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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찾아 산티아고14] 영혼을 위한 병원 ⓒ 정효정
어느 날 내 영혼이 외쳤다. "그만 좀 방에 처박혀 있고 나가서 남자라도 좀 만나." 그것이 내 순례의 이유였다.

그렇게 산티아고를 향해 출발한 지 17일째. 부르고스를 지나면서부터 길은 단조로워지기 시작했다. 스페인 지역의 중앙평원인 메세타 고원 코스였다. 다음 대도시 레온까지는 181km, 이 구간은 순례자들에게는 난코스로 꼽힌다. 길은 길고 지루하고, 마을 간 거리는 떨어져 있어서,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를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난 그 구간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대부분이 평지여서 걷기 편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탁 트인 평원을 볼 일이 없다보니 경치를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걷다가 지치면 큰 구름의 그림자가 평원 위를 흘러가는 걸 보고 있곤 했다. 하지만 아마 여름이었다면 내리쬐는 직사광선에 괴로웠을 것이다.
악명(?)높은 메세타 평원 코스 아무리 걸어도 평원밖에 안보인다 ⓒ 정효정
지금은 폐허가 된 산 안톤 수도원 과거 이곳은 전염병을 치료하는 병원이기도 했다 ⓒ 정효정
한참 평원을 걷다보면 저 멀리 높은 산이 하나 보인다. 산 위에는 무너진 성이 뚜껑처럼 놓여있다.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다. 카스트로 헤리즈는 9~10세기에 스페인과 이슬람 세력이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여러모로 인상 깊은 마을이었다. 마을입구에는 토굴을 이용한 집이 있었다. 동네 아저씨를 따라 들어가 보니 개인 양조장이었다. 와인을 한 잔씩 얻어 마시고 얼큰해져서 마을 중앙의 수도원을 지났다. 수도원 벽에는 해골 모양의 부조가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라틴어로 '죽음'과 '영원'이라고 적혀있었다. 하긴, 죽음 다음에는 영원이긴 하지... 우리는 잠시 벽을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이 마을, 어쩐지 심오하다. 듣기에는 소설 <순례자>의 파울로 코엘료가 이 마을에서 머물며 글을 썼다고 한다.

수도원을 지나 골목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문이 열린 집이 있었다. 그 집 입구에는 "영혼을 위한 병원(Hospital de las almas)"이라고 적혀있었다. 집안에서 좋은 향기가 나고 부드러운 음악이 들려온다. 집을 개조한 갤러리 공간이었다. 마우라는 이탈리아 남성과 니아라는 스페인 여성이 순례길에서 만나 이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벽에는 그들이 찍은 사진이 걸려있고 명상을 위한 공간들과 따뜻한 차, 비스켓이 준비되어 있었다. 
평원위에 우뚝 솟은 성 카스트라 헤리즈 ⓒ 정효정
마을 입구의 토굴 집 지하로 내려가면 개인 양조장이 있다 ⓒ 정효정
우리는 흩어져 각자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비스켓 근처에 자리를 잡고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다들 어떤 이유로 이 길을 걷고, 이 영혼을 위한 병원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어떤 이유로 길을 걷기를 선택하든 모든 사람의 시작점은 하나일 것이다. 영혼의 외침. 어느날 상처받은 영혼이 절절하게 외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만 좀 일하고 좀 쉬어', '그만 좀 널 싫어하고 좀 놔줘', '그만 좀 그녀를 탓하고 이제 좀 잊어' 같은 영혼의 외침. 내 영혼의 경우에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만 좀 방에 처박혀 있고 나가서 남자라도 좀 만나'였지만. 

산티아고 순례길도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쯤 되면 순례자들은 어느새 목적지만 바라보며 관성적으로 걷게 된다. 하지만, 이 영혼의 병원에서는 이런 순례자들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할 시간을 주고 있었다. 당신이 아니라 당신 영혼이 불러서 이곳까지 왔다고. 그때 영혼이 외친 게 무엇이었냐고.
수도원 담벼락 라틴어로 '영원'이라 적혀있다 ⓒ 정효정
인생은 미로 같은 거야

푸엔테 피테로(Puente Fitero)에서 친구들과 헤어졌다. 이탈리아 페루자 순례자 연합에서 운영하는 산니콜라스 알베르게에서였다. 그곳은 봉사자들이 순례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고 난 먼저 길을 떠났다. 어차피 내 걸음이 느리니 그들은 금방 날 따라잡을 것이다.  

오랜만에 혼자가 되어 걸었다. 이테로 델라 베가(Itero de la Vega)라는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한 중년남성이 식당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마을 안쪽에 있는 식당이란다. 왜 전단지를 나눠주나 궁금했는데, 마을에 도착하자 그 의문이 풀렸다. 마을입구에는 야외공간이 있는 근사한 식당이 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멈췄다. 위치상으로 마을 깊숙이 있는 식당은 승산이 없을 수밖에 없다.
이테로 델라 베가 마을 순례길을 걸으며 흔히 마주치는 작고 조용하고 특징없는 마을이다 ⓒ 정효정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전단지에 적힌 그 식당에 가고 싶었다. 살면서 가끔은 강력한 예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예감을 따라 골목을 헤매며 그 식당에 찾아갔다. 1980년대 느낌이 물씬 나는 낡은 식당이었다. 전단지 돌리는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텅 비어있었다.   

햄버거를 하나 시키고 앉아있는데 백발의 머리를 하나로 묶은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미국에서 온 75세의 도날드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은 그는 결혼은 안 했지만 네 딸과 손주가 있고, 평생 의사로 일하다 은퇴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궁금했다. 왜 순례길에는 이렇게 은퇴자가 이렇게 많은지. 

"아마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비슷한 고민일 거야. 아이들은 장성해서 더 이상 날 필요로 하지 않고. 이제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삶이 아니라 온전히 존재하기 위한 삶인 거지." 

평생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고, 딸들에게 충실한 아버지이고, 손주도 여러 명이지만 은퇴 후의 상실감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늘 '의사'로 불려왔던 그에게 은퇴는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좀 더 일찍 생각했어야 했어. 너는 나보다 훨씬 어리지. 그런데도 너는 벌써 이 길을 걸으며 '네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지. 나보다 훨씬 앞선 고민인거야. 나는 거기에 부러움을 느껴."

아아, 난 그렇게 거창한 걸 생각하고 길을 걸으러 온 게 아닌데 말이다. 결국 이실직고했다. 난 그냥 남자나 찾으러 온 거라고. 토산토스에서 만난 아이린 이후 두 번째 고백이다.  그리고 잠시 나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카스트로 헤리스에서 발견한 집 창문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 정효정
첫 데이트를 한 사람으로부터 "결혼을 하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다" 라는 소리를 듣고, 세 번째 데이트를 한 사람으로부터는 "당신이랑 꼭 닮은 딸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내가 결혼을 원하는지, 아이를 원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결혼이 아니면 어떤 남녀관계도 성립하지 않는 사회에서 난 그냥 연애나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한 번도 결혼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

한 사람을 내 삶에 받아들이는 것에는 수많은 결정을 동반한다. 이 사람과 연애를 하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헤어지면 그땐 어떻게 되지? 지금은 과거가 되어버린 그의 청혼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하는 걸까. 고민 끝에 나는 결국 'NO'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와의 결혼은 결말이 뻔한 책을 펼치는 것 같았다.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이미 지루했다.

하지만 그런 큰 결정 후에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보다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했어야 했나.', ' 아니야, 안하길 잘했어.', '아니야, 했어야 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의 결정을 번복한다. 결혼을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안 했어야 했나.', '아니야, 하길 잘했어.', '아니야, 안 했어야 했어.' 이런 고민을 도널드에게 이야기 하자 그는 간단하게 이야기 했다.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게 맞는 거야. 그리고 그때 내리지 않은 결정에 대해 후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너는 하나의 결정이 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나고 봤을 때는 그 결정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거든."
카스트로 헤리스의 일몰 오늘 내가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지 어제 알았을까. 오늘 내가 이렇게 멋진 만남을 가질지 어제 알았을까. ⓒ 정효정
그는 냅킨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래에 미로를 그리고 그 위에 큰 새를 그렸다.

"인생을 미로라고 생각해봐. 그리고 네가 새라고 생각해봐. 네가 고민한 내용은 위에서 바라봤을 때는 '작은 헤맴'일 뿐이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가 원래 어떤 사람이냐는 거야. 결국 너라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지금의 너의 마음, 너의 정신, 너의 순수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네가 향하는 길은 하나일 거야."

어째서 이 식당에 오고 싶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어떤 질문을 하든 척척 대답을 해주었다. 거대한 지혜의 컴퓨터 같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는 이 마을에서 묵을 거라고 했다. 나는 14km를 더 걸어서 프로미스타(Fromista)까지 갈 생각이었다.

걷다보니 어느새 물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1753에서 1859년 사이에 만들어진 까스띠야 수로(Canal de Castilla)다. 그 시절 이 수로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었다면, 총길이 207km의 수로를 따라 끊임없이 곡물이 대서양으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새가 되어 내려다본다면, 지금 나는 미로의 어디쯤을 헤매고 있는 걸까. 눈앞의 벽은 높기만 한데, 과연 내가 원하는 출구에 닿을 수 있을까.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걷기엔 완벽한 날씨였고, 햇볕은 물에 닿아 반짝였다. 어제는 몰랐다. 오늘 내가 이렇게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될지. 정말 어제는 몰랐다. 오늘 이렇게 멋진 만남을 가지게 될지. 사색을 하며 걷기엔 최고의 날이었다.
까스띠야 수로를 지나서 17세기 후반에 물품을 수송하기 위해 만든 수로다 ⓒ 정효정
10월의 어느 완벽한 날 사색을 하며 걷기엔 최고의 날이었다 ⓒ 정효정
별을 받았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ion de los condes)에는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다. 이 곳에서는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수녀님들과 노래를 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녀들은 기타를 들고 와서 모두에게 노래가 적힌 종이쪽지를 나눠주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관타나메라'와 같이 친숙한 노래도 있었다. 그중 한 노래는 스페인 시인 레온 펠리페의 시에 노래를 붙인 곡이었다.

"어느 누구도 어제 가지 않았네.
오늘도, 내일도 가지 않을 거라네.
내가 신에게 가기 위해 걷는 이 길로.
태양이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빛을 주듯이 
신에게 향하는 그 길 또한 새로운 길이라네. "
-  레온 펠리페 <Nobody went yesterday>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은 어느 누구도 어제 걷지 않은 길이다. 한 해 23만 명의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향해 걷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내가 남자를 찾아 걷는 길은 퇴직 후의 삶을 찾아 걷는 아이린의 길과 다를 것이며, 청혼을 두고 고민하는 릴리의 길과 다를 것이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매일 오후 5시면 수녀님들과 노래하는 시간을 가진다 ⓒ 정효정
카리온 데 사르 콘데스 산타 마리아 성당앞의 성모상 ⓒ 정효정
함께 노래를 부르고 나면 각 나라별 순례자에게 노래를 시킨다. 한국 순례자들은 대부분 아리랑을 부르는 것 같았다. 수녀님은 내게 "코리아?"라고 물어보고 이미 아리랑을 반주할 채비를 하고 계셨다. 이틀 전 이곳을 다녀간 한국 순례자가 미리 정보를 보내주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아리랑을 불렀다. 사실 음주가무에 약한 편이라 달리 아는 노래도 없었다.

저녁 미사에 참여를 했을 때도 이 꾀꼬리 같은 수녀님들이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며 미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순례자들만 따로 남았다. 신부님은 우리 모두의 국적을 물어보고, 순례자들에게 일일이 성호를 그어주고 축성을 내려주었다. 옆에서 수녀님은 무언가를 나눠주었다. 별모양의 색칠된 작은 종이였다.

"여러분이 걷는 길에는 낮에는 태양이 빛나지만, 모든 문제는 깜깜한 밤에 생기죠. 어두운 밤에도 여러분을 가야할 길로 인도해주는 별을 나누어 드립니다."

종이별을 받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번졌다. 일이 잘 풀릴 때 우리는 도움을 찾지 않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는 깜깜한 밤일 것이다. 빨래를 걷으러 정원에 나가보니 밤 하늘에 별이 떠있었다. 어쩐지 가슴이 벅차올라 깊게 심호흡을 해야했다. 이틀 전 도널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길은 다양한 루트가 있지. 하지만 어떤 루트를 선택하더라도, 혹은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결국 우리가 도착하는 곳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야. 우리가 길을 떠난 목적을 기억하는 한 말이지."

깜깜한 내 미로 위로 별이 하나 떠올랐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걷기에는 정말 최고의 날씨였다. ⓒ 정효정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말만 듣고 800km를 걸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태그:#산티아고, #카스트로헤리스, #카리온, #순례길,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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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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