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자 베스트> 영화 포스터

▲ <우리 손자 베스트> 영화 포스터 ⓒ 인디플러그 , (주)봉두난발


'일베(일간베스트의 줄임말)'와 '어버이연합'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상징한다. 그러나 폭력의 위험성을 우려한 건지, 아니면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한 탓인지, 영화에서 다루어진 사례는 없었다. 반공주의자 할아버지와 물질 만능 주의에 물든 손자가 나오는 <죽지 않아>가 있었지만, 전체적인 모양새는 유산을 둘러싼 갈등과 세대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 정도에 머물렀다. 일베와 어버이연합을 영화로 묘사한 건 <우리 손자 베스트>가 처음이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취업, 연예, 가족 관계 등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20대 백수 교환(구교환 분)과 탑골 공원으로 대표되는 종로 일대를 누비면서 '종북 세력 척결'을 외치는 70대 노인 정수(명계남 분)가 주인공이다. 교환이 활동하는 온라인 사이트 '너나나나베스트'와 정수가 이끄는 애국 보수 단체 '어버이별동대'는 당연히 일베와 어버이연합을 토대로 삼았다.

연출을 맡은 김수현 감독은 "(방황하는) 젊은 세대와 오랜 세월 고생과 역경을 경험한 기성세대와의 불균형한 관계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우리 손자 베스트>에서 보여준 젊은 세대에 대한 관심은 조감독 겸 각본가로 참여했던 1997년 작품 <나쁜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영화 <우리 손자 베스트> 스틸 컷

영화 <우리 손자 베스트> 스틸 컷 ⓒ 인디플러그


김수현 감독은 씨네21과 인터뷰에서 "어쩌면 그때(나쁜 영화)의 그 친구들이 오늘날 20대들(우리 손자 베스트)의 모습이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낭패를 경험하고 좌절하고 박탈감을 느끼는 20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작업은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교환과 같은 이들을 알게 되는 계기로 이어졌고, 무기력하면서 동시에 마초 같은 면이 있는 어르신들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고 부연했다. 청년과 노인을 묶으면서 블랙코미디 <우리 손자 베스트>는 태어났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교환과 정수를 통해 일베와 어버이연합의 실상을 보여준다. 교환이 너나나나베스트에서 활동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무분별한 신상털기, 여동생이나 누나의 모습을 담은 몰카 올리기,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로 짜깁기한 음악, 사용자들이 쓰는 용어 '민주화'는 모두 일베의 것을 가져왔다.

교환이 온라인에서 활약하는 키보드 워리어라면, 정수는 오프라인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어버이별동대 대장 정수는 자신들이 지킨 대한민국을 빨갱이 세력이 접수하게 놔둘 수 없다고 주장하며 반대 의견을 내는 세력을 폭력으로 응징한다. 그들에겐 시위 현장에서 가스통을 든 할아버지들이 겹쳐진다.

<우리 손자 베스트> 영화의 한 장면

▲ <우리 손자 베스트> 영화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 (주)봉두난발


교환과 정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차이점은 존재하나 혐오를 조장하고 폭력을 일삼는 증오심이란 하나의 얼굴이다. 하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는 일베와 어버이연합을 상징하는 교환과 정수를 '일베충'이나 '가스통 할배'로 단순하게 조롱하거나 희화화하지 않는다. 영화는 교환과 정수 같은 인물이 잉태되는 과정을 관찰한다. 그들이 쓴 혐오와 차별이란 가면 뒤에 가려졌던 외로움과 인정 욕구란 얼굴을 포착하길 원한다.

교환과 정수는 원만한 가족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교환의 가족은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고 정우는 가족에게 버림받았다. 가족 내의 소외는 그들을 괴물로 점점 바꾼다.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정수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이념 대립이란 과거형을 현재형으로 바꾸었을 때 그가 믿었던 신념을 유지되고 정체성은 부정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교환이 자기 존재를 인정받을 방법은 온라인밖에 없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교환 같은 이들이 게임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일베 게시판도 마찬가지다. 그 곳에선 사회적 지위보다 '팩트'라 일컬어지는 주장과 흥미를 유발하는 볼거리가 권력으로 작동한다. 온라인 세계에서 그들은 강하고 평등하다고 믿는다.

<우리 손자 베스트> 영화의 한 장면

▲ <우리 손자 베스트> 영화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 (주)봉두난발


현실 세계에선 일베와 어버이연합은 보수 언론과 집권 세력에게 혐오의 목소리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우리 손자 베스트>에서도 이것은 재현된다. 정수는 국가가 자신의 애국심에 포상으로 화답할 거라 믿었건만 그저 장기 말로 이용당할 뿐이다. 컴퓨터 바깥의 교환은 소통은커녕 마음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청춘이다.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 사람은 각기 질문한다. "할아버지는 제 나이 때에 뭐했어요?" "너는 내 나이 되면 뭘 할 거 같니?"

<광주드림>에 정의석씨가 쓴 칼럼엔 "사회적 갈등은 진보주의자의 도덕적 지향과 보수주의자의 저항 사이의 싸움이 아니라, 스스로 도덕적이라는 강한 확신, 또는 반대로 상대는 비도덕적이며 사회에 악영향을 준다는 강한 확신 사이의 갈등"이란 문구가 나온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우리 손자 베스트>를 관통하는 주석이기도 하다. <우리 손자 베스트> 속엔 "관심에 목말라 하고 재미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막장으로 가는 세대가 어떤 특정 집단만을 가리키는 일일까요?"란 대사가 나온다. 영화는 우리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교환의 얼굴과 몸짓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너와 나의 이해는 여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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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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