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한국인 야구 선수 중에서도 600홈런 타자가 탄생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이 프로 데뷔 22년 만에 KBO리그와 NPB를 오가며 수많은 타석에 선 끝에 600번째로 담장을 넘기는 타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승엽은 추석 연휴 첫 경기인 9월 14일 대구 수성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렸던 한화 이글스와의 홈경기에서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대기록은 첫 타석에서 나왔다. 한화의 선발투수 이재우의 3구 째 시속 115km 포크볼을 깔끔하게 잡아당긴 이승엽은 다른 홈런을 날렸을 때처럼 타구를 한 번 바라본 뒤 침착하게 베이스를 돌았다.

이 날 이승엽이 경기 초반에 달성한 600홈런 기록에 팀 동료들도 힘을 냈다. 지난 번 KBO리그 2000안타를 달성했던 날 경기에서 패했던 삼성은 이 날 만큼은 기록 달성 일에 웃을 수 있는 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5회초 4실점의 충격을 딛고 7회말 뒤집기에 성공, 극적인 역전승을 만들어내며 한화의 6연승을 저지했다.

 통산 600홈런의 주인공이 된 이승엽.

통산 600홈런의 주인공이 된 이승엽. ⓒ 연합뉴스


22년의 선수 인생, 첫 홈런부터가 역사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한 이승엽은 첫 홈런부터 남다른 의미를 남겼다. 1995년 5월 2일에 기록했던 첫 홈런을 허용한 투수가 바로 KBO리그 역사상 가장 위력적이었던 잠수함 투수 이강철(현 넥센 히어로즈 수석코치)이었기 때문이다. 이강철은 KBO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10년 연속 10승+ 기록과 100탈삼진+ 기록을 동시에 달성한 투수였다.

이승엽의 100번째 홈런도 역사적 기록이었다. 첫 홈런을 날린 지 4년 정도가 지난 1999년 5월 5일,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열렸던 현대 유니콘스와의 홈경기에서 이승엽은 KBO리그 역대 최연소 100홈런 기록을 만들어냈다. 2001년 6월 21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는 최연소 200홈런 및 최소 경기 200홈런 기록까지 동시 달성했다.

2003년에도 이승엽은 의미 있는 기록을 한 시즌에 동시 달성했다. 6월 22일 이승엽은 300번째 홈런을 날리면서 이 부문 최연소 기록 및 최소 경기 기록을 동시에 갈아 치웠는데, 최연소 300홈런 기록에 있어서는 세계 최연소 기록을 달성했다. 세계 최연소 600홈런 기록을 보유한 알렉스 로드리게스(은퇴)도 이 기록은 이승엽에 밀린다.

2003년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10월 2일, 이승엽은 시즌 56번째 홈런을 날렸다. 기존에 자신이 세웠던 KBO리그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을 깨뜨림과 동시에 왕정치(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가 가지고 있던 아시아 기록까지 갈아 치운 것이다. 비록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이후 이 기록은 경신했지만, 한동안 깨지지 않았던 대기록이었다.

400번째 홈런은 일본에서 나왔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첫 시즌을 보냈던 2006년, 이승엽은 당시 한신 타이거즈의 에이스 이가와 게이를 상대로 첫 타석에서 400홈런을 날렸다. 이가와는 2006년 겨울 포스팅 시스템을 통하여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던 에이스였는데, 같은 날 이승엽은 401번째 홈런을 이가와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날리는 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년을 일본에서 보냈던 이승엽은 2012년 KBO리그로 돌아와서 그 해 7월 500번째 홈런 기록을 달성했다. KBO리그 단일 기록 부문에서도 2013년 6월 20일 352번째 홈런으로 양준혁(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기록을 깼고, 2015년 6월 3일에는 KBO리그 400홈런 기록도 달성했다.

세계 프로야구 역사 11명 안에 들다

이승엽이 한때 뛰었던 일본 프로야구에서 600홈런을 달성한 타자는 아직까지 2명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했던 왕정치가 868개의 홈런을 날렸고, 노무라 가쓰야(전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가 현역 시절 657개의 홈런을 날렸다. 현재 일본 현역 선수 중 최다 기록 보유자는 한때 이승엽의 팀 동료였던 아베 신노스케(요미우리 자이언츠)의 373홈런이다.

프로야구 역사가 가장 긴 메이저리그에서도 600홈런 타자는 8명밖에 되지 않는다. 배리 본즈(762), 행크 애런(755), 베이브 루스(714), 알렉스 로드리게스(696), 윌리 메이스(660), 켄 그리피 주니어(630), 짐 토미(612) 그리고 새미 소사(609)가 그들이다. 이들 중 4명(애런, 루스, 메이스, 그리피 주니어)은 쿠퍼스 타운에 있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로드리게스가 8월 13일(한국 시각) 은퇴 전을 끝으로 잔여 계약 기간(1년 2개월) 선수 생활 대신 구단 자문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메이저리그 현역 타자들 중 600홈런 타자는 아무도 없다. 2017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이승엽이 현재로서는 세계 유일한 600홈런 현역 선수인 셈이다.

메이저리그에서 600홈런에 가장 근접한 현역 선수로는 알버트 푸홀스(LA 에인절스, 589홈런)가 있다. 올 시즌 고질적 잔부상에서 벗어난 푸홀스는 올해에는 무리겠지만 내년에 600홈런 돌파가 유력하다. 534홈런을 기록한 데이비드 오티즈(보스턴 레드삭스)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 때문에 600홈런 도전을 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현역 3위 홈런 타자는 현재 추신수의 동료인 애드리안 벨트레(텍사스 레인저스)이다. 현재까지 443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벨트레도 1979년생 노장으로 만 39세 시즌이 될 2018년 정도에 500홈런 달성은 유력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600홈런을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만큼 한 시즌에 팀당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600홈런 기록은 20년 이상 꾸준한 자기 관리를 통해서 겨우 얻을 수 있는 대기록이다. 물론 메이저리그와 NPB 그리고 KBO리그가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예전 시대에는 현저한 리그 수준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600홈런 달성자 10명은 단일 프로리그에서 달성한 기록들이었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이승엽은 KBO리그와 NPB 두 리그를 오가며 기록을 달성했다. 다른 나라의 프로 리그를 오가며 달성한 기록으로는 세계 최초인 셈이다. 다른 나라의 리그에 진출하여 리그에 적응하는 문제(외국인 용병 쿼터제 등) 등 여러 외적 요소들을 감안하면 이승엽의 기록은 다른 10명과 또 다른 장애물을 이겨내고 달성한 기록이다.

번외 기록들

이렇게 카운트가 된 이승엽의 600홈런은 KBO리그와 NPB의 1군 정규 시즌에서 기록한 홈런들만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이승엽이 포스트 시즌과 국가대표로서 날렸던 홈런들도 각별한 의미를 지녔던 홈런들이 많았다.

이승엽은 KBO리그 포스트 시즌에서의 홈런이 생각보다 적었는데, 그 임팩트는 컸다. 이승엽이 2002년 한국 시리즈에서 날렸던 홈런이 바로 그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던 홈런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은 창단 첫 한국 시리즈 챔피언에 목말라 있던 팀이었다. LG 트윈스와 한국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서고 있었으나 5차전 잠실 원정에서 패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6차전에서도 3점 차로 뒤지고 있었다.

6차전 9회말, LG는 당시 레전드 마무리투수였던 왼손 투수 이상훈(현 LG 트윈스 피칭 아카데미 원장)이 등판했다. 그리고 주자가 2명이 나가 있는 9회말 1사 상황에서 한국 시리즈 내내 타격이 부진했던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여기서 이승엽은 이상훈이 던진 공을 잡아 당겨 지금도 믿겨지지 않는 극적인 동점 스리런 홈런을 날리고 이상훈에게 충격적인 블론세이브를 안겨줬다. 이승엽의 이 클러치 히트가 아니었다면, 다음 투수를 상대로 마해영이 백투백 끝내기 홈런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이승엽은 결정적인 타구로 소속 팀 삼성에 역사적인 창단 첫 한국 시리즈 챔피언의 영광을 안겨줬다.

이승엽은 국가대표로서도 결정적인 클러치 홈런들을 많이 날렸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 1라운드 3차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1점 차로 뒤져 있을 때, 이승엽은 8회말 공격에서 극적인 역전 홈런을 날렸다. 2라운드 2차전인 미국전에서는 선발투수 돈트렐 윌리스를 상대로 첫 타석 초구 결승 홈런을 날려 대표팀의 4강 진출에도 기여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이승엽은 결정적인 순간에 빛났다. 일본과의 4강전에서 8회말 승부를 뒤집는 역전 홈런을 날리며 후배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해결해 준 이승엽은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첫 타석에서 결승 홈런을 날리며 승률 100%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멈추지 않는 도전

일본에서의 159홈런을 포함하여 2016년 9월 14일 통합 600홈런 기록을 달성한 이승엽은 이제 KBO리그 단일 450홈런에도 9개만을 남겨두고 있다. 올 시즌 잔여 경기 17경기에서 이 기록까지 달성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선수 생활의 마지막 시즌이 될 2017년에 이 기록 달성이 가능하다.

또한 이승엽은 KBO리그에 복귀한 이후 2013년을 제외(13홈런)하고 꾸준히 20홈런 이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2014년 32홈런으로 최고령 30홈런 시즌을 만든 이승엽은 2015년에도 26홈런 그리고 2016년에도 25홈런을 날리며 꾸준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남은 경기에서 홈런 페이스가 좋을 경우 자신이 세웠던 최고령 30홈런 시즌 기록 경신도 바라볼 수 있다.

KBO리그 역사상 최다 타점 기록을 계속해서 늘려가고 있는 이승엽은 조만간 최다 득점 부문에서도 역대 1위에 오를 전망이다. 이 부문 1위는 1299득점의 양준혁인데, 이승엽이 1279득점으로 타격감이 침체되지만 않는다면 올해 안에 이 기록도 갈아치울 전망이다.

누적 루타 부문에서도 양준혁이 3879루타를 기록하고 있다. 이승엽은 이 날 600홈런을 통해 KBO리그 3805루타를 기록했다. 올 시즌 남은 17경기에서 이 기록을 넘어서기는 다소 버거워보여도, 현역 생활을 지속할 내년에는 충분히 이 기록을 넘어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은퇴를 예고한 2017년 이후에도 그에게는 건강이 허락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승엽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2017년까지 자신의 남은 열정을 모두 불태운 뒤 깔끔하게 타석을 떠날 것을 자기 자신과 약속했다. 그의 불꽃같은 방망이가 야구 역사에 어디까지 기록을 남겨 놓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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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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