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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에 앉아서 짝짓기를 하는 잠자리.
 빨랫줄에 앉아서 짝짓기를 하는 잠자리.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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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잠자리를 잡고 놀면서도 잠자리마다 어떤 이름인지 또렷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고추잠자리, 된장잠자리, 밀잠자리, 왕잠자리, 나비잠자리 같은 이름은 알았어요. 이밖에 다른 잠자리는 잘 몰랐어요. 둘레 어른들도 잠자리 이름을 또렷하게 가리지 못했어요.

학교에서는 교사한테 못 묻지요. 방학숙제로 잠자리를 잡아서 표본을 만든 뒤에 내면 모를까, 여느 때에는 '잠자리 잡으며 놀기만 하고 공부를 안 한다'는 꾸지람을 들을 테니 교사한테 물을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열 손가락으로 잡아도 모자라 입에 물기도 하고, 또 두어 마리를 손가락 마디마다 겹쳐서 잡기도 합니다. 동무하고 잠자리 바꾸기도 하지요. 나한테 없어도 너한테 있으면 서로 바꾸어요. 워낙 많은 잠자리를 날마다 잡으면서 노니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암수 잠자리를 우리끼리 쉽게 가눌 수 있기도 했습니다.

아이들하고 오랜 나날 놀이벗이던 잠자리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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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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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는 유충시기에는 수서생태계에서, 성충시기에는 육상생태계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환경지표 및 진화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곤충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6000여 종이 알려졌으며(2015년), 우리나라에는 122종이 보고되었지만(환경부) 일부 종은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잠자리 표본 도감>(자연과생태, 2016)이 새로 나왔습니다. 어릴 적에는 이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잡던 잠자리를 가만히 떠올리면서 펼칩니다.

그렇다고 어릴 적 잡던 잠자리가 어떤 잠자리인지 이제 와서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도감을 천천히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요. 그래 그래, 이렇게 많은 잠자리가 있네. 그렇구나, 몸통이며 꼬리이며 날개이며 저마다 이렇게 다르게 생기면서 조금씩 다른 이름이 있네.

<잠자리 표본 도감>을 펴낸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는 2012년에 <한국의 잠자리>(정광수 씀)를 내놓은 적 있습니다. 요즈막에 새로 나온 <잠자리 표본 도감>은 '잠자리 표본'을 바탕으로 새롭게 엮은 잠자리 도감이라 하는데, 이 도감에 실린 잠자리 표본은 한 사람이 예순 해 남짓 갈무리했다고 해요.

"1923년 평안북도 평양에서 태어난 고 이승모 선생은 2008년 4월 15일 85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60여 년 동안 잠자리류, 나비류, 갑각류 등 한국 곤충분류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남한과 북한의 곤충을 연구한 학자로서 50여 편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으며…."(7쪽)

예순 해 남짓 잠자리를 비롯해서 나비나 갑각류를 잡아서 표본을 만들었다는 이승모 님이라고 합니다. 이녁은 남북녘 곤충을 함께 살핀 학자라고도 합니다. 남녘과 북녘이 서로 갈린 채 퍽 긴 나날이 흐르니, 이승모 님이 갈무리한 표본 자료는 더욱 뜻깊다고 느낍니다. 개발하고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들하고 숲하고 갯벌을 잔뜩 파헤치면서 자취를 감춘 잠자리가 있을 테니, 이승모 님이 갈무리한 잠자리 표본은 더더욱 뜻이 있을 테고요.

직 사람들은 남북녘을 홀가분하게 오가지 못하지만, 잠자리는 휴전선도 철책도 국경도 없이 남북녘을 가만히 날아다니겠지요. 도시도 자동차도 자꾸 늘기만 하면서 잠자리가 살 터전은 줄어들지만, 그래도 이 가을에 잠자리는 하늘을 힘차게 가르면서 날아요.

속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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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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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의 서식처는 물 흐름이 있는 유수 지역부터 정체되어 있는 논, 습지, 저수지까지 담수생태계에 풍부하게 분포한다. 심지어 해안가의 염분이 있는 지역에서도 상당수가 분포하며, 제주도에서는 기생화산이라고 불리는 오름에서도 다양한 잠자리가 서식한다 … 열대 지역보다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 지역에서 잠자리의 종수와 개체수가 급감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계속되는 개발과 편의시설 이용으로 서식처가 파괴되고 소실되는 것을 꼽을 수 있다."(19쪽)

아침 낮 저녁으로 여러 가지 잠자리를 만납니다. 마당에서도, 빨랫대에서도, 평상에서도, 뒤꼍 나무에서도, 풀밭에서도 잠자리를 만납니다. 자전거로 들길을 달리다가 멈출 적에 잠자리가 자전거 손잡이에 앉기도 합니다.

사람하고 오랫동안 이웃으로 지내면서 끊임없이 날벌레를 잡아먹어 준 잠자리를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하고 오랜 나날 동무가 되어 준 잠자리를 떠올려 봅니다. 요즈음 도시 아이들은 잠자리를 만나기가 쉽지 않겠지요. 잠자리를 맨눈이나 맨손이 아닌 동영상이나 책으로 더 쉽게 만날 듯합니다. 시골에서도 농약을 많이 뿌리기 때문에 예전처럼 잠자리가 하늘을 새까맣게 덮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빨래에 앉아서 날개를 쉬는 잠자리
 빨래에 앉아서 날개를 쉬는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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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 앉아서 쉬는 잠자리.
 풀밭에 앉아서 쉬는 잠자리.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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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하고 가벼우면서 단단한 몸통인 잠자리가 날갯짓을 할 적에는 파라락 소리가 제법 큽니다. 풀밭에 서서 잠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잠자리는 날개를 천천히 낮추면서 머리를 나한테 돌려요. 눈이 마주칩니다. 서로 바라봅니다. 커다란 눈알이 움직이는 결을 살피면서 넌지시 말을 겁니다. 이 가을에 우리 집에 찾아와 주어서 반갑구나. 우리 집에 너희 먹이가 넉넉하니? 이곳에서 느긋하게 날개를 쉬었다가 신나게 하늘을 가르며 놀렴.

덧붙이는 글 | <잠자리 표본 도감>(정상우·배연재·안승락·백운기 엮음 / 자연과생태 펴냄 / 2016.9.19. / 22000원)



잠자리 표본 도감

정상우 외 지음, 자연과생태(2016)


태그:#잠자리 표본 도감, #잠자리, #숲책, #환경책, #생태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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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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