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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을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요사이 여행하면서 지역 양조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제법 늘었다. 개인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맛집 소개하듯이 양조장과 술을 소개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물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양조장을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름난 술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으니, 굳이 양조장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양조장을 찾아가는 이유는 뭘까?

양조장을 찾아가는 네 가지 이유
양조장을 찾아가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 허시명
양조장을 찾아가는 첫 번째 매력은 양조장만의 특별한 향기 때문일 것이다. '양조장은 간판이 없다'는 말이 있다. 술 향기로 양조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신선한 술의 향기와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양조장이다.

향수가 우리 몸에 바르는 가장 응축된 액체라면, 술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응축된 액체다. 새로운 향기를 찾으러 기꺼이 양조장을 관통할 만하다. 맛과 향은 공간과 함께 기억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릴 적 아버지 심부름차 주전자 들고 양조장을 찾아갔던 이라면, 양조장 문턱을 넘어섰을 때 맡게 되는 향기는 타임머신처럼 어린 시절로 데려다줄 것이다.  
오미자막걸리를 빚는 문경주조. ⓒ 허시명
두 번째는 양조장에 가면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술이 존재한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람을 사귀게 됐을 때,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는 증표는 술독에서 바로 떠준 술을 맛보았느냐의 여부다. 물을 타지 않은 원주는 마시면 머리가 띵할 정도로 도수가 높아 진땡이라 부르고 일본말로 술덧을 의미하는 모로미라 불리는 술을 맛본 사람이야말로, 양조장 대표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잘 갖춰진 관광 양조장들은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술을 내놓는다. 일본 규슈의 이이치고 소주 제조장에서는 양조장에서만 파는 술뿐만 아니라, 마을 안에서만 파는 술도 갖고 있다. 마을 관광까지 염두에 둔 상품 개발인 셈이다. 
문경새재 부근에 자리잡은 오미나라. ⓒ 허시명
세 번째 양조장을 찾아가는 이유는 양조장을 둘러싼 경관이 볼만해서다. 술은 곡물과 과일로 만들기에, 자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외국의 와이너리나 국내 과실주 제조장들은 과수원을 옆에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경관 농업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장대하지는 않더라도, 땅과 비바람이 키워낸 농작물을 살필 수 있고, 그 농작물을 이용한 발효 식품 제조 공정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양조장이다. 이런 양조장에 가면 술만이 아니라, 그 술을 둘러싼 자연을 볼 수 있다. 국내 양조장들 중에서 과실주를 빚는 예산 사과와인, 파주 감악산머루주, 의성 한국애플리스는 모두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술을 빚는다. 
오래된 항아리를 잘 간직하고 있는 논산 양촌양조장. ⓒ 허시명
네 번째 양조장을 찾아가면 지나온 세월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조선시대에 양조장이 없었고, 개항 이후에 양조산업이 생겨났기에 오래된 양조장이라야 100년 미만인데, 일본만 하더라도 300년이 넘는 양조장을 쉽게 볼 수 있고, 중국 또한 양조장의 옛터나 사연을 찾아내서 300~400년을 쉽게 거슬러올라간다.

아일랜드의 기네스 양조장은 1759년에 더블린의 한 작은 양조장에서 시작했다는데, 그때 연간 임대료 40파운드를 주고 9000년 동안 사용하기로 임대 계약을 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해외에선 종교 건축물 다음으로 오래된 건물... '양조장'
술병 모양의 돌탑을 세운 제주샘주. ⓒ 허시명
양조장의 세월은 한 개인의 수명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술을 빚고 마시는 행위는 인류 문명과 함께 해온 오래된 일이라서 그럴 것이다. 술은 전쟁이 일어나도 팔려나가고, 금주령을 내려도 밀거래가 되는 질긴 상품이다. 그러다 보니 양조라는 사업은 한번 이름을 얻게 되면, 유행과 세태가 바뀌더라도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이런 속성 때문에,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 종교 건물 다음으로 양조장인 경우가 많다.

국내 양조장들 중에서도 1925년 무렵에 지어진 경기도 양평군 지평양조장, 1926년에 지어진 경북 영양탁주합동양조장, 1930년에 백두산에서 가져온 전나무와 삼나무로 지은 충북 진천 덕산양조장, 1931년에 한옥 양식과 지하에 발효공간을 접목한 논산의 양촌양조장 등이 볼만한 건축물들이다. 너무 빠른 계산과 개발로 목조 건물과 벽돌 건물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에, 오래된 양조장은 마을의 세월을 추억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요사이 관광객을 환대하는 개방적인 양조장이 많이 생겨났다. 지방자치단체도 양조장의 행보에 관심을 갖게 되고, 지역 양조장 활성화를 위해 국세인 주세를 지방세로 돌리자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 2015년에 주세가 3조2275억 원이었는데, 주세가 지방세가 되면, 지방자치단체의 술 정책이 생겨날 것이다. 술은 지역 농산물로 만들어지고, 이름난 술은 지역 이름과 함께 명성을 높여가니 주세가 지방세가 되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국에 생겨나는 개방적인 양조장으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2013년부터 지정해온 찾아가는 양조장 24곳을 꼽을 수 있다(아래 표 참고). 2016년에도 6곳, 경기도 화성 배혜정도가, 충남 논산 양촌양조장, 경북 문경 오미나라, 상주 은척양조장, 의성 한국애플리스, 부산 금정산성 토산주 제조장이 새로 찾아가는 양조장 대열에 들어섰다.
탄금대 가까운 물가에 자리잡은 중원당, 청명주를 빚는다. ⓒ 허시명
이곳 양조장들은 관광객을 환대하기 위하여 시음장을 갖추고, 견학로를 새로 마련할 예정이다. 이미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18곳 중에서 단양 대강양조장이나 포천 배상면주가는 작은 박물관까지 갖췄고, 당진 신평양조장과 파주 감악산 머루주는 관광객들을 위한 전시 체험관을 잘 갖췄다. 정원이 아름다운 해남 해창주조장과 황토방 발효실을 갖춘 문경주조는 한적하고 청정한 시골 마을, 자연 속에 깃든 양조장의 운치를 관광자원화했다.   

무엇을 볼 것이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섬세한 미생물을 다루다보니 청결하고 위생적이어야 하고, 관리 감독하는 기관도 많아서, 보는 사람과 보여주는 사람의 긴장이 상존하는 곳이 양조장이다.

주당들은 술맛만 좋다면야 모든 것이 만족스럽겠지만, 양조장은 술 빚고 또 보여줘야 하니 일손이 늘었다. 하지만 일손이 늘었다는 것은 생존의 공식 하나가 더 생겼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만하다. 

앞으로 여행자들의 내비게이션에 양조장 이름이 찍히는 빈도수가 더 늘어날 것이다. 양조장을 찾아가면 술맛 보고 술 향기 맡는 것은 기본이요, 우리가 집단적으로 심취했던 한 시대의 향기와 우리를 위로하고 고양시켰던 맛의 정체를 덤으로 알게 될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찾아가는 양조장 24곳'. 자, 이제 내비게이션에 주소 찍을 일만 남았다. ⓒ 허시명
태그:#술, #양조장, #허시명, #술생각,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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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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