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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입니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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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오늘 어느 절에 가요?"

집안 형수의 물음입니다. 일요일이면 공치러 나가는 형님을 집에서 기다리느니, 절집 선문답 여행길에 오를 시동생에게 붙겠다는 겁니다. 보통 '시댁'의 '시'자와 비슷한 '시'금치 발음에도 고개 돌린다는 며느리가 시동생에게 붙겠다니. 우리나라 며느님들, 이 소리 들으니, 정신이 나갔냐 싶지요? 맞습니다.

저희 형수님, 요 정도면 도(道) 통한 게지요. 도(道)가 뭐 특별한 건가요? 자신을 이기면 그게 도(道)지요. 아내, 형수와 둘이 절에 다녀오라더군요. 왜냐? 형수, 열여덟에 시집와 살아온 "세월 속에 가슴에 박힌 대못 뽑아주라"는 거죠. 맺힌 가슴, 절집 다니다 보면 아픔 내려놓겠죠.

이렇게 길을 나섰습니다. 하늘은 푸르고 들판은 황금입니다. 이런 길은 걸으면서 차분히 감상하는 게 최고지요. 전남 해남 두륜산 대흥사 입구. 큰 절집임을 알리듯 일주문이 장중합니다. 계곡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 진중합니다. 이를 노래한 해남문학회 나관주 님의 <대흥사> 시 읊고 가지요.

정구업 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해남 대흥사는 가람 배치가 특이합니다.
 해남 대흥사는 가람 배치가 특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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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입구에는 시화전이 한창입니다.
 해남 대흥사 입구에는 시화전이 한창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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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흥사
                     나 관 주

  보아라 저 늠름한 팔 형제 기상들을
  겨드랑 옥구슬을 면면히 쏟아내니
  가람의
  삼라만상들
  우물쭈물 춤춘다

  깍지 낀 멧부리들 호시탐탐 수비대
  어진 자 길러내고 불순자 추방하는
  경쟁의 무질서 속에
  평화스런 외연이며.

대흥사로 향하는 계곡, 자리 깐 사람들이 보입니다. 물 좋은 아름드리나무 숲이 필연적으로 곡차를 부르는 게지요. 그만큼 운치가 뛰어난 숲입니다. 해남 대흥사는 대형 주차장에서부터 걷는 게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예의입니다. 우스갯소리 하나 하죠.

"시주 많이 하는 사람을 위한 절집의 배려다."

지인들과 간혹 절집 입구부터 본당까지 쭉쭉 빵빵 뚫린 아스팔트길을 두고 하는 농입니다. 이는 전라도와 경상도 절집을 나누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시주할 사람들이 많아 비교적 부유한 경상도 쪽 절들은 시주하기 편하게 길이 쫙 빠졌고, 시주가 덜한 전라도 쪽 사찰은 걸어서 가게끔 되어 있다는 거죠. 남도의 절집을 다녀 본 결과, 일부분 인정합니다. 혹, 이런 농담이 업 될까 두려워, 입으로 지은 죄업을 깨끗이 한다는 '정구업(淨口業) 진언(眞言)'을 3회 독송합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서산대사 휴정 스님의 의발이 전해지는 '대흥사'

해남 대륜산 대흥사, 서산대사의 숨결이 함께 있는 부도전입니다.
 해남 대륜산 대흥사, 서산대사의 숨결이 함께 있는 부도전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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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곳곳에 휴식 공간이 자리합니다.
 해남 대흥사 곳곳에 휴식 공간이 자리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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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大興寺)는 백제 때 창건된 유서 깊은 도량으로 해남 두륜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옛날에는 두륜산을 대둔산, 한듬산 등으로 불러 대둔산 또는 한듬절이라고도 했다. 대흥사 창건과 관련하여 426년에 정관존자, 혹은 514년에 아도화상, 혹은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 휴정 스님의 의발이 전해지고,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13대 종사와 13대 강사가 배출되면서 선과 교를 겸비한 팔도의 종원으로 자부했다. 1789년에 정조대왕으로부터 '표충사' 편액을 하사받아 서산대사의 충의를 기리게 되었다. 사찰 경내는 북원, 남원, 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흥사 일주문 앞 안내판에 적힌 설명입니다. 이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대흥사에 서면 그냥 큰 절이구나 느끼게 됩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부도전이 나옵니다. 부도전 앞 소나무 세 그루가 풍미를 자아냅니다. 담장 안에 부도와 탑비가 즐비합니다. 문헌 등에서 익히 봤던 서산대사와 초의선사 등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대흥사 회주 보선 스님이 전하는 서산대사의 무상한 깨달음 관련 노래입니다.

"낮이면 한 잔의 차요
 밤들면 한바탕의 잠일세
 청산과 백운이
 함께 무생(無生)을 이야기 하네"

대흥사 곳곳을 걸으면서 좋았던 건, "사람은 목숨을 위해 의사를 섬기고, 이기기 위해 세력을 의지한다. 법(法)은 지혜 있는 곳에 있고, 복(福)은 지으면 세상이 빛난다.(법구경)"라는 좋은 글귀들을 군데군데 세웠다는 점입니다. 삶의 여행에서 때론 아무런 상념 없이 멍 때리기도 필요하지만, 또 때론 제대로 사유하는 시간이 간절하기도 합니다. 대흥사는 이런 장점을 잘 살렸다고 할까.

해탈문, 대흥사란 도리천으로 들어가는 '불이문'

해남 대흥사 해탈문입니다.
 해남 대흥사 해탈문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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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문을 나오니 넓은 분지가 펼쳐집니다. 이 풍경에 대흥사가 도리천인 줄 알았습니다.
 해탈문을 나오니 넓은 분지가 펼쳐집니다. 이 풍경에 대흥사가 도리천인 줄 알았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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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기대했더니, 느닷없이 해탈문(解脫門)이 나옵니다, 대흥사에 따르면 "불교 우주관은 수미산 정상에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그곳에 불이문(不二門), 즉 속계를 벗어나 법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이 서 있다"는 겁니다. 이로 보면 대흥사가 바로 도리천이라는 거죠. 그래서 도리천인 대흥사에 들어가는 문은 불이문이자, 해탈문이라는 겁니다. 현실에서 극락세계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대단한 자부심이 녹아 있습니다.

그래선지 특이하게 대흥사 해탈문 안에는 다른 사찰에 으레 자리한 사천왕상이 없습니다. "북으로 영암 월출산, 남으로는 송지 달마산, 동으로는 장흥 천관산, 서로는 화산 선은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완벽한 형국이어서 사천왕상이 없다"고 합니다. 이게 아니더라도, 도리천 안에 굳이 사천왕이 필요 없지요. 사천왕은 도리천 밖에서 지키면 되니까.

해탈문을 넘어서니, 넓은 분지에 들어선 대흥사 가람 뒤로 두륜산과 푸른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대흥사, 도리천으로 꼽아도 손색없을 듯합니다. 큰 은행나무 밑에 기둥을 세워 그물을 쳐 놓았습니다. 그 옆에 포대도 보입니다. 떨어지는 은행 열매를 모으기 위한 노력입니다.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여기서 번쩍 깹니다. 도리천에 있다가 현실 세계로 다시 나온 느낌이랄까.

대흥사 경내, 어느 방향으로 돌지 망설입니다. 대흥사 가람 배치 형식의 독특함에 따른 헷갈림입니다. "절의 공간은 절을 가로 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원과 남원 2구역으로 구분하였다. 북원은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등이, 남원에는 천불전, 용화당, 가허루, 동국선원, 표충각, 대광명전, 보련각 등의 전각이 배치" 됨에 따라, 좌측 남원 방향으로 돌기로 합니다.

항상 부처님이 계시고 누구나 성불 가능하다는 의미의 '천불전'

대흥사 경내에서 길을 남원 방향으로 잡으니 초의 선사 동상이 보입니다.
 대흥사 경내에서 길을 남원 방향으로 잡으니 초의 선사 동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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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천불전입니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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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 선사를 봅니다. 초의 스님은 "대둔사와 부속 암자였던 일지암에 머물면서 한국 차의 고전으로 알려진 '동다송' 등을 편찬, 우리 차 문화의 역사와 우수성을 알리고, 선과 차의 세계가 하나로 통하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정신과 맛"을 강조하셨습니다. 초의 선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분이 다산 정약용과 완당 김정희입니다. 아래는 대흥사가 전하는 추사 일화입니다.

"추사는 제주 유배 길에 대흥사에 들러 초의와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차를 마시기도 했다. 일찍이 초의가 추사에게 '예부터 성현들은 모두 차를 좋아했으니 차란 군자와 같아서 사특함이 없다 (古來賢聖俱愛茶 茶如君子性無邪)'고 함에, 추사는 '조용한 가운데 혼자 앉아 차를 마심에 그 향기는 처음과 같고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은 저만치 홀로 피니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라고 화답하였다."

서산대사를 모시는 표충사를 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경남 밀양에 있는 표충사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해남 대흥사에 서산대사를 모신 이유가 있더군요.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한 도량"이라는 겁니다. 이는 대흥사가 크게 일어난 이유 중 하나랍니다.

돌고 돌아 천불전에 듭니다. 천불전(보물 제1807호)은 과거, 현재, 미래 어느 곳에나 항상 부처님이 계시고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의미로 천불을 모시는 전각입니다. 대흥사 천불은 "경주 불석산 옥돌로 조성한 것이다. 4년에 한 번 천불 가사를 바꾸는 불사가 있다, 부처님께서 수하셨던 가사를 개인이 소장하면 마음 속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인연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 한편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는 게지요.

"저 글씨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글씨래!"

대흥사 연리근입니다.
 대흥사 연리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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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연리근을 돌아 들면 대웅보전이 나옵니다.
 해남 대흥사 연리근을 돌아 들면 대웅보전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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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살 빗자루를 들었습니다. 미륵불...
 어느 보살 빗자루를 들었습니다.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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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을 나와 대웅보전으로 향합니다. 가던 길에 연리 근을 봅니다. 인근의 두 나무가 만나 합쳐지는 걸 '연리(連理)'라 합니다. 오랜 세월 함께하며 바람과 햇볕 따라 부대끼며 겹쳐 하나가 되는 게지요. 뿌리가 만나면 '연리 근(根)', 줄기가 만나면 '연리 목(木)', 가지가 만나면 '연리 지(枝)'입니다. 이렇게 따로 둘이던 게 하나 되는 건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됩니다. 이런 데서 빌면 효험이 있다더군요.

저 멀리 침계루 등이 보입니다. 언제 나타났을까. 침계루 옆 담장 안에 보살이 눈에 띱니다. 보살이 심진교, 금당천과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보일락 말락, 손에 빗자루를 들었습니다. 금당천을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나그네를 천계로 이끄는 듯합니다. 그가 어지러운 세상을 구한다는 미륵불처럼 여겨집니다. 나쁜 마음일랑 다 쓸어버리겠다는 거죠.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세상은 그렇게 보인다죠?

"저 글씨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글씨래."

대웅보전을 살펴보기도 전에, 형수의 목소리가 귀에 꽂힙니다. 목소리가 밝고 투명해진 걸로 봐서 마음의 짐을 많이 털어낸 듯 싶습니다. 어디 부처가 따로 있답디까. 형수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갑니다. 대웅보전 왼편으로 제주도 유배 중에 추사가 썼다는 백설당 편액 '무량수각(無量壽閣)'입니다. 글자가 도톰하고 끝이 뭉턱한 걸로 봐서 굳은 마음을 표현한 듯합니다. 아마, 부처님을 향한 구도자의 마음이지 싶습니다.

추사체를 감상한 후에야 대웅보전(大雄寶殿)에 눈길을 줍니다. 추사 뒤로 밀린 부처님께 사죄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부처님을 대신해, 대웅보전 앞에 자리 잡은 동자승 인형이 빙그레 웃습니다. 염화미소입니다. 여기저기 대웅보전을 소개했는데 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 관심 가는 게 있습디다.

남이 자기보다 나은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악'

추사 김정희가 쓴 해남 대흥사 백설당 편액입니다.
 추사 김정희가 쓴 해남 대흥사 백설당 편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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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입니다. 대웅보전 글씨는 이광사의 작품이랍니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입니다. 대웅보전 글씨는 이광사의 작품이랍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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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건물 외부장엄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어칸 상부에 자리한 2행 종서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는 편액이다. 이광사(1705~1777)의 글씨로 추사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 글은 백설당에 걸린 추사 편액과 함께 대흥사 명필로 손꼽힌다."

왜 그랬을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관심이 명필을 본 걸까, 명필에 따른 돈을 본 걸까. 여기서 당대의 명필이라는, 지리산 청학동 수미산방에 앉은 화봉 최기영 선생을 떠올렸습니다. 그에게 요청해 받은 글씨가 '길상여의(吉祥如意)'입니다. 길하고 상서로운 일이 뜻대로 되길 바란다는 의밉니다. 즉, 세상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걸 깨우치는 순간, 욕심까지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지요. 다음은 대웅보전 앞에 쓰인 문구입니다.

"세 가지 악이 있다. 첫째는 마음이 약해서 착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항상 남이 자기보다 나은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셋째는 남이 자기보다 나은 것을 알면서도 수치스럽게 여겨 바른 가르침을 묻지 않는 것이다. - 대법거다라니경"

살면서 꾸준히 자신을 알아야겠지요. 바람이 붑니다. 바람, 그 원천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시원함을 느끼는 건, 성불(成佛)을 향해 가는 증거지요. 대흥사를 돌아본 감흥 해남문학회 윤광석 님의 '대흥사 예찬'으로 대신합니다.

    대흥사 예찬
                              윤 광 석

  남도 명지 두륜산 허리, 영기 서린 곳
  서기 426년 신라 24대 진흥왕 35년쯤

  아도 화상(和尙) 앞장서 큰절 세우매
  그 이름도 찬란하더라, 해남의 대흥사!

  겨레 스승 서산대사 머물렀던 그곳
  불국정토 대망 찾아 수도승들 모여들고

  사시사철 관광객들 발길 이어지나니
  땅끝 해남 명소되어, 영원토록 빛나리

대흥사 삼층석탑과 대웅보전입니다.
 대흥사 삼층석탑과 대웅보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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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대웅보전 앞에 놓인 익살스런 동자승들이 웃음짓게 합니다.
 대흥사 대웅보전 앞에 놓인 익살스런 동자승들이 웃음짓게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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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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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해남, #대흥사, #해탈문, #서산대사, #초의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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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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