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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내용이 14일 수정됐습니다. 사망 원인은 병사에서 외인사로 바뀌었습니다. 백남기 농민 사망 당시에도 사망 원인이 병사로 기재돼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당시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사망진단서의 문제점을 꼬집었던 이보라 인도주의 실천의사협회 사무국장의 글을 '다시 보는 오마이뉴스'로 전합니다. [편집자말]
사망진단서 양식
 사망진단서 양식
ⓒ 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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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는 2015년 11월 14일부터 2016년 9월 25일까지 백남기 농민을 수술하고 치료해온 서울대병원에서 발급한 사망진단서의 주요 내용이다. 사망진단서는 전국의 모든 병원이 공통의 서식으로 작성을 하며 사인을 적는 칸은 모두 4칸인데, 이전 서식은 오른쪽 표와 같이 3칸으로 되어 있어서 아직도 많은 의사들은 사인을 3칸만 채우는 습관이 남아 있다. 예전 서식에 적용을 한다면 왼쪽 표의 (가),(나),(다) 항목을 직접사인, 중간선행사인, 선행사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집회 전날까지도 농사를 짓고 물대포를 맞기 직전까지 의식이 명료하던 사람이 물대포를 맞고 순간 날아가서 두개골이 깨어질 정도의 외상을 입어 뇌 안의 '경막하', '지주막하'라는 부분에 우측에 출혈이 생기면서 뇌가 부어올라 뇌압이 올라가고 그 압력에 뇌실이 눌리고 좌뇌가 우뇌쪽으로 넘어가는 현상까지 발생했었다.

오죽 뇌 손상이 심각하였으면 처음에 서울대 의료진들이 수술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보호자들에게 응급실에서 나가시고 요양병원에나 가시라는 말을 했겠는가? 그런데 의무기록에 따르면 '(환자가) 채혈을 하거나 통증을 주면 꿈틀하는 반응이 있다'며 수술을 해보겠다고 말을 바꾸더니 그날 밤 수술을 해 주었다.

물론 단지 생명연장이 목적이며 수술 중이나 수술 후에 사망할 수 있고 식물인간, 마비 같은 심각한 신경학적 손상이 예상된다는 경고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무튼 그렇게 수술을 받으셨고 317일을 중환자실에서 여러 가지 기계와 약물, 감시기구에 연결되어 살아계시다가 결국 어제 사망하셨다.

중간선행사인은 선행사인으로 파생된 진단명일 뿐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해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경찰, 부상자 발생에도 무차별 물대포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해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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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백남기 어르신을 직접 면회를 하고, 따님이 보여주신 의무기록사본을 보고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어르신의 상태가 며칠 동안 안 좋아 보호자의 요청을 받고 간 것이었다. 그때 내가 보고 이해했던 상황은 다리 혈관으로 주입되던 약물이 혈관 밖으로 새면서 연조직염이 생겼고, 그것 때문에 열이 나고 혈압, 맥박이 불안정해졌는데 신속하게 감염내과 협진을 보고 연조직염에 의한 패혈증이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했다는 것이다. 내가 방문했던 5월 8일에는 패혈증과 연조직염이 회복되고 있는 상태였다. 상황을 따님께 설명 드렸고 서울대에서 적절하게 매우 조치를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 사망진단서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다. 첫째 명백하게 외상으로 사망한 환자를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했다. 둘째, '심폐정지'라는 단어, 사망진단서에 사인으로 쓸 수 없는 단어가 버젓이 씌어있기 때문이다. 셋째, 급성경막하출혈이 선행사인(원사인)인데 사망의 원인이 병사라니? 무식한 내과의사인 나는 급성경막하출혈은 거의 외상으로 발생한다고 알고 있는데 백남기 어르신이 질병으로 급성경막하출혈이 발생한 그런 희귀한 케이스일까? 그럴 리가 없을 것 같다는 의심 때문이다.

나의 내과 환자들은 대부분 사망원인이 병사다. 그런데 나도 외인사를 진단한 적이 몇 번 있다. 그 첫 번째 경우였던 한 할아버지 환자를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은 넘어지면서 대퇴골 골절이 생겨 정형외과 수술을 받은 후 폐렴이 발생하여 내과로 전과가 되었고, 결국은 폐렴이 호전되지 못하고 패혈증성 쇼크,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하셨다.

나는 환자의 정형외과 수술의 과거력은 잊어버리고 내가 치료한 폐렴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병사라고 사망진단서를 썼다가 보호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사망진단서를 수정해야 했다. 이 분이 가입한 사망보험의 보상기준이 '외상으로 인한 사망'이었기 때문에 보호자들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이었는데 그때 알아보니 이런 경우는 원래 대퇴골절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에 외인사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호자들의 주장이 옳았다.

백남기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의식명료하게 서 있던 분이 물대포를 맞고 두개골이 골절되고 수술도 의미 없다 할 정도의 뇌출혈이 발생했는데, 그리고 그때부터 의식이 없어져 중환자가 되었다가 사망했는데 이게 외인사가 아니고 병사라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두 번째, 원래 거의 모든 사람은 심폐기능이 정지되어서 사망한다. 예외적으로 심폐기능은 있는데 명백하게 뇌사상태인 경우도 사망이라고 진단을 하고 장기이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튼 그런 특수한 경우만 빼고 거의 모든 사람은 감염 때문이든 암 때문이든 수술합병증 때문이든 사고를 당하든, 심폐기능이 정지되면서 사망을 한다.

그래서 사망진단서에 심폐정지, 호흡정지, 심장정지는 증상일 뿐 병명이 아니므로 쓸 필요가 없고 쓰지 말라고 되어 있는 단어다. 그런데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서울대 병원에서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언론, 그리고 국가권력이 주목하고 있는 백남기 어르신의 사망진단서의 직접사인 한 칸을 '심폐정지'라는 단어로 버젓이 채워 놓다니...

세 번째, 내가 아는 바로는 급성지주막하출혈은 혈관꽈리, 뇌혈관기형, 급격한 혈압상승 같은 질병으로 생길 수 있지만 급성경막하출혈은 거의 모두 외상으로 발생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급성경막하 출혈이 외인사가 아니고 병사일 수 있는가? 이는 내 분야가 아니니 신경외과 전문의 선생님이나 고명하신 교수님 중에 이 글을 보시는 분이 계시면 저에게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언론에서는 중간선행사인에 급성신부전이 쓰여 있다며 백남기 어르신이 급성신부전으로 인한 병사라고 보도되고 있는 것 같다. 사망진단서에서 가장 중요한 사인은 가장 아래 있는 사인이다. 그것이 근본적인 사망원인이다.

사인이 4칸 다 쓰여 있으면 가장 아래 네 번째 칸, 3개 쓰여 있으면 가장 아래 세 번째 칸, 2개 쓰여 있으면 두 번째 칸에 써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인이다. 그러므로 급성경막하 출혈이 가장 중요한 사인이다.

중간선행사인은 선행사인으로 파생된 진단명일 뿐이다. 건강했던 백남기 어르신이 심각한 뇌손상으로 317일간 중환자실에 계시면서 결국 심폐가 정지하는 사망 상태에 이르기까지 어디 급성신부전만 생겼을까? 급성간부전, 급성폐부전, 심부전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발성 장기부전이다.

물론 급성신부전을 2번째 칸에 쓰는 것 자체는 나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급성신부전을 쓸 수도 있고 간 수치가 높다면 급성간부전이라고 쓸 수도 있고, 염증 수치가 높고 균배양이 된다면 패혈증이라고 쓸 수도 있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칸이다. 급성신부전도 결국 급성경막하 출혈이 발생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서울대 병원 의료진에게 감사드린다, 하지만...

지난해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만에 사망한 가운데 지난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을 출발해 장례식장으로 운구하고 있다. 시민, 학생들이 경찰의 강제부검에 대비해 운구차량을 에워싼 채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시민들이 보호하는 백남기 농민 운구차량 지난해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만에 사망한 가운데 지난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을 출발해 장례식장으로 운구하고 있다. 시민, 학생들이 경찰의 강제부검에 대비해 운구차량을 에워싼 채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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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어르신의 사망진단서가 작성되기 전 담당레지던트가 백도라지씨에게 발급될 사망진단서의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고 한다. "사망진단서를 자기가 쓰고 자신 이름으로 발급되지만 그 내용은 병원의 OOO님 OOO과 OOO 교수님이 상의하고 그 내용을 지시하셨기에 자기는 그 지시대로 쓸 수밖에 없다"고 상황설명을 한 후 "직접사인은 심폐정지이고, 그 원인은 급성신부전이며, 또 다음 칸은 급성경막하 출혈이 들어가고 사망의 종류는 '병사'로 나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라고 한다.

의료인이 아닌 따님은 병사와 외인사가 어떤 차이가 있고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지 못했고, 서울대 병원의 고위직책인 분과 교수님이 상의하여 지시한 사항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알아서 어떻게 반박을 하겠는가? 그렇게 계획적으로 이 사망진단서가 발급된 것이다.

서울대병원 "의학적 이유로 판단했을 뿐"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와 관련해 26일 서울대학교병원 대외협력실 홍보팀은 "의사들 간에 병사와 외인사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분을 300일 넘게 케어해 온 의료진에서 내린 사망 원인이고 의학적인 판단이다. 저희 병원 의사가 의학적 이유 말고 다른 이유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317일 동안 백남기 어르신을 수술하고 돌봐주신 서울대 병원 담당 교수님과 담당 레지던트, 담당 간호사들께 감사를 드린다. 의학적으로도 정말 중환자인데다가 서울대 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고, 당연히 경찰 쪽에서도 지켜보고 있는 환자를 진료하시는데 정말 부담스럽고 힘드셨을 것 같다. 의무기록 하나하나 작성하는 것도 무척 신중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사망진단서는 정말 너무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의학적이지 않고 너무 정치적인 진단서이다. 그동안 열심히 돌봐주셨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 양심적으로 사망진단서를 써주면 안 되나?

전국의 농민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진영이 과연 이 진단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이제 앞으로 경찰은 "'병사'인데 물대포랑 무슨 상관있느냐, 아무 상관없다"고 말할 것이다. 마지막 사망진단서의 말장난이 물대포의 폭력을 '질병'으로 둔갑시킬지도 모른다.


태그:#백남기, #백남기 병사, #백남기 농민,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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