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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
 오키나와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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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나를 낯설게 만든다. 오키나와의 파란 바다, 오키나와의 푸른 하늘이 우리네 그것과 다르지 않을 텐데, 달라보인다. 달뜬 기분 때문이라고 무시해보지만, 달라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내려 길을 간다. 우리 일행이 처음 도착한 곳은 서남쪽 해변에 있는 마사히로 주조장. 이곳은 1883년 처음 창업할 때는 유구왕국의 궁궐이 있던 수리성 부근에 있었다. 양조장을 창업한 이는 궁중 요리사였고, 중간에 전쟁을 치르면서 단절을 겪고 지금 제조장은 1965년에 설립됐다. 마사히로는 3대 후손의 이름이고, 지금은 4대 후손이 주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와모리 증류주와 식초를 만들고 있는데, 둘 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를 이어갈수록 가치와 가격이 올라가는 발효 식품이다.

마사히로 주조장 마당의 술 저장고.
 마사히로 주조장 마당의 술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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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장 마당이 넓어 버스가 편안하게 들어갔다. 양조장 마당 한쪽에서 거대한 술 저장고가 도열해 있었다. 원통형으로 3층 높이는 돼 보였다. 이 양조장의 저장 가능한 용량이 3440톤이라고 한다. 500㎖ 술 2000병이 1톤이니, 그 숫자를 헤아리기가 혼란스럽다.

우리 양조장에서 보기 어려운 것이 저장 용기다. 희석식 소주 제조장이나 대형 맥주 제조장에서는 거대한 저장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중소 규모 양조장에서는 저장통을 보기 어렵다. 동네 양조장들은 10일 안에 유통해야 하는 막걸리가 주력 상품이다 보니 그렇고, 약주나 증류식 소주도 저장과 숙성을 하여 파는 술이 드물다 보니 그렇다.

놀랐다, 뱀술을 봤다

마사히로 주조장의 입구에 새겨진, "그대는 아는가 아와모리 명주를"이라는 사카구치의 말.
 마사히로 주조장의 입구에 새겨진, "그대는 아는가 아와모리 명주를"이라는 사카구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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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히로 주조장 입구 바위에 일본술의 권위자 사카구치긴이치로(坂口謹一郞)의 "君知るや名酒泡盛"(그대는 아는가, 명주 아와모리를)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사카구치가 1970년에 발표한 논문인데, 이 글로 인해 아와모리를 재인식하게 되고, 가치가 달라지게 됐다고 한다.

마사히로 주조장 1층은 전시 판매장이었다. 주조장 술들이 시음하는 곳이 있고, 술과 항아리를 곱게 모신 제단도,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포토존도 있었다.

이 전시장에 들어와 놀란 것은 뱀술의 존재였다. 한국에서는 동물 술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사주, 뱀술이 황학동 같은 곳에 있긴 하지만, 음성적으로 거래되거나 호사가들이 사사로이 취하는 것이지 공식 상품으로 유통할 수 없다. 그런데 오키나와에서는 뱀술, 하브주(하브는 뱀을 뜻하는 일본말)가 특산주란다. 섬에 뱀이 많아서, 그 뱀을 처치하다보니 뱀술을 상품화시켰다고는 하지만 보기에 섬뜩했다.

아와모리 증류주 속에 담긴 뱀.
 아와모리 증류주 속에 담긴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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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판매장의 2층에는 아와모리와 관련된 홍보관이 있었다. 아와모리를 빚는 데 사용하는 검은 누룩이 있고, 화덕 위에 올려둔 전통 목통 증류기도 있었다. 주조장에서 만든 예전 제품들도 빛바랜 채 보관돼 있었다.

2층 전시 홍보관에서 곧바로 주조장 작업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작업장 안에 아와모리를 숙성시키는 대형 전통 항아리가 있고, 그 옆으로 대형 증류기가 있었다. 증류기의 생김새가 위로 길게 된 원통형이 아니라, 트럭에 실려있는 탱크처럼 옆으로 길게 누워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오키나와만의 증류 설비였다. 원통형이 길게 누웠는데, 증류를 하는 내부 구조도를 보니 이해할만 했다. 원통형 증류기 안쪽으로 또 다른 긴 원통형 관이 들어가 있고, 그 관으로 뜨거운 증기가 들어가 알코올 증발을 이끌었다. 가열되는 술의 면적을 넓혀서 효과적으로 증류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였다.

만약 당신이 뱀술을 마주한다면, 이건 지키시라

마사히로 주조장의 증류기.
 마사히로 주조장의 증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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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장 견학 담당자는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지켜야 할 비밀이 있나 보다. 허락된 창밖에서 간신히 몇 장 사진을 찍고 아래층 시음 판매장으로 내려오니, 그새 사람들이 많아졌다. 새로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부려놓아 시음하려면 체면없이 줄을 서야 했다. 그 와중에도 내 눈에는 또아리를 틀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흰 뱀의 존재가 들어왔다.

뱀술은 그 효능을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견해 차가 크게 갈리는 술이다. 마셔본 사람들은 뱀술에 대한 굳건 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뱀술이든 뱀탕이든 보면 그냥 마시라는 이들도 있다. 뱀 100마리를 1동이라고 부르면서, 그 1동을 달여마셨다는 이도 만난 적이 있다.

효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아버지만 하더라도, 뱀술이 끊어진 허리도 이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20년 동안 뱀술을 아껴두시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뱀술은 너무 작은 술병에 담겨 있어서 20년이 지난 어느 날 열어보니 술이 검게 변하고, 악취가 나서 안타깝게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술을 버리는데, 뱀뿐만이 아니라 인삼과 영지버섯도 함께 나왔다. 건강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이 그 술병 안에 가득 담겨져 있었다. 

뱀술은 마시는 법이 특이하다. 뱀술은 빨대로 마셔야 한다. 빨대로 목젖 가까이 대고, 잇몸에 술이 묻지 않게 마셔야 한다. 뱀술을 상처난 피부에 바르면 독이 퍼져 죽을 수 있지만, 마시면 죽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진지하게 내게 해준 이도 있었다. 허리가 굽어서 허리를 펴려고 뱀술을 마셨던 섬 아주머니가 있었다. 뱀술 덕분에 거짓말처럼 허리가 펴졌다는데 이빨이 몽땅 빠지고 말았다. 뱀술의 들어있던 독 성분이 상처난 잇몸으로 들어가 이빨이 빠졌다는 것이다. 이렇듯 뱀술에는 믿기 어려운,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우리에게는 금기가 다른 고장에서는 정상이 되는 상황

하브박물공원의 뱀술 침출 탱크.
 하브박물공원의 뱀술 침출 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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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키나와에서는 뱀술이 넘쳐났다. 마사히로 주조장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테마파크인 오키나와 월드 문화 왕국이었다. 폐망한 왕국의 이름이 테마공원으로 들어와 있었다. 100년 전에 지어진 오키나와 민가들도 있다고 하는데, 시간에 쫓겨 돌아본 내 눈에는 뱀이 들시글거리게 들어있는 술 탱크만이 보였다.

뱀 하나에 술 한 병이 아니라, 큰 탱크에 뱀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고, 그 침출주만 따로 병에 담아 팔고 있었다. 하브 박물 공원이라고 이름까지 달아두고, 유구의 술, 하브주를 팔고 있었다.

여행은 나를 참 낯설게 만든다. 우리에게 금기가, 다른 고장에서는 버젓이 정상이 된다. 우리에게는 부도덕이, 다른 곳에서는 놀이가 되기도 한다. 혼란스럽다. 사는 것은 약속하기 나름일까? 술에 무엇이 담기는지도 약속하기 나름일까?


태그:#뱀술, #사주, #뱀주, #허시명,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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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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