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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와 함께 지난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7박 8일동안 백두대간 중 태백산부터 소백산까지 생태 탐사를 하였습니다. 탐사 내용을 생태적 측면에서 초본과 목본, 관리적 측면에서 실태 현황, 인문학적 측면에서 태백산과 소백산을 나누어 총 5회에 걸쳐 싣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1400km를 이르는 백두대간을 두 발로 걸으며 조사하였다. 백두대간을 지키고 정책적 개선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98년부터 시민단체들이 조사를 시작한 백두대간 탐사가 올해에는 태백시 당골(천제단)에서 출발하여 소백산 죽령까지 진행되었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가 주최한 7박8일의 백두대간 생태 탐사에 앞서 태백산 천제단 옆에서 안전을 기원하며 기념 촬영
▲ 백두대간 태백~소백까지 생태탐사단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가 주최한 7박8일의 백두대간 생태 탐사에 앞서 태백산 천제단 옆에서 안전을 기원하며 기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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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太白山). 흰모래와 자갈이 쌓여 마치 눈이 덮인 것 같다 하여 태백산이라 불리기도 하고 '크고 밝은 뫼'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한국의 12대 명산에 들며, 한반도에서 삼신산(환인, 환웅, 환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영산(靈山)으로 추앙받아 왔고, 탐사단에 도착 했을때도 단에는 두 사람이 가부좌(跏趺坐)로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다.

백두대간인 태백산은 함경남도 원산의 남쪽에 있는 황룡산에서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을 거쳐 태백산으로 이어진다. 한반도의 척량산맥인 태백산맥의 주봉이자 소백산맥으로 갈라지는데 민족의 영산으로 천년동안 병화가 들지 않았다고 한다.

태백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은 장군봉(1567m), 부쇠봉(1546m), 문수봉(1517m) 등 고봉들이 거대한 능성을 이루고 있다. 함백산(1573m)과 청옥산(1277m), 구룡산(1346m) 등과 함께 주변에 1000m 이상의 봉우리들이 100여 개나 모여 거대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태백산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와 태백시 문곡소도동 그리고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천평리와 접경을 이루며 태백산에서 발원하는 물이 영남평야의 젖줄인 낙동강과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한강, 삼척의 오십천을 이루며 38도선 이남에 있는  모든 산들의 모태산 역할을 하고 있다.

등산로 입구에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가지고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을 모시는 당군성전(1982년 창건)이 있고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단군제를 봉행한다고 한다.

당골 진입로에는 성황당과 함께 치성을 드리며 쌓은 돌탑처럼 등산객들의 마음을 담아 쌓아올린 자그마한 돌탑들이 천제단 가는 길에 이어졌는데 하늘을 연 태백산의 천제를 올리기 위해 걸었던 과거 제관들의 마음과 오늘날 탐방객들의 마음이 이어지는 듯했다.

태백산은 예로부터 계룡산과 함께 민간신앙의 중심지로, 산신당을 비롯한 기도처가 곳곳에 많았는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70년대 토속신앙을 없앨 때 대부분 철거되었다고 하여 마음이 씁쓸했다.

태고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천제단은 신라시대 때까지 왕이 직접 제천의례를 올렸고, 고려 때까지 국가에서 직접 제관을 파견하여 제천의례를 행했다. 하늘에 제를 지낼 수 있는 천제와 소통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망경사에서 천제단 가는 길목에 단종비각(端宗碑閣)이 있었는데 비에는 '조선국 태백산 단종대왕지비(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라고 새겨져 있다. 조선의 왕으로 왕좌에서 쫓겨나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이곳에 이르러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가 주최한 7박8일의 백두대간 생태 탐사시 태백산에 있는 천제단
▲ 백두대간인 태백단의 천재단과 한배검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가 주최한 7박8일의 백두대간 생태 탐사시 태백산에 있는 천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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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단은 태백산 정상에 위치하며 천왕단(天王檀, 한배검-단군 왕검을 높이는 말)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장군단(將軍檀), 남쪽에는 그보다 작은 하단 등 3기로 구성되었으며 적석으로 쌓아 신성(神域)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있는 천왕단은 자연석으로 쌓아 있었고, 둘레가 30여m, 높이가 3m이내, 좌우폭과, 앞뒤폭이 약 8m정도의 타원형이다. 자연석으로 쌓아져 있는데 윗쪽은 원형이고 아래쪽은 사각형(각이 뚜렷하지는 않음)으로 있는데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에 따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천제단을 올려가는 길에 있는, '하늘 아래 첫 샘물'이라는 별명을 가진 용정(龍井, 해발 1470m의 약수, 낙동강의 원천)은 개천절에 천제의 제수로 쓰였으며, 제물을 준비하였던 태백신사(太白神祠)에는 신라의 자장(慈藏)이 창건(진덕여왕 6)했다는 망경사(望景寺,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 말사)가 긴 역사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가 주최한 7박8일의 백두대간 생태 탐사시 태백산의 망경사 입구에 있는 용정각으로 천제단의 제수로 사용
▲ 태백산 천제단에 올리는 '하늘 아래 첫 샘물'이 있는 용정각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가 주최한 7박8일의 백두대간 생태 탐사시 태백산의 망경사 입구에 있는 용정각으로 천제단의 제수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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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비각과 천제단 밑에는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알현하여 지었다는 망경사가 있는데 하얀색이 강하게 남아있는 문수보살상이 대웅전과 용정각 사이에 서서 민초들의 속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경사는 불교사찰인데도 사찰분위기가 강하지 않았는데 구조적인 분위기이기도 하고, 망경사 입구부터 대웅전 앞까지 수 년 동안 쌓아 올린 오래된 장작더미들이 혼합되어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대웅전 왼쪽에는 용정각외에 삼성각이 있는데 들어가 보니 단군왕검과 신신령 등의 영정이 모셔져 하늘을 여는 천제단의 기운을 함께 기리고 있었다.

탐사단은 천제단을 거쳐 봉화군 석포면, 소천면, 영월군 상동읍,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깃대배기봉(1350), 차돌배기와 신선봉, 곰넘이재로 이동을 하는데 임도가 있었다.

아마도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질 좋은 금강송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임도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고 추정된다. 임도는 산불 방지용 방화선 등으로도 사용을 하며 백두대간마다 설치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곰넘이재는 과거 곰재, 검재, 곰님이(고개넘이 준말)재로 불리다 지금은 곰넘이재로 불린다. 오래전에 백두대간의 먹이사슬이 단절되기 전까지 이 고개로 곰이 넘어 다녔다고 하여 곰넘이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영남과 강원도를 오고 가던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이자 먼 옛날 천제를 지내기 위해 태백산으로 향하던 관리들이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잠시 휴식을 하며 그 기운을 받고 구룡산으로 향했다.

물동이를 이고 가던 한 아낙이 승천하는 용을 보고 "뱀봐라"하면서 용의 꼬리를 잡아 당기자 용이 떨어져 뱀이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구룡산.

구룡산은 해발 1344m로 경북 봉화군의 춘양면 우구치리와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덕구리로 태백산과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대두간 능선부에 있어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계를 이루는 곳으로「조선지형도」에는 구령산(九靈山)으로 기재(인용 : 네이버 지식백과)되어 있기도 하다.

도래기재는 강원도 영월과 경북의 봉화로 나누어지는데 동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보상과 부상들이 걸었던 곳이고, 조선시대 역(驛)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도역리(道驛里)가 변음된 것이다.

부족국가 시대에는 소라국이 있어 번창하였고, 조선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 도래기재 주변마을은 여관과 극장 등이 있을 정도로 번창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도래기재에서 옥돌봉(옥석산) 가는 길에는 붉은 빛이 돌아 적송으로 불리는 금강송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경북의 시베리아'라는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명해주었다. 옥돌봉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옥과 함께 자연금이 많이 있어 보상과 부상들이 수없이 다녔을 이곳 도래기재는 현대사에 또 다른 아픔을 묻어두고 있다.

도래기재의 금정굴(터널, 금정도수)은 일본제국주의 강점기시에 우리나라의 금 자원을 찬탈하기 위해 터널이 뚫리는 아픔이 있었고, 한국전쟁 때는 남과 북이 치열한 격전지로서 많은 인명 피해를 내며 시대적 고통을 품은 곳이기도 하다. 금정굴은 해방 후에도 보수를 하며 사용하다 태백시의 함태탄광이 폐광되었고, 굴(터널)위에 도로가 개설되고 나서 폐쇄(인용 : 네이버 지식백과)하고 주변에 소공원을 조성하였다.

금강송으로 유명한 소나무도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시절부터 대규모 벌채로 우수한 금강소나무들은 몇 그루 남지 않고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당시 벌채된 소나무가 40m가 넘고, 그루터기에 열 명 이상이 올라 앉아 밥을 먹었다고 하니 백두대간을 따라 생태계가 훼손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도래기재에서 마루금을 따라 옥돌봉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560년이나 된 고령의 철쭉이 한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50여 년전에는 경제적 가치가 없는 나무라 하여 대대적인 벌목이 있었으나 다행히 살아 남아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령임을 자랑하고 있다. 이 보호수의 주소지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소의 입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짐) 산1-1번지라고 한다.

옥돌봉과 선달산 사이 고갯마루에는 고려 때 거란군을 물리친 박달령에 산령각이 있는데 '박달령성황신위'라는 큰 나무 위패로 모셔져 있었다. 1960년대 군부독재시절 전국의 성황당이나 산령각들이 미신이라 하며 때려 부셨던 수난의 시절을 넘어 박달령을 넘나드는 수많은 탐방객들과 지역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의 안식처로 개방된 신앙공간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가 주최한 7박8일의 백두대간 생태 탐사시 태백산 박달령에 있는 산령각
▲ 백두대간 마루금인 박달령에 있는 산령각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가 주최한 7박8일의 백두대간 생태 탐사시 태백산 박달령에 있는 산령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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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에서 강원도를 통하는 관문인 마구령을 지나 태백산 끝자락에 있는 고치령에는 어린 나위에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길에 나섰던 단종을 태백의 신으로, 단종의 복위를 꿈꾸었던 금성대군을 소백의 신으로 모셔서 그런지, 주변의 장승들과 함께 분위기가 엄숙하였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가 주최한 7박8일의 백두대간 생태 탐사시 태백산과 소백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산령각으로 태백산신과 소백산신을 모시고 있음
▲ 태백산신령과 소백산신령을 모시는 고치령의 산령각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사)풀꿈환경재단, (사)백두대간연구소가 주최한 7박8일의 백두대간 생태 탐사시 태백산과 소백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산령각으로 태백산신과 소백산신을 모시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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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낭당에는 2개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하는데 '태백산령지위'와 '소백산령지위'이며, 산신령 옆에는 백마를 타고 용포를 입은 왕이 지날 때 한 선비가 머리 숙여 예를 갖추는 모습이 그 엄숙함을 더했다.

태박산의 종점인 고치령에는 다른 산령각(성황당)과는 다르게 이 곳은 부석, 단산을 비롯해 영주 등 인근 주민들이 함께 받들며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소백산과 손을 잡고 있었으며, 이런 주민들의 마음처럼 자연과 사람도 함께 공생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길 기원하며 태백산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태그:#백두대간,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태백산, #천제단, #성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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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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