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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중구청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가다 중구청을 끼고 돌아 자유공원 쪽으로 오르다보면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이 나온다. 맞은편에는 1901년에 지어진 제물포구락부가 있다. 지난 봄, 자유공원에 오르다 활짝 열린 정문으로 잘 정리된 정원이 보여 역사자료관에 들른 적이 있다.

고풍스런 한옥에 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정원. 누구나 들러 담소를 나눌 수 있다고 해, 반가웠다. 게다가 인천의 역사까지 덤으로 배울 수 있다니 금상첨화였다. 한옥 안을 제대로 구경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지 두 계절을 미루다 지난 11월 28일 다시 찾았다.

이곳에는 인천시 시사(市史)편찬위원회 소속 전문위원 두 명이 상주한다. 강덕우 전문위원이 자료관의 역사와 기능을 설명해주고, 강옥엽 전문위원이 말을 보태 이해를 돋우었다.

찾아간 날에는 사진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고풍스런 한옥 건물과 나무 바닥과 복도에 전시된 사진작품이 잘 어울렸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저택이 역사자료관으로

인천시 역사자료관 내부 모습. 인천 관련 서적 5000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내부 모습. 인천 관련 서적 5000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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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응봉산 기슭에 자리한 역사자료관은 개항 이후 일본인 사업가의 저택이었다. 광복 후에는 '동양장'이라는 서구식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다 '송학장'이라는 이름의 사교클럽으로도 이용한 적이 있다.

1965년 인천시에서 매입해 한옥 건물로 개축, 1966년부터 인천시장의 공관으로 썼다. 그 후 최기선 시장까지 시장 열일곱 명이 머물렀던 공관으로 사용하다 2001년 역사자료관으로 개관했다.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응봉산을 올라가는 이쪽 동네에 존스톤 별장처럼 인천의 갑부들이 살던 전원주택이 많았어요. 코노 다케노스케라는 일본인의 별장이라 '코노 별장'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집 주인은 신포동에서 포목점을 운영했다고도 합니다. 전형적인 일본인 2층 가옥이었어요. 시에서 매입해 건물만 한옥으로 개조하고 정원이나 큰 나무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있습니다."

정원에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꽤 있다. 송학장(松鶴莊)으로 불렸던 만큼 소나무들의 자태가 출중했다. 관사(官舍)로 쓰였던 이곳이 역사자료관으로 변모한 과정이 궁금해 강덕우 전문위원에게 물으니, "2000년 즈음 전국에 있는 관사를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주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민선 시대가 열리면서 대부분 기초자치단체장들의 관사를 주민복지시설 등으로 그 용도를 변경해 주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인천의 경우 전국 광역시ㆍ도 중 울산시 다음으로 관사를 반납했다. 최기선 전 시장이 1998년 지방선거에서 '관사 폐지'를 공약으로 건 이후의 일이다.

"당시 시에서 매입하고 이곳의 사용목적과 운영주체를 두고 시민단체들과 몇 차례 협의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민한 후 2001년 10월 8일 역사자료관으로 개관했습니다. 1883년 개항부터 인천의 역사는 깊고 무궁무진한데 숨어있는 역사자료를 발굴하지 못하고 인프라가 구축돼있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어요. 당시 이곳을 역사자료관으로 이용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판단했습니다."

시사편찬위원회, 인천의 역사를 기록하다

일본인 가옥을 한옥으로 개조한 인천시 역사자료관 정원엔 오래된 소나무가 꽤 많다.
 일본인 가옥을 한옥으로 개조한 인천시 역사자료관 정원엔 오래된 소나무가 꽤 많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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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시사편찬위원회는 1965년에 만들어져 1973년 첫 인천시사를 편찬한 뒤 10년 단위로 시사를 편찬했고, 최근에는 2013년에 편찬했다. 편찬위원회 구성의 근거가 되는 조례는 1975년에 제정됐다.

"지역마다 편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구성하게 조례로 돼 있습니다. 원래 목적이 시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고 편찬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겁니다. 인천시 편찬위원회 관련 조례 제정은 다른 지역보다 앞섰는데 인천이 개항하고 모든 문물이 앞선 영향이 있습니다."

강덕우 전문위원은 1973년 인천시사를 처음 편찬하기에 앞서 인천의 역사를 기록한 게 있다는 말도 했다. 1933년 출간된 '인천부사'라는 것인데,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일본인의 시각으로 기술된 책이라고 덧붙였다.

"인천부사에는 일본이 주도해 (인천을 발전시켰다는) 시각으로 나오는데, 1883년 개항 후 개항 50년에 맞춰 펴낸 인천의 역사책입니다. 광복 후에는 제대로 된 시각으로 쓰려는 노력이 있었고, 그 결과물이 1970년대 나왔습니다. 현재의 잣대로 그때를 재단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기록물들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큰일 납니다. 광복 이후 왜곡된 역사를 바꾸려는 의식이 타 지역보다 강한 곳이 인천이었습니다."

강덕우 전문위원의 말을 들으며 역사 기록의 엄중함을 느끼는 한편, '역사'라는 단어의 뜻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역사 속에는 문화가 있고 문화 속에는 또 역사가 들어갑니다. 인천지역에서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남긴 많은 것들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겠죠. 우리가 다루는 역사는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문학으로 남긴 것들, 경제활동은 어떻게 했는지, 노동운동은 어떻게 전개됐는지 등, 지나간 모든 것이 역사의 범주입니다."

그중 시사편찬위원회에서 활동의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오래된 자료 확보다. 없어지기 전에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과거의 기록들을 현대식으로 바꾸는 것도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이 남긴 영문 자료나 조선시대 한문 자료를 번역하는 게 우선입니다. 시민들과 자료를 공유하고 대중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연구자들만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민들도 비교분석할 수 있게 자료를 제공하는 게 역사자료관과 시사편찬위원회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향후 '인천역사대사전' 출간 계획

 인천시 역사자료관에서 근무하는 강덕우(오른쪽)·강옥엽 전문위원.
 인천시 역사자료관에서 근무하는 강덕우(오른쪽)·강옥엽 전문위원.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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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자료관은 인천의 역사를 집적하는 곳으로 시사 자료를 발굴하고 수집한 뒤 이를 정리하고 발간하는 시사 편찬 기능까지 겸하고 있다. 매해 '인천역사문화총서'를 발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총76권의 인천 역사자료를 출간했다.

인천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지 600년이 된 2013년 10월 15일 인천시민의 날을 기해 인천정명(定名) 600년 기념으로 '인천광역시사' 3권과 '사진으로 보는 인천시사' 2권도 편찬했다. 이밖에도 인천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와 사진전시, 향토사강좌를 꾸준히 열고 있다. 시사편찬사업 관련 자료와 '인천역사문화총서'는 시 홈페이지에 있는 온라인 역사자료관에 들어가면 누구나 볼 수 있다.

"학술대회나 향토사강좌를 개최합니다. 현안이나 이슈에 맞게 주제를 잡으려 하죠. 향토사강좌는 수강을 원하는 인천시민이면 누구나 전화로 예약하면 들을 수 있어요."

향토사강좌는 인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격월로 진행하고 있다. 주제에 맞는 전문가를 섭외하며, 청중의 대부분은 지자체에서 활동하는 문화관련 해설사다. 이들의 지식이 풍부해야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 주제는 '영상작품으로 보는 인천'과 '생태주의 시각에서 보는 인천'으로, 12월 5일 오후 2시 역사자료관 역사사랑방에서 진행한다.

또한, 12월 13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인천역사사진전'을 개최한다. 역사자료관 복도를 이용해 사진을 전시하는데, 매해 다양한 주제로 사진전을 연다. 13회째인 올해 사진전 주제는 '한국 최초, 인천 최고'다. 개항의 도시답게 인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자료를 조사하다보면 나오는 사진이 많습니다. 사진을 시민들한테 보여주려는 취지로 사진전을 개최합니다. 장소 문제도 있어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자료관에서 책만이 아니라 사진도 볼 수 있게 자료관 내부를 계속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천 관련 서적 5000여권을 소장하고 있는 이곳의 방문객은 연간 1만여명이다.

"방명록에 기록한 사람이 그 정도니까, 실제로는 더 되죠. 자유공원과 제물포구락부가 근처에 있고 쉼터나 공원처럼 정원이 조성돼있어서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도서관에 없는 인천 관련 자료를 찾으려고 오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분들은 대부분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이죠. 연구자들이나 40대 방문객이 가장 많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숙제를 하러 오기도 하고 학부생 이상의 학생들은 자료를 찾으러 와 궁금한 게 있으면 상주하고 있는 전문위원들한테 묻고 즉석에서 답변을 들으니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사진이나 자료를 보면서 옛 추억을 회상하거나 질문하며 자료관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 가곤 한단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남긴 많은 자료의 역주번역을 해놨습니다. 그걸 보러 전국에서 오는 전문가들이 많아요. 역사자료관에 전문위원이 두 명뿐이지만, 학문 영역으로 봤을 때 인천이 선두주자라고 생각합니다. 타 지역에서 벤치마킹하러 많이 찾아옵니다."

1973년 처음으로 '인천시사'를 발간했지만 그때의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강덕우 전문위원은 책을 발간하면서 남겼던 자료가 지금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런 과오를 극복하려고 '인천역사문화총서'를 만들었습니다. 이후에 '인천역사대사전'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인천의 역사를 시민들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민족대백과사전처럼 규모 있게 만들어야겠지요. 5~6년 안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급하게 한다고 작업의 속도가 나는 것도 아니고, 성과보다는 질적으로 승부를 걸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인천시역사박물관, #강덕우, #강옥엽, #인천역사문화총서,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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