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외할머니 사랑해요"<수채 일러스트>
▲ 사랑꾼 소녀의 사랑이 듬뿍 "외할머니 사랑해요"<수채 일러스트>
ⓒ 권순지

관련사진보기


"오늘 밤 일찍 코 자면 내일은 외할머니 오신다!"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때가 되면 내미는, 도깨비가 온다는 괴담보다 더 잘 먹히는 파워를 지닌 카드. 엄카(엄마카드)가 내게도 있다. 신용카드처럼 자주 사용할 순 없어도 크리스마스 깜짝 선물처럼 비밀스럽게 간직했다가 짠! 하고 내미는 짜릿한 감동의 순간이 있는 카드이다.

남들이 말하는 엄카(엄마카드)보다도 더 보물 같은 나의 카드. 친정엄마가 오시기로 한 전날부터 우리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만의 설렘에 빠진다. 난 엄마가 와서 아이들을 돌봐주시면 여유로울 일상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남편은 장모님이 오시면 아이들 재우고 함께 할 치맥타임에 눈을 반짝이며 피곤한 몸을 다독인다.

우리 아이들은 외할머니가 오신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온몸의 기술을 다해 자기 안의 흥을 내보인다.

"아아악!"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잡동사니와 장난감 등으로 발 디딜 틈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집안을 용케 넘어지지도 않고 폴짝폴짝 내달린다.

특별했던 일주일의 사연

올해 4살 된 아들도 외할머니를 많이 좋아하지만, 오빠보다 한 살 아래인 딸은 유독 외할머니와 정이 깊다.

둘째인 딸을 낳은 직후는 육아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양쪽에서 파도처럼 밀려와 내 심신을 집어삼키던 때이다. 게다가 첫 돌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았던 큰 아이가 아직 면역력이 부족했던 시기였던지라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렸다.

아픈 큰아이 혼자 병원으로 데리고 다니며 돌보는 것도 힘든데, 더 작고 어린 둘째를 수시로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씻기는 등 신경 써서 돌봐야 하는 일은 매일 출근하는 남편을 붙잡고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한편, 내가 둘째를 낳던 시점에 친정엄마는 고관절에 무리가 생겨 큰 수술을 받았다. 출산 후 남편 외에 가장 의지하고 싶었던 친정엄마. 엄마는 고용한 간병인과 근처 사는 이모 말고는 찾아오는 이 없는 병실에 홀로 누워계시며 나와는 다른 고통으로 그 시기를 버텨냈다.

무섭도록 고독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지나고 수술한지 3개월이 채 안 되었을 무렵, 여전히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여 걷는 것도 불편했던 엄마는 내게 전화해 말씀하셨다.

"내가 많이 움직이는 것이 힘드니까, 네가 데려올 수 있으면 둘째 데려와."
"갑자기 왜?"
"큰 애는 너랑 떨어지려고도 안 하고, 막상 와도 내가 힘들어서 못 봐주지. 그래도 우리 손녀는 순하고 누워서도 잘 노니까…. 우리 집에 맡기고 너 일주일만 좀 편하게 지내."

서로에게 무리한 그 제안을 엄마가 내게 했을 무렵, 우리 집 둘째는 80일쯤 된 아기였다. 백일도 안 된, 혼자 몸 가누기도 어려운 아기였지만 친정엄마 손을 빌리기 좋은 조건도 여럿 가지고 있는 순둥이이기도 했다. 몇 가지 사정으로 모유를 먹이기가 힘들어 분유를 먹이던 터였고, 순하디 순했던 딸아이는 사람 눈만 마주치면 방긋방긋 웃어주며 낯가림도 거의 없었다.

다만 걸리는 큰 문제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사는 곳인 대전에서 친정인 아산까지 차로 운전해서 가면 1시간 반쯤 걸리는데, 아기와 가기엔 꽤 먼 거리였다. 물론 내가 운전에 능숙했고, 차에는 아기를 태울 수 있는 카시트가 장착되어 있긴 했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 불안감이 가사질 않았다.

또 한 가지는,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누워만 있는 아기이지만, 덜 회복된 몸으로 어린 것을 돌봐야 하는 친정엄마에게 못할 짓이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큰 문제 두 가지를 안고 며칠을 끙끙 댔다.

겨우 모든 마음을 접고 아이를 절대 보낼 순 없다고 다짐했던 그 날, 단 몇 시간 만에 손바닥 뒤집듯 결심이 바뀌며 행동이 순식간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하필 그날 따라 큰 아이는 동생 분유 먹이는 얼마 안 되는 시간도 견뎌내지 못하고 안아달라고 보채기 일쑤였다.

자기 좀 봐달라고, 매순간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도 울며 달려드는 아들. 그리고 그 옆에서 오빠가 떼쓰는 바람에 덜먹은 분유엔 관심도 없다는 듯 날 보며 웃는 딸을 번갈아가며 망연하게 바라보다가 마음을 뒤집은 것이다.

곧바로 만반의 준비를 다해 짐을 싸 싣고, 아이들을 정성스레 태워 엄마에게 달려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과 딸의 짐을 친정에 내려놓고 가는 길엔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딱 일주일만이라도 아들에게 동생을 낳기 전처럼 엄마사랑을 온전히 주며 울음소리 덜 나도록 보듬어주고 싶다는 바람, 그 뿐이었다.

"할머니, 사랑해요!"

딸의 안부는 일주일간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확인했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아직 아픈 할머니가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할 틈도 안주고 순둥이 손녀는 매일 존재 자체로 사랑을 주었다고 한다. 친정 근처에 사시는 딸아이의 이모할머니까지 매일 출근하다시피 와서 아이의 예쁜 미소를 보며 덩달아 많이 웃고 가셨다는 이야기도 훈훈하기만 했다.

다만 제왕절개로 둘째를 출산했다는 핑계로 수술한 엄마 병실에도 못 갔던 딸이자, 80일된 어린 아이를 외할머니 품에 맡기고도 태연하게 일주일을 보냈던 이기적인 내가 뒤늦게 가끔씩 한심하고 미워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혼자서 해야 했을 희생을 포기하고 수술 부위도 덜 여문 친정엄마에게 일주일간 어린 아이를 맡겼던 사연은 두고두고 사무쳤다. 해가 거듭되어 딸아이는 벌써 세 살이고 친정엄마는 다시 건강해졌으니 잊을 법도 한데 말이다.

특별히 힘든 시기에 잠깐이나마 함께 지냈던 기억이 아직 작고 어린 꼬맹이에게도 남아있는 건지, 오빠보다도 유독 외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기다리는 딸. 오빠랑 같이 크느라 다른 딸들에 비하면 곱게 크질 못한 씩씩한 우리 딸은 외할머니만 오면 가녀린 화초가 되어 이리 휘고 저리 휜다.

"할머니~엄마가 나한테 미운 말 했어요!"
"으아아앙~할머니 나 여기 다쳤어~ 호 해줘요~"
"할머니~오빠가 나 블록 안주고 혼자만 갖고 놀아요!"
"할머니 안아줘요~"

고자질은 기본이고 울음도 두 배, 웃음도 두 배가 된다. 게다가 수시로 대놓고 하는 고백은 외할머니의 두 눈이 한참을 초승달이 되도록 행복의 늪에 빠트린다.

"할머니 사랑해요~"

헤프다고 여겨질 정도로 자주 터지는 손녀의 사랑고백이 귀엽고도 재밌어서 한동안 웃느라 주름가실 일이 없는 외할머니와 깜찍한 사랑꾼 손녀는 가끔 내게 도전적인 제안을 한다.

"내가 쉴 때 얘 데려가서 며칠 봐줄게."

애가 100일도 안 되었을 때는 뒤도 안돌아보고 떼어 놓고 왔으면서, 오히려 세 살이나 된 지금은 딸아이가 나 없으면 잠도 못 잘 것 같아 불안하다. 참 웃긴 엄마다.

"생각할수록 달콤하긴 하지만 안 될 것 같은데. 낮엔 잘 놀아도 밤엔 나 없으면 잠 못 잘 거야."

그런데 우리 대화를 다 듣고 있던 눈치 빠른 딸도 엄마 의견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이 자기 생각을 줄줄 외친다.

"나 기차 타고 외할머니 집에 따라 갈 거야. 그리고 음… 어… 이모할머니 집에 가서 멍멍이도 보고 꼬꼬닭도 볼 거야!"

이쯤 되면 과거 친정엄마와 딸에 관한 사무쳤던 감정은 그만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가오는 날이 외할머니의 생신이어서 소소한 축하파티가 예정된지라, 오늘 밤 아이들은 내일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나 역시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데, 내 생일도 아닌데 왜 내가 설레는지 그것도 참 웃긴 엄마다.
광고배너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태그:#외할머니, #외할머니와 손녀, #손녀사랑, #외할머니사랑, #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