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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 아니라 의지가 필요한 때'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들으며 주인공 오기는 병원에서 눈을 뜬다. 오기는 자동차 사고로 인해 눈꺼풀과 왼손 조금 말고는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없다. 같이 차를 타고 있던 아내는 죽었고,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천애고아였다.

그를 돌봐줄 사람은 나이든 장모뿐이었다. 장모 또한 딸을 잃은 슬픔 속에 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언제 괜찮아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이전에 상상해본 적도 없는 불행이 그에게 닥쳐왔다.

홀 The Hole. 문학과 지성사. 2016. 편헤영.
 홀 The Hole. 문학과 지성사. 2016. 편헤영.
ⓒ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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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과 <재와 빨강> 등을 통해 섬뜩한 문체로 정평이 난 작가 편혜영의 신작 소설 <홀>(The Hole)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녀의 소설은 얼핏 장르적이라고 생각 될 정도로 독자를 흥분시키는 구성을 취한다. 이 소설 또한 불구가 된 남자의 시선으로 몸이 정상이었던 때의 삶과 조금씩 망가져가는 장모를 공포스럽게 묘사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차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드러나고, 반전 또한 존재한다. 몰입감과 속도감이 넘쳐흐른다. 그런데 이 격한 서사의 흐름 속에서도 독자는 문득 멈춰 서게 된다. 그리곤 이 갑갑하고 무서운 이야기에서 잠시 빠져나와 생각한다. '대체 이 인물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오기는 여전히 삶을 향한 의지를 불태운다. 장모 또한 처음에는 그의 병수발에 힘쓴다. 오기의 삶은 모두 장모에 의해 통제되고, 장모의 삶에 유의미한 것은 딸의 남편이었던 오기뿐이다.

그러나 딸을 잃은 장모의 마음은 점점 망가져가고, 오기에게 가혹해져간다. 오기는 직업, 동료로부터 시작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까지 많은 것을 잃어간다. 장모는 마당에 큰 구덩이를 판다. '그 구덩이는 대체 무엇일까' 오기는 생각한다.

'아내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자신이 쓴 것을 이야기했다. 일찌감치 속물이 된 남자가 성공을 위해 어떻게 우연과 술수를 활용하는지, 그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후배와 오랫동안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그의 특별한 윤리 감각을 드러나는 일화라고 비아냥거렸다. 아내는 그 글을 몇 곳에 발송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고 전, 달리는 차 안에서 아내는 자신의 삶의 어둠을 한껏 드러낸다. 오기의 아내는 여태껏 잘 참아왔다. 점점 속물이 되어 자신을 무시하고, 외도까지 일삼는 오기에게 화도 내보고 분을 삭이기 위해 정원도 가꿔본다.

우스운 것은 오기와 아내의 삶은 그들이 혐오하던 것의 반복과 변주라는 사실이다. 오기는 그가 혐오하던 아버지처럼 권위적이고 속물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아내는 그녀가 싫어하던 바람 피는 아버지를 참아내는 그녀의 어머니 같은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반전은 여기에 있다. 삶에 대해 그토록 열정적이던 오기는 사실 아내를 정신적, 육체적 죽음으로 몰고 간 파렴치한이었고, 섬뜩하고 위협적인 장모는 그런 사실을 딸의 기록을 통해 알아가며 고통 받는 어머니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불구가 된 오기가 동료들에게 똥오줌을 못 가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을 만큼 못된 인간이었을까?

그는 그의 삶에 충실했을 뿐이다. 이야기 속에는 선도 악도 없다. 오직 인물들의 필사적인 삶과 그 삶 속의 불행만이 있을 뿐이다. 인물들은 그 속에서 내면의 구멍에 점점 빠져들어 간다. 작품은 그 어두운 구멍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고, 더 원망하고, 더더욱 스스로 아파하는 것을 보여준다.

"어디 한번 일어나보게. 걸어서 나랑 같이 정원으로 나가보세."
장모가 오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두웠지만 장모가 활짝 웃는 게 다 보였다.


소설은 끝까지 담담하게, 담담하기에 더욱 소름끼치게 그 과정을 보여준다. '타스케테 쿠다사이(살려주세요)'라고 읊조리던 장모는 회복의 희망을 가진 오기의 마음을 이렇게 짓밟을 정도로 독하고 적나라해진다. 장모 마음의 구멍은 이미 흘러넘쳐 현실 속 집의 정원에까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독자는 여전히 두렵고 격정적인 감정선을 타고 이야기에 휩쓸린다. 그러나 이때쯤부턴 마냥 '이 인물은 왜 이렇게 무섭게 굴지?'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무서우면서도 조금 슬프다. 환자는 오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마음속의 구멍도 마냥 피해야 할 것으로 보이지 않고, 구멍에 빠진 타인도 마냥 한심하게 보이지 않는다.

구덩이를 주제로 한 소설은 문학사에 몇 권이 더 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구덩이>와 미국의 루이스 새커가 쓴 청소년 소설 <구덩이>가 그것이다. 전자에서의 구덩이는 20세기 초 러시아가 외쳤던 집단화의 흐름 속에서 대규모 건축물의 토대였던 구덩이가 무덤용 구덩이가 되는 모습을 통해 유토피아의 허구, 즉 디스토피아를 보여주고, 후자의 작품에서 구덩이는 아이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내모는 어른들의 불합리한 폭력을 상징한다.

이 두 작품에서도, 편혜영의 <홀>에서도 구덩이는 결국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구멍이다. 체제를 위해 몸 바쳐 일하는 이들에게 생기는 마음의 심연,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가 패인 아이들 마음속의 흉터, 자신의 삶에서 떠나지 못했던 오기 아내의 구멍까지, 구멍은 도처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그 구멍들을 조금 더 보듬으며, 삶에 부드럽게 융화시키며 제대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편혜영 지음, 문학과지성사(2016)


태그:#편혜영, #홀, #여성작가, #한국문학,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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