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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에는 '구로 올레길'이라는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산책로가 있다. 산림형, 도심형, 하천형의 다양한 길로 총 28.5km 거리로 이어진다. 구로구청에서 2년 6개월 걸려 조성했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를 끄는 코스인 산림형 3, 4코스를 걸어가 보았다. 구로구하면 산업단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구로 올레길을 걸어보니 그건 선입견이었구나 싶었다.  

산림형 3, 4코스엔 천왕산(구로구 항동)과 개웅산(구로구 오류동)이 이어져 있는데, 철길 따라 이채로운 기분으로 걸을 수 있는 항동 철길과 요즘 같은 날씨에 산책하기 좋은 푸른 수목원(혹은 서울 시립 수목원)이 있어 발길이 지겹지 않고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산을 2군데나 지났지만 천왕산(144m)과 개웅산(126m)은 높지 않은 언덕 같은 곳이라 산이라기 보다는 청정한 숲길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도심, 숲길, 시골길을 지나는 이채로운 항동 철길 

천왕역을 나와 걷다가 마주친 항동 철길의 들머리 건널목. ⓒ 김종성
폐철길, 수목원, 숲길 등 다채로운 산책로가 있어 좋은 구로 올레길. ⓒ 김종성
전철 7호선 천왕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10분 정도 걸어가면 차도에 웬 기차 건널목 풍경이 펼쳐진다. 항동 철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이라도 기차가 달려 지나갈 것 같은 철길 건널목,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나온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항동 철길은 과거 어느 회사의 화물운반용으로 쓰이던 철로였다.

구로구 오류동역에서 경기도 부천시 옥길동까지 5km 정도 단선 철길로 이어져 있다. 도심, 숲길, 논밭이 있는 시골길을 지나간다. 그런데 이 철길은 완전히 폐선로가 아니라 일주일에 한두 번 군수물자를 실은 열차가 심야에 지나간단다. 이에 구로구청은 코레일과 협의해 안전대책을 세울 예정이라고 한다.

철길은 도시의 아파트와 교회, 주택 옆을 지나다 호젓한 숲길을 지나 푸른 수목원 옆을 지난다. 폐철로를 여유롭게 걷다보면 '여기가 서울맞아?'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재밌다. 철길에 대한 추억이 없을 10대 청년들도 찾아와 철로 위에서 나름 모델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어 웃음이 났다. 어른들은 철길 옆 산책로를 걷는 반면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나 아이들은 불편해도 굳이 철길 위로 걷는다. '자그락, 자그락' 철길에 깔린 자갈 밟는 소리도 좋다.

어른, 아이 누구도 서둘러 걷는 사람이 없다. 세상엔 많고 많은 길이 있지만, 철길만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여행심과 낭만을 부르는 길은 드물지 싶다. 철도 덕후 혹은 철덕(철도 오타쿠의 준말로 철도 애호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었다. 임시로 만들어 놓은 항동철길역 간이역 간판은 놓치면 안 되는 포토존이다. 폐철로 옆으로 정다운 이웃처럼 '푸른 수목원'이 이어진다.

요즘 같은 날 산책하기 참 좋은 푸른 수목원. ⓒ 김종성
반송 소나무에서 바오밥나무까지 별별 나무들을 볼 수 있는 푸른 수목원. ⓒ 김종성
푸른 수목원은 서울시 최초로 조성된 드넓은 시립수목원으로 갈대숲 무성한 호젓한 저수지도 품고 있어 폐철길에 이어서 여유롭게 거닐기 좋은 곳이다. 나비가 좋아하는 예쁜 들꽃 벌개미취에서 보기 드문 반송 소나무까지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살고 있어서 자연공부하기도 좋다. 머나먼 이국에서 건너온 바오밥나무도 있다. 건조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사는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란다. 사진으로만 봤던 신비로움이 묻어나는 나무에 한참이나 눈길이 머물렀다.

25가지 테마로 이어지는 넓은 수목원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가볍고 홀가분했다. 지긋지긋했던 여름을 무사히 지나와서 그렇지싶다. 수목원이 크다보니 자전거 국토 종주길에 있는 인증센터마냥 수목원 곳곳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수목원 안내장에 있는 인증공간에 도장을 다 찍으면 꽃이나 나무 씨앗을 나눠 준단다. 이외에도 쉬어가기 좋은 식물원, 작은 북카페가 있으며 정다운 쉼터 정자들이 많아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고즈넉한 숲길 천웅산, 전망좋은 개웅산 

이름과 달리 누구나 산책하기 좋은 동네 뒷산, 천왕산. ⓒ 김종성
숲길가에 핀 꽃과 나비들이 자꾸만 발길을 붙잡았다. ⓒ 김종성
천왕산의 들머리는 항동 철길과 푸른 수목원이 만나는 지점에 안내판과 함께 나있다. 산 이름이 주는 느낌이 백두산 못지않지만, 등산화나 등산용 스틱이 없어도 되는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는 순한 산이다. 도심 속 동네 뒷산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고 깊은 느낌의 숲길이 이어졌다. 숲 길가에 피어난 예쁜 들꽃과 나비들 구경에 발길은 더욱 느려졌다.

소나무 외에 때죽나무, 개암나무, 팥배나무 등 수목도 다양했다. 나무에다 이름표를 붙여놔서 몰랐던 나무는 다시 한 번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생김새도 크기도 다른 여러 나무들이 어울려 사는 숲길을 지나다,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의 책 <더불어 숲>에서 밑줄을 그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나무의 완성은 명목이나 낙락장송이 아니라 수많은 나무가 함께 살아가는 숲이다.'

수목이 울창하고 다양하다 했더니 천왕산은 서울시 '5대 숲'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자연적인 가치가 높은 산이라고 한다. 한껏 청정해진 날씨와 머리 위 파란 하늘과 그 위로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바라보며 걷는 숲길이 참 상쾌했다. 서울 북한산이나 남산과 달리 휴일임에도 한적해서 여유롭게 걷기 좋았다. 산속 갈래 길에서 개웅산으로 가는 길을 묻는 여행자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며 동네 주민이 건넨 "좋은 여행 되세요!" 말은 축복처럼 들렸다. "부자 되세요!"란 말보다 훨씬 기쁘고 여운이 오래갔다.

천왕산에서 이어지는 개웅산은 정상에 전망 좋은 팔각정이 있어 좋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으니 정자 기둥 사이사이로 멋진 가을 하늘 그림이 펼쳐졌다. 팔각정에 앉으면 주변 천왕산과 양지산, 도덕산 등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해발 126m의 낮은 산이란 게 믿어지지 않게 주변 경치가 발 아래로 시원스레 펼쳐졌다. 조선시대에는 이 산에서 봉화를 올렸다하여 봉화대라고도 불렀다는데 그럴 만했다.

화창한 가을 하늘이 한껏 드러나는 개웅산길. ⓒ 김종성
개웅산에 오르면 전망좋은 쉼터 팔각정이 맞아준다. ⓒ 김종성
개웅산은 울창한 숲속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었다. 개웅산에서 내려올 때는 1호선 전철 오류동역이나 7호선 광명 사거리역이 가깝다. 구로 올레길은 어느 코스나 대중교통편으로 접근성이 좋아 찾아가기 쉽다.

이채로운 철길과 아름다운 수목원에 이어 청정한 숲길까지 이어진 다채로운 풍경의 길을 걷느라 힘든 줄 모르고 걷게 된 구로 올레길. 햇살이 따사로운 청명한 날씨의 가을에 잘 어울리는 길이었다.

*구로구에서 만든 구로 올레길 카페 :  http://cafe.daum.net/greenguroolleh
*주요 여행길 : 7호선 천왕역-항동 철길-푸른 수목원-천왕산-개웅산-7호선 광명사거리역 (총 4시간 30분 소요)

산림·하천·도심을 지나는 다채로운 길, 구로 올레길. ⓒ 구로 올레길 안내판 촬영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18일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시 '내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구로 올레길, #항동철길, #푸른 수목원, #천왕산, #개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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