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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리고있는 가운데 본행사가 끝난 후 행진을 시작하고있다.
 지난 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리고있는 가운데 본행사가 끝난 후 행진을 시작하고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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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눈이 내리는 영하의 날씨에도 전국에서 190만 촛불이 모여 "박근혜 퇴진"과 "박근혜 체포"를 외쳤다. 시민들은 스스로 풍자와 해학이 담긴 손팻말을 준비하거나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하고 기존 노래에 가사를 바꿔 부르는 등 유쾌한 민주주의 축제를 만들었다.

지난 집회에서 사상 최대 규모가 모였지만, 이제 시작이다. 시민들은 주말마다 다시 모여 곪아 터진 사회를 바꾸기 위해 끈질긴 시민 항쟁을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주말 촛불 집회만이 아니다. 오는 11월 30일에는 노동계의 1차 총파업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 불복종 행동도 벌어진다. 

이러한 성난 민심의 요구에 정치권도 대통령 탄핵을 준비하고 있다. 바야흐로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광장의 시민들은 구체제의 해체와 정의로운 사회 요구해

매주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단지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의 퇴진과 처벌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은 광장에서 "새누리당 해체하라", "세월호 7시간 진상을 규명하라", "재벌들도 공범이다. 재벌기업 처벌하라", "역사 왜곡 국정교과서 당장 폐기하라", "굴욕적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하라" 등 여러 현안에 주권자로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광장의 요구는 구호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래와 퍼포먼스로 드러나기도 한다. 광장에서는 "돈도 실력이야"라고 말한 정유라의 반칙을 조롱하며 공정하지 못한 사회를 비꼬는 퍼포먼스가 벌어지기도 하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합창이 울려 퍼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구호, 노래, 퍼포먼스의 배경에는 "우리가 주권자다", "세상을 바꾸자"라는 외침이 한가운데에 관통하고 있다.

그러니까 "박근혜 퇴진"과 "박근혜 체포"의 외침은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끌어내 헌법이 정한 정치 질서를 파괴한 죄를 처벌하고 박근혜 정책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외침이며 특권층의 반칙으로 점철된 구체제를 해체할 것을 요구하는 외침이다. 동시에 그를 통해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외침이다.

박근혜 퇴진과 처벌에는 구체제의 해체와 '빛이 어둠을 이기고' '참이 거짓을 이기며' '진실이 침몰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들은 기성 정치권이 자신들의 요구를 얼마나 담아내어 실현할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국회에는 여전히 박근혜 체제의 부역자인 새누리당이 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정치적 셈법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고 있다. 물론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현 선거 제도의 한계 때문인 점도 있고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 때문인 점도 있다.

어쨌든 광장의 요구가 분출하는 현 시점에서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직접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상상해야

 직접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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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기 힘든 국정 농단과 그로 인해 헌정 중단에 버금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만큼 새로운 상상을 해보자. 광장의 열기를 이어갈 직접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구상해보는 것이다.

시민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는 국회를 대신해, 광장의 요구를 올곧게 담아낼 시민 의회가 있다면 어떨까? 시민의 힘으로 광장에서 300명의 시민 의원을 선출해서 합의된 의견을 제출할 기구를 구성하면 어떨까? 현 국회는 국회대로 돌아가되, 새롭게 시민 의회를 구성하여 기존 정치권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떨까?

시민 의원 300명은 현 국회의원 수와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시민 의원은 종종 국민의 의사에 눈감곤 하는 직업 정치인이 아닌 일반 시민을 대다수로 채우자. '민주주의 사회의 상식을 지닌 200명의 일반 시민'을 시민 의원으로 뽑자. 이들 시민 의원은 수많은 자원자 중에서 추첨으로 선출하면 좋다. 이들은 시민 의회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시민 의회 내에서 초기에는 주로 상식적인 시민의 눈높이에서 배심원 역할을 하겠지만 성장 속도에 따라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각 분야 전문가 100명'을 시민 의원으로 뽑자. 이들 전문성을 지닌 시민 의원은 광장과 공론장에서 시민들의 추천을 받자. 이들 전문가들은 일반 시민 의원과 함께 소통하며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들 300명이 함께 세미나를 벌이고 집중 토론을 하며 합의 과정을 거쳐 광장의 요구를 법률이나 정책으로 구체화하자. 그리고 시민 의회가 구체화한 법률을 국회에 제안해 통과되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시민이 주권자로서 '시민 발의권'을 행사하자.

시민 의회를 통해 우리의 다양한 요구를 법률과 정책으로 구체화해 국회와 행정부가 처리하게끔 계속 압박하자. 이렇게 헌법상의 권리를 현실에서 실현해 보는 것이다.

'추첨으로 선출한 시민 의회'가 광장의 요구를 수렴할 수 있어

이것은 무모하기만 한 상상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는 광범위하게 지적받고 있다. 그래서 그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는 세계 곳곳에서 여러 형태로 실행되고 있다.

대의 민주주의는 '주인-대리인 문제'를 낳곤 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 의회가 이미 실행된 바 있다. 2003년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정부는 전형적인 소선거구제 의회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추첨으로 선출한 시민 의회'를 세웠다. 당연히 시민 의회는 직업 정치인이 아닌 민주주의 사회의 상식을 지닌 일반 시민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들은 강도 높은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더욱 공정한 선거 제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혹여 어떤 이는 시민 의회를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구성하는 것에 물음표를 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선거에서 주로 누가 뽑히는지 보자. 돈이 무척 많거나, 학력이 매우 높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최고 엘리트로 선망받는 이들이 주로 뽑히곤 한다. 왜 '잘난' 사람만 시민을 대표하는가? 사회 구성원은 무척 다양한데 어째서 그토록 '잘난' 사람만으로 대표 기구가 구성되는가? 이는 선거라는 제도의 고유한 특성이자 한계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에서도 선거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선거는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으며, 귀족에게 유리한 제도다. 당시에도 선거는 귀족들이 대표로 선출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 것이라고 비판받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선거는 귀족제, 추첨은 민주제'라고 지적한 것은 유명하다("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적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적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시민들은 선거 대신 추첨을 사용했다. 추첨을 통한 무작위 선출은 주요한 인구 집단들에게 대체로 비례적인 대표를 보장한다. 쉽게 말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골고루 대표가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이른바 민의가 왜곡되지 않고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가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매번 모든 시민이 모여 토론하고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고대 아테네의 시민 법정과 평의회는 아테네 민주정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들 기구는 인민의 권력을 '대행'했다. 그럼에도 그것을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 누구나 돌아가면서 최고 권력 기관을 구성하는 '추첨'이라는 방법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시민이 최고 권력 기관을 번갈아 가면서 차지해 권력을 구성하기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른 것이다.

결국,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랬듯이 추첨으로 선출한 시민 의회는 다양한 시민들로 구성되어 그들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민주적인 방식이다.

시민 발의권을 행사할 '시민 의회' 만들자

그렇다고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방식을 오늘날 그대로 도입하자는 건 결코 아니다. 이미 고대 그리스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민주주의 실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 심화에 참고해야 할 풍요로운 자산으로, 앞서 말했듯 이미 캐나다의 한 주 정부는 그러한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시민 의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전문성도 중요하다. 그래서 시민 의회의 3분의 1은 전문가를 추첨이 아닌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전문가와 일반 시민이 효과적인 협업을 하게 하자.

새로운 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과 결함이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방식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실험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은 크게 성숙했다는 것은 한 달 넘게 계속되는 촛불 집회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의심과 불신의 대상이 된 국회에 그대로 맡기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현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를 준비하자. 광장에서 표출되는 시민의 다양한 요구가 흩어지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주권자가 주인으로서 발언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민 의회를 구성하는 것이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국회가 내놓지 않는 시민 발의권을 우리가 스스로 행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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