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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는 잠시 미뤄두고 아무 생각 없이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엔 '치맥'(치킨과 맥주)만큼 좋은 게 없다. 앞뒤가 꽉 막힌 직장 상사의 압박, 무개념 부하 직원의 잦은 실수, 우연히 듣게 된 동창의 승진 소식…. 일주일 동안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몰려오던 답답함도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시원하고 톡 쏘는 맥주 한 잔이면 뻥 뚫리는 것만 같다.

맥주는 특유의 청량감과 개운함으로 묵은 스트레스와 피로를 시원하게 날리며 오랜 기간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그중에서도 오비맥주가 생산하는 카스(Cass)는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맥주 중 하나다.

카스는 점유율 2위 맥주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5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굳건히 정상을 지키고 있다. 2014년엔 산화취(맥주 속 맥아가 산화돼 나는 냄새) 논란 등 고비도 맞았지만 금방 제자리를 찾아왔다. 카스는 어떻게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나라 대표 맥주가 될 수 있었을까.

재료는 변하지 않았지만 맛은 더 좋아진 비결

늘 호시탐탐 1위 자리를 넘보던 카스는 2010년을 전후로 국내 맥주 단일 브랜드 판매량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소비자는 "이전에 비해 맥주 맛이 좋아졌다"고 말했지만 사실 재료의 비율이나 배합 등 맥주의 질적인 면에서 변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비맥주 변형섭 홍보이사는 "그 즈음 시작된 신선도 전략이 유효했다"고 말한다.

금방 쉬어 버리는 막걸리도 아니고 맥주에 무슨 신선도가 중요할까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의외로 신선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맥주 업계엔 '가장 맛있는 맥주는 갓 생산한 맥주'란 말이 있다. 오비맥주가 맛 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공장 출고에서 소비자에 이르기까지의 유통 기간의 단축을 고민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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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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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는 유통을 단순화하고 한동안 출고를 줄여 재고를 최소화 하는 방식으로 공장에서 나온 맥주가 바로 시장으로 유통될 수 있도록 했다. 생산에도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모험이었다. 재고가 쌓이지 않도록 조금 더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랐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특히 다른 맥주보다 톡 쏘는 맛이 특징인 카스의 맛을 끌어올리는 데 유효하게 작용했다. 맥주 애호가는 이 단순하고 작은 차이를 금방 잡아냈다. 그 즈음 카스는 소폭 성장을 이룬 맥주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 증가율을 보이며 카스 시대의 개막을 예고했다.

국내 맥주가 밍밍한 이유

2012년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특파원이 "한국 맥주는 북한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기사를 쓰면서 갑작스럽게 맥주 맛 논란이 일었다. 한창 카스가 성장하던 때였다. 그때부터 "국내 맥주는 싱겁다", "특징이 없다"는 등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다. 맥주 수입 업체는 이때를 기회 삼아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수제 맥주집이 유행을 타고 곳곳에 자리를 틀었다. 그야말로 피 튀기는 맥주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카스는 국내 맥주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맛 논란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카스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맥주는 흔히 맛과 향이 진한 에일(ale), 청량감이 강한 라거(lager), 신맛이 특징인 람빅(lambic)으로 나뉜다. 국내 소비자는 주로 자극적이고 향이 강한 음식에 맥주를 곁들이는데, 음식의 맛이나 향이 부딪히지 않는 맥주를 찾다보니 라거 계열의 맥주를 선호한다.

한 잔을 두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즐기는 문화도 아니어서 굳이 오랫동안 맛과 향이 지속되는 에일 맥주일 필요도 없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소비자가 좋아하는 맥주를 생산하다보니 라거가 주를 이룬다.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이 비교한 북한의 대동강 맥주는 에일 맥주로 진하고 쓴 맥주다. 당연히 국산 라거 맥주는 물처럼 싱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맥주 전문가들은 "에일과 라거의 구분을 떠나 맛으로만 평가해도 국내 맥주가 수입 맥주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비맥주가 제품의 개발과 생산을 모두 담당하는 '블루걸'은 홍콩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다.

해외 브랜드 이름을 달고 있지만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우리 맥주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맥주 제조 기술이 세계적으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홍콩 1위 맥주 '블루걸'은 오비맥주가 ODM방식(제조업자가 개발과 생산 모두를 맡는 형식)으로 생산하는 맥주다. ⓒ 오비맥주
 홍콩 1위 맥주 '블루걸'은 오비맥주가 ODM방식(제조업자가 개발과 생산 모두를 맡는 형식)으로 생산하는 맥주다. ⓒ 오비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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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발생한 산화취 논란은 카스의 성장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됐다. 카스에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는 불만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되며 치솟던 매출액이 한때 주춤했다. 조사 결과 맥주가 산소와 접촉하며 발생하는 냄새로 밝혀졌다.

당시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생산량을 늘렸으나 생각만큼 판매량이 늘지 않아 쌓인 재고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제품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소독약'이란 단어가 함께 쓰이며 "먹으면 큰일 난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미지에도 타격이 컸다.

유독 카스에서만 문제가 있었던 건 다른 맥주와의 맛 차별화를 위해 용존산소량을 기존 맥주보다 2배 이상 늘렸기 때문이었다. 오비맥주는 산화취 논란 이후 카스의 용존산소량을 절반 이상 줄였다고 밝혔다. 결국 처음 의도했던 맛의 차별화 전략은 수포로 돌아갔다. 빠른 유통을 통해 생산 1∼2주 안에 맥주를 소비하게 할 의도였지만 유통 관리를 소홀히 했음을 증명한 셈이 됐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진수씨 맥주 사주세요"

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 카스의 홍보 전략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바로 '청춘'이다. 카스는 2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청춘남녀를 향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20대를 집중 공략한 데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다.

20대에겐 일종의 동료 의식을 자극해 큰 홍보 없이도 자연스럽게 카스를 마시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그보다 높은 연령층엔 '젊은이가 즐겨 찾는 트렌디한 맥주'란 인식을 심어줘 카스를 즐겨 찾게 한다는 전략이다. 소비자는 맥주와 같은 식음료를 선택할 때 도전을 꺼리며 처음 접한 익숙한 것만 계속 선택하게 된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오비맥주가 청춘들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진행한 광고 ⓒ 오비맥주
 오비맥주가 청춘들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진행한 광고 ⓒ 오비맥주
ⓒ 푸드앤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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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는 젊은 맥주로 자리하기 위해 20대 청춘과의 공감대 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올해 초 카스는 서울 시내 곳곳에 "진수씨 맥주 사주세요"란 광고를 붙였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덩그러니 쓰인 이 문구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수 없이 도전하고 좌절하는 이 시대의 청년에게 "쉽게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라"는 의미에서 제작했다. 아픈 마음을 맥주 한 잔에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해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카스는 이렇게 20대 청춘과 성장해 20여 년간 청춘 맥주로 자리매김해 왔다. 변형섭 홍보이사는 '카스의 10년 후를 어떻게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여전히 대한민국 1위 맥주일 것"이라 자신 있게 답했다.

"청년은 나이가 들어서도 카스를 잊지 않을 것이기에 백세 시대에도 카스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고도 덧붙였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청춘과 공존하며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청춘 맥주로 남기 위해 앞으로 카스가 어떻게 변화하며 성장해 나갈지 궁금해진다.

[기자 생각] 눈 감고 마시면 구분하기조차 힘들다는 국내 맥주. 소비자의 선호도만 좇다가 개성을 잃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하지 못하는 일을 제대로 수행할 때 가장 빛을 발한다. 맥주 대기업이 지금 할 일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하는 일이다. 현재 국내에 상륙한 수입 맥주는 600여 종에 달한다. 소비자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 푸드앤메드'(www.foodnmed.com)에도 실렸습니다. 이문예 기자 moonye23@foodnmed.com



태그:#푸드앤메드, #오비맥주, #라거, #카스, #이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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