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롯데전에서 롯데 팬들이 최근롯데가 NC와의 올 시즌 상대 전적에서 1승 12패로 크게 밀리자 격한 응원 문구를 붙여 놓고 응원하고 있다. 2016.9.25

25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롯데전에서 롯데 팬들이 최근롯데가 NC와의 올 시즌 상대 전적에서 1승 12패로 크게 밀리자 격한 응원 문구를 붙여 놓고 응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그리 달갑지 않은 기록들을 몇 개 보유하고 있다. 바로 KBO 역사상 최장기간 무관(34년, 현재진행 중), 정규리그 최다 꼴찌(8회)같은 불명예 타이틀이다.

롯데와 함께 프로야구 출범 원년부터 역사를 함께해 오고 있는 삼성(우승 8회), 두산(전신 OB, 우승 4회), 기아(전신 해태, 우승 10회) 등 KBO 전통의 명문구단들과 비교해도 롯데는 우승 횟수나 포스트시즌 진출 등 각종 기록면에서 크게 뒤지는 편이다.

롯데는 1992년 창단 두 번째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끝으로 더 이상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조차 1999년으로 밀레니엄 이후로는 우승권에 근접조차 못해보고 있는 실정이다. 정규시즌 우승은 아예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시즌에도 우승후보로 평가받기보다는 단기전에서 고 최동원을 비롯해 염종석 등 몇몇 선수들의 맹활약을 앞세워 이변에 가까운 우승을 차지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긴 역사에 비하면 롯데구단이 꾸준함이나 연속성 면에서 KBO의 명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다.

팬들이 기억하는 롯데의 황금기, 로이스터 감독 시절

많은 롯데 팬들이 기억하는 최고의 황금 시절은 의외로 우승을 차지했던 1984년이나 1992년이 아니라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이끌던 2000년대 후반이다. KBO 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꼽히는 로이스터 감독은 2008년부터 3년간 롯데를 이끌며 팀을 매 시즌 가을야구에 진출시키며 롯데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정규시즌 통산 승률도 0.524(204승 3무 158패)로 롯데 역대 감독 중 1위다.

사실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를 끝내 정상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정규시즌에 비하여 단기전에서는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이며 3년 연속 준플레이오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성과만큼이나 한계도 뚜렷했던 감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 팬들이 로이스터 시절을 가장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롯데는 7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야구와 롯데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낯선 외국인 감독이 온다고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의심어린 시각도 많았다. 그러한 롯데에 부임하마자 로이스터 감독은 화끈하고 선굵은 공격야구와 메이저리그식 경기운영으로 단숨에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대호-홍성흔-가르시아-김주찬-강민호 등으로 이어지는 롯데의 막강타선은 지금도 KBO 역사상 역대급으로 회자된다.

또한 로이스터 감독은 장기레이스에서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로이스터 감독 체제의 롯데는 시즌 초중반까지는 비교적 부진하다가도 후반기만 되면 반등에 성공하여 가을야구 티켓을 거머쥐는 슬로우 스타터 행보를 거듭했다. 철저한 투수분업화와 선발야구, 선수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살려주는 선수 중심의 야구를 바탕으로 당시만 해도 타 구단에서 번빈하게 발생하는 피로누적이나 혹사 같은 후유증이 거의 없었고, 결국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기에 롯데가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당시 로이스터 감독은 'No Fear'(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를 롯데 야구의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이는 로이스터 감독의 야구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호임과 동시에, 당시에 패배주의에 빠진 롯데 야구를 넘어 결과지상주의의 강박에 시달리고 있던 국내 야구문화에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1~2점을 지키는 데 급급한 소심한 야구보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당시 롯데의 야구는 거의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성적도 좋았지만 실제로 이 시기에 수많은 롯데 선수들이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야구인생의 꽃을 피운 시기이기도 했다. 팬들은 매일매일의 롯데 경기 자체를 진심으로 즐겼다. 로이스터 시절의 롯데는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어도, 야구가 팬들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가치가 단순히 우승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올해도 가을야구 실패, 또다시 암흑기 도래?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이 다져놓은 토대를 바탕으로 양승호 감독 시절인 2012년까지 무려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어찌보면 이 시기가 롯데 야구사의 최대 전성기였던 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롯데는 이 전성기에 우승을 차지하지도 못했고, 팀의 영광을 장기적으로 이어갈 만한 시스템이나 비전을 수립하는 데도 소홀했다.

롯데는 2013년 이후 가을야구 진출에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올 시즌도 61승 74패로 현재 9위까지 추락하며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거의 확정적이다. 단순히 그냥 성적만 안나오는 것이면 다행이지만 투자는 투자대로 하는데도 성과는 나오지 않고 오히려 인기나 위상도 예전만 못하다는 게 문제다. 또한 롯데가 만일 이대로 올 시즌을 마칠 경우 프로야구가 10개구단 체제로 확대된 이후 팀 창단 이래 최초로 9위를 기록하게 된다. 이러다가 2000년대 초반 이후 또 한 번의 암흑기가 찾아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롯데가 몇 년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동안 비슷한 문제점의 반복이 눈에 띈다. 롯데는 로이스터-양승호 감독 시절만 해도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더 강한 면모를 보이며 뒷심이 강한 대표적인 팀이었다. 하지만 2013년 이후로는 점점 정반대가 됐다.

김시진 감독의 마지막 해이던 2014년 롯데는 후반기 18승31패를 기록하며 7위에 머물렀고, 이종운 감독이 이끌었던 2015년에도 27승31패로 8위에 그쳤다. 전반기까지 4~5강권을 유지하며 가을야구를 꿈꾸던 순위가 후반기에 역주행하며 무너졌다. 조원우 감독이 이끌고 있는 올 시즌도 전반기까지는 39승 43패로 5위권을 유지했으나 후반기에만 22승 31패로 수직추락하며 닮은 꼴 몰락을 반복하고 있다. 로이스터 감독 시절 롯데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두려움 없는 야구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잦은 감독교체와 그로 인한 연속성 부재도 롯데의 고질적인 한계로 거론된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 이후 최근 6년간 4명의 감독이 거쳐갔다. 하지만 하나같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거나 불명예스럽게 사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김시진 감독은 롯데 사령탑 부임 이전에도 감독으로서 포스트시즌 진출 경험이 전무했고, 이종운 감독과 조원우 현 감독은 롯데가 1군 감독 첫 무대인 초보 감독이었다.

초보 감독을 기용한 게 문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롯데 감독 선임의 가장 큰 문제는 뚜렷한 명분이나 철학 없이 의외의 인물을 선임해 놓고는 결과가 좋지않을 경우, 감독에게만 책임이 돌아가는 구도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감독교체가 찾았지만 최소한 구단과 연결고리가 있는 내부 인사의 승격이나 프랜차이즈스타 출신을 통하여 연속성을 지켜온 다른 구단들과는 차이가 난다.

롯데는 지난 2015 시즌 타선의 폭발과 외국인선수들의 동반 활약을 바탕으로 비록 7위에 그쳤지만 그래도 가을야구에 꽤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롯데는 그  책임을 이종운 감독에게 물어 1년 만에 경질하고 조원우 감독을 선임했다. 약점인 불펜 보강을 위하여 윤길현-손승락 등을 영입하는 등 선수영입에 투자도 아끼지않았다. 롯데는 올시즌 FA 영입에만 138억이 넘는 거액을 썼지만 정작 성적은 지난 시즌보다 조금 더 하락했다. FA 영입 선수들의 성적표도 하나같이 낙제점 수준이다.

CCTV 사건에 족발 파문까지, 한숨 쉬고 있는 롯데 팬들

또한 롯데를 더 초라하게 하는 것은 동생 격인 NC의 눈부신 성장이다. 2013년 1군 진입 초기만 하더라도 NC를 가리켜 '준비안된 신생구단이 프로 수준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4년이 흐른 지금 NC는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눈앞에 둔 프로야구의 신흥강호로 자리매김했다.

롯데와의 격차는 18.5게임에 이르며 올 시즌 상대 전적도 1승 13패로 절대 열세다. '낙동강 더비'로 불리우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는 하지만 이제는 사실상 경쟁자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또한 최근 몇 년간 롯데가 성적 부진을 비롯하여 CCTV 사건과 족발 파문 등 각종 사건사고로 구설수에 오른 것까지 감안하면 프로야구 수준 하락의 주범은 롯데쪽이 더 가까워보인다. 성적은 성적대로 못내면서 팬들을 즐겁게 하거나 감동을 주는 끈끈한 야구와도 거리가 멀다.

이처럼 매년 반복되는 롯데의 익숙한 풍경들은, 팀의 현 주소가 몇몇 특정 선수나 감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한계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현대야구는 프런트 야구라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오히려 현장보다 프런트의 전문화된 팀 운영 능력과 비전이 더 중요해졌다. 말로만 명문 구단이나 우승을 요구한다고 해서 결실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올 시즌 이후에도 롯데는 추가적으로 전력보강이 필요한 포지션이 곳곳에 널려있는 반면, FA가 되는 내부 주력 선수들의 유출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또다른 암흑기가 도래하는 것 아닌지 위기의식을 느껴야할 시점이다. 올해도 부산 팬들은 로이스터와 이대호가 활약하던 시절을 안주삼아 과거의 추억으로만 위안을 받아야 하는 현실에 한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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