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빛내는 또 다른 주역을 찾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주'와 '조'는 따로 없습니다. 혹시 연기는 잘하는데 그동안 이름을 잘 몰랐다고요? 가만 보니 이 사람 확 뜰 것 같다고요?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이들을 <오마이스타>가 직접 '픽업'합니다. [편집자말]

 영화 <나홀로 휴가>에서 강재 부인 역의 배우 김수진이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근 2년 간 약 10작품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모습을 보인 김수진을 만났다.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고 넘겨 짚지 않길. 2001년부터 연극 무대에 꾸준히 올라온 베테랑이다. ⓒ 이정민


이름만 놓고 보면 사실 참 평범하다. 그가 출연작에서 맡은 역할? 영화 <타워>(2012)에서 설경구의 아내, 영화 <화차>(2012)에서 조성하의 아내, 영화 <검은 사제들>(2015)에선 김윤석의 동생. 게다가 지난 9월 개봉한 <나홀로 휴가>에서도 박혁권의 아내였다. 누군가의 아내 혹은 가족으로 짧게 등장하던 배우 김수진을 지난 3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짧지만 굵다. 잘 알려진 얼굴이 아니라지만 벌써 연극 무대에서 15년 이상 내공을 쌓은 베테랑 아닌 베테랑이다. 지난해부터 대중 매체에 등장했을 뿐이지 대학로 거리를 걷다 보면 수 명 중 다수가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한 3년간 바짝 뛰어 보려고요"라며 그가 대수롭지 않은 듯 기자에게 웃어보였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영화 <아수라>에서 그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재개발에 반대하던 목소리 걸걸한 시의원이 바로 김수진이었다.

배우 김수진은 누구?

정식 데뷔, 그러니까 오디션을 통과해 돈을 받으며 연기하기 시작한 건 2001년부터다. 극단 한양레퍼토리 출신으로 김민기 연출의 연극 <의형제>가 데뷔작이다. 김윤석, 조승우, 배성우 등이 거쳐 간 바로 그 작품이다.

"작년에 운이 좋아서 올해까지 치면 10작품 정도 한 거 같다.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고, 드라마와 영화를 하면서 배운 게 많다. 연극만 팔 때는 부끄럽지만 이쪽 일을 크게 염두에 두진 못했다. 평생 연극만 고집할 거 같았는데 허리를 다쳐 2년 동안 공백이 생겼었다. 연기는 계속 하고 싶고, 스크린이든 TV든 같이 호흡하고픈 욕망이 커지더라.

20대가 연기의 기본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30대는 돈이 안 되는 여러 것들에 도전하던 시기였고, 40대가 되어서야 어떤 작품이나 캐릭터를 만날 때 접근법이 조금 보이더라. 이제야 작업하고 싶은 감독님과 함께 맞춰 보고픈 배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 멀었지(웃음).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깊이도 가져가야 하니까. 일단 지금 과정은 괜찮다.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고 다 소화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때를 기다리고 있다. 내 잠재력이 터질 작품을."

작품 준비 과정

 영화 <나홀로 휴가>에서 강재 부인 역의 배우 김수진이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 중 그는 <아수라>에 대한 감상을 제법 길게 전했다. 그만큼 잔상이 남는 좋은 작품이라는 취지였다. ⓒ 이정민


<아수라>에서 단 2회 차 촬영이지만 김수진은 허투루 준비하지 않았다. "조폭출신 박성배 시장(황정민 분)에 반대하며 재개발을 막는 모습이 어찌 보면 선한 쪽 같지만 그 역시 자기 이권을 위해 아귀다툼 하는 거였다"고 김수진은 해석했다. 시나리오만 팔 수 있었지만 그는 유튜브 등을 통해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 양상을 공부했다. 최근까지 몇몇 국회의원의 행태를 보며 현실감 또한 담보했다.

"잔인한 거 마초적인 걸 싫어하는데 <아수라>는 좋았다. 폭력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았다. 여러 면에서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영화 같다. 일단 자본의 입김으로 요즘 영화들이 감독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어려운 환경인데 <아수라>는 끝까지 감독의 생각을 밀고 갔다.

또 메시지 면에서 검‧경‧정치인들이 양심을 버리고 돈만 쫓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역설적으로 한 방 보여줬다. 관객 입장에선 감정이입할 대상이 마땅치 않으니 배신당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신념이나 반성을 잊게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수라일 수 있다는 걸 제시하고 있다. 영화에 참여한 후 그런 점이 난 좋았다."

짧게 참여한 영화에 강한 애정을 보였다. 그만큼 한 작품 한 작품이 그에겐 소중하기 때문일 터. 수차례 오디션을 보며 겪었던 그만의 복잡다단한 감정과 나름의 깨달음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특정 역할을 따내기 위한 오디션 경험은 없고 불특정 캐릭터 중 하나가 주어지면 소화하는 식이었지만 김수진은 매번 자기만의 무기를 들고 오디션 장을 찾는다. 연륜의 힘일까. 한번 눈도장을 찍으면 줄줄이 다른 작품 오디션 기회가 주어진다. "나름 독백을 준비해 가거나 내 장점을 보일 수 있는 특정 상황을 가져가 보기도 한다"며 그가 영업 비밀도 살짝 공개했다.

양질 전환 법칙

 영화 <나홀로 휴가>에서 강재 부인 역의 배우 김수진이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런 그에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40대 여배우의 현실에 대해 물었다. 무거울 수 있는 질문인데 김수진은 짐짓 "여자 배우 입장을 대변할 처지는 아니"라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요구되는 때인 것 같다"는 답을 내놓았다. 일리 있다. 40대 50대 남자배우들은 '명품배우'라며 추앙받고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상대적으로 그 또래 여성배우들이 할 수 있는 작품은 적다.

"여성 관객들이 늘고 있으니 남자가 나오는 걸 많이 볼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여성의 워너비(wanna be)는 여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20, 30, 40대 여성들이 좋아할 것이다. 여성 관객이 많아진다는 건 감정 이입할 대상을 다양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거기에 맞춰 변모하는 거 같다. <시그널>의 김혜수 선배도 그렇잖나. 굳이 연애감을 내세우지 않고 주도적인 여성을 그려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거 같다. 오히려 그게 남성 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누구의 아내 역을 많이 했지만 조금씩 넓혀나가고 있는 거 같다. 오디션을 보러 들어가면 그래서 떳떳하고 기분이 좋다. 물론 떨어지면 마음이 쓰지(웃음). 그럴 땐 동료나 선배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더라."

이 대목에서 김수진은 "양이 질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양질전환의 법칙'이다. 충분히 양을 쌓으면 질이 확 달라진다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조연과 단역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시그널>에 출연했을 때 (세상의 불의에) 마음의 화가 잔뜩 있었는데 다행히 연기로 담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기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광장으로 뛰쳐나갈 것 같은 에너지가 그에게 있었다.

양심과 반성의 힘

그 에너지를 구체적으로 파보자. 이는 김수진이 15년 간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원동력이기도 하다.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담백하게 말하는 그에게 재차 물었다. 그 동력이 무엇인지.

"어릴 때부터 어디 가면 혹시 연출가냐, 작가냐, 아니면 기자냐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기자나 법조인이 꿈이기도 했다. 내가 정의 구현에 좀 관심이 많다(웃음). 자기주장 하는 걸 어색해하지 않아서 그런가. 5남매 중 맏이인데 아버지가 그렇게 키웠다. 그래서 건방지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배우라는 직업은 선택받는 입장이라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 사실 고등학생 때 선배들 꾐에 연극반에 들어간 게 계기였는데 할수록 재밌더라. 고민도 많았지. 대학 졸업할 때까지도 고민했다. 20대엔 그저 10년만 버텨보자는 마음이었는데 그만큼 버텼더니 다른 할 수 있는 게 없더라(웃음). 성격상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고 다른 사람의 삶을 기웃거려도 이상하지 않은 직업이 배우 같다.

연기자는 자기 자신이 곧 재료지 않나. 좋은 재료가 되도록 갈고 닦아야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 사회적 지위가 없기에 자신과도 싸워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타인의 이야기도 잘 들어야 하고. 그래서 배우는 쉽게 늙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쉽게 비교될 수 있는 만큼 자존감은 잘 들고 다녀야지! (웃음)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두는 게 중요하다."

 영화 <나홀로 휴가>에서 강재 부인 역의 배우 김수진이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신을 표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래 중 아직 드러나지 않은 좋은 배우들이 많다는 걸 강조하며 김수진은 보다 다양한 작품이 나와 이들과 함께 발굴 혹은 재조명 되길 바라고 있었다. ⓒ 이정민


배우론 만 가지고도 밤을 샐 기세였다. 김수진은 차기작인 <침묵>에서 재판장으로 분한다. 역시 짧은 분량이지만 이를 위해 최근 네 차례 법원을 방문해 참관했다. 이 경험을 전하며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어쩌면 평생 그가 연기하는 이유일 수도 있는 말이었다.

"변호사인 친구랑 법원을 다녔는데 매우 어려 보이는 판사가 있었다. 우리 보다 어려 보였는데 친구 말로는 적어도 우리 보단 훨씬 나이가 많아야 판사를 할 수 있다더라. 아마 본인 양심에 귀 기울이며 속이지 않는 삶을 살아서가 아닐까. 나 역시 정직한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러면 안 늙을 것 같다.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을 탐구하며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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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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