도했다. 또 문체부는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예술정책국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실제 블랙리스트를 압수한 것으로 알려진 특검이 지속적인 증거인멸 의혹이 일었던 문체부와 조윤선 장관,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한 어떤 정황 증거를 잡았는지, 이러한 특검의 압박이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과 국정 개입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고 기소로까지 이어질지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 와중에, 이날 SBS가 보도한 블랙리스트 불이익의 실체는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이들이 창작한 문화예술 작품의 수용자들인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깨알같이 작성된 블랙리스트의 실체, 경악스럽다 

26일 SBS <8시 뉴스>의 한 장면.
 26일 SBS <8시 뉴스>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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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1985>가 그렇다고 불온한 영화도 아니잖아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그린 영화인데, (역사를) 기록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만든다 그러면 (정부) 사람들 참 나쁜 사람인 것 같아요. (블랙리스트 작성, 관리는) 사찰이잖아요. (정부가) 영화 한 편 한 편에 대해 사찰했다는 명백한 증거 아닙니까? 편 가르기 하는 것밖에 더 되느냐는 생각밖에 없어요."

영화 <남영동 1985>의 배급사인 엣나인필름의 정상진 대표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분통을 터트렸다. 이 회사는 2013년 문체부 예산에서 3400만 원을 지원받았지만, <남영동 1985>를 배급한 이후 문체부 지원이 끊겼다. 예술영화 전문 수입/배급사인 엣나인필름은 <남영동 1985>를 배급했단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회사가 됐다.

앞서, '김영한 비망록'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인 지난 10월, '세월호 참사 관련 시국선언',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문화예술인 1만여 명의 리스트가 포함된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일파만파 파장을 낳은 바 있다.

SBS는 또 윤이상 평화재단, 극단 산울림, 출판사 창작과비평사 등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단체, 극단, 출판사, 영화사는 물론 언론사까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돈줄을 좨서 표현의 자유를 틀어막은 셈"이라는 것이다. 또 SBS는 "교수나 시인, 안무가 등 예술계 인사 48명과 영화사나 극단 등 43개 단체 등 91개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명시하는 한편 7개 언론사도 '좌파성향'으로 분류됐다고 전했다. 

SBS가 입수했다고 보도한 블랙리스트는 특검이 입수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문건은 지난 10월 논란을 빚은 개별 문화예술인 명단에 더해 구체적인 단체와 사유가 더해져 있다. 야당 후보 지지와 좌파 성향 외에 좀 더 구체적인 지시 사항이 포함돼 있어, 1만여 명 외에 좀 더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그간의 의혹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윤선 장관님, 구속영장도 받으셔야죠?"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연아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6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하고 있다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연아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6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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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송광용 전 대통령 교육문화수석비서관, 서병수 부산시장, 모철민 전 대통령 교육문화수석비서관, 정관주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담당비서관,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용호성 전 국립국악원 기획운영 단장."

12개 문화예술단체가 특검에 고발한 피고발인 9명의 명단이다. 유진룡 전 장관의 26일 인터뷰에서는 이들의 이름이 고루 거론된다. 2014년 7월, 자리에서 물러난 유진룡 전 장관은 퇴임 직전인 "2014년 6월 실제 블랙리스트를 봤다"고 말했다.

앞서 2013년 8월, 김기춘 전 실장이 허태열 비서실장 후임으로 취임한 이후 청와대가 구두로 지시하고 문체부가 실행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단체·회사들에 대한 제재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유진룡 장관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2014년 6월, 김소영 비서관을 통해 제재해야 할 명단이 문체부 차관실로 내려왔다. 모철민 교육문화수석과 김소영 비서관은 전달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책임은 정무수석비서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이 진다고 했다. 2004년 6월 12일에 정무수석은 조윤선 장관이었고, 그 전엔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수석이었다. 국민소통비서관은 최근 사표를 제출하고 수리된 정관주 문체부 1차관이다.

리스트는 차곡차곡 수시로 왔고, 국민소통비서관실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리스트를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문체부 후배들이 관련 내용을 전해주면서 양심을 가책을 느낀다는 하소연을 해 왔다. 합리적 의심을 한다면, 주도한 사람은 김기춘 비서실장으로 봐야 한다. 앞서 2004년 1월, 박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문화예술계 제재에 관해 반대의견을 전달했지만 묵살됐고, 결국 제재에 대해 반발하고 회의까지 했던 문체부 내 1급(공무원)들이 면직됐다.'

이러한 과정 안에서 <다이빙벨>과 관련한 부산국제영화제 논란도 있었고, 홍성담 화백의 '오월광주'의 광주비엔날레 전시 취소 논란도 불거진 셈이다. 1980년대부터 문화부 공무원으로 재직한 유진룡 장관은 "노태우 정권 이후 이렇게 광범위한 블랙리스트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회 청문회 당시 김영한 비망록과 관련 "수석회의가 소통의 장이기에 작성자의 주관적 의견이 담길 수 있다"던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해 "한심하다"고 일갈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게 정말 굉장히 중요한, 국기를 흔든 그런 사건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근원이 누구인지 정말 저도 궁금하고 온 국민도 궁금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지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향후 정권 차원의 블랙리스트로 불이익을 당한 문화예술인들의 반발이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영화인들은 국정농단 사태의 말단에서 박근혜 정권에 입맛는 영화인 길들이기와 전횡을 일삼은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러한 사법적 움직임은 광화문에서 캠핑농성을 벌이고 있고 이미 다발적인 시국선언에 동참했던 문화예술인들과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불이익을 당한 개인·단체·회사로 번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윤선 장관님 그동안 즐거우셨죠? 국민들 눈에선 피눈물 났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받으셨죠? 구속영장도 받으셔야죠."

특검의 압수수색 소식을 접한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26일 페이스북에 적은 글이다. 주 기자를 비롯해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단언한 이후 문체부 업무를 일상적으로 관장했던 조윤선 장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지속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특검의 압수수색 이후 조윤선 장관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포함한 9인의 피고발인들이 피의자 신분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적지 않아졌다.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눈물을 흘린 국민들도 부지기수다. 박영수 특검의 분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26일 방송된 SBS <8시 뉴스>의 한 장면.
 26일 방송된 SBS <8시 뉴스>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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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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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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