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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찾아 산티아고 18] 저를 롤라라고 불러주세요 ⓒ 정효정
저를 롤라라고 불러주세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롤라(Lola)라는 이름이다. 시작은 카스트로 헤리즈에서 묵었던 레스티의 알베르게에서였다. 호스피탈레로는 나만 마주치면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마리아 돌로레스(Maria Dolores)'라고 불렀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치마를 살짝 들어 인사를 받았다. '네, 아저씨 (Sí, Señor)' 그때부터 내 별명은 '마리아 돌로레스'였다.

그리고 엘 아세보(El Acebo)에 도착했을 때였다. 친구들이 날 소개하며 '얘는 마리아 돌로레스야'라고 하자 호스피탈레로 페트로와 마욜란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둘이 빠른 템포로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No me llames Dolores llamame Lola. (나를 돌로레스라고 부르지 마세요, 롤라라고 부르세요)"

엘 아세보 마을 순례 초반에는 주로 붉은색 지붕이었으나 이젠 까만색 지붕이다. ⓒ 정효정
엘 아세보 마을 돌담집과 2층 테라스가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 정효정
이 플라멩코 리듬의 노래 제목은 '나를 돌로레스가 아닌 롤라라고 불러주세요'다. '돌로레스'라는 이름의 뜻은 '통고의 성모', 성모마리아의 7가지 고통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름의 의미가 무겁다보니 애칭이 주로 사용되는데, 어렸을 땐 '롤리타', 커서는 '롤라'라는 이름이 쓰인다고 한다. 그때부터 내 별명은 '롤라'로 바뀌었다. 

엘 아세보를 나와 폰페라다로 향하는 길, 오래된 밤나무와 검은 지붕을 지닌 아기자기한 산동네를 지나고 있었다. 폰페라다 도착까지 6km 정도 남았을 때, 도로에서 누군가 날 향해 외쳤다.

"롤라!"

페트로와 마욜란이다. 그들은 차를 이용해 폰페라다로 가고 있던 차에 날 발견한 것이다. 페트로가 차를 가리키며 웃어 보인다. 나는 두말 않고 차를 탔다.

순례 28일 만에 처음 타본 자동차 이 좋은 걸 여태 안 타고 걸어다녔다니... ⓒ 정효정
몰리나세카의 골목길 산을 내려와 예쁜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작은 마을. ⓒ 정효정
그렇게 남은 6km를 차로 이동했다. 순례를 시작한 지 28일째. 처음으로 타 본 차다. 자동차란 정말 좋은 거구나. 난 정말 감동했다. 이 좋은 걸 놔두고 내가 왜 걷고 있는 건가 싶다. 숙소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리셉션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는데, 앞서 걷고 있던 친구들이 오더니 깜짝 놀란다.

"어떻게 된 거야?"
"날아서 왔어."
"언젠간 네가 뭔가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거였구나."

지블란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롤라, 네가 마법을 쓰는 건 잘 알겠는데 여기선 자제해 줘. 여기는 템플 기사단의 요새가 있는 곳이라고. 마녀로 몰리면 화형당할지도 몰라."

템플 기사단의 요새 동화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성의 모습이다. ⓒ 정효정
폰페라다 템플 기사단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 정효정
템플 기사단의 요새. 이 요새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282년에 지어졌다. 이 성의 사진을 본 순간부터 이곳에 오는 걸 기대했다. 동화속에 나오는 듯한 완벽한 중세의 건축물이다. 무엇보다 템플 기사단이라니! 난 그동안 접했던 영화나 책을 떠올렸다. 

템플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예루살렘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그러나, 점점 커진 그들의 세력을 두려워한 필립 4세와 교회의 견제로 결국 그들은 화형에 처해지고 전 재산이 몰수되었다.

템플 기사단에는 여러 신비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중심엔 그들이 솔로몬의 신전 지하에서 찾았다고 전해지는 보물이 있다. 보물의 정체는 성배, 혹은 성궤, UFO조각, 예수님이 입었던 성의 등 다양하게 구전된다. 덕분에 이 미스테리한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소재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나, 댄 브라운의 소설이자 영화 <다빈치 코드> 등이 대표적이다.

템플기사단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매년 7월 보름달이 뜰 때면 템플기사단의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 신비로운 도시를 마지막으로 순례자들은 전체 순례길에서 두 번째 높은 산으로 향하게 된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마지막 고비다.

템플 기사단의 요새 중세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잔뜩 서려있다. ⓒ 정효정
카미노의 마법

폰페라다의 알베르게에서였다. 늘 그렇듯 우리는 둘러앉아 식사와 와인을 나누며 떠들썩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우리 옆에 앉아있던 프랑스 할머니 순례자 중 한 명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친구가 우리에게 웃으며 설명했다.

"다양한 국적의 너희들이 이렇게 화목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걸 보니 눈물이 난다는 구나."

렌틸콩 스프에 넣은 소시지가 인원수에 맞게 돌아갈까를 세고 있던 우리는 머쓱해졌다. 현재 모인 인원은 페루, 미국, 한국, 브라질,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체코... 다국적이긴 하다. 그런데 이게 대체 눈물을 흘릴 일인지 모르겠다.

순례길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긴 하다. 하루종일 몸을 움직여서인지, 유난히 눈물에까지 이르는 감정의 비등점이 낮은 편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사람들은 '순례길의 마법'이라고 한다. 마법은 심심찮게 일어났다. 다음날, 27km를 걸어 비야프란카 델 비에르소 (Villafranca del bierzo)에 도착했을 때였다.

비야프란카 델 비에르소 입구 이글레시아 데 산티아고 성당까지만 가도 순례를 완주한 것으로 여겨진다. ⓒ 정효정
이 마을 입구의 이글레시아 데 산티아고 성당(lglessia de Santiago)에는 이곳까지만 가도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과 동일한 은혜를 입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교황이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해 이 성당에 있는 용서의 문(Purta del Perdon)을 통과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선포했다고 한다.

성당을 지나 바로 보이는 숙소에 들어가자 미국인 토마스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70세가 가까운 미국 순례자는 평소에 인종차별적 태도와 언행이 예사였다. 뿐만 아니라 동유럽 여성들을 만나면 과하게 껴안고 뽀뽀를 한다든지 해서 나의 미움을 샀다. 같은 미국인 여성에게는 절대로 그렇게 못할 거면서... 하지만 철의 정신력인 동유럽 여성들은 그냥 어깨만 으쓱하고 말 뿐이어서, 나도 그냥 '얽히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슬슬 피해 다녔다. 그런데 그 괴팍한 노인이 모두의 앞에서 울고 있는 거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을에 거의 다 와서 토마스가 빗길에 크게 미끌어진 모양이다. 그런데 체코, 페루, 한국 등 각 나라 사람들이 나서서 그를 도와주고 그의 가방을 숙소까지 옮겨주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며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길 위의 모두가 자신을 도와주었다며. 울고 있는 토마스를 보며 친구들은 어깨만 으쓱했다. 인종차별도 녹인 순례길의 눈물... 이거야말로 순례길의 마법이었다. 

무르익은 가을 10월 중순이 지나자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었다. ⓒ 정효정
그녀가 공허한 이유

비야프란카 델 비에르소는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 곳은 한때 8개의 수도원과 6개의 순례자 숙소가 있었을 만큼 큰 도시였다고 한다. 마을 산책을 하는데 카페에서 헨리에타가 날 부른다. 그녀는 짧은 머리에 깡마른 몸매의 전형적인 북유럽 할머니다. 오늘 축하할 일이 있으니 함께 축하해 달라고 날 부른 거였다.

동네 카페에 앉아 와인을 앞에 두고 그녀의 경사가 무엇인지 들었다. 오늘 그녀의 남편이 마라톤대회에 나가서 42.195km를 완주했다고 한다. 그는 올해 74세라고 했다.

"나는 이 나이에 산티아고를 걷고 있고, 그는 마라톤을 완주했지. 둘 다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고 있는 중이야."

나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 부부를 위해 건배했다. 그녀는 덴마크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인 남편을 만나서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다. 40세가 넘어서 그를 만나고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아마 남편과 결혼은 안 할 거 같아. 하지만 아이는 낳을 거야. 결혼이 날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엄마가 되면서 난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거든."

길위의 성모상 폰페라다를 떠나 만난 성모상. ⓒ 정효정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지난 여행을 떠올렸다. 타지키스탄 파미르 고원에서 나이가 비슷한 영국, 독일 여성과 만났다. 싱어송 라이터인 섬세한 영국여성 조지아나와 화학자인 냉철한 독일여성 트레이시... 우리는 모두 여행을 많이 했고 싱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하는 이야기는 보통 일, 연애, 결혼이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데이트 상대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한탄을 나누고, 결혼에 대한 압박감을 털어놓았다. 이 유럽여성들은 결혼에 대해 진저리를 쳤다. 결혼을 해서 남은 일생을 보내기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혼자 살기에 충분한 수입이 있고, 베를린의 친구들 대부분은 싱글이야. 1년에 한 달 있는 휴가는 내가 원하는 곳을 여행할 수 있고. 지금 내 삶에 만족해."

"수입은 불안정한데, 대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무엇보다 멍청하고 둔한 사람과 평생 함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봐. 싱글이 좋은 점은 관계에 구속되지 않아도 돼서야."

당시 우리 숙소에는 50대 영국 여행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영국에서부터 바이크를 타고 파미르 고원을 넘는 중이었다. 백발 머리를 짧게 자른 스타일리시한 그녀에게 우리는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도전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지아나가 그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고는,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줬다.

"사실 그녀는 공허감을 느끼고 있대."

그리고 그녀는 '아마 아이가 없어서 공허한 것 같다'고 말했단다. 그녀를 동경하던 우리는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더 이상 남성만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 이상, 독립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한 여성에게 결혼을 설득할 명분은 없다. 하지만 아이에 대해선 판단이 흐려지는 게 사실이었다. 우리는 모두 작고 사랑스런 생명체를 보듬고 지켜주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사실 남자에 대해선 그동안 겪은 바가 있기에 딱히 환상이 끼어들 틈이 없었지만, 아이는 아직 겪지 않은 미지의 세계여서 더욱 그렇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트레이시가 결심한 듯 말했다.

"난 내가 진정 아이를 원할 때 어머니가 될 거야. 하지만 그렇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고 싱글맘이 될래."

조지아나도 말을 받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싱글맘이 되는 게 나아."

나는 잠시 문화적 충격을 받고 할 말을 잃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는 유럽의 여성들은 이런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구나... 그들이 내 의견을 물어보기에 간신히 대답해줬다.

"나는 그렇게 용기있고 대단한 여성은 못돼. 한국의 싱글맘을 둘러싼 환경은 너희들 나라와는 꽤 다르거든. 여성이 혼자 아이를 낳고 기른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해. 나도 아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내 삶이 더 소중해. " 

몰리나세카에서 만난 고양이 들어가기 딱 좋은 공간에서 쉬고 있었다. ⓒ 정효정
엘 아세보에서 만난 다리가 3개 있는 개 다리가 3개지만 활기차게 뛰어다녔다. ⓒ 정효정
헨리에타에게 그 여행에서 받은 여러 가지 충격을 털어놓자, 그녀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 50대 여성이 공허감을 느낀 건, 아이가 없어서가 아닐 거야. 원래 그 나이가 되면 누구든 공허감을 느끼게 되거든. 너 메노포즈(갱년기)라고 들어봤니?"
"헐, 그런 거예요?"
"아마 아이가 있으면 있는 대로 공허감을 느꼈을 거야. 나도 그랬거든."

우리 사회에서 모성애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내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결혼을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이를 가지라는 말을 한다. 가만히 들어보면 조언인 것 같지만 결국 '이대로 살다간 너는 불행해질 거야'라는 섬뜩한 말들이었다.

정말 그런 걸까.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서 그들 말대로 '여자로서 꼭 해봐야 할 경험'과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기쁨', 그리고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되는 걸까. 아이를 낳고 기른 것이 그녀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헨리에타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제 프랑스 순례자가 우는 거 봤지? 너희는 그게 뭐 울 일인가 싶었겠지만, 사실 우리 때는 이런 걸 상상도 할 수 없었거든. 내가 젊었을 때는 오직 결혼과 출산만이 여자의 인생에서 '변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었어. 특히 출산은 여성이 존재를 인정받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지. 하지만 지금 너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을 여행하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과 어울리잖아? 여행 뿐 아니라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고 즐길 수 있는 기쁨과 성취도 다양해졌지. 이렇게 바뀐 세상에 우리가 살았던 방식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거야." 

그리고 헨리에타는 짓궂게 덧붙였다.

"그리고 네가 뭘 하면서 살아도 어차피 갱년기가 오면 인생은 공허해지거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

누군가 놓고 간 가을 길에 굴러다니는 것들을 모아도 이렇게 예쁜 마음이 되었다. ⓒ 정효정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말만 듣고 800km를 걸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태그:#산티아고, #카미노, #폰페라다, #CAMINO,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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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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